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58화 >
* * *
호텔에서 나갈 채비를 끝낸 신우는 신발장 앞에 멈췄다.
‘생각해보니 나이키 신발이 의외로 많네.’
[감회가 새롭누?]
[ㅋㅋ 당연한 거 아님? 나라고 해도 신기하겠네.]
‘솔직히 엄청 신기합니다. 제가 그 나이키의 모델이 된다니 말이죠.’
[성공했누.]
[크으-! 성공한 남자가 과거를 떠올리는 모습. 영화의 한 장면 아님?]
레전드들의 반응을 뒤로 하고 신우가 신발을 꺼내 신고 호텔을 나섰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그는 최근에 출고된 페라리 로마의 앞에 섰다.
[크으-! 우리 시누 오늘 럭셔리하게 나가누.]
[이 차는 언제봐도 이쁘다니까.]
[우리 때는 왜 이런 차가 없었누.]
[부럽다! 부러워!]
레전드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차에 오른 신우는 시동을 걸었다.
부아아앙-!!
[이거지!]
[몇 번을 들어도 지린다!]
[야야, 그런데 이런거 한 장 찍어서 SNS에 올리면 좋아요 대박 아니냐?]
[ㅇㅈ]
[좋아요 삼천개 각!]
스판의 제안에 신우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한 만개는 달리지 않을까요?”
[ㄴㄴ 만개는 무리.]
“진짜 만개는 달린다니까요? 요즘 저 팔로워 많이 늘어난 거 모르십니까?”
[며칠동안 두고보면 달리겠지만, 하루만에는 불가능.]
“아놔! 저 무시하시네. 내기하시겠습니까?”
[내기해서 내가 얻는 게 뭔데?]
신우의 내기 제안을 문 것은 스크류볼의 달인 칼 허벨이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는 흐름에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지면 칼 선배님이 원하시는 컨셉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겠습니다.”
[뭐든지?]
“예. 대신 제가 이기면 3만 노잣돈을 후원해주십쇼.”
[이쉑 요즘 돈독 올랐누.]
[툭하면 노잣돈으로 내기거네.]
“쫄?”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자 신우가 상대를 도발했다.
그리고 그 도발은 바로 먹혀들었다.
[누가 쫄아! 콜!!]
“오케이-! 잠깐만 기다리십쇼.”
차에서 내린 신우가 페라리의 본네트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몇 장을 찍어 원하는 구도가 나오자 그는 SNS에 업로드를 했다.
(이번에 출고한 내 애마. #페라리 #페라리로마)
담백하게 올린 글이 올라가자마자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알림이 끊이질 않았다.
[왤캐 빨리 오르누?]
“말씀드렸잖아요. 요즘 팔로워가 많이 늘었다고.”
[그런데 요즘 내기 자주 건다?]
[노잣돈 받아서 뭐하려고?]
차에 타며 레전드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모데카이 선배의 커브를 익히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연습도 좋지만, 경험하는 게 최고라는 걸 말이죠.”
[아-!]
[그래서 우리한테 뽕 뽑으려고 하누.]
“흐흐, 시청료라 생각하시죠.”
[와-! 너 낯짝 두꺼워졌다?]
[우리한테 야구도 배우고 이제는 시청료까지 뜯으려고 하누.]
“대신 재밌게 방송하겠습니다.”
신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잉-!!
지잉-!!
그의 스마트폰이 무섭게 울렸다.
좋아요가 올라갈 때마다 울리는 진동이었다.
[ㅋㅋ 칼 노잣돈 털리는 진동이누.]
[으어어어-! 이건 사기야!!]
칼 허벨의 채팅을 보며 신우는 차를 출발시켰다.
* * *
【칼 허벨님이 30000 노잣돈을 후원하셨습니다.】
【돈독 오른 쉑!!】
눈앞에 뜬 채팅을 보며 신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즐거운 일이라도 있으세요?”
“네? 아, 즐겁죠. 나이키의 모델이 되는 건데요.”
“하긴, 월드클래스급의 선수가 아니면 후원을 하지 않는 곳이긴 하죠. 그만큼 정신우 선수의 스타성을 인정했다는 소리에요.”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입꼬리가 더욱 올라가는 신우의 모습에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좋아 죽누.]
