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65화 >
* * *
결승전을 앞두고 신우는 스캇 보라스와 마주하고 있었다.
“계약이 조금 오래 걸릴 느낌입니다.”
“그런가요?”
“예. 메츠쪽에서도 새로운 구단 트레이드 문제와 구단의 매각문제가 얽히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눈치입니다.”
“결국 매각이 되나 보네요.”
“그쪽은 거의 마무리단계로 보입니다. 현재 이야기를 하는 곳은 펀드라고 하는데. 매각에 적극적이라 이번에는 엎어질 가능성이 적다 하더군요. 하지만 변수는 언제나 있었고 이번에는 페이롤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페이롤이요?”
“예. 구단의 새로운 주인이 되면 정할 수 있는 루트는 두 가지가 됩니다. 페이롤을 아끼면서 팀을 재정비하는 리빌딩을 하거나, 거액의 자금을 투자해서 빠르게 우승을 노리는 전략입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후자로 뛰어들었지.]
[그놈들 플렉스 지렸자너.]
[쇼미더머니 치다가 후유증이 꽤 오래 가긴 했지만, 그래도 트로피 들어봤으니까 만족하겠지.]
[ㅇㅈ 누구는 염소 때문에 100년 넘게 우승 못했는데.]
[뭐? 이 새끼야! 너 지금 우리 컵스한테 시비거냐?!]
순식간에 콜로세움이 펼쳐진 채팅창을 무시한 채, 보라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거기에 새로운 구단들의 지명이 곧 시작됩니다. 27년만에 이루어지는 신생구단의 트레이드다보니 구단들도 정신이 없는 상태입니다. 덕분에 저도 일이 좀 늦어지고 있고요.”
이 시기 보라스는 언제나 바빴다.
FA선수들의 계약을 위해 움직여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1월 중순이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FA계약 발표는 나오고 있지 않았다.
간간이 연장계약이나 규모가 적은 FA계약이 발표될 뿐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새로운 구단의 합류 때문이다.
“드디어 32구단 체재인가요.”
메이저리그는 1998년 탬파베이 레이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합류하면서 30개 구단 체재를 유지했다.
그러던 메이저리그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2015년 커미셔너로 부임한 롭 맨프레드 때문이었다.
그는 여러 변화를 이끌었고 그 결과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매출이 대폭 상승했다.
레스키와 맺은 광고계약이나 MLBAM(MLB Advanced Media)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구단들의 매출을 상승시키며 입지를 다져왔다.
그리고 2022년.
멕시코시티와 캐나다 몬트리올에 새로운 구단을 유치하면서 32개 구단 체재를 선언했다.
그 원년이 바로 2026년이었다.
“새로운 구단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생각이 궁금하십니까?”
“예.”
“저는 대환영입니다. 선수들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경쟁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구단들이 있어야 되는 법이죠. 32개 구단이 아니라 40개 구단이 생긴다면 더 좋을 거 같습니다.”
보라스다운 대답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야 선수가 더 많은 연봉을 받을 것인가밖에 없었다.
그래야 본인의 수수료 역시 많아질 테니 말이다.
‘32개 구단이라...’
아직은 실감이 되지 않는 새로운 체계였다.
“그리고 메츠 측에는 연봉으로 2천만달러를 요구했습니다.”
[오오-!]
[여윽시-! 보라스 클라스!]
[ㅋㅋㅋ 메츠 애들 머리 아프겠누.]
[구단 매각에 신생 구단 트레이드에 ㅋㅋ 머리 빠개질 듯.]
[너 에이전트 하나는 잘 둔 듯 ㅋ]
레전드들의 채팅에 동의하며 신우는 찻잔을 쥔 손이 떨리는 걸 숨기느라 애를 먹었다.
*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을 하루 앞둔 날.
이동진 감독은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딱-!!]
[와아아아아-!!]
[너...넘어갔습니다!! 그랜드슬램!! 만루홈런입니다!!!]
신우의 메이저리거 커리어 첫 그랜드슬램.
8회말 2사.
0 대 0이란 스코어에서 이루어낸 한 방이었다.
그 이후로도 신우는 충격적인 홈런들을 연달아 터트렸다.
