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59화 >
* * *
10월의 야구선수는 두 분류로 나뉜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선수들은 여전히 야구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시즌이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반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선수들은 여유롭게 본인의 삶을 보냈다.
신우는 양쪽 모두에 속한 선수였다.
“훅! 훅!!”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훈련을 멈출 수 없었다.
뻐억-!!
“나이스 볼!!”
그 이유는 제 6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문이었다.
신우는 구단이 아닌 특별히 대여한 연습장에서 가볍게 몸을 풀며 감각을 유지했다.
훈련을 끝내고 그의 공을 받아준 마누엘이 다가왔다.
“넌 어떻게 시즌이 끝나도 이런 공을 던지냐?”
“지옥과도 같은 훈련을 매일 하면 돼. 요즘 훈련은 좀 어때?”
“어우, 시즌도 끝났는데 좀 쉬자.”
“넌 WBC 안나가?”
“에헤이! 파트너가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도 모르냐? 멕시코 대표팀으로 당연히 출전하지.”
“오올~한 번 붙겠는데?”
“제발 네가 선발이 아닐 때 한국대표팀과 붙길 간절히 바란다.”
기도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뒤로 훈련을 조금 더 한 뒤, 마누엘과 헤어지고 차에 올라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정신우 선수, KBO 김진우 운영팀장입니다. 대표팀 소집과 관련해서 드릴 이야기가 있으니 편하신 시간에 연락 주세요.]
대표팀 소집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제 6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5회부터 20개국이 참가를 했고 이번 6회 대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이미 본선출전권을 확보해둔 상태.
덕분에 지역예선이 아닌 본선부터 출전이 가능했다.
“정신우 선수, 곧 한국에 도착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창밖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돌아오는 한국의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뒤이어 착륙을 하는 감각과 함께 김이나가 그를 찾아왔다.
“공항에 취재진과 팬들이 모여서 바로 나가는 건 어려울 거 같아요. 일단 어머님은 제가 모시고 신우씨는 간단하게 기자회견을 해야 될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한국에 온 이상 그냥 넘어갈 일은 없었다.
신우는 어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비행기에서 내렸다.
별도의 휴게실에서 대기하다 자리를 옮겼다.
“이건 일단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출력해두었어요.”
김이나가 건네준 종이에는 예상 질문과 답변들이 주르륵 적혀 있었다.
이런 세세한 부분이 D.E에이전시의 신뢰를 높여주었다.
“경호원도 충분히 배치했으니, 인 이어는 이쪽에 착용해주시고요.”
인 이어를 착용하자 그의 곁으로 두 명의 경호원이 붙었다.
「아아-! 정신우 선수 잘 들리시나요?」
“네. 잘 들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정신우 선수가 한국에 있는 동안 경호를 책임질 김태준 팀장입니다. 편하게 김 팀장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주위의 경호원 친구들은...」
김 팀장이란 사람의 소개가 한참동안 이어졌다.
아무래도 외부에 일을 주다보니 본인들의 어필을 확실하게 하려는 듯 했다.
이런 부분에서 신뢰도가 상승하기에 신우는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주위에 저희 직원들이 철통경호를 하고 있으니, 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오-! 우리 시누 완전 국빈급 대우 아니누?]
[이거 할리우드 배우들이나 이렇게 하는 거 아님?]
[시누 인기는 한국에서 걔네들보다 더 높을 걸?]
[ㅇㅈ]
레전드들의 채팅까지 이어지니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선배님들 시즌도 끝났는데. 왜 다들 제 방에 남아 계십니까?’
레전드들의 목적은 야구경기다.
그게 아닌 이들도 있었지만, 전체 숫자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해는 대부분이 남아 있었다.
그게 의아했다.
[쟤들이 하도 재능재능 하기에 궁금해서 기다림.]
[뭔짓을 했길래 3년만에 이런 일들을 이루었는지 궁금해서 비시즌도 볼래.]
[ㅇㅇ]
[2222]
즉, 궁금증을 해결할 목적이란 소리였다.