[그러다 입 찢어지겠다.]
[광대 승천하다 못해 여기까지 오겠네.]
온갖 비아냥들이 오갔지만, 데미지는 1도 없었다.
오늘은 그만큼 기쁜 날이었으니 말이다.
“저기 계시네요.”
김이나의 말에 신우의 시선이 창가로 향했다.
거기에는 남녀가 앉아 있었다.
그들 역시 신우를 발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시누 정. 저는 빌리입니다.”
“캐서린이에요.”
“신우 정입니다.”
“이나 킴이에요.”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메이저리그의 팬으로서 당신 같은 선수가 등장한 게 정말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을 야구팬이라 밝힌 빌리는 올 시즌 신우가 기록한 성적에 대한 찬양을 이어나갔다.
[야구팬 확실하누.]
[저 정도면 골수팬이네.]
[팬들 중에서도 고인물인 듯.]
[완전 마니아네.]
레전드플레이어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찬사들에 신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빌리.”
“응? 아하하!! 제가 말이 많았군요. 이거 참, 제가 평소에 좋아했던 선수와 만나게 되니 자연스레 말이 많아진 점,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저도 팬분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할까요? 이나 킴에게 미리 제안서를 보냈는데, 확인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예. 전부 확인했습니다. 5년 전속계약이며 그 기간동안 스포츠브랜드 회사와 계약을 맺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합니다.”
타이밍 좋게 캐서린이 서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김이나가 서류를 받아 내용을 확인했다.
“이번 계약은 아시아권 계약이 아닌 글로벌 계약으로 적용됩니다.”
빌리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에도 캐서린이 타이밍 좋게 새로운 서류를 꺼냈다.
“그리고 이건 러닝개런티 계약서입니다. 시누 선수를 모델로 용품을 제작할 때,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계약서죠. 차근차근 확인해보시죠.”
나이키는 인기 선수들을 모델로 스포츠용품을 제작한다.
대표적인 선수가 마이클 조던이었다.
NBA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은퇴 이후에도 나이키와의 협업을 비롯, 다양한 모델로 활동하면서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그 계약을 신우에게 제안하고 있는 것이었다.
‘꿈이냐 생시냐?’
* * *
뉴스 메츠는 뉴욕 지역 언론 중 하나다.
양키스와 메츠 두 구단이 공존하는 뉴욕이지만, 이들은 오직 메츠만을 취재했다.
특히 구단 출입기자인 데이브는 메츠에 대한 수준 높은 기사를 작성해 팬들에게 인지도가 높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기사 하나를 올렸다.
「메츠는 신우 정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는 빠르게 조회수가 올라갔다.
「메이저리그 데뷔 2년차가 끝난 신우 정은 센세이셔널한 인기와 믿을 수 없는 기록들을 세우며 성공적인 선발 데뷔시즌을 끝냈다.」
찬사로 시작된 기사는 그가 올린 기록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이어졌다.
그 찬사가 끝남과 동시에 구단의 이야기가 나왔다.
「반면 메츠는 창단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2019년부터 시작된 매각이 2020년 불발된 메츠는 꾸준히 매각설에 휘말렸지만, 결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날이 갈수록 메츠는 재정난에 시달렸으며 현재는 다시 매각을 위해 셀러가 되어 팀의 주축선수들을 모두 내다팔았다.」
최근 구단의 사정 설명이 끝나고 기사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오른 신우 정은 슈퍼 2조항을 채우며 FA가 될 때까지 4번의 연봉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연봉조정 1년차 역대기록인 1450만 달러의 기록을 무난하게 갱신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기록갱신에 성공한 신우 정이 현재와 같은 성적 혹은 조금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하게 될 경우, FA가 되기 전에 연간 4천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수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연 현재 메츠의 재정으로 이와 같은 연봉을 부담할 수 있을까?
메츠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1년차에 어떻게든 낮은 연봉으로 계약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신우 정의 에이전트는 악명높은 보라스이기에 메츠가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인다.」
비관적인 결과를 내놓은 기사의 결말은 간단했다.
「신우 정과 메츠의 동거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 * *
며칠 뒤.
신우는 D.E에이전시의 사무실에서 김이나와 미팅을 가졌다.
