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47화 >
* * *
마누엘과 도착한 곳은 멕시코 음식점이었다.
“멕시코 음식 좋아해?”
“난 가리는 거 별로 없어.”
“으하하! 그렇다니 다행이네. 다음에는 한국식당으로 가자고. 뉴욕에 온다니까, 내 친구들이 김치 타코가 맛있다고 먹어보라던데, 먹어본 적 있어?”
“듣기는 했는데, 아직 먹어본 적은 없어.”
“다음에 한 번 같이 가자고. 참, 여기 타코도 맛있으니까. 한 번 먹어봐.”
“오케이. 그럼 알아서 시켜줘.”
“알았어. 내가 책임지고 멕시코 음식의 정수를 느끼게 해주지.”
마누엘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을 시키는 그의 모습을 보며 레전드플레이어들이 말했다.
[그라운드에 있을 때랑 성격이 아예 다르누.]
[쟤 트리플에 있을 때도 저러지 않았나?]
‘그랬죠. 그런데 빅리그에 콜업이 되고 나서 적응이 힘들었나 본데요.’
[압박감이 컸나 보네.]
[상황에 따른 압박감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어쩔 수 없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마누엘이 타코를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 타코도 맛있지만, 살사도 죽여. 칩 찍어서 먹어봐.”
“잘 먹을게.”
마누엘의 말대로 음식은 무척 맛이 좋았다.
그랬기에 의아했다.
“이렇게 맛이 좋은데, 손님이 없네.”
“여기는 대부분 테이크아웃을 해가지. 아니면 딜리버리를 시키거나.”
“아하.”
이해를 한 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리또 하나를 모두 비워갈 때쯤이었다.
“후우...시누. 오늘 내 경기 어땠어?”
“오늘?”
“오늘만이 아니라. 빅리그에 올라온 뒤로 말이야. 그래도 시러큐스에 있을 때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 투수들과 약간의 트러블은 있어도 큰 문제는 없었고 말이야.”
마누엘은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털어냈다.
“그런데 뉴욕에 오고 나니까, 도무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어. 분명 에이든이 준 자료대로 리드를 하는데, 투수들이 고개를 저을 때가 있더라고.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흠...”
신우는 말없이 마누엘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그의 고민을 듣고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빅리그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거네.]
[의외로 어려운 일이긴 하지.]
‘그런가요?’
[ㅇㅇ 너는 적응이 빨랐던 타입임.]
[보직이 불펜이었다는 게 운이 좋았지. 견제받을 일이 적었으니까.]
[레이먼드란 어린애가 시비를 걸긴 했지만, 그 애 하나만 상대해야 했던 너와 케이스가 다른 듯.]
[무엇보다 넌 우리가 있잖음.]
[ㅇㅈ]
이번에는 반박 할 생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으니 말이다.
이왕이면 도와주고 싶었다.
시러큐스 시절 녀석과 사이는 좋은 편이었다.
정확히는 마누엘이 신우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했다.
k-pop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였기에 자연스런 접근이었다.
덕분이라곤 할 수 없지만, 팀에 빠르게 녹아들었다.
‘하지만 뭐라고 조언을 하지?’
그저 자신이 해야 될 일을 해왔다.
그러자 자연스레 팀에 녹아든 신우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많지 않았다.
[젝슨 케이스를 생각해보면 되지 않음?]
‘아...’
젝슨은 최근 팀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스티브의 백업으로 왔지만, 현재는 나름 활약을 하면서 동료들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그 계기가 됐던 게 바로 신우였다.
스판의 대답을 들은 신우는 그 제안을 마누엘에게도 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정 머리가 복잡하면 훈련이라도 하는 게 어때?”
“훈련? 그거야 당연히 하고 있지.”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오면 나랑 몇 명이 같이 운동을 하고 있을 거야.”
“오-! 그룹이 있는 거야?”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대니얼도 있으니까, 와서 같이 운동해보는 게 어때?”
“대니얼이라면 불펜의 베테랑이었지? 그거 좋네! 그렇게 안면을 터고 같이 운동하면 친해질 수도 있을 거고!”
