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54화 >
* * *
시즌 31번째 등판.
신우는 평소와 다를바 없는 훌륭한 피칭을 이어나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보더라인에 걸치는 커터! 타자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일곱 번째 탈삼진을 잡으면서 4회를 마감하는 정신우 선수!]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하지만 답답함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후우...”
[4이닝동안 허용한 안타는 단 하나! 하지만 팀 타선은 아직 정신우 선수의 호투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4이닝 무실점 1피안타.
이 완벽한 피칭에도 메츠는 경기를 앞서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새끼들아!! 너희가 그러고도 프로냐?!”
“시누가 불쌍하지도 않냐?!”
“제대로 좀 해라!!”
공수교대가 이루어지고 타석으로 들어서는 젝슨에게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젠장...! 나라고 아웃을 당하고 싶냐고!’
젝슨은 억울했다.
자신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다.
‘이제 시즌 막판이라고! 뭘 얼마나 더 해야 되는데?’
시즌 막판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무엇보다 팀의 수뇌진조차 팀을 이미 포기했다.
‘탱킹으로 넘어간 이상, 우리들이 뭘 할 수 있겠어?’
탱킹.
시즌을 포기하고 일부러 져서 팀의 순위를 하락시키는 방법을 의미한다.
드래프트는 전년도 승률의 역순으로 순번을 정하기에 이런 방법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팀이 이 전략을 결정하면 선수들은 전의를 상실한다.
이기려고 노력해봤자 결국 돌아오는 건 전력을 잃는 것 뿐이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어.’
젝슨은 그렇게 느끼며 힘없는 스윙을 이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우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타자들은 전의를 상실했네.]
[젠장! 저게 무슨 프로들이야?!]
[우리 때에 저런 새끼들이 있었으면 배트로 대가리를 갈겼을 거야!]
채팅창이 불같이 타올랐다.
신우는 그런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동료들을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모든 정신을 집중하자. 지금의 감각을 잊지마. 마운드에 올라갈 때를 기다려라.’
그동안 레전드플레이어들에게 배웠던 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지금은...’
그의 시선이 그라운드로 향했다.
허망한 스윙과 함께 아웃을 당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젝슨이 보였다.
‘나만 믿어야 한다.’
* * *
야구는 혼자 할 수 없다.
팀플레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끊임없이 듣고 컸다.
하지만 팀이 경기를 포기하면 어떻게 해야 될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것의 야구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니까.]
[근본을 흔드는 점이지.]
[하지만 비즈니스가 된 메이저리그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이기는 것.
그것이 스포츠의 덕목이다.
팬들은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말이다.
그런데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걸 포기한다?
그리고 선수들이 이기기 위한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그것만큼 최악인 건 없었다.
‘최소한 저만큼은 그걸 할 수 없습니다.’
[가즈아-!!]
[너만 믿는다!!]
[탱킹이고 지랄이고, 다 뽀개버려!]
[넌 할 수 있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응원을 들으며 신우가 더그아웃을 떠났다.
* * *
관중석.
경기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5회가 지나면서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올해 메츠는 망했어.”
“젠장! 설마 메츠가 탱킹을 결정하다니. 이게 말이나 돼?”
탱킹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과거에는 비밀리에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대놓고 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팬들 역시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내년을 생각하면 잘한 선택이지.”
“어설프게 포스트시즌에 나가는 것보단 낫긴 하겠지.”
그래서 야구에 관심이 많은 팬들은 메츠의 결정을 이해했다.
내년을 내다본 결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관중석에 빈자리가 생겼다.
“시누가 아무리 잘 던져도 소용이 없어.”
“타자들이 저래서야...”
“하-! 나는 이기는 경기를 보러 온 거라고!”
그리고 점수를 내지 못하는 메츠의 타선에 실망한 팬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무기력하게 지는 모습은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자리이탈은 곧 파도처럼 사방에 퍼졌다.
순식간에 절반가량의 빈자리가 생겨나는 모습에 베켓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후우...이걸 원하신 겁니까?”
“뭐가 문제지?”
“경기장을 찾았던 팬들이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떠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팀에서 떠나고 있는 거라고요.”
“어차피 내년 시즌이 되면 돌아올 사람들이야.”
“그게 무슨...!”
“그리고 경기도중에 떠난다고 그들의 돈을 환불해줘야 되는 규정이라도 있었나? 내가 알기로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
할 말을 잃었다.
