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40화 >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것을 읽은 구심이 끼어들었다.
“별일도 아닌 거 가지고 일 크게 만들지마.”
구심이 이야기했다고 선수들이 그냥 물러설 일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한참동안 노려봤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양팀 더그아웃은 언제든지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두 사람의 일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 방 터지나?]
[라이트부터 날리고 시작해야지! 무슨 눈싸움이야?]
[어린놈들이 재미없게 하네.]
레전드플레이어들은 싸움이 나지 않아 오히려 불만인 듯 했다.
신우는 최대한 일이 커지지 않기를 바랐다.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온 것이지 싸움을 하러 온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넌 동료가 맞으면 가만히 지켜볼 거임?]
[설마 그럴 생각은 아니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질문에 신우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데뷔 이후 벤치클리어링은 딱 한 번 경험했다.
클로저였기에 자신이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선발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동료가 빈볼을 맞았다면 복수를 해주어야 된다.
그것이 메이저리그의 불문율이다.
[불문율 때문에 한다고?]
‘그건...아니죠.’
신우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동료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화가 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거다.
“오케이!”
그때 로버트가 먼저 양손을 들고 물러섰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은 마무리됐다.
[의외로 그냥 물러서네.]
[뭔가 이상한데?]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신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일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선수들 역시 느낀 듯 했다.
‘더그아웃의 분위기가 무겁네요.’
[더그아웃만이 아니다.]
[경기장 전체가 무거워졌어.]
[그리고 이럴 때 꼭 무언가 사건이 일어나지.]
‘사건이요?’
그때였다.
딱-!!
“와아아아아-!!”
무거워졌던 분위기를 뒤집는 타격이 나왔다.
[브라이스 하퍼 장타를 때렸습니다! 타자주자 1루를 돌아 2루로! 1루 주자는 이미 2루를 돌고 있는 상황! 우익수는 파울라인 밖으로 흘러나간 타구를 이제야 잡았습니다!!]
타구는 원바운드가 되면서 파울라인 밖으로 흘러나갔기에 속도가 줄어 있었다.
덕분에 베이크가 공을 잡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자 3루를 돌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로버트는 3루 베이스를 그냥 지나쳤다.
그 순간, 공을 집은 베이크가 몸을 돌리며 홈을 향해 공을 던졌다.
[송구된 공이 레이저처럼 홈으로 쏘아집니다!!]
신우가 더그아웃의 펜스에 올라타 홈을 확인했다.
공을 포구하기 위해 토마스가 자세를 잡고 있었다.
절반쯤 달려온 로버트는 더욱 속도를 높이기 있었다.
[잡냐?]
[못 잡을 거 같은데?]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엇갈린 의견.
하지만 신우는 확신했다.
‘잡는다.’
확신보다는 희망에 가까웠다.
그 순간.
퍽!
공이 먼저 미트에 꽂혔다.
뒤이어 토마스가 상체를 돌렸다.
촤아아앗-!!
그때 로버트가 몸을 날렸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순간.
빠각!!
“어?!”
“뭐야?!”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거구의 토마스가 공중에 떠올랐다.
발이 뜬 토마스의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머리부터 추락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토마스가 떨어졌다.
“으아아악!!”
그라운드 위에 쓰러진 토마스가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들은 신우는 직감했다.
‘부상...’
그것도 심각하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런 망할!!”
“개자식이!!”
뒤이어 욕설과 함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졌다.
벤치클리어링이었다.
* * *
[뉴욕 메츠의 토마스 에드윈 선수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화면 보시죠.]
토마스의 부상은 스포츠뉴스를 통해 방송되었다.
[문제의 장면은 5회초에 발생했습니다. 브라이스 하퍼가 때려낸 2루타에 1루 주자였던 로버트 버레이가 3루를 돌아 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홈으로 파고들던 순간. 슬라이딩하는 로버트 선수와 토마스 선수가 뒤엉켰는데, 이 과정에서 토마스 선수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어깨가 지면에 먼저 떨어지며 부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올 시즌 2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팀내 2위, 내셔널리그 전체 7위에 올라있던 토마스 선수이기에 아쉬움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한편, 홈 충돌 직후 벌어진 벤치클리어링으로 양팀 합쳐 3명의 선수가 퇴장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전포수의 부상.
그리고 이어진 벤치클리어링과 퇴장으로 인해 경기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로버트의 득점은 결국 인정되었다.
홈 충돌 방지법이 아닌 홈 태그가 빨랐다는 판정이었다.
이 점수는 결국 결승득점이 되었다.
메츠 입장에선 주전포수도 잃고 경기도 진 격이 되었다.
띡-!