‘매 경기 때려내는 건 아니야. 들쭉날쭉 해. 하지만 한 방을 가지고 있어. 그것도 팀이 꼭 필요한 순간에 때려내는 결정력도 가지고 있다.’
타자로서의 능력 자체는 높지 않다.
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터트리는 한 방이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집중력이 높아. 그 집중력으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어.’
만약 저런 집중력을 결승전에서도 보여줄 수 있다면?
중요한 순간에 한 방을 때려줄 수 있을 거다.
“엔트리를 짜는 게 힘들다 보니, 이상한 생각을 하는군.”
이동진은 이내 고개를 젓고 후보 선수들을 확인했다.
대표팀이긴 하지만 선발과 후보의 격차는 컸다.
특히 민태훈은 대표팀의 간판스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넋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어떻게든 엔트리를 짜야지.”
빈 공간을 메우는 게 그가 할 일이었다.
* * *
양키스타디움.
WBC 결승전이 열리는 경기장이었다.
표는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와...대부분 한국인일 거라 생각했는데. 외국인도 많네.”
“외국인은 우리가 외국인 아니냐?”
“그건 그렇지.”
한국 방송국의 촬영팀은 외부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경기장을 찾는 관중을 찍고 인터뷰해서 국내에 내보낼 목적이었다.
“한국인들도 좋지만 외국인들도 찍어. 특히 메츠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은 놓치지마.”
“알겠습니다.”
김PD는 계획을 변경했다.
처음 인터뷰는 한국인들이 주 표적이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뉴욕까지 응원하러 온 이들의 인터뷰를 딸 생각이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많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선수를 응원하는 게 오히려 그림이 더 좋지. 역시 정신우의 홈그라운드라서 그런지 팬들이 많은 거 같아.’
메츠의 홈구장에서 열렸다면 더 그림이 좋을 뻔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그는 현재에 충실했다.
경기장 안팎으로 바쁜 사이.
시간이 됐다.
“입장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우승이다! 다들 힘든 것도 알지만, 후회는 남기지 말자!”
“예!!”
민태훈의 독려에 선수들의 사기가 올랐다.
부상당해 함께 할 수 없지만 그는 여전히 팀의 정신적 지주였다.
“신우야.”
“예.”
“내 몫까지 부탁하마.”
“저만 믿고 푹 쉬고 계세요.”
“자식! 네가 말하니까 그 말만큼 든든한 것도 없네.”
민태훈이 신우의 가슴을 툭 쳤다.
수많은 투수를 만나왔지만, 신우만큼 든든한 투수는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신우가 글러브를 챙겨 마운드로 향했다.
식전행사는 이미 끝난 상황.
이제는 경기시작만을 앞두고 있었다.
신우가 모습을 드러내자 경기장을 찾은 수만의 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우-! 우-! 우-! 우-!!”
“시누-!! 널 기다렸어!!”
“정! 신! 우!”
메츠의 팬들과 대한민국 팬들이 하나가 되어 신우의 이름을 외쳤다.
‘마치 홈구장 같네.’
[뉴욕은 네 안방이니까.]
[야! 어찌된 게 대표팀 유니폼보다 메츠 유니폼이 더 많다?]
[ㅋㅋㅋ ㅇㅈ]
양키스타디움.
라이벌리 관계의 홈구장이지만, 메츠 팬들은 고맙게도 여기까지 찾아왔다.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럼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지.’
[가즈아-!!]
로진을 손에 묻힌 신우가 마운드에 섰다.
그리고 타석에는 타자가 들어왔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타자는 처음부터 배트를 짧게 쥐고 있었다.
‘형님, 얘 발 빠릅니다.’
박광수가 사인을 보내 타자의 특징을 설명해주었다.
전력분석팀에서 전해준 자료에 따르면 일본프로야구에서 40개의 도루와 3할의 타율을 기록한 타자다.
무엇보다 출루율이 인상적이었다.
‘통산 4할 3리.’
8시즌 기록임을 감안했을 때 좋은 타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포심으로 가죠.’
박광수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 타자는 분명 훌륭하다.
하지만.
“후우...!”
메이저리그에는 더 훌륭한 타자들이 많다.
그런 그들과의 싸움을 이겨낸 신우였기에 겁먹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동시에 투구자세에 들어간 신우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정신우 선수 초구 던집니다!!]