마누엘은 혼자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신우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었는데.’
[아니었음?]
[그럼 무슨 의미였는데?]
‘그냥 땀 좀 흘리면 잡념이 사라지잖아요. 젝슨도 그랬었고.’
[한 마디로 굴리다보면 무념무상이 될 테니, 잡념이 사라질 거다?]
‘어...그렇게 되나요?’
[네가 제일 악마네.]
악마라고 생각했던 레전드플레이어들에게 되려 악마 소리를 듣는 신우였다.
그리고 다음 날.
마누엘은 트레이닝 센터 위에 널브러져 헐떡이며 신우에게 말했다.
“넌 악마...흐억...야...”
그리고 채팅이 불타올랐다.
[내 말이 맞제?]
[내가 저 말 한다고 했제?]
신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 * *
존 베켓은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젠장...이런 시기에 갑자기 호출이라니.’
그가 도착한 곳은 뉴욕의 빌딩.
씨티필드가 있는 퀸즈가 아닌, 맨하탄이었다.
그것도 허드슨강이 보이는 빌딩의 고층에 있는 사무실.
대기실을 꾸미고 있는 가구들도 하나 같이 몇만달러를 호가하는 고급품들이었다.
‘이럴 돈이 있으면 구단에나 좀 쓸 것이지.’
베켓 입장에선 저런 모든 것들이 불만이었다.
구단에 대한 지원은 쥐꼬리만큼도 없으면서 자신의 사무실은 이렇게 꾸미다니 말이다.
“존?”
“아, 예.”
“들어가세요.”
책상에 앉아 고개를 까닥이는 비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새 또 바꾸었군.’
1년 사이 몇 번이나 바꾸는 것인지.
고개를 저으며 문앞에 섰을 때.
‘웃자.’
똑똑-!
베켓은 웃으며 노크를 했다.
“들어와.”
걸걸한 목소리에 문을 열자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짐머 회장님.”
“아, 그래. 앉지.”
남자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람이 들어왔음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그의 태도에 베켓은 화가 났다.
무시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탁!
파일을 닫는 순간, 베켓은 미소를 지었다.
“길게 끌 거 없겠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예?”
“몰라서 지금 되물은 건가?”
“아...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자네에게 백만달러의 연봉을 주고 있는 건, 구단에 대한 리빌딩을 위해서 주고 있는 거네. 그런데 작년부터 리빌딩이 제대로 되고 있나?”
“그게...선수들이 노력을 하면서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덕분에 리빌딩이...”
“선수들 때문이다?”
남자의 목소리가 변했다.
심장을 움켜쥘 듯한 압박감에 베켓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아닙니다. 그저 팀이 높은 위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봐. 존.”
“예.”
“나는 이 구단이 얼마나 순위를 유지하는지 관심없어. 내가 관심이 있는 건 단기간에 구단의 구조를 개선하는 거야. 현재 메츠 구단이 어째서 팔리지 않는 건지 알고 있나?”
“그건...”
“바로 수익구조가 너무 엉망이기 때문이지. 도대체 알론소한테 왜 삼천만달러를 주고 있는 거지?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알론소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로서...”
“그래서 그 알론소가 있으면 우승을 하나? 아니, 했던가?”
할 말이 없었다.
이 남자에게 베이스볼에 대한 원리를 이해시키는 건 무리다.
이미 몇 차례 시도했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왜냐하면 베이스볼에 관심이 있는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계사 출신인 그는 회사를 팔기 전, 재무구조를 개선해 회사를 비싸게 팔 수 있게 만들었다.
덕분에 윌폰에게 채택되어 현재 메츠의 재무구조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었다.
“못하겠다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자네를 대신할 GM은 어디든지 있으니까 말이야.”
“아...아닙니다. 하지만 회장님.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다면 팀의 재무구조는 튼실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매각에도 도움이...”
“작년에도 그 소리를 했었지.”
잭 짐머의 차가운 눈빛이 베켓을 응시했다.
결국 베켓은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올해까지야.”
“...예.”
GM은 구단을 운영한다.