TV를 끈 신우가 채팅창을 바라보며 물었다.
‘선배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 일?]
‘예. 우연일까요? 아니면 고의적으로 한 걸까요?’
[상황이 좀 묘하긴 했지.]
[신경전이 벌어지고 직후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까.]
[고의적이다에 한 표!]
[이유는?]
[그냥 그 쉑 눈빛이 마음에 안듬.]
[우연임.]
[동감. 만약 고의적으로 했으면 이후 벤치클리어링 때 더 날뛰었겠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의견도 갈렸다.
그들조차 의견이 갈릴 정도로 이번 일은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그때 매튜슨이 물었다.
[이런 일은 결국 본인밖에 모르는 거다. 그걸 가서 물어본다고 한들,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대답이 중요할까?]
신우가 채팅창을 주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너의 의견이다.]
매튜슨의 채팅에 신우가 주먹을 쥐었다.
[우리가 아닌 너 자신에게 물어라. 그리고 답을 찾아라.]
* * *
다음 날.
신우는 구장으로 가기 전, 병원으로 향했다.
아파서가 아니다.
입원한 친구를 보기 위해서다.
“여, 왔냐?”
“늦었네?”
병실에 들어서자 동료들이 그를 맞이했다.
리올과 파비오였다.
그들의 앞에는 토마스가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여-!”
토마스가 왼손을 들어 신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몸은 좀 어때?”
“아파 죽겠다.”
“엄살은.”
농담을 하는 걸 보니 괜찮아보였다.
[저게 괜찮아 보이냐?]
[꽤 심각한데?]
[최소 반 년은 쉬어야겠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에 신우의 얼굴이 굳었다.
그의 표정변화에 토마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벌써 눈치챈 거냐?”
오해를 한 거긴 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심한 거냐?”
“재활에 1년 정도 걸릴 거라고 하더라. 더 빨라질 수도 있지만, 일단 그 정도로 생각하라 하더라고.”
“일...년?”
“너무 심각하게 생각 하지마. 그래도 치료만 잘 받으면 복귀하는데 문제 없으니까.”
토마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신우는 알고 있었다.
자신도 부상을 입었으니까.
다시 공을 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
자신이 해온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
주위의 모든 게 무너진 듯한 외로움까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어깨를 짓누른다.
제일 두려운 것은 홀로 제 자리에 정체되어 있다는 소외감이었다.
[그게 가장 두렵지.]
그렇기에 화가 났다.
경기의 일부가 아닌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다는 점이 말이다.
그때 토마스가 말했다.
“사고였다.”
“어?”
“어제 일은 사고였어. 녀석도 당황해서 쓰러진 내게 가장 먼저 한 말이 미안하다였거든.”
“하지만 그건 그냥 한 말일 수도 있잖아.”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파비오가 말했다.
그 역시 로버트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목소리에는 적의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고개를 저었다.
“고의였다면 손부터 들어오지 않았을 거야.”
“그렇겠지.”
경험이 많은 리올이 토마스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고보니 그렇네.]
[하긴, 녀석도 어깨가 아작날 뻔 했었지.]
[그걸 깜박했네.]
레전드플레이어들 역시 동의했다.
만약 로버트가 일부러 그럴 생각이었다면 다리부터 들어오는 벤트 레그 슬라이딩을 했을 거다.
“그러니 너무 신경쓰지마. 너는 오늘 등판도 있는데, 그런 곳에 정신을 팔고 있냐?”
[대단한 놈이군.]
레전드플레이어의 말에 동의했다.
토마스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과연 자신이 저럴 수 있었을까 싶었다.
[아직 초기라 가능한 거겠지만...그래도 대단하네.]
[리스펙이다.]
[저런 멘탈은 배워야 된다.]
레전드플레이어들조차 토마스의 정신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 * *
경기가 시작되기 전.
클럽하우스의 리더인 리올 에르난데스가 팀원들을 모았다.
선수단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비장함마저 흐르누.]
[경기가 아니라 결투를 하러 나가는 거 같네.]
[동료가 당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대로였다.
선수단들은 싸우러 나갈 생각이었다.
이미 몇몇 선수들은 복수할 계획도 짜두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것이 메이저리그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은 리올이나 토마스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토마스의 전언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이번 일을 어떻게 막아야 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어제 일은 사고였다. 그러니 보복은 없게 해달라고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게 말이 됩니까?!”
레이먼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료가 당했는데, 보복이 없다고?”
“맞아! 말도 안 돼!”
“시누! 그 녀석의 머리를 날려버려!”
누가 보더라도 고의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복은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이 메이저리그였다.
그때 리올이 목소리를 높였다.
“1년!!”
팀원들의 시선이 리올에게 집중됐다.