나쁠 건 없었다.
시청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후원은 자주 들어온다.
자연스레 노잣돈도 쌓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의 경험을 많이 흡수할 수 있었다.
‘훈수는 조금 괴롭지만...’
[ㅋㅋㅋㅋ]
[훈수 대폭발-!]
“신우씨, 이제 들어가실 시간이에요.”‘
김이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더 당부드리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그러니 놀라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김이나가 저 말을 하는 것이 벌써 세 번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궁금함을 삼키고 문앞에 섰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문너머에서 들려왔다.
꽤 많은 사람들이 왔구나 싶었다.
[작년에도 많이 왔었지.]
[재작년에도 꽤 있지 않았음?]
맞다.
작년과 재작년.
매년 규모가 조금씩 커졌다.
첫 해에는 따로 통제를 했지만, 게이트를 지나서 인터뷰를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작년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제대로 된 통제와 따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다.
물론 스탠딩 인터뷰였기에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회견장까지 빌렸으니...‘
더 큰 규모일 거라 예상했다.
“문 열게요.”
김이나의 마지막 신호에 고개를 끄덕였다.
딸칵!
열린 문을 지나 회견장으로 들어가서 처음 보인 것은 사람의 파도였다.
“정신우 선수!!”
“스포츠투데이의 이철호 기자입니다!”
“데일리스포츠의 한선아 기자에요!”
쏟아지는 질문들.
“꺄아아아아-!! 신우오빠!!”
“신우야!! 너 보려고 새벽부터 기다렸다!!”
“난 어제부터 기다렸거든?”
그리고 팬들의 환호성.
“우-! 우-! 우-! 우!!”
익숙한 챈트까지 들려왔다.
[작년과는 쨉도 안 되누.]
[이게 다 몇 명이냐?]
[얘네들이 설레발을 떨었던 이유가 있었네.]
[와...얘 완전 전쟁영웅 아니냐?]
[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레전드들조차 당황스럽게 만드는 상황에 신우는 어안이 벙벙했다.
“신우씨.”
김이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단상에 올라갔다.
[그런데 세 번째가 이 정도면 내년에는 어쩔...?]
[ㅋㅋㅋㅋ 공항 마비되겠누.]
그들의 말에 동의하며 신우는 귀국인터뷰를 진행했다.
* * *
[금일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습니다.
공항은 그를 취재하기 위한 취재진과 팬들이 몰리며 한때 공항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습니다.
기자회견을 통해 귀국에 대한 소감, 이번 시즌에 대한 자평 그리고 대표팀의 합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 정신우 선수는 이틀 뒤부터 대표팀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신우의 귀국은 그날 저녁의 헤드라인이 되어 전국에 방송됐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였다.
그런 신우의 대표팀 입성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크으-! 대표팀에 드디어 에이스가 생겼다.
-올해는 우승 가즈아-!
ㄴ 투수 한 명 들어온다고 바로 우승이냐?
ㄴㄴ 그 투수가 사이영상 수상자다.
ㄴㄴㄴ 우승 쌉가능!
-아무리 그래도 시즌 끝나자마자 대표팀 합류냐. 이러다가 선수 몸에 무슨 일 생길까봐 걱정된다.
ㄴ ㅇㅈ 230이닝 던진 투수가 또 던져야 된다니. 지금이 80년대도 아니고...
ㄴㄴ 이러다 부상 입을까봐 걱정된다.
-정신우 연봉은 어케 됨?
ㄴ 아직 협상중.
ㄴㄴ 오래 걸리네.
ㄴㄴㄴ 메츠가 돈이 없어서 그런 듯 ㅋ
* * *
다음 날.
신우는 서울의 한식당에 들어섰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별도의 룸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이야-! 오랜만이군.”
“신우야! 오랜만이다!”
대표팀 감독인 이동진과 이진철 코치가 그를 반겼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형! 오랜만이에요!”
“광수, 네가 여기에 웬일이야?”
