< 훈수로 메이저리거 - 170화 >
* * *
다음날.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흐엑...흐엑...!”
“우웩!!”
그리고 예상대로 두 사람은 쓰러졌다.
헛구역질을 해대는 최연우와 이영훈을 보며 박광수는 여유롭게 스포츠드링크를 들이켰다.
“쯧쯧, 고작 새벽훈련만 하고는 벌써 지친 거냐?”
“새...새벽후...훈련?!”
“훈련은 하루에 총 3번이야. 새벽이 간단한 웜업이고 오전에는 근력운동 그리고 오후에는 기술훈련이 이어지지.”
“이게...웜업이라고?”
질려하는 최연우를 보며 박광수가 낄낄거렸다.
이해는 한다.
자신도 작년에 저런 표정을 지었으니까.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오늘을 위해서 평소에도 훈련량을 조금씩 늘려왔지! 덕분에 신우형의 훈련도 버틸 수 있어!’
작년 훈련을 통해 신우의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 체감했다.
그렇기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매일매일 조금씩 훈련량을 늘리면서 체력을 키웠다.
힘들었지만, 참고 인내했다.
작년에 보였던 허약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 말이다.
거기에 최연우와 이영훈이 온다고 하자 박광수는 더욱 훈련에 열을 올렸다.
포지션은 다르지만, 같은 나이이기에 라이벌의식이 있었다.
그건 세 사람 모두 마찬가지였다.
특히 박광수는 작년 홀로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약간의 자격지심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박광수는 더욱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광수야.”
신우의 불길한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너 멀쩡해보인다? 강도 좀 높여서 프로그램을 짜야겠네.”
“예...?”
“내 훈련의 기본은 심박을 높이는 건데, 너 보니까 지금 강도로는 어림도 없는 거 같다. 그러니 강도를 더 높이자.”
털썩-!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광수가 쓰러졌다.
그리고는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혀...형...! 저...저 죽을 거...가...같아요...!”
톡톡-!
“어, 안 통해. 여기 네 심박수 다 표시된다.”
“...젠장...아니! 형, 그런데 형도 멀쩡하잖아요!”
“첫날이라 너희들 봐주느라 조금 늦춘 거야. 이제부터 시작한다. 루스!”
“오케이-! 가자고!”
루스와 함께 신우의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러닝 위를 달리고.
“넥스트!”
“훅! 훅!”
바벨을 들고.
“넥스트!”
“헉! 헉!”
사이클을 탔다.
중간중간 다른 운동을 집어넣었는데, 하나 같이 속도가 엄청났다.
자세보다는 스피드와 횟수에 중점을 둔 훈련이었다.
바벨에도 원판을 적게 끼워 부상의 염려가 없었다.
이런 훈련방식은 근육을 키우는 것보단 횟수를 늘려서 심박에 부하를 주는 훈련이었다.
세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신우가 하는 훈련에 비하면 자신들이 하는 건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말없이 신우의 훈련을 보던 최연우가 일어났다.
“젠장...네가 작년에 왜 그렇게 힘들었다고 하는지 알겠다.”
“휴일에 편히 누워있는데, 아부지가 말없이 청소하는 거 보는 기분이네.”
“청소는 가정부 아줌마가 하는 건데, 왜 아버지가 하시냐?”
“하아...”
여전히 앉아 있는 박광수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일어나는 이영훈이었다.
“아 왜!!”
이해 못하는 박광수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렸다.
* * *
훈련을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신우는 체력훈련과 기술적훈련을 동시에 진행하며 틈틈이 광고촬영도 진행했다.
훈련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진행되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난 뒤부터 신우는 훈련에 조금 변화를 주었다.
“훅! 훅!”
“오케이! 하나 더!”
웨이트 파트의 담당인 루스와 함께 웨이트에 더욱 힘을 실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심폐지구력을 늘리는 훈련이었다면 이제는 파워를 늘리기 위한 중량중심의 웨이트 역시 추가했다.
[타격에서 중심이 되는 건 몸 전체의 파워를 늘리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량을 늘리는 훈련도 병행을 해야 해.]
타이콥의 말은 타격의 정석이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근육을 늘리면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는데?]
스판이 투수 레전드들을 대표해 반대했다.
투구는 정밀한 기계와 같다.
