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153화 (153/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53화 >

* * *

시즌 30번째 경기.

신우는 씨티필드가 아닌 말린스 파크에서 등판했다.

[5.2이닝동안 1실점 피칭을 한 정신우 선수, 어느덧 투구수는 90개를 넘었습니다.]

[이전 경기에서 시즌 첫 패를 기록한 후유증은 전혀 없어보입니다. 정말 괴물 같은 정신력입니다.]

투구수 92구.

6회 투아웃을 잡은 상황에서 신우의 호흡은 다시 거칠어졌다.

“후우...후우...”

거칠어진 호흡만큼이나 손끝이 찌릿했다.

손에 든 공이 쇠로 만들어진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거웠다.

[체력이 떨어지면 모든 게 힘들어진다.]

[얘는 더 힘들 수밖에 없을 듯.]

스판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확인했다.

상대팀인 말린스의 스코어보드에는 1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반면, 메츠의 스코어보드에는 0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어떻게 6회까지 안타 1개가 전부냐?]

[레알 공격력이 쓰레기네.]

[아니, 수비만 오질나게 해주면 뭐하냐고? 딜러가 개판인데.]

[너무 수비에 몰빵했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불만은 현실의 팬들의 것과 궤를 같이 했다.

-야구 혼자하냐?

-6회까지 1실점 했는데, 패전투수 될 각이네.

-하 ㅅㅂ 레알 답답하다.

-차라리 이적하자.

-우리 시누 불쌍해서 우야냐 ㅠㅠ

다양한 반응들이 인터넷에 도배됐다.

하지만 신우는 우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이미 마운드에 섰고 자신이 해야 될 것은 공을 던지는 것이었으니까.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빠르게 날아갔다.

딱!!

“파울!!”

다시 파울이 됐다.

6구째 승부.

패스트볼과 커터 그리고 체인지업까지 고루 던졌다.

하지만 타자는 모두 반응하고 있었다.

‘패스트볼에 계속 반응을 하고 있다.’

힘이 충분했다면 밀어붙였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지?’

궁지에 몰린 상황.

신우의 머리가 복잡했다.

‘커브를 던져?’

[완성도가 낮다.]

[실전에 던질 수준은 아님.]

[던지자.]

[어차피 지금 던질 공도 없지 않음?]

의견이 갈렸다.

쓰리핑거 커브는 완성도가 낮았다.

원하는 코스에 던질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다시 마운드에 선 신우가 사인을 냈다.

고개를 끄덕인 마누엘이 미트를 내밀었다.

그곳을 보며 신우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

‘이걸로 가겠습니다!’

쐐애애액-!!

매섭게 날아간 공이 미트에 꽂히려는 순간.

부웅-!!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딱!!

[7구를 강타!!]

라인드라이브성 타구가 신우를 향해 되돌아왔다.

[막아!]

매튜슨의 외침과 동시에 신우가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날아오는 공이 느려졌다.

그리고 신체의 움직임 역시 둔해졌다.

‘젠장...!’

공이 날아오는 궤적은 얼굴이었다.

조금만 늦어도 직격을 당할 수 있는 상황.

느려진 손을 안간힘을 써서 움직였다.

손이 시야를 가리는 순간.

영역이 깨졌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신우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시누!!”

동료들이 쓰러진 신우를 향해 달려왔다.

[아!! 정신우 선수! 마운드에 쓰러졌습니다!!]

[이거 좋지 않은데요. 타구가 정면으로 날아갔습니다. 큰 부상이...]

[아-! 정신우 선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글러브를 들어 구심을 가리킵니다!]

카메라가 신우의 글러브를 클로즈업했다.

그 안에 있는 공이 명확하게 보였다.

[공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화면이 바뀌며 슬로우화면이 나왔다.

포수의 뒤에 있던 카메라가 잡은 듯, 정면에서 신우의 모습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슬로우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신우가 글러브로 얼굴을 가리면서 공을 잡는 모습이 명확하게 보였다.

[엄청난 반사신경입니다! 저 상황에서 공을 잡을 수 있었다니...정말 대단합니다!]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닝을 마감하는 정신우 선수! 동료들이 이런 정신우 선수의 승부욕을 본받았으면 좋겠군요!]

스스로 걸어서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신우의 모습에 팬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멋지다-!!”

“엄청난 플레이였어!!”

메츠의 팬은 물론이거니와 말린스의 팬들도 섞여 있었다.

그만큼 대단한 플레이였단 소리다.

벤치에 도착한 신우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위험했지...’

간담이 서늘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이대로 이겨주면 좋겠는데.’

이기고 싶다는 열망.

그 열망이 얼마나 전달됐는지 알 수 없다.

[평소라면 이 정도에 분위기가 바뀔 수 있겠지만.]

[상대의 목표가 더 명확하다.]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된 메츠.