“토마스가 재활을 끝내고 복귀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무려 1년이야! 그런 부상을 당한 녀석이 보복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부탁을 거절할 생각인가?!”
리올의 말에 누구도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토마스의 부상 정도를 처음 들은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경기에서 복수는 없다. 그게 우리 동료 토마스의 부탁이었다.”
클럽하우스에서의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 * *
M스포츠의 중계석도 분위기가 무거웠다.
“어제 경기는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
“그러게 말이야. 홈 충돌 방지법이 생긴 뒤로 홈에서 그런 사고가 나는 건 오랜만이야.”
“오늘 정신우 선수의 경기에 영향이 없어야 될 텐데요.”
“흠...KBO라면 딱히 보복이 안 나올 수도 있긴 한데...”
선후배 관계와 좁은 시장이라는 특성에 의해 KBO는 벤치클리어링도 예의를 지키는 편이었다.
KBO 최악의 벤치클리어링 대다수가 외국인 선수가 장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반면 메이저리그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선수들이 동업자 정신은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 위에 있는 것이 동료애였다.
선후배라는 개념도 희미했다.
학연으로 묶여 있지도 않다 보니 거친 벤치클리어링이 매년 나오는 편이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복구를 던지는 걸 좀 꺼려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정신우 선수가 영향받지 말아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에혀...그러게 말이야.”
걱정하는 사이, 마운드에 오른 신우가 연습구를 던지며 몸을 풀었다.
“광고 끝납니다.”
그리고 PD의 신호와 함께 중계가 시작됐다.
* * *
연습투구를 끝낸 신우는 로진을 손에 묻혔다.
[파트너가 바뀌었는데, 영향은?]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캐처에게 집중하기보단 네 공을 던지는데 집중해라.]
[괜히 잡념 가지면 너만 힘들어짐.]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로진을 손에 묻혔다.
그리고 피처플레이트를 밟고 마운드에 섰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오늘 마스크를 쓴 마누엘 가르시아가 사인을 냈다.
‘바깥쪽, 포심.’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체를 세우고 양손을 가슴 앞에 모은 신우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토마스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사고였어.】
【피칭에만 신경 써라.】
부상을 입어도 자신을 걱정했던 파트너.
그는 병실을 나서는 순간까지, 자신을 격려했다.
【깔끔하게 이기고 올스타전 가자.】
신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시야에 닿는 모든 것들이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이쉑 또 초반부터 집중력 발휘하네.]
[체력 빨리 떨어지는 거 아님?]
[걱정되는데.]
레전드플레이어들이 걱정할 때.
‘매튜슨 선배님이 그러셨죠.’
[응?]
‘제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우리 말 보임?]
‘사고라고 한 이상 보복구를 던질 생각은 없습니다.’
신우가 몸을 돌리며 킥킹을 했다.
촤앗-!!
왼발이 가슴팍까지 올라오고 오른발로 몸을 지탱했다.
뒤로 쏠리는 무게중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무릎을 굽히며 상체를 뒤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후웅!!
하체를 앞으로 옮기며 킥킹했던 다리를 뻗었다.
스트라이드와 함께 내디뎌진 왼발로 마운드를 밟으며 하체를 돌렸다.
뿌득-! 뿌드드득!!
하체의 근육이 울부짖으며 강렬한 힘이 하체를 타고 올라왔다.
‘그냥 넘어가는 것도...!’
휘릭!!
골반을 돌려 그 힘을 상체로 보냈다.
여전히 무게중심과 함께 뒤에 남아 있던 상체를 돌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제 성미에 맞지 않습니다!!’
앞으로 내밀어진 가슴을 멈추는 순간.
그 반동으로 뒤에 남아있던 팔이 앞으로 끌려나왔다.
골반을 타고 올라온 힘이 가슴을 지나 어깨, 팔뚝 그리고 손목을 거쳐 반원을 그리며 앞으로 오는 손끝을 향해 내달렸다.
그 모든 힘을 손가락에 집중시켜 폭발시켰다.
파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의 뒤를 이어.
쐐애애애액!!
손을 떠난 공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그리고.
뻐어어어억!!
미트에 꽂혔다.
“스...스트라이크!!!”
[초구 던졌습니다! 바깥쪽에 꽂히는 포심 패스트볼! 구속은...101마일이 찍혔습니다!!]
화면에 신우의 모습이 잡혔다.
무표정한 얼굴로 굳건히 서서 타자를 노려보고 있는 그는 평소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어쩌려고?]
‘조져야죠.’
퍽!
날아온 공을 받은 신우가 몸을 돌렸다.
‘야구로.’
전반기.
신우의 마지막 경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