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155화 (155/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55화 >

* * *

“후우...”

두 번째 경험임에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전신을 휘감는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커브는 감각이다.’

모데카이 브라운이 했던 말을 직접 경험했다.

그리고 자신감을 얻었다.

[가능하겠음?]

모데카이 브라운의 물음에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보여드릴게요.’

[오오-!]

[자신감 뿜뿜-!!]

[가즈아!!]

신우의 자신감 넘치는 한 마디에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확실히 이런 대사를 날려주면 레전드들은 좋아했다.

[정신우 선수, 사인을 교환합니다.]

[지금의 위기를 잘 넘겨야 합니다.]

사인교환을 끝낸 신우가 호흡을 골랐다.

‘감각을 믿어라.’

요기 베라의 과거를 배울 때도 생각했다.

과거로 돌아온 직후에는 마치 그 사람이 된 것처럼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렇기에 마누엘에게 조언할 수 있었고 명언들을 쏟아냈다.

지금은 모데카이 브라운의 감각이 남아있었다.

데드볼 시절, 그가 세 손가락으로 공을 던지던 그 시절을 직접 경험한 듯 손끝을 감돌고 있었다.

‘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듯 다짐한 신우가 밑바닥의 체력까지 끌어올려 정신을 집중했다.

[투구판을 밟은 정신우 선수, 호흡을 가다듬고 주자들을 눈으로 견제합니다.]

주자들이 뛸 생각이 없음을 확신하며 슬라이드 스텝과 함께 공을 뿌렸다.

[초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갔다.

타자는 자신의 가슴 높이로 들어오는 궤적에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돌렸다.

‘하이 패스트볼이다!’

이렇게 높은 코스로 들어오는 공의 열에 일곱은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던 타자의 스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걸렸...!’

배트의 궤적과 공의 궤적이 하나가 되려는 순간.

휘릭!!

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부앙-!!

배트가 허공을 가르고.

퍽!!

공이 미트에 꽂혔다.

“스윙! 스트라이크!”

[헛스윙으로 원스트라이크를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궤적의 변화구를 던졌습니다!]

[지금 보여준 궤적을 봤을 때는 스플리터로 보이지만, 구속이 77마일이 찍혔습니다. 스플리터의 구속이라 보기에는 좀 느린 축에 속하죠.]

[그럼 포크볼일까요?]

[그렇게 보는 게 옳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정신우 선수가 지금까지 포크볼을 던진다는 정보는 전혀 없었거든요? 무엇보다 포크볼은 팔에 무리가 많이 가는 구종입니다. 굳이 왜 저런 공을...]

우려 섞인 해설은 한국만이 아니었다.

현지의 해설진들 역시 포크볼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신우의 그립이 나오긴 했지만, 제대로 찍혀 있지 않았기에 어던 구종인지 판가름하긴 어려웠다.

-포크볼이면 팔 작살나는 거 아니냐?

-100마일 광속구에 포크볼이라니.

-그냥 팔 아작나려고 작정한 듯.

-투수 수명 단축시키는 공으로 뭐하겠다는 거임?

-포크볼 던지면 팔 아작남?

ㄴ ㅇㅇ 그래서 메이저에서 사라짐. 무엇보다 스플리터도 있으니까, 던질 이유가 없음.

ㄴㄴ 일본 애들은 던지지 않나? 우리나라도 제법 던지고.

ㄴㄴㄴ 메이저는 한 명도 없음.

팬들의 수준은 과거와 달리 높아졌다.

포크볼에 대한 정보와 그것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손가락을 과하게 벌리는 그립이나 그로 인한 악력은 둘째치고서라도 손목을 비트는 행위는 팔 전체에 무리를 준다.

팔은 투수의 생명과 직결이 되기에 이러한 구종이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신우 선수는 포크볼을 선택한 듯 합니다. 과연 새로운 구종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한 번 보여준 이상 타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용도로 사용한다면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렇군요. 사인을 교환한 정신우 선수, 2구 던집니다!]

쐐애액-!!

이번에도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는 공에 타자의 배트가 나갔다.