신체는 그 기계의 부품으로 하나가 변하면 기계 전체에 영향이 갈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과도한 벌크업은 투구동작에 미세한 변화를 주어 폼 자체가 떨어질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유연성을 길러야지.]
[유연성?]
[그래. 근육과 유연성이 동시에 늘어나면 몸이 움직이는 것에 영향을 끼쳐도 문제 없을 걸?]
[으음...어떻게 생각함?]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긴 한데...]
[유연성도 기르기 위해선 지금 프로그램을 바꿔야 되지 않을까?]
[그렇지. 지금은 심폐지구력과 근력에 중점이 맞춰져 있으니까, 프로그램의 밸런스를 다시 조정해야겠네.]
[그럼 중간에 유연성 훈련도 포함하면 되겠음?]
[그것보단 그냥 휴식시간을 좀 더 줄이자.]
[얘 하는 거 보니까 조금 여유가 생기는 거 같은데, 그것도 나쁘지 않을 듯.]
타앙-!!
“오케이! 잠깐 휴식!”
때마침 바벨을 내려놓은 신우가 땀을 닦으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자...잠깐만요. 이거 당사자 의견도 물어봐야 되지 않습니까?’
[왜?]
‘예? 왜냐뇨? 그래도 제가 운동하는 건데...’
[언제부터 우리가 너한테 물어봤다고 ㅋㅋ]
[네가 먼저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이제 와서 안하겠다고?]
[이제 돈 좀 벌었다 이건가?]
[하긴 지금 버는 돈이면 평생 먹고 사는 건 부족함이 없지.]
[그래, 그냥 투수만 해라.]
강하게 몰아붙이는 레전드들의 채팅에 신우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할게요, 합니다.’
[ㅋㅋㅋ 결국 백기투항하쥬.]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
레전드들도 궁금했다.
신우의 일정은 살인적이었다.
이런 일정을 모두 소화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신우는 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야구가 하고 싶었거든요?’
시작은 순수한 열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선배님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어서요.’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한 마디?]
[뭔데?]
신우가 다른 기구로 옮겨 앉으며 말했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엌ㅋㅋㅋ]
[우리가 호랑이새끼를 키웠누.]
[그런데 우리 야구 하는 거 어떻게 보려고?]
‘뭐, 저도 언젠간 거기 가지 않겠습니까?’
[무섭누.]
이제는 레전드들에게 훈수를 두고 싶다는 하나의 생각 때문에 훈련을 참아내는 신우였다.
“오케이! 고!!”
“흡!!”
악에 받친 신우가 기구를 들어올렸다.
* * *
신우는 스포츠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 신우의 머리 위로 드론 한 대가 날아갔다.
해안도로의 끝에 도착한 신우가 멈추자 기다리고 있던 감독이 모니터를 보다 외쳤다.
“오케이! 컷!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10번째 광고촬영이 끝났다.
차에서 내린 신우는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며 촬영을 마무리했다.
그런 신우에게 김이나가 다가왔다.
“고생하셨어요, 신우씨.”
“실장님도요. 오늘 일정은 이걸로 마무리인가요?”
“네. 광고촬영은 이틀 뒤에 하나가 더 있고 그 뒤에는 화보촬영이 22일에 하나 더 진행될 거예요. 그게 끝나면 모두 마무리에요.”
광고제안이 수도없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D.E에이전시는 신우의 요청을 받아들어 그중에서 굵직한 것들만 수용했다.
특히 하와이에서만 촬영이 가능하다는 조항까지 포함하자 11개까지 줄일 수 있었다.
광고가 줄어들면 수입에 타격이 생기지만, 연봉이 결정된 신우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직접적인 타격은 오히려 D.E에이전시가 더 컸다.
그들은 광고출연 개런티에 따라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신우가 많은 광고에 출연할수록 수익이 높아진다.
‘당장 눈앞보다는 더 앞날을 봐야지.’
D.E에이전시는 자체적인 회의 결과 신우에게 모든 스케줄을 맞추기로 했다.
올바른 선택이었지만, 기업입장에서는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신우의 미래가치를 정확히 보고 내린 결정이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저...혹시 사인 한 장만 받을 수 있을까요?”
그때 스태프로 보이는 한 청년이 다가와 수첩과 펜을 내밀었다.
