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62화 >
* * *
시간은 흘러 본선대회가 열리는 날.
고척 스카이돔은 일찌감치 관중들로 가득 찼다.
거기에 티켓을 얻지 못한 팬들은 시청광장에 모여 단체응원을 하거나, 호프집에 모여 치맥을 하며 경기를 관람했다.
자영업자들 역시 이런 대목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각종 이벤트를 걸어 손님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화제성만 놓고 보면 2008 베이징 올림픽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직 대회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정신우 효과가 대단하군.”
“이미 1라운드 모든 경기가 매진됐습니다. 이 흥행이 내년까지 이어지면 관중수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겁니다.”
“그것도 이번 대회의 결과가 잘 나와야 가능한 이야기지.”
여러 이유로 관중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던 KBO.
그나마 기대할 수 있었던 국제대회 역시 최근 성적이 저조했다.
작년에 열렸던 프리미어12는 조기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그것도 일본에게 말이다.
여러모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열린 이번 WBC에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부디 정신우가 멋진 활약을 해주길...!’
KBO에서도 정신우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그때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와아아아아-!!”
그라운드를 보자 마운드에 신우가 오르고 있었다.
경기가 곧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모습이었다.
[전국의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벌써 여섯 번째 대회를 맞이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화려한 막이 열렸습니다.]
WBC는 모든 경기가 공중파를 통해 중계된다.
광고까지 이미 완판이 될 정도로 관심도가 높은 상태였다.
[마운드에는 사이영상 수상자인 정신우 선수가 선발투수로 올랐습니다. 올 시즌 역시 사이영상 수상이 확실시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번 대회부터는 본선 2라운드부터 미국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미국에서 결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부디 우리 대표팀이 1라운드를 잘 치러서 사이영상 발표를 직접 볼 수 있길 기원하겠습니다. 경기 시작됩니다!]
심판의 콜과 함께 WBC 1라운드 첫 경기가 시작됐다.
[만원관중 앞이지만 대표팀 선수들이 부담감보다는 오늘 경기를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동감입니다. 적절한 긴장도 좋지만, 과도하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대표팀에 처음 하는 선수들이 조금 조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최연우 선수나 박광수 선수 같은 신예급 선수들은 조심해야 됩니다.]
신우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표팀이 처음이라지만, 이미 신우는 메이저리그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고왔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신우는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오올-! 국대 선발!]
[쩌는데~]
[야, 한국인들 응원 장난 없다.]
[와...뭔 국기가 저렇게 큰 게 왔다갔다 하냐?]
[한국인들 무슨 단체훈련 받냐?]
채팅창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레전드들을 신경쓰느라 정신이 없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었다.
그리고 예상밖으로 최연우나 박광수 역시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 더그아웃에서 지켜보는 이들까지.
다들 편한 얼굴로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드디어 실전등판이군.’
‘메이저리그에서도 대단했지만, 실제로 봤을 때는 더 대단했어.’
‘도대체 시즌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저런 공을 던지는 거지?’
‘저런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얼마 없어.’
‘신우와 함께 한다면 이길 수 있다.’
바로 신우의 피칭을 직접 보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표팀은 본선을 치르기 전, 연습경기를 통해 실전감각과 호흡을 맞췄다.
신우는 총 2번을 선발로 등판했고 한 경기는 자체 청백전이었다.
그 경기에서 대표팀 타자들은 체감했다.
어떻게 해서 신우가 사이영상을 받았는지 말이다.
‘형, 화려하게 가죠?!’
과장된 박광수의 몸짓을 보며 신우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재밌는 아이네.]
[저렇게 오버해서 사인보내는 애는 간만인 듯.]
[그래도 덩치가 커서 제법 던질맛은 나겠네.]
레전드들의 채팅을 보며 신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확실히 던질 맛이 난다.
‘그럼 화려하게 가겠습니다!’
와인드업을 한 신우의 눈으로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는 게 보였다.
[가즈아-!!]
[고고!]
[ㄱㄱ!!]
스트라이드와 함께 특유의 회전력을 더해 초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공은 순식간에 박광수의 미트에 꽂혔다.