‘저런 공을 연속해서 던지진...!’

못할 거라는 생각에 나간 배트의 앞에 공이 도달한 순간.

휘릭!!

공이 사라졌다.

부앙-!!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2번 연속 포크볼을 던져 두 개의 스트라이크를 잡아냅니다!]

[음...이건 사실 좋지 않은데요. 연속해서 던진다면 분명 몸에 무리가 올 겁니다.]

우려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을 때.

화면이 바뀌면서 신우의 투구장면이 슬로우로 나왔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립을 보겠다는 듯, 손이 릴리스포인트에 도달하는 순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자연스레 공을 잡은 그립이 카메라를 통해 드러났다.

[아...포크볼이 이런 그립이었나요?]

의문 섞인 캐스터의 질문에 해설위원의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아닙니다. 이 그립은 포크볼보다는 커브로 보입니다.]

[커브요? 하지만 커브의 그립은 검지와 중지를 붙여서 던지지 않나요? 정신우 선수의 그립은...]

화면에 잡힌 신우의 그립은 검지가 공에 붙어 있지 않았다.

[분명 그렇습니다만, 변화구들 중 탑스핀으로 날아가는 공은 포크볼과 커브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지금 나오는군요. 공이 회전하는 방향을 보면 날아가는 방향과 일치하죠?]

[그렇군요. 확실히 탑스핀으로 날아가고 있네요.]

[그립은 조금 변형이 되어 있긴 하지만, 정신우 선수의 새로운 변화구는 커브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형태는...마치 모데카이 브라운의 쓰리핑거 커브와 흡사한 형태입니다.]

* * *

새로운 구종을 선보인 신우의 피칭은 망설임이 없었다.

뻐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하이 패스트볼에 타자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무사 1, 2루의 위기에서 1사 1, 2루로 만들어냅니다!]

[앞서 던진 두 개의 포크...아니죠. 커브로 인해 하이 패스트볼에 대응을 하지 못했어요.]

사전에 정보가 없었던 새로운 무기의 등장.

그것은 타자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신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욱 타자들을 압박했다.

퍽-!!

“스트라이크!”

[초구 타자의 눈높이에서 존으로 떨어집니다!]

[이번에는 정석적인 커브가 나왔어요.]

포크볼 형태로 들어가는 모데카이 브라운의 쓰리핑거 커브.

거기에 신우는 스탠다드한 커브를 섞었다.

이러한 조합은 타자들로 하여금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뻐억-!!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투!!”

[타이밍이 완벽하게 늦으며 배트가 허공을 가릅니다!]

[앞서 보여준 쓰리핑거 커브와 스탠다드 커브로 인해 타자들의 머리가 복잡한 걸 보여주는 스윙이었습니다.]

커브는 던지는 순간, 알 수 있는 구종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투수들이 이러한 커브를 던지려는 이유는 바로 타자와의 수싸움에서 앞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커브는 궤적의 차이에 따라 존으로 들어가게 할 수도 있고 존밖으로 떨어트릴 수도 있었다.

이러한 공의 궤적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타자와의 수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이거야말로 투수의 볼배합이지.]

[크-! 커브 멋지누.]

[그런데 과거를 경험했다고 바로 이렇게 잘 던질 수 있는 거임?]

[일반적인 변화구라면 연습을 통해서 손에 익히고 숙련도를 높여야 되지만, 커브는 감각적으로 던지는 공이야. 무엇보다 이 녀석은 원래 감각을 타고났었음. 하지만 제대로 던지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지.]

모데카이 브라운의 말에 질문을 던졌던 레전드가 물었다.

[이유라니?]

[바로 왼손으로 커브를 던지던 감각이 남았다는 것.]

[아-!]

[정답이다. 신우는 원래 왼손으로 다양한 변화구들을 던졌다. 그걸 단기간에 오른손으로 바꾸면서 피나는 연습으로 부족한 점을 메웠지.

하지만 커브는 그런 노력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구종이다.]

[그러던 녀석이 내 과거를 경험하면서 커브가 어떤 구종인지 깨달은 거지. 뭐, 이 녀석이 워낙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서 가능했던 거지만.]

