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48화 >
* * *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하기 위해 마운드에 에이스가 올라왔습니다! 올 시즌 내셔널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로서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위기에 빠진 팀, 적절한 표현입니다. 후반기 들어 2승 8패.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메츠는 이제 2위 자리도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정신우 선수의 승리 레이스가 멈춘 것도 아쉬움이 남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후반기 2경기에 등판했지만, 아직 승리가 없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승리를 챙겨 다시 다승 1위에 올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가 멈춰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멈추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항상 달려간다.
그것이 메이저리그라는 곳이다.
‘지금은 그런 걸 신경쓸 때가 아니지.’
신우는 잡념을 떨쳐냈다.
지금 해야 될 건 오늘 경기에서 이기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 캐처박스에서 중얼거리고 있는 마누엘이 중요했다.
[녀석의 상태를 보니, 오늘도 너무 긴장했네.]
[자신감 하락 때문이라니까?]
요기 베라가 말했다.
‘그럼 자신감만 올라가면 트리플A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을 볼 수 있나요?’
[가능성은 높지.]
[문제는 자신감이 높아지는 건 당사자가 힘을 내야 된다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계기가 있거나.]
‘중요한 건, 녀석의 자신감이 올라가면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거죠.’
[그러니까, 방법이 없다니까?]
[네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음.]
‘음...’
신우가 고민하고 있던 찰나.
“플레이볼!”
경기가 시작됐다.
* * *
“아웃!!”
이닝이 마감됐다.
2이닝 무실점.
평소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그렇지 못했다.
[잔루 1, 2루의 위기를 잘 벗어나는 정신우 선수!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저희는 잠시 후, 메츠의 공격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헤드셋을 벗은 김진철이 불안한 얼굴로 이용대에게 물었다.
“오늘 정신우 선수 컨디션 별론거 같지 않아요?”
“정확히는 포수가 엉망이야.”
“포수가요?”
“캐칭을 할 때 미트가 움직여. 미트를 밑으로 빼기도 하면서 구심의 볼판정에 혼란을 주고 있어.”
“아...로봇판정은 아무래도 제한이 있으니까, 어렵겠죠?”
“어. 비디오판독하고 같은 거라고 보면 돼. 비디오판독도 제한이 있으니까, 중요한 순간이 아니면 아끼게 되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무실점 피칭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생기는 불안감.
그것은 신우 역시 느끼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야 될 공들이 세 번이나 볼 판정이 되었다.’
구심은 볼이 들어올 때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포수가 공을 잡는 위치 등.
여러 요인을 가지고 판단을 내린다.
즉, 포수의 캐칭이 볼판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단는 것이다.
“후우...”
확실히 다른 투수들이 마누엘을 꺼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될까.’
[지금 고민해서 되겠음?]
[어차피 경기는 시작됐는데 고민하면 어쩌겠냐?]
‘그건 그렇죠.’
경기가 시작된 이상 대안은 없었다.
포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바꿀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은 있지.]
‘정말요?’
[그래. 네가 가지고 있는 거. 그거 사용하면 됨.]
‘제가 가지고 있는 거라면...?’
[과거로부터 배운다. 그거 사용하면 우리들 플레이 중 하나를 볼 수 있다.]
과거로부터 배운다.
저승튜브를 통해 얻은 스킬이다.
아직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모호한 설명만이 신우가 아는 전부였다.
그런데 방금 설명으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그런데 플레이 중 하나를 볼 수 있다뇨?’
[써보면 암. 여튼 지금 답답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답이 될 거다.]
요기 베라의 말에 신우가 잔고를 열었다.
[보유노잣돈 : 243,000노잣돈]
어느덧 20만 노잣돈이 넘었다.
두 번은 쓸 수 있다.
‘그런데 경기 도중에 써도 괜찮을까요?’
[시간이 오래 안 걸림. 아마 한 타자 끝나기 전에 돌아올 걸?]
한 타자라면 몇 분 걸리지 않는다.
짧으면 1분이다.
그 짧은 시간에 돌아온다니.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우리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음?]
[금방 다녀옴.]
[ㅇㅈ]
다른 레전드플레이어들 역시 동의했다.
그들과의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믿지 못한다면 그게 넌센스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로부터 배운다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주의 : 노잣돈이 소모됩니다.】
경고창이 떴지만 망설일 건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셈.]
[이따 보자.]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배웅과 함께 [예]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눈을 한 번 깜박이는 순간.
“헉...헉...”
신우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다녀왔누?]
[벌써?]
[ㄹㅇ?]
레전드플레이어들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신우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는데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설마...’
예를 누르는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다시 빛이 보였을 때.
‘1940년대로 가다니.’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니.
‘정확히 말하면 여행은 아니지.’
그곳에서 신우는 자유가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경험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시선을 바꾸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허용된 건 단 하나.
‘그래도 당신의 플레이를 배웠습니다.’
플레이어의 신경을 공유한 것이다.
‘요기 베라...선배님은 정말 대단한 포수였군요.’
신우가 경험했던 플레이어는 다름아닌 요기 베라였다.
* * *
요기 베라는 전설적인 포수였다.
하지만 약점이 분명했다.
바로 신장이다.
그의 신장은 170cm에 불과했다.
아무리 1940년대라 하더라도 작은 키였다.
그 시대의 포수는 보호를 받지 못했다.
거구의 주자들이 홈으로 파고들 때, 몸으로 버텨야 된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170cm의 키로 홈플레이트를 지킨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요기 베라는 그것을 해냈다.
그리고 신우는 그것을 경험했다.
‘요기 베라 선배님은 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을 경험하셨군요.’