“나이키와는 세부항목을 조율중이에요. 큰 이견이 없어서 아마 곧 최종계약서가 나올 것으로 보여요.”
“다행이군요.”
“그리고 국내의 광고계약은 말씀하신대로 대기업 위주로 잡았고 모델 역시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로 결정했어요. 이건 회사측에서 뽑은 최종후보군이에요.”
“선정기준은 어떻게 되죠?”
“기본적으로는 페이를 기준으로 했지만, 계약기간과 부수적인 옵션들 그리고 브랜드의 인지도와 신우씨를 얼마나 원하는지를 전반적으로 체크했어요.”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를 검토했다.
“그리고 이전에 말씀하셨던 주택에 대한 후보군을 꼽아봤어요.”
그녀가 내민 태블릿PC에 다양한 주택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주택은 크게 두 가지 형태였다.
“첫 번째는 이스트 햄튼쪽에 있는 저택이에요. 가격이 꽤 나가지만, 주변의 대지도 함께 구매하는 거라 프라이빗한 생활이 가능해요.”
가격대가 상당히 나갔다.
500만 달러, 한화로는 50억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이건 좀 무리일 듯.]
[네가 메츠에 계속 있는다면 모를까, 이 정도 금액이면 자금이 묶이는 거라서 그리 추천은 안함.]
[ㅇㅇ 투자적인 면에서 봤을 때도 썩 좋지는 않네.]
몇몇 레전드들의 훈수가 이어졌다.
마치 경제전문가와 같은 조언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문제는 그런 형태의 저택을 재정전문가들이 추천을 하지 않더군요.”
“그래요?”
“네. 너무 많은 금액이 주택에 묶이게 되므로 추천하지 않는다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에이전시의 역할은 단순히 중개인이 아니다.
선수의 재정적인 부분을 케어해주는 것 역시 그들이 하는 일이다.
특히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들은 이러한 부분이 중요했다.
현역시절에는 많은 돈을 번다.
자연스레 씀씀이도 커지고 주위에서 투자를 부탁받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벌이가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란 소리였다.
벌이는 줄어드는데 씀씀이는 이전과 같으니 문제가 되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부분을 억제해주는 것이 바로 에이전시에서 같이 해야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에이전시에는 재정컨설턴트를 해주는 부서가 따로 있지.]
[문제는 그 녀석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야.]
[실제로 거기에 돈을 맡겼다가 날리는 놈들도 많이 봤다.]
[우리 때는 그나마 성공한 게 콥 저 녀석이고.]
‘그래요?’
[쟤 코카콜라랑 제네럴모터스 주식 사서 대박났자너.]
타이콥의 주식대박은 잘 알려진 일화였다.
덕분에 그는 선수시절보다 더 풍족한 삶을 은퇴 이후에 보냈다.
“다음은 뉴욕 시내에 위치한 아파트들이에요. 대부분 고급아파트로 도어맨이 따로 두고 있어 호텔과 비슷한 삶이 가능해요. 가격도 저택보다는 저렴한 편이고 메츠 구장으로 이동도 쉬워서...”
김이나의 설명이 한창 이어졌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그런데 선배님들은 부동산도 잘 아십니까?’
[당연하지.]
[생전에는 직접 경험했고 저승에 와서는 이래저래 공부한 거지.]
‘부동산 공부도요?’
[여기 오면 할 거 없어서 이것저것 하게 됨.]
‘헐...’
[안 믿기면 와보던가.]
‘그 가불기 너무 자주 쓰시는 거 아닙니까?’
[엌ㅋㅋㅋ 이제 가불기도 아누.]
‘저도 이제 엄연한 스트리...아니지. 야구선수죠.’
[ㅋㅋㅋ 정체성 찾아라.]
[본인의 직업도 잊어버리누.]
레전드들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 매매는 조금 별로세요? 그럼 렌트는 어떠세요? 고급아파트라서 렌트비용이 좀 높은 편이긴 하지만, 비용처리가 다 가능하니까. 세금적인 측면에서는 이게 더 나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 신우의 제스처를 오해한 김이나가 고급아파트 렌트 매물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뭔가 오해를 바로 잡으려던 신우는 이내 포기하고 그녀가 정한 후보군들을 확인했다.
‘말린다, 말려.’
오늘도 레전드들에게 말리는 신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