이 남자의 머릿속에는 팬들의 마음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수익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저 나이에 각 기업들의 재정컨설팅을 해주는 위치에 있었겠지만 말이다.
‘젠장...!’
분함에 입술을 깨물고 있을 때였다.
뻐어억-!!
[99마일의 패스트볼이 미트에 꽂힙니다. 시누의 피칭은 오늘도 훌륭하군요.]
TV에서 마운드에 서있는 신우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친구는 신인이라고 했나?”
“2년차입니다.”
“흠, 이해할 수 없군. 이미 진 경기이고 팀의 방향도 알고 있으면서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지?”
베켓은 울컥했다.
설마 저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프로니까 말이죠. 설마 당신은 돈을 받고 컨설팅을 대충 해주진 않겠죠?”
“크흠!! 자네의 말이 과하군!”
“질문을 하셨기에 답을 드린 것 뿐입니다.”
“크흠!!”
할말이 없어진 잭이 다시 경기장을 바라봤다.
베켓의 반항은 예상밖이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이대로 시즌이 끝나면 내년 시즌에는 더 적은 페이롤을 가지게 된다. 거기에 드래프트 상위지명권과 알론소를 팔고 얻은 특급유망주들은 구단을 구매하려는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하겠지.’
구단을 구매하려는 자들.
그들에게 당장의 순위는 큰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현재 팀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자금, 그리고 미래가치가 높은 유망주의 숫자였다.
‘구매자들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게 당연한 거니까.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시누라는 저 녀석도 좋은 물건이 되겠지.’
지난번 뉴욕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록을 보고 잭은 신우에 대한 기록을 찾아봤다.
‘놀라운 숫자들을 기록한 것에 비해 연봉이 무척이나 낮다. 그리고 앞으로 4년은 더 써먹을 수 있을 거고.’
그 사이 구단을 좋은 가격에 판다.
물론 그를 충분히 활용한 뒤에 말이다.
‘후후, 이걸로 내 가치는 또 높아지겠지.’
장밋빛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기에 그는 기쁜 마음으로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 경기 10번째 탈삼진을 잡아내는 신우 정, 6회 역시 무실점으로 마감합니다.]
[패스트볼을 커트당하기 시작하자,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유도해냈어요. 아주 좋은 로케이션이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진다면 5위가 된다.
앞으로 결과에 따라 4위가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순위가 아니라 승률이다.
‘져라! 계속 져!’
팀이 지기를 바라는 구단주 대행이었다.
* * *
6이닝 무실점 2피안타.
오늘도 완벽한 피칭이었다.
거기에 투구수는 75구를 막 넘어서고 있었다.
‘오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하지만 슬슬 체력관리를 해야 된다.]
매튜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80구 전후로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누! 이번 이닝에 타순이 올 거 같아.”
“응.”
마누엘이 건네는 헬맷을 집어든 신우가 대기타석에 나갈 준비를 했다.
[쯧! 투구에만 집중하면 좋으려만.]
[아메리칸리그로 가면 좋을 듯.]
[에헤이! 그러면 안 되지. 이놈 타격까지 시켜서 우리의 실력이 지금 시대에서도 통한다는 걸 증명해야 되는데.]
다시 불이 붙은 채팅창을 무시한 채, 신우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딱-!!
[높게 떠오른 타구, 우익수가 거의 제 자리에서 잡습니다. 마무리로 뛰던 작년에 좋은 타격을 보여서 그런 걸까요? 올 시즌 정신우 선수의 타격감이 조금 죽은 느낌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선발과 마무리의 체력적인 소모는 매우 크니까요. 분명 타격에도 재능이 있지만, 투구에 더 재능이 있는 선수입니다.]
[이런 선수가 투타겸업을 해야 되는데 말이죠.]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경우도 있으니, 한 마리 토끼만 잡는 게 더 좋습니다.]
야구에 해박한 이들은 대부분 해설위원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라이트한 야구팬들은 신우의 투타겸업을 응원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7회초가 되었다.
[정신우 선수, 마운드에 오릅니다. 선취점을 내주었으면 했던 팀원들의 도움은 없는 상황. 여전히 스코어에는 0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 이럴 때 투수는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이닝을 막아도 경기에서 이길 수 없으니 말이죠.]
뻐억-!!
“볼!”
[초구 97마일의 패스트볼이 존을 벗어납니다.]
첫 타자를 상대로 연달아 4개의 공을 던졌다.
초구는 포심 패스트볼.
2구와 3구는 커터.
