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49화 >
* * *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드디어 후반기 첫 승을 거두었습니다.
8이닝 2피안타 2볼넷 무실점 15탈삼진을 기록한 정신우 선수는, 후반기 세 번째 등판만에 승리를 챙기며 팀을 5연패의 늪에서 건져내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정신우 선수는 최고구속 101마일의 광속구를 뿌리며 타자들의 배트를 연달아 돌려세우는 괴력을 뽐내며 자신이 왜 내셔널리그 최고의 선발투수인지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정신우 선수는 WBC 3차 엔트리에도 포함되며 최종엔트리에도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신우의 승리.
하지만 고작 1승을 추가한 것에 불과했다.
그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시누의 호투로 메츠는 한시름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많은 상태죠?]
[문제 투성이입니다. 전반기에 보여주었던 그 엄청난 경기력이 모두 사라졌어요.]
[주전 좌익수 스티브 제임스의 이탈은 사실 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젝슨이 의외로 빠르게 빅리그에 적응했으니까요. 하지만 토마스는 다릅니다.
그는 단순히 주전포수가 아니라 팀의 중심타자이며 클럽하우스의 리더였습니다.]
[하지만 알론소가 있지 않습니까?]
[분명 북극곰이 클럽하우스를 장악하고 있었지만, 그는 올 시즌이 끝나면 FA에요. 지금의 메츠가 그를 잡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다 봅니다.]
[실제로 알론소는 트레이드 카드로 매번 언급되고 있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클럽하우스를 장악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메츠 구단의 클럽하우스 리더는 토마스였어요. 그런 그가 빠지면서 메츠의 성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 게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는 토마스는 가슴이 답답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새로운 리더를 찾아야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만, 문제는 메츠의 팀 구성원들 중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거죠. 투수쪽은 전멸입니다. 경력이 있는 선수들 중 제대로 된 커리어를 쌓은 선수가 없어요.]
[시누는 어떻습니까? 그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잖아요.]
[경력이 짧습니다. 클럽하우스 리더는 단순히 성적이 좋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선수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적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합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토마스는 더 보지 못하고 TV를 꺼버렸다.
‘이대로 가면 메츠는 침몰한다.’
토마스는 뉴욕 태생이다.
뉴욕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어릴 때부터 메츠의 팬이었다.
그렇기에 메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시누...’
하지만 부상당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동료이자 친구인.
‘침몰하는 난파선을 구해줘.’
신우가 또 한 번 기적을 보여주길 말이다.
* * *
다음 날.
신우는 구단에 나왔다.
그리고 가벼운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리올, 오늘 마누엘과 호흡을 맞추죠?”
그때 트레이닝센터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그 선수들은 투수들이었다.
레이먼드와 리올을 선두에 세운 무리는 신우를 발견하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정말 마누엘 그 새끼 미치겠다니까요.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딴식으로 공을 잡는 건지.”
“나도 돌아버리겠다니까? 분명 들어가는 커브였는데, 잡는 순간에 글러브를 밑으로 내리는 바람에 볼을 만들었어.”
뒤를 따르던 투수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마누엘에 대한 불만토로장이 되었다.
“리올, 당신이라면 그래도 감독이나 단장과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좀 이야기해서 다른 포수를 구할 수 없습니까? 트레이드는 아니더라도 트리플에 좀 더 좋은 포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흠...말은 해볼 수 있겠지만, 내가 권한이 있는 건 아니니까. 얼마나 통할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이대로 우리의 성적이 난장판이 되면? 누가 책임집니까? 이제 막 빅리그에 들어온 마누엘이요? 아니면 감독? 단장? 아니잖아요. 우리가 책임져야 되잖아요.”
“그건 그렇지.”
“리올, 당신도 이제 곧 FA입니다. 관리해서 더 많은 돈을 받아야...”
삐빅!!
이질적인 소리에 레이먼드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소리가 들린 곳을 확인했다.
기둥이 세워져 있어 보이지 않던 각도에서 신우가 걸어나왔다.
“뭐야? 시누, 언제부터 있었어?”
“처음부터 있었지.”
“그럼 인기척이라도 내지 그랬냐.”
불펜에서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이다.
그렇기에 레이먼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른 사람에게 들어갔다면 문제가 될 수 있었지만, 신우라면 아니다.
“참, 너도 단장에게 이야기해보는 게 어때? 우리가 도대체 포수 때문에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냐고?”
“어?”
“그럼 네가 손해를 볼 때도 구단이 너에게 불합리한 강요를 하면 넌 따를 거야?”