타자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미트에 꽂힌 공과 신우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초구 157km의 강속구가 불을 뿜습니다!! 몸쪽 보더라인을 찌르는 절묘한 코스에 타자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초구부터 정신우란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강속구로 경기의 포문을 엽니다!]
경기가 시작됐다.
* * *
정신우는 훌륭한 투수다.
그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아...이건 정말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그리고 그 상대가 메이저리그보다 몇수나 아래인 상대라면 그의 훌륭함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지금처럼 말이다.
[6회 투아웃까지 투구수 55개를 기록한 정신우 선수, 압도적인 피칭으로 대만 타선을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타자들이 정신우 선수의 강속구에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포크볼처럼 떨어지는 쓰리핑거 커브는 타자들의 배트를 헛돌게 만들고 있어요.]
[이것이 메이저리그 클래스라는 걸 보여주는 정신우 선수! 6회 투아웃에서 9번 타자를 상대합니다!]
세 번째 타자를 맞이해서 신우가 사인을 교환했다.
‘바깥쪽! 포심!’
박광수의 사인을 받고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 바깥쪽 낮은 코스를 찌르는 150km의 빠른 공!]
[커터로 보이네요. 존 바깥에서 안으로 흘러들어오면서 타자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했어요.]
뒤이어 2구를 던졌다.
쐐애애액-!
부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2구 하이 패스트볼에 배트 헛돕니다!]
[건드리지 않았으면 볼이 되었을 공이지만, 눈높이로 들어오는 공에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자 이번에는 신우가 사인을 냈다.
박광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미트를 내밀었다.
[직접 사인을 낸 정신우 선수, 3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2구와 마찬가지로 하이 패스트볼로 들어오는 공에 타자는 기다렸다.
이번에도 볼이 될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순간.
휘릭!!
공이 뚝 떨어지더니 그대로 미트에 꽂혔다.
퍽!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단 58구로 6이닝 무실점 퍼펙트경기를 이어갑니다-!]
[아...정말 대단합니다! 경이롭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척 스카이돔을 찾은 수많은 팬들이 일제히 일어나 정신우 선수에게 박수와 함성을 보냅니다!]
더그아웃 앞에서 멈춘 신우는 그런 팬들에게 모자를 벗어 화답했다.
“와아아아아아!!”
“정! 신! 우!”
“우-! 우-! 우-! 우-!!”
수만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더그아웃에 들어간 그를 이동진 감독이 반겼다.
“고생했다, 다음 이닝부터는 불펜이 나갈 테니까, 푹 쉬어.”
“예.”
WBC의 1라운드 제한투구수는 65개.
한이닝을 더 소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이미 승기를 잡았다.
굳이 무리시킬 이유는 없었다.
“나이스!!”
“신우야 잘했다!”
“와! 진짜 너 괴물이구나?”
“고생했다!”
동료들의 환대와 함께 신우의 대표팀 첫 경기가 마무리됐다.
* * *
「사이영상 클래스를 보여준 정신우.」
「대한민국 대표팀이 대만을 상대로 본선 1라운드 1경기를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이번 경기의 MVP는 정신우 선수였습니다.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그는 대만대표팀을 상대로 6이닝 58구를 던지면서 0피안타 0사사구를 기록하는 퍼펙트게임을 펼쳤습니다.
최고구속 158km의 강속구와 150km초반의 커터, 140km후반의 슬라이더 그리고 120km대의 체인지업과 커브로 타자를 농락하며 효율적인 피칭을 이어갔습니다.
대만 대표팀 감독인 홍이청은 “정신우에게 진 경기다.”라고 자평하며 정신우 선수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가볍게 1승을 거두었다.
경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기는 건 당연한 분위기였다.
팬들의 관심은 사이영상 수상자인 정신우가 어떤 피칭을 할 것인지였다.
그런데 이건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직관했는데...후회가 없다.
ㄴ ㄹㅇ.
ㄴㄴ 개부럽네!
ㄴㄴㄴ 표 어찌 구했냐?
-정신우는 진짜 클라스가 다르다.
ㄴ 이대로 9회까지 던졌으면 매덕스 각 아니었냐?
ㄴㄴ ㅇㅈ.