촤앗-!!
다리를 차올린 신우는 몸을 비틀면서 힘을 모았다.
그리고 다리를 뻗으며 비틀었던 몸을 풀었다.
뒤이어 모든 힘을 손끝으로 집중시켜 1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액-!!
빠르게 날아간 공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공과 배트의 궤적이 하나가 되려는 순간.
‘떨어지지...!’
공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뻐억!!
부앙!!
‘않다니!’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로 시작하는 정신우 선수! 97마일의 구속이 찍힙니다!]
[구위와 코스 그리고 구속까지 모든 게 완벽한 1구였습니다!]
초구를 던지고 신우는 느낄 수 있었다.
‘컨디션 좋네.’
느낌이 매우 좋다는 걸 말이다.
* * *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1회를 11개의 공으로 깔끔하게 끝내고 정신우 선수가 마운드를 내려옵니다!]
[1회에 던진 포심, 커터, 슬라이더 모든 공들이 완벽했습니다. 아직 체인지업과 커브를 던지지 않았지만, 오늘 컨디션이 좋아 보입니다.]
카메라가 더그아웃에 들어가는 신우를 잡았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벤치에 앉은 그에게 박광수가 음료를 내밀었다.
“이야-! 형 오늘 공 지리는데요? 받다가 손바닥 찢어지는지 알았습니다.”
[이놈 혓바닥에 기름칠 했누?]
[ㅋㅋㅋ 포수라면 저런 안부도 떨어야지.]
[저런 말, 한 마디에 투수의 어깨가 으쓱으쓱하는 거지.]
“광수야! 나갈 준비해야지!”
“예!! 그럼 한 방 날리고 올게요!”
“그래.”
장비를 후다닥 벗는 광수를 보며 신우는 피식 웃었다.
[처음 만날 때와는 캐릭터가 완전히 달라졌네.]
[쟤 재벌 아니었냐?]
‘그렇죠.’
[노력 엄청 했나 보네.]
[운동을 뻘로 하는 게 아니었단 소리겠지.]
재벌이란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 나름대로 노력을 했을 거다.
작년에 자신에게 먼저 굽히고 왔을 때부터 알았지만, 실제로 같은 팀에서 지내니 더 잘 알 수 있었다.
신우는 박광수에게서 시선을 거둬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마운드에는 일본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은 한 젊은 투수가 서있었다.
[저쉑.]
[어제 보니까, 완전 또라이더만.]
전일 결승전을 앞두고 미디어데이가 있었다.
신우와 박광수는 팀을 대표해서 이동진과 함께 참석했다.
그리고 일본대표팀에서는 스즈키 미노와가 다른 한 명과 함께 참석했다.
당연하게도 미디어데이는 조용하게 끝나지 않았다.
스즈키 미노와는 미디어데이가 진행되는 동안 꾸준히 신우를 도발했다.
일본대표팀 감독과 동료가 만류를 했음에도 듣지 않았다.
결국 박광수가 폭발해서 미디어데이는 험악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됐다.
[감독이 와서 사과할 정도면 컨트롤이 안 된다는 소리겠네.]
‘일본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던데요.’
[실력이 있으니까, 내칠 수는 없는 거겠지.]
[거기다가 저런 타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말이야.]
[참, 세상 취향 독특한 사람들 많아요.]
[취존!!]
어제의 소동을 떠올리고 있을 때.
“플레이볼!”
구심의 경기재개 사인과 함께 스즈키 미노와가 와인드업을 했다.
‘오른손 오버핸드.’
험한 입과는 달리 평범한 폼이었다.
그러나 190cm의 키에서 내리꽂는 포심의 구속은 평범하지 않았다.
쐐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공간을 가로질러 미트에 꽂힌 공에 심판의 손이 올라갔다.
눈이 좋은 최연우가 미처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구속과 구위가 좋았다.
“와...빠른데?”
“155km나 나왔네.”
“최고구속이 160km까지 나온다고 했으니까, 장난 아니네.”
대한민국 대표팀 더그아웃이 술렁였다.
비디오로 봤을 때보다 체감되는 속도가 빨랐다.
[쫄림?]
워렌 스판의 채팅에 신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설마요.’
경기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