“뭐? 그럴 이유는...”
“만약 이번 일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다면 앞으로 누구도 서로를 보호해주지 못한다. 그게 왜인지 알아?”
신우의 시선이 투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우리가 동료를 버렸기 때문이야.”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을 지나쳐 트레이닝 센터를 나갔다.
적막이 흐르는 센터에서 투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오올-! 좀 멋진 말 하는데?]
[하지만 팩트였지.]
[ㅇㅈ 아무리 그래도 선수가 다른 선수를 내쳐달라고 부탁을 하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선을 좀 넘었지.]
[역시 레이먼드 쟤는 너무 어리다니까.]
[그런데 시누, 너는 어떻게 그런 걸 생각했누?]
스판의 질문에 신우를 고민에 잠겼다.
어디선가 본 듯한 대사와 행동이었다.
그리고 곧 답을 찾았다.
‘아무래도 요기 베라 선배님에게 빙의했던 게 아직 영향이 있나 본데요.’
[ㅋㅋㅋㅋㅋㅋ]
[ㅇㅈ]
[쟤 명언병 걸렸었지.]
[말기였음.]
[나중에 책도 나왔잖슴 ㅋㅋㅋㅋㅋ]
[어허-! 명언병이라니!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예이예이-!]
시끌벅적해진 채팅창을 뒤로 하고 신우는 걸음을 옮겼다.
* * *
[변화의 계기는 아주 작을 수도 있지.]
[또 명언병 도졌누.]
[아주 저건 말기라니까.]
다른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타박에도 요기 베라는 멈추지 않았다.
어디서 저런 말들이 떠오르나 싶었다.
하지만 신우는 거기에 대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는데...’
[야, 저거 전염병이냐?]
[이런 제에에엔장-! 명언병에는 백신도 없을 텐데.]
[명언은 위대한 법이지!]
더 이상 전염이 되고 싶지 않았던 신우는 경기장을 바라봤다.
펜스에 기댄 채, 보는 경기장에선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었다.
퍽-!!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와아아아아아!!”
“마누엘 오늘 리드 멋진데?”
“그것보다 저 프레이밍 봤어? 마지막 순간에 미트를 들어올렸다니까.”
“젠장! 저런 프레미잉을 내 경기에서도 보여줬어야지!”
그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건 마누엘이었다.
[이전의 경기들과는 확실히 다르네.]
[리드가 좀 더 과감해졌는데?]
[프레이밍에도 자신감이 생겼고.]
[무엇보다 어깨를 쫙 피고 서있으니까, 과녁으로 삼기 좋겠네.]
레전드플레이어들 역시 칭찬을 이어나갔다.
‘원래 포수의 기술은 그리 많지 않아. 경험이 쌓이면 비슷비슷해져. 하지만 누군가는 레전드가 되고 누군가는 그저그런 포수가 되지. 그 이유는...’
[바로 과감함에 있다. 프레이밍이란 것도 결국 구심을 속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지만 나오는 거니까.]
‘동감입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으면 어깨를 움츠리면서 등이 굽게 되죠.’
[자연스레 과녁은 좁아지고 제구력에 어려움을 겪게 되지.]
신우가 말하면 요기 베라가 받았다.
두 사람의 대화에 다른 레전드플레이어들은 끼지 못했다.
‘자신감을 얻었나 보네요.’
[아주 작은 변화인 셈이지. 하지만 투수들에게 던진 돌멩이 하나가 그들의 마음에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거 같다.]
요기 베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경기에서 투수들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평소라면 조금 더 고개를 저으며 마누엘의 결정을 믿지 못했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횟수가 줄어들었다.
‘제가 불펜에서부터 뛰었기 때문에 그래도 말이 통했나 보네요.’
[정확한 분석이다.]
요기 베라의 플레이를 경험하면서 신우는 달라졌다.
조금 더 경기를 보고 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감각은 옅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감각이 남아 있는 동안 충분히 팀의 어수선함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임마!]
그때 스판이 말했다.
[너 투수야! 이 시키야!!]
[정체를 찾아라!!]
[아놔, 무슨 대화하는 거 듣고 포수인 줄.]
[그럴 거면 마스크를 쓰던가!!]
레전드 투수들의 채팅에 신우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 *
베켓의 사무실.
그는 최근 다시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젠장...’
그의 시선은 후반기 메츠의 성적이 떠있는 모니터로 향했다.