“흐흐-! 대표팀 마스크를 제가 쓰게 됐거든요.”
박광수의 대답에 이진철을 바라봤다.
“이 녀석이 올해 포텐이 제대로 터졌거든. 무려 50홈런을 터트리면서 KBO 홈런 2위에 올랐다. 그것도 포수인 녀석이 말이야. 데려가지 않을 수가 없지.”
“오...”
“흐흐, 나름 노력했습니다. 물론 형한테 비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나와 비교할 게 뭐 있냐? 너도 충분히 잘한 거지.”
“자자, 이야기는 앉아서 하자고. 너 기다리느라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이진철의 주도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들 정말 놀랐다. 광수 녀석이 작년과는 전혀 달라져서 나타나서 말이야.”
“정말 이 형이랑 훈련하다가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장난 없어요.”
“그 정도야?”
“예. 제 훈련보고 우리 코치님들이 다들 놀라셨지만, 훈련량이나 질을 놓고 보자면 형의 발 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해요.”
이진철과 이동진은 놀랐다.
박광수와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그의 팀 코치에게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광수의 훈련은 팀내에서도 최고 수준이라 하던데.’
‘그런 박광수가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도대체 어떤 훈련을 하기에.’
‘WBC가 끝나면 신우한테 우리 애들 좀 맡길까.’
문득 자신들의 팀에 있는 유망주들이 떠오르는 두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형, 올해도 사이영상 수상 받으시기로 하셨죠?”
“응? 몰라. 미리 알려주는 게 아니거든.”
“에이-! 그래도 조금은 언질주지 않습니까?”
“아니라니까? 못 믿겠으면 받을 때 보던가.”
“예?”
“방송국과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올해 미국에서 WBC 대회가 한창 열릴 때 인터뷰를 한다 하더라고. 그래서 아마 숙소에서 하지 않을까?”
“정말요?!”
“오-! 그럼 사이영 수상을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건가?”
“그거 정말 진귀한 경험이겠군.”
이진철과 이동진 역시 눈을 반짝였다.
사이영상 수상을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좋은 기회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시간이 흐르면 음식들이 하나 둘 비자 이진철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대표팀에선 신우 너를 1선발로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 박광수와 호흡을 잘 맞추도록 해. 광수, 너도 훈련할 때 신우 옆에 찰싹 붙어서 신우의 습관이나 성격을 파악하도록 하고.”
“옙!”
“그리고 대표팀이란 곳이 아무래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곳이다보니 이래저래 견제도 들어올 거야. 워낙 자신감이 넘치는 애들이 많으니까, 너무 부딪히지 말고.”
“예.”
순순히 대답을 하는 신우였지만, 이진철은 걱정이 됐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표팀.
특히 WBC는 병역혜택 같은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됐다.
당연히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별 다른 일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모든 이들이 사이 좋게 지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선수들에게 맡겨야 되는 것이었기에 두 사람은 그 정도로 넘어갔다.
“네가 등판을 하는 건 1라운드 첫 경기, 그리고 2라운드 첫 경기가 될 거야.”
“상대가 어느 국가죠?”
이진철이 태블릿PC를 꺼내 이미지 한 장을 띄웠다.
“대만이다.”
아시아 프로최강은 일본이다.
그 다음이 한국이지만, 최근 빠르게 성장을 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바로 대만이었다.
“이 대회에서 이기고 2라운드로 올라간다면 일본을 상대할 가능성이 높아. 그들 역시 올해에는 우승을 노리고 메이저리거를 대거 대표팀에 합류시킨만큼 역대급 전력을 갖추고 있다.”
“1라운드를 전승으로 올라가면 2라운드에서 일본을 만날 거야.”
“형! 힘을 합쳐서 일본쉑들한테 본때를 보여주죠!”
의욕이 충만한 박광수를 보며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해보자.”
커리어 첫 번째 국가대표 합류.
신우에게도 가슴 떨리는 사건이었다.
‘TV에서나 보던 국가대표라니.’
감회가 남다른 신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