반면에 말린스는 시즌 마지막까지 와일드카드 진출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차이는 경기에서 크게 착용했다.

[쉽지는 않겠지.]

매튜슨의 말대로 메츠는 이날 경기에서 패배했다.

* * *

6이닝 1실점.

훌륭한 성적이다.

이런 성적을 올리고 1패가 올라갔다면 투수로선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우는 지나간 일을 금세 잊었다.

[바로 구단으로 가는 거냐?]

‘커브를 연습해야죠.’

[연습밖에 모르냐?]

‘그 상황에서 커브를 던질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경기에서 진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

하지만 신우는 달랐다.

스스로에게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움직였다.

행동력과 결단력이 모두 훌륭했다.

구단에 도착한 신우가 짐을 내리고 있을 때였다.

“신우씨!”

저 멀리서 제이슨 킴이 달려왔다.

“헉...헉...!”

“뭐가 그리 급해요?”

“뒤...뒷문으로 가셔야 됩니다.”

“예? 왜요?”

“팬들 수백명이 지금 입구를 막고 있어요. 신우씨를 보기 위해서요. 구단직원들이 막고는 있지만, 위험할 수 있으니 뒷문으로 가시죠.”

고개를 들어 제이슨이 달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귀를 기울이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 가던 입구로 갈게요.”

“예?”

“괜찮을 겁니다. 아, 짐 좀 부탁해도 될까요?”

“예! 아니, 이게 아니라. 정말 많이 모여 있어요! 요즘 성적도 좋지 않은 데다가, 커뮤니티 반응도 좋지 않으니까, 이왕이면 후문으로...”

“괜찮습니다.”

만류하는 제이슨을 뒤로하고 신우가 출발했다.

제이슨은 급히 트렁크에서 짐을 내려 어깨에 메고 그를 따랐다.

[제이슨은 아직 팬의 성향을 모르네.]

[이런 상황에서 팬들이 신우에게 악감정을 담을 이유가 없자너.]

[ㅇㅈ]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을 보며 신우가 선수들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 시누다!!”

“시누다!!”

“시누-!!!”

“우-! 우-! 우-! 우-!!”

신우를 발견한 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경기를 뛰고 있는 듯한 반응에 뒤를 따르던 스티븐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분명 직원들이 제지할 때만 하더라도 살벌했는데.’

신우가 등장하기 전.

구단직원들이 먼저 팬들을 통제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다.

그때 팬들과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몇몇 팬들은 욕설을 뱉으며 메츠 구단을 욕하기도 했다.

그랬기에 스티븐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신우를 다른 곳으로 들어가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에 당황했다.

“죄송하지만, 짐 좀 제 라커에 가져다주세요.”

“예? 그럼 신우씨는...”

“사인 좀 하고 들어갈게요.”

“어제 밤에 뉴욕에 도착하셨잖아요? 피곤하실 텐데...”

“그렇다고 여기까지 찾아온 팬들을 외면할 순 없잖아요.”

그 말과 함께 신우가 팬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곁으로 직원들이 다가와 경호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모습이었지만, 신우는 평소와 똑같이 웃으면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팬들을 오해하고 있군.]

[오해라기보다는 상황이 좋지 않으니 긴장한 거겠지.]

채팅창에선 한창 의견이 오갔다.

“시누! 꼭 20승을 해줘요!”

“당신이 기록을 세우길 기도할게요!”

“당신에게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팬들은 신우에게 축복과 응원을 보냈다.

메츠를 응원하는 팬들.

하지만 구단은 그들을 버렸다.

선수들을 응원하려 했지만, 의욕을 잃어버린 선수를 응원해줄 팬은 없었다.

그렇기에 팬들의 응원은 한 사람에게 향했다.

그것이 바로 신우였다.

고작 2년차.

신우는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 * *

두 시간 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웜업을 끝낸 신우가 불펜에 섰다.

“20구 정도만 던질게.”

“오케...어? 마이크!”

미트를 때리던 마누엘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마이크가 서있었다.

“신경쓰지 말게. 잠깐 보러 온 거니까.”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다시 신호를 보냈다.

마누엘이 미트를 내밀자 신우가 연달아 공을 뿌렸다.

5개의 공을 뿌리면서 어깨를 점검했다.

파앙-!!

“굿!”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커브로 갈게.”

“오케이-!!”

신우의 신호에 마누엘이 평소보다 미트를 밑에 위치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마이크의 눈이 빛났다.

‘저번에 봤던 쓰리핑거 커브로군.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사용할 타이밍은 있었다. 그때 사용하지 않았다는 건, 아직 실전용은 아니란 소리야.’

신우가 와인드업과 함께 공을 뿌렸다.

파앙-!!

“굿!!”

이번에도 공은 스플리터처럼 뚝 떨어졌다.