「22전 10승 12패」
후반기 시작하고 첫 10경기에서 1승 9패를 했다.
1위를 뺏기고 2위로 내려앉으며 베켓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했다.
신우의 승리 이후 기적과도 같이 반등에 성공했다.
‘10승 2패라니.’
승률 83.3퍼센트.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기며 따라오던 3위 워싱턴을 따돌리고 있었다.
‘이제 3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지. 1위를 언제 탈환하느냐가 문제지.’
1위 필라델피아 필리스도 엄청난 기세로 승리를 수확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츠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두 팀은 같은 지구다.
결국 맞붙게 된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결국 1위를 탈환하게 될 것이다.
“팀이 이기는데 기뻐할 수 없다니, 정말 미치겠군.”
두통으로 쓰러질 것 같은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잭 짐머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그 인간에게 통할 거 같지 않았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비서가 문을 열었다.
“보스, 레드삭스의 케이시 단장의 연락이에요.”
보스턴 레드삭스.
아메리칸리그의 전통적인 강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메츠의 알론소와 엮이고 있는 구단이었다.
“5분 뒤에 전화한다고 해.”
“알겠습니다.”
머리가 복잡했다.
레드삭스와는 꾸준히 카드를 맞추고 있었다.
메츠가 원하는 건 레드삭스의 미래라 할 수 있는 투수와 타자 유망주와 현금이었다.
“젠장...!”
최소한 4일 전에만 전화를 줬으면 고민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뚜르르르-!!
다시 울리는 전화에 베켓이 수화기를 들었다.
* * *
[메츠의 씨티필드가 열광이 도가니입니다.]
[아-! 정말 최근 메츠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파죽지세라는 말이 딱 어울려요!]
[15전 12승 3패! 승률 80퍼센트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정신우 선수 역시 3승을 추가하며 현재는 16승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후반기 시작해서 나락으로 빠지고 있을 때, 정말 이제는 희망이 없다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정말 기적 같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이제는 힘들다고 생각할 때.
메츠는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클럽하우스 분위기는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공격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딱-!!
[첫 타자부터 안타로 시작하는 메츠!]
신우는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의 공격을 바라봤다.
[완전 신났누.]
[타자들이 이대로만 흐름을 타준다면 만사 오케이지.]
[ㅇㅈ]
“시누.”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을 보고 있을 때였다.
그늘이 지는가 싶더니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알론소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천히 준비하도록 해.”
“응?”
“공격이 길어질 테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배트를 들고 대기타석으로 가는 그의 모습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쟤도 요즘 다시 물 오르던데.]
[완전 무서움.]
[뭔가 고민을 떨쳐낸 것 같은 느낌임.]
[이번 시즌 끝나고 FA고 트레이드 이야기도 계속 나오니까, 경기에 어떻게 집중하겠냐?]
[거기다 팀은 개판이었고.]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대로였다.
알론소는 이번 시즌 초반부터 트레이드 루머에 매일 휘말렸다.
그래도 전반기에는 성적을 냈다.
워낙 뛰어난 선수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그의 타격감은 완전히 죽어버렸다.
그러나 팀이 살아나면서 그 역시 반등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고민을 떨쳐낸 게 반등의 가장 큰 이유였다.
[자신감 뿜뿜하는 거 보니까, 이번 이닝에 사고 하나 칠 듯?]
[ㅇㅈ]
그리고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알론소가 배트를 휙 던졌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 1루로 향했다.
[와...]
[저걸 저렇게 넘겨버리네.]
[힘 넘사인데?]
감탄을 자아내는 그의 스윙.
그의 엄청난 활약에 신우는 1회부터 5점이란 리드를 등에 업고 마운드에 섰다.
“알론소.”
신우는 자신을 스쳐 지나가던 알론소를 불러세웠다.
“감이 좋은 거 같으니까, 그 감을 잊지 않게 해줄게.”
[크으-!]
[자신감에는 자신감인가?]
“기대하고 있겠어.”
알론소가 글러브로 신우를 툭 치고 자신의 베이스로 향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지만, 그 말을 지키지 못하면 우스워지는 것도 알고 있겠지?]
매튜슨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잠시 후.
신우가 8번째 공을 뿌렸다.
뻐어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단 8개의 공으로 1회말을 마감하는 정신우 선수!! 엄청납니다!!]
순식간에 1회를 정리한 신우가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쟤들이 불쌍하누.]
[ㅇㅈ]
[이쉑들 완전 괴물들이네.]
레전드플레이어들마저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활약을 펼치는 두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