[한 마디로 밸런스 좆망이라는 소리네.]

[그나저나 너네 왜 이렇게 친하냐? 현역시절에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현역시절 라이벌이었던 브라운과 매튜슨.

두 사람이 합심해서 한 선수를 키우는 진귀한 풍경에 다른 레전드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저런 녀석에게 내 야구를 가르칠 수 있다면 라이벌이 무슨 상관이냐.]

[거기다 우리 죽은지가 하루 이틀 됐냐? 과거로 따지게?]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전드들이었다.

* * *

퍼엉-!!

부앙!!

“스트라이크! 아웃!!”

[세 번째 아웃카운트 역시 삼진으로 처리하는 정신우 선수! 위기를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냅니다!]

무사 1, 2루의 위기.

하지만 주자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세 타자 연속 삼진으로 위기를 이겨낸 신우가 동료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더그아웃에 돌아왔다.

음료를 마시며 숨을 돌린 그에게 마이크가 다가왔다.

“놀라운 이닝이었어. 다음 이닝은 어떻게 하겠나?”

“당연히 나가야죠.”

“알겠네. 자네만 믿도록 하지.”

마이크는 별 다른 말이 없었다.

조언이나 충고 같은 건 전무했다.

에이스에게는 그런 말들이 필요없었으니까 말이다.

[더 던지는 건 좋지만, 이번 이닝에서는 점수 좀 나면 좋겠다.]

[ㅇㅈ.]

[도대체 타자들이 저렇게 빈약해서 어떻게 이기라는 거임?]

[완투해도 이길 수나 있겠냐?]

채팅창이 불만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신우는 체력을 회복하는데만 정신을 집중했다.

‘마지막까지 던지겠어.’

최후의 최후까지 포기할 수 없다.

* * *

[삼자범퇴로 허망하게 공격의 기회를 날린 메츠의 마운드에 정신우 선수가 다시 올랐습니다. 투구수가 91구에 도달한 상황, 아마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 될 거 같습니다.]

90구가 넘은 신우는 체력이 떨어진 걸 느꼈다.

거기에 맞춰 직접 사인을 냈다.

[사인교환을 끝내고 초구를 던집니다.]

딱!!

“파울!”

[빗맞은 타구가 1루 관중석에 떨어집니다.]

[체인지업이 절묘하게 들어갔어요. 아주 좋은 공이었습니다.]

[2구 던집니다.]

퍽!

“스트라이크!”

[2구 89마일의 커터가 보더라인에 아슬아슬하게 걸칩니다. 하지만 타자는 인정하지 못한 듯, 로봇 판정을 요구하는군요.]

잠깐의 확인이 끝나고 구심이 이어폰을 벗으며 손을 들었다.

[판정은 번복되지 않습니다. 투스트라이크로 타자를 몰아붙인 정신우 선수, 사인을 교환하고 3구 던집니다.]

쐐애액-!!

손을 떠난 공이 존의 가운데로 몰렸다.

누가 보더라도 실투인 상황.

타자는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돌렸다.

후웅!!

매섭게 공을 낚아채려는 순간.

휘릭!!

공이 타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부웅!!

배트는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퍽!

공이 원바운드가 되면서 미트로 들어갔다.

포구한 마누엘이 재빠른 움직임으로 타자의 엉덩이를 툭 쳤다.

“아웃!”

[삼구삼진! 첫 타자를 가볍게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아-! 이번 타자를 상대로 던진 세 개의 공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전매특허인 포심 패스트볼을 단 하나도 던지지 않고 타자를 요리했어요.]

[그러고보니 정말 그렇군요. 정신우 선수가 삼진을 잡으면서 포심을 하나도 던지지 않다니, 신기한 일입니다.]

신우의 새로운 로케이션은 타자들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우는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퍼엉-!!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두 번째 타자를 4구 만에 돌려세우는 정신우 선수!!]

뻐억!!

부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체인지!”

[세 번째 아웃카운트 역시 4구 만에 돌려세웁니다! 단 11개의 공으로 세 개의 삼진을 수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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