분명 좋은 움직임이었다.

평범한 코치를 스승으로 두었다면 말이다.

[팔의 각도가 다르잖아!]

[눈이 좋은 놈들은 바로 눈치채겠다.]

신우의 스승들은 평범한 이들이 아니다.

하나 같이 명예의 전당에 오른 괴물들.

특히 모데카이 브라운은 커브마스터란 별명이 붙을 정도의 괴물이었다.

파앙-!!

“아주 좋아!!”

[공이 솟아오르면 안 된다니까?]

공을 던질 때마다 고쳐야 될 곳들이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파앙!!

“크레이지! 이번 공은 정말 좋았어!!”

[디셉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공은 갖다버려!]

굿 캅 배드 캅이라 했던가.

신우는 지금 자신이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파앙!!

“구우우우웃!!”

[손목을 과하게 돌리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다 손목 나간다!!]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가는 듯한 정신공격에 혼미해지는 신우였다.

[브라운 열변을 토하누.]

[간만에 자신의 공을 전수해줄 녀석이 등장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배우면 내년에는 던질 수 있겠네.]

재능을 보지 못한 레전드들은 내년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튜슨을 필두로 한 재능을 본 레전드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걸 내년 각을 보네.]

[눈이 옹이구멍임?]

[다음 경기에서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겠다에 한표.]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진영도 밀리지 않았다.

[쟤들 또 저러누.]

[저번에도 한 번에 던질 수 있다고 설레발 치더니, 아직 정신 못차렸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내기 ㄱㄱ?]

내기라는 말에 채팅창을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파앙!!

“베리 굿!! 넌 최고의 투수야!!”

[엉망이네! 엉망이야!! 도대체 몇 번을 가르쳐줘야 되냐?!]

하지만 두 사람에게 정신공격을 당하느라 그런 내기를 신경쓰지 못하는 신우였다.

* * *

5연패.

신우가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2패를 거둔 뒤로 메츠는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이러한 경기결과는 메츠를 동부지구 4위로 떨어트렸다.

“휴우...”

팀의 성적을 본 베켓은 한숨을 내쉬었다.

‘1위를 달리던게 엊그제인데, 이제는 꼴찌를 코앞에 두고 있군.’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 5위까지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베켓은 선수들 탓을 할 수 없었다.

‘지원은커녕 있는 자원도 갖다 팔았는데. 다 내 탓이지.’

더 한숨이 나오는 건, 이런 일을 만들어낸 인물을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이다.

GM이란 자리가 원래 이렇게 힘이 없었나 싶었다.

‘그 작자가 오늘은 왜 온다는 거야?’

오늘 더 기분이 좋지 않은 건, 팀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인간이 경기장을 찾는단 것이었다.

덕분에 기분이 더 좋지 않았지만, 막을 힘은 전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구단주 대행이란 직함은 그만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똑똑-!!

“존, 시간이 됐습니다.”

“알았네.”

비서의 말에 베켓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인간을 만나러 가야 될 시간이었다.

사무실을 나가 VIP들을 위한 스카이라운지 룸에 도착한 그가 노크를 했다.

똑똑-!!

“존입니다.”

“들어와.”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베켓이 문을 열었다.

안에는 위스키를 따르던 잭 짐머가 고개를 돌려 베켓을 반겼다.

“어서오게. 한 잔 하겠나?”

“괜찮습니다. 업무 시간이라...”

“후후, 하긴 그렇겠군.”

그가 소파에 앉아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거봐. 내가 걱정하지 말랬지?”

“예?”

“우리가 알론소를 가져다 팔든 뭘 하든. 팬들은 경기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하...평소에는 이 정도의 관중이...”

“아, 시작했군.”

때마침 경기가 시작됐다.

관중들의 환호소리가 바로 들리는 자리였다.

“저 시누라는 친구 말이야. 인기가 많은 거 같아.”

“팀의 최고 스타입니다.”

“훗! 고작 공놀이에 스타라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야.”

베켓은 울컥했다.

“그런데 왜 그 공놀이를 보러 오신 겁니까?”

“이런 화났나?”

베켓은 말없이 잭을 응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잭은 위스키를 한모금 들이킨 뒤, 예상밖의 대답을 했다.

“내년 시즌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서를 얻을 수 있는 순간을 직접 봐야되지 않겠나?”

베켓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서로 지명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은 바로 팀이 올 시즌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올려야 된다는 의미였다.

‘팀이 꼴찌하는 모습을 보러 온 거라고?’

도대체 이 남자는 팀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화가 치밀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신우 정이 초구를 던질 준비를 합니다.]

때마침 들려오는 TV에서의 캐스터의 음성에 베켓의 시선이 마운드에 있는 신우에게 향했다.

‘뭔가를 보여주게.’

이 남자에게 뭔가를 보여주길 간절히 바라는 베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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