그리고 4구는 체인지업을 던지며 볼카운트는 1볼 2스트라이크를 만들었다.
“후우...!”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정신우 선수 사인을 교환합니다.]
[현재까지 그가 던질 수 있는 공들은 모두 나온 상태입니다. 타자가 패스트볼 계열에 반응하고 있는 걸 잘 생각해야 합니다.]
[확실히 체인지업에는 타이밍이 조금 빨랐죠?]
[예. 이럴 때는 다시 체인지업을 던져서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신우 역시 알고 있었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이 체인지업을 외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직접 사인을 내자 마누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끝나자 신우가 와인드업과 함께 5구째를 뿌렸다.
[5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빠르게 날아오는 공에 타자가 배트를 돌렸다.
휘릭!!
“윽!!”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떨어지는 공을 보고 당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움직여 공의 변화를 따라갔다.
딱-!!
[빗맞은 타구!]
평범한 땅볼이 된 타구가 1-2루간을 향해 날아갔다.
원바운드가 되면서 속도가 좀 붙었지만, 잡는데 어려움이 없는 타구.
모든 이들이 아웃카운트가 올라갈 거라 예상한 순간.
[쟤 왜 달려가면서 잡으려고 하냐?]
레전드플레이어의 채팅과 거의 동시에 루이스의 글러브 밑으로 지나가는 공이 보였다.
[아-! 놓쳤습니다! 평범한 그라운드볼을 놓치고마는 루이스 선수!]
[어처구니없는 실책이 나왔어요. 이건 안전하게 잡았어야죠.]
말도 안 되는 실책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체력이 떨어진 신우에게도 영향이 가는 실책이었다.
퍽-!!
“볼!! 베이스 온 볼!!”
[볼넷입니다. 실책 이후 후속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면서 무사 1, 2루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네요. 정신우 선수는 그동안 이런 상황에서도 단단한 멘탈로 위기를 벗어났는데 말이죠.]
신우가 마운드에서 내려와 잠시 숨을 골랐다.
“후우...”
[동료라는 것들이 제대로 도움이 안 되네.]
[야구를 하다보면 꼭 이런 상황이 오지.]
[더 이상 흔들리면 돌이킬 수 없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조언이 쏟아졌다.
뒤이어 마운드를 방문한 마이크 감독의 조언이나 에러를 저지른 루이스의 사과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신우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젠장...어떻게 해야 되지?’
체력이 떨어지면서 공들이 제대로 제구가 되지 않았다.
구위도 떨어졌다.
타자들이 공을 공략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체감됐다.
그로 인해 자신의 공을 뿌리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것을 간파한 매튜슨이 채팅을 쳤다.
[커브를 던지자.]
‘예?’
[응? 커브는 아직 실전용이 아니잖아?]
[맞아. 아직 미완성임.]
[지금 상황에서 그거 던졌다가는 홈런 각임.]
다른 레전드들의 우려섞인 채팅이 이어졌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브라운은 매튜슨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니, 매튜슨의 말이 맞아. 지금 상황에선 커브를 가야 해.]
[이유가 뭔데?]
[신우의 자신감이 떨어진 게 이유지.]
[정답이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무기들이 하나 둘 공략당하기 시작했어. 상대를 확실히 제압할 수 없는 무기만 보유하고 있으면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그렇다고 실전용이 아닌 무기를 쓰라고?]
[변수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쓸만해.]
매튜슨의 말에 신우는 결정을 내렸다.
“마누엘 이 사인을 내면 그걸 던질 거야.”
“그거? 설마 자네...”
“저쪽이 눈치챌 수도 있습니다. 아직 실전에 쓸만큼은 아니지만, 타자를 헷갈리게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음...확실히 그렇겠군.”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마이크가 신우를 격려했다.
“자네를 믿겠네.”
“감사합니다.”
다시 신우가 홀로 마운드에 남았다.
채팅창은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신우는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매튜슨의 말대로 무기들이 공략당했다.
그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졌다.
이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록 완성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던진다.’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다시 마운드에 섰을 때.
【모데카이 브라운님이 1000 노잣돈을 후원하셨습니다.】
【커브는 기술이 아닌 감각으로 던져야 해.】
감각으로 던져라.
그 말을 들은 신우의 머리로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는 로진을 손에 묻히며 곧장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과거로부터 배운다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주의 : 노잣돈이 소모됩니다.】
눈 앞에 뜬 두 개의 선택 창.
신우는 망설이지 않고 [예]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