[그랬지. 돈 라슨 그 친구도 여기에 와야 되는데. 아직 못해서 아쉬워.]
돈 라슨.
월드시리즈 최초이자 마지막인 퍼펙트게임을 올린 투수.
그의 대기록을 함께 했던 포수가 바로 요기 베라였다.
신우가 경험한 경기는 바로 그 경기였다.
[그런데 한 경기만 경험함?]
‘예.’
[그건 좀 이상하네. 원래 인생 전체를 경험하지 않나?]
[아무래도 패널티인 듯.]
[까비-!]
‘괜찮습니다. 원하는 건 얻었으니까요.’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갔다.
그 순간 유격수가 몸을 날렸다.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낚아채는 엄청난 수비가 나왔다.
“와아아아아!!”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저런 플레이 한 번으로 경기의 흐름이 바뀐다.
‘조심해야겠네요.’
[정답이다.]
[올-!]
[이제 좀 어른스러워졌는데?]
[흐름을 읽을 수 있고 말이야.]
요기 베라의 한 경기.
그것만으로 모든 걸 흡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설적인 포수의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면서 얻은 건 분명히 컸다.
최소한 신우를 한단계 성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기술적이 아닌 정신적으로 말이다.
“마누엘!”
“어?”
“이번 이닝에서 저 녀석의 기가 살아날 거야. 그러니까, 분명 기억해둬.”
신우가 마누엘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상대 더그아웃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에는 방금 전 엄청난 슈퍼플레이를 보여준 유격수가 있었다.
‘원래 이런 건 내가 알려줘야 되지 않나?’
“네가 알려줘야 되는 거야!”
“엉?”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한 신우의 대답에 마누엘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가 뭐라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신우가 계단에 올랐다.
그리고 막 더그아웃을 나가기 전.
“언제까지 장비를 착용할 거야? 내 공 받아주지 않을 거야?!”
“가...간다!”
신우의 재촉에 마누엘이 장비를 빠르게 착용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신우의 모습에 팀원들도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원래 저랬나?’
‘마치 다른 사람 같은데.’
‘하지만 저게 맞는 말이지.’
마이크 감독은 신우의 행동이 변한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단지 그의 말에 동의할 뿐이었다.
‘포수가 투수보다 늦게 나간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포수로서의 마인드가 잘 못 되어 있다는 것이다.
‘트레이드를 할 수 있다면...’
문제는 구단의 사정이다.
트레이드를 요청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만큼 개판이라는 거지.’
구단의 현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팔고 싶어하는 주인.
그리고 리빌딩을 해야 되는 대리인.
거기에 경기를 해야 되는 자신까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합이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강요할 수 없었다.
‘젠장...!’
분노를 삼킬 수밖에 없는 마이크였다.
* * *
“플레이볼!!”
경기가 재개됐다.
3회초.
변한 건 없었다.
[그래서 뭘 배우고 온 거임?]
‘포수가 어떤 상황에서 자신감을 얻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
‘예. 자신의 리드대로 투수가 공을 던졌을 때.’
‘바깥쪽 패스트볼.’
마누엘의 사인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타자가 건들지 못한다면...’
킥킹과 함께 허리를 튼 신우가 모든 힘을 집중시켰다.
‘이 녀석을 신우가 조심하라고 했었지. 바깥쪽 낮은 코스야. 에이든과의 자료에서 이 코스로 들어오는 빠른공에 약하다는 게 나왔었어.’
마누엘 역시 노력했다.
에이든과 머리를 맞대고 타자를 공략할 방법을 떠올렸다.
오늘 경기만이 아니다.
전반기를 망치면서 마누엘 역시 괴로웠다.
그래서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다.
문제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단 것이었다.
‘이번에는 통해야 해!’
노력 대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사람은 주눅이 든다.
마누엘도 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막다른 길에 몰린 상황.
그랬기에 친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프로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말이다.
‘내게는 가족이 있어!’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된다.
무엇보다 마누엘은 많은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트리플A에서의 월급으로 턱도 없이 부족했다.
메이저리그에 있어야 되는 이유였다.
신우는 투구를 하면서 마누엘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흔들리는 미트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지를.
[저렇게 미트를 흔들어대니, 투수들이 초점을 잡지 못하지.]
‘상관없습니다!!’
신우가 대답과 함께 스트라이드를 했다.
그리고 내디딘 다리와 함께 몸을 회전시키며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건들지 못하면!! 포수의 자신감은 올라갑니다!’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맹렬한 회전과 함께 날아갔다.
그 순간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후웅-!!
하지만 공은 그의 배트 위를 그냥 지나쳐갔다.
뻐어어어억-!!
“스트라이크!!!”
“우와아아아아!!”
“우-! 우-! 우-! 우-!!”
관중들의 환호성에 신우가 글러브를 들었다.
‘자신감이 오르면 녀석의 미트는 흔들리지 않게 되겠죠.’
[정답이다.]
요기 베라의 경험.
그것을 얻은 신우는 마누엘의 상태를 읽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원래 이런 건 포수가 해야 되지 않누?]
[누가 하면 어떰?]
‘되는 놈이 하면 되는 거죠.’
[오올-! 마음에 드는 대답인데.]
[크으-! 이런 투수가 많아져야 되는데.]
레전드 포수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하지만 투수들은 달랐다.
[아니, 너 대체 뭐임?]
‘뭐가요?’
[포수냐? 투수냐? 포지션을 정확히 해라!]
‘그런 게 어딨습니까?’
공을 돌려 받은 신우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로진을 손에 묻히며 대답했다.
‘베이스볼 플레이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