“물론입니다.”
신우가 수첩과 펜을 받자 기다렸다는 듯 스태프들이 다가왔다.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D.E에이전시가 준비한 경호원들이 다가와 그들을 통제했다.
질서를 지키자 신우가 본격적으로 사인을 시작했다.
매일 광고촬영이 끝나면 하는 일상중에 하나였다.
여기까지 찾아와준 스태프들이기에 신우도 하나하나 정성들여 사인을 해나갔다.
“다음분이요.”
“여기에 부탁합니다.”
수첩과 펜을 받은 신우는 문득 펜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풍겨오는 향수나 목소리도 낯이 익었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서있었다.
“보라스!”
다름아닌 스캇 보라스였다.
* * *
두 사람은 리조트의 객실로 자리를 이동했다.
웬만한 카페보다 프라이빗한 공간이었기에 둘이 이야기를 나누기엔 충분했다.
“와...스캇 보라스를 실제로 보다니.”
“포스가 장난 아니네.”
“풍채도 좋은데?”
“그런데 저 양반이 여기에는 왜 왔데?”
박광수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갑작스런 보라스의 등장은 모든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건 신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와이까지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전화로 할까 했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직접 말씀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신우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프레드가 사망했습니다.”
“예?”
“이틀 전에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다음 날 새벽에 공식적으로 사망판정이 나왔습니다. 아직 언론에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아마 내일이면 기사가 나올 겁니다.”
“자...잠깐만요. 불과 열흘전에 볼 때만 하더라도 정정했잖아요?”
“알아보니 그때도 무리해서 거동을 한 거라 하더군요.”
“설마...”
“아닙니다. 그때의 거동으로 건강이 악화된 것이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지병 때문입니다. 그가 은거를 택했던 것도 건강상태가 너무 안 좋아졌기 때문이죠.”
단 한 번밖에 얼굴을 보지 못한 프레드 윌폰이다.
하지만 그가 전해준 말 한 마디는 신우에게 큰 감동이었다.
그렇기에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제프 윌폰입니다.”
“아들이라고 했었죠?”
“예. 프레드의 사망으로 메츠의 모든 권리가 그에게 넘어갔습니다. 이전에도 실권을 휘둘렀지만, 매각과 같은 중대사안의 결정은 프레드가 내려야 했죠. 하지만 이제는 모든 일이 제프 윌폰의 선에서 결정됩니다. 트레이드까지 말이죠.”
트레이드라는 말에 신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보라스가 직접 올 정도로 급박한 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베켓에게 연락이 왔는데, 제프가 당신을 트레이드할 계획이라 하더군요.”
뉴욕을 떠나게 된 것이다.
“막을 방법은요?”
“없습니다. 서비스타임이 차면 트레이드 거부권이 생기고 FA가 되면 트레이드 거부라는 권리를 넣을 수 있지만, 아직 이제 2년을 채운 신우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습니다.”
서비스타임은 단순히 연차를 설명하는 게 아니었다.
얼마나 서비스타임을 채웠느냐에 따라서 선수에게 생기는 권한은 많아진다.
연봉조정은 3년차.
마이너거부권은 5년차를 채우면 생긴다.
6년차에는 모든 선수들이 꿈꾸는 FA를 선언할 수 있고 10년차가 되면 트레이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하지만 신우는 이제 고작 2년차를 채웠다.
원래대로라면 연봉협상조차 불가능하지만, 슈퍼2조항에 따라 연봉조정을 한 것이다.
그런 신우에게 트레이드를 거부할 권리는 없었다.
“이적할 구단은 정해졌나요?”
“여러 구단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만간 결정이 나겠죠. 현재 유력한 협상상대는 양키스와 보스턴 그리고 몬트리올 갤럭시입니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은 예상할 수 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빅마켓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몬트리올 갤럭시는 의외였다.
신생구단으로서 그들이 나서다니 말이다.
“가장 유력한 곳은요?”
[당연 양키스지-!]
[에헤이! 요즘 레드삭스 돈 안 쓴 거 모르냐?]
[아무리 그래도 악의 제국한테 되겠음?]
편이 갈린 채팅을 보며 신우도 동의했다.
두 팀이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몬트리올 갤럭시입니다.”
예상외의 대답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