하지만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건 구단주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베켓은 사무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뉴욕 메츠가 결국 1위 자리를 뺏겼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최근 주전선수들의 부상, 그리고 투수들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전반기의 강력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토마스의 부상이 가장 컸죠?]
[그의 시즌 아웃은 메츠의 전력을 한층 약하게 만들었어요. 포수라는 포지션은 투타를 모두 약하게 만들거든요. 마누엘이 마스크를 쓴 뒤로 메츠의 선발투수들의 승패가 1승 5패 4노디시전...]
신우는 영상을 껐다.
이런 걸 보면 괜히 마음만 뒤숭숭해진다.
“아들, 내일 선발인데 슬슬 자야 되는 거 아니야?”
“네. 엄마는요?”
“이거까지만 해보고 자려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응~”
주방에서 베이킹을 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신우는 방에 들어갔다.
침대에 바로 눕지 않고 신우는 창가로 걸어갔다.
[왜? 심란함?]
[우리 시누, 오늘따라 분위기 묘하누.]
‘내일 꼭 이기고 싶네요.’
[후반기 들어서 아직 승패가 없었지?]
신우는 후반기에 두 번 등판했다.
하지만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사실 승패보다도 팬들이 실망하는 걸 보는 게 이제는 싫습니다.’
후반기 10경기.
그중에 홈경기가 5차례였다.
메츠의 팬들은 매 경기 구장을 찾아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홈에서 매번 패배했다.
구장을 떠나는 팬들의 얼굴에선 미소보다는 실망감이 가득했었다.
그 모습을 또 보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자라.]
매튜슨이 말했다.
[잠을 잘 자야 컨디션도 좋아지니까.]
[ㅇㅈ]
[내일 이기려면 일단 잠부터 자야 됨.]
고개를 끄덕인 신우는 방송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 * *
다음 날.
신우는 루틴을 지키며 등판을 준비했다.
준비운동을 끝낸, 신우는 샤워를 끝내고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하이-! 시누.”
“오늘은 꼭 이기라고!”
“노력할게요.”
구단직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사무실의 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원래라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안에 있는 사람을 보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마누엘 아님?]
‘그런 거 같네요. 에이든의 사무실에서 뭘 하는 걸까요?’
[글쎄.]
[궁금쓰-!]
[가보자!]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에 신우가 걸음을 옮겼다.
조금 다가가자 내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타자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 됩니다. 그리고 최근 10경기에서의 데이터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돼요.”
“그래서 네가 준 자료를 모두 읽었어. 그런데, 벨린저는 원래 몸쪽 하이 패스트볼에 약했잖아? 낙차가 큰 브레이킹볼에는 강했고. 그런데 왜 시누를 리드할 때는 체인지업을 자주 활용하라는 거야?”
“신우니까 그런 겁니다. 다른 투수였다면 벨린저는 브레이킹볼을 노릴 겁니다. 하지만 신우를 상대로는 그럴 수 없어요. 패스트볼을 가장 많이 던지기 때문이죠.”
“즉, 타자를 신경쓰기 보다는 투수가 던지는 공에 맞춰서 바꿔야 된다는 거군.”
“예. 토마스는 원래 그런 식으로 했...아, 죄송합니다.”
“응? 아니야. 토마스는 빅리그의 위대한 포수야. 그가 했던 방식을 알려주면 나한테 큰 도움이 될 거야. 토마스는 어떻게 했었는데?”
“그렇다면 계속 말씀드리죠.”
거기까지 들은 신우가 몸을 돌렸다.
[에이든한테까지 물어보누.]
[꽤 노력하네.]
에이든은 전력분석팀장이다.
분석력은 메이저리그에서 이제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에이든에게 조언을 구하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에이든은 야구를 직접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장을 모르기 때문에 선수들은 그에게 조언을 구할 게 없었다.
[하지만 포수는 틀리지.]
[포수는 상대를 분석하고 우리 팀의 투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해.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에이든만한 조력자도 없지.]
[좋은 선택이야.]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그만큼 마누엘이 스스로 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다.
신우는 미소를 지으며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친구가 노력하는 만큼 자신도 최고의 상태로 경기를 준비해야 될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