ㄴㄴㄴ 매덕스 각이 뭐임?
ㄴㄴㄴㄴ 100구 이하 완봉하는 걸 매덕스 게임이라고 함.
-100마일 이상 공은 없었지만, 레벨이 다르네.
ㄴ 이게 바로 사이영 클라스-!
ㄴㄴ 올해는 레알 우승각일 듯.
-신우 다음 등판 언제냐?
ㄴ 2라운드 1차전 예상.
ㄴㄴ 남은 경기 다 지면 탈락 아님?
ㄴㄴㄴ ㅇㅇ 그렇게 되면 1라운드에 등판하겠지.
팬들은 열광했다.
한국이 그동안 오르지 못했던 WBC우승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그런 한국에 하나의 기사가 올라왔다.
「일본대표팀의 이도류 스즈키 미노와 “정신우는 과대평가 되어 있다.” 발언 파문!」
일본에서 도전장이 날아들었다.
* * *
오타니 쇼헤이의 등장 이후.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미국에까지 투타겸업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등장했다.
수많은 유망주들이 투타겸업에 도전하고 있지만, 성공적인 시즌을 치른 선수는 없었다.
그만큼 체력적인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덕분에 야구계에선 다시 투타겸업에 대한 회의론이 머리를 들고 있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스즈키 미노와였다.
“와-! 이거 보셨어요?”
“뭔데?”
박광수가 스마트폰을 건네며 말을 이어갔다.
“일본쉑인데, 이번에 인터뷰한 게 아주 답도 없는 쉑입니다.”
“뭔데? 뭔데?”
주위에 있던 최연우가 다가왔다.
“아-! 스즈키 이 새끼.”
“너도 아냐?”
“아, 너 작년에 성적이 별로여서 대표팀에 없었지?”
욱하는 박광수를 뒤로 하고 최연우가 말을 이어나갔다.
“이 자식 이거 작년에 저희랑 붙을 때도 입 제대로 놀렸습니다.”
“그 정도야?”
“네. 작년에 벤클까지 일어났다니까요. 저 새끼가 홈런 때리고 천천히 그라운드 돌아서 시비가 붙었는데, 다음 이닝에 오히려 우리한테 빈볼을 던져서 난리 났었죠.”
“아! 그거 나도 봤다.”
국제대회에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는 일은 잘 없다.
아무래도 이벤트 성향이 크다보니 자제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어났다는 건 그만큼 도발이 컸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 새끼 올해도 저 지랄이네.”
“흠.”
신우는 말없이 기사를 읽었다.
기사의 내용은 도발적이었다.
「스즈키 미노와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메이저리그에 간다면 사이영상과 홈런왕을 차지할 것이다. 내가 없기 때문에 정신우가 사이영상을 탈 수 있었던 거다.”라면서 이번 대회 역시 우승은 자신이 있는 일본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자신했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기사였다.
[허세 쩌누.]
[쟤들은 옛날부터 저러네.]
[변하지를 않네.]
[하여간 저 새끼들 진주만 때도 그렇고 도발하는 거 하나는 예술이네.]
채팅창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그 이유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 중 다수가 2차 세계대전을 직접 치렀기 때문이다.
밥 펠러, 워렌 스판, 테드 윌리엄스, 행크 그린버그 등.
2차 세계대전에서 태평양 전쟁이 기폭제가 되어 구단의 만류를 뿌리치고 군에 입대했다.
심지어 스판은 부상으로 명예 전상장을 달고 제대했을 정도로 최전방에서 전투를 펼쳤다.
약 340명의 메이저리거가 군에 징집 혹은 자원입대하여 2차 세계대전을 치렀으며 그중에 35명은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이 참여하게 된 가장 큰 기폭제는 바로 진주만공습이었다.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저 새끼랑 붙을 때까지 제대로 해라!]
[야! 일본이랑 언제 붙냐?]
[최소 준결승까지는 가야 되네.]
[너 지면 훈련에서 곡소리 나게 해줄게.]
[그러지 말고 졌을 때는 그냥 여기 와라.]
그 분노가 쏟아지는 채팅창을 보며 신우는 식은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