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122화 (122/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22화 >

* * *

다음 날.

신우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쿠어스 필드를 방문했다.

팀의 2연패는 꽤 충격적인 시나리오였다.

‘아무리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이지만 1, 2선발이 동시에 무너진 건 데미지가 있을 수밖에 없지.’

현재 투수들 중 가장 높은 WAR를 기록중인 선수는 신우였다.

WHIP는 물론 탈삼진, 다승까지.

모든 지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즉,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가 신우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팀의 1, 2선발들이 무너짐으로 생기는 정신적 데미지는 분명 존재했다.

[그걸 회복시켜야 되는 게 너다.]

부담이 팍팍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신우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부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거 아님?]

[쿠어스필드의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이틀동안 애들 던지는 거 보니까, 장난없던데?]

[그래도 리올이란 애는 나름 제구가 잡힌 녀석이었고 경험도 있는데. 완전히 무너지는 거 보면 답이 없어 보이더라.]

[어? 님 쫄?]

[내가 현역이었으면 쿠어스필드에서 날아다녔을 듯.]

[나도 마찬가지임.]

아...또 싸움 날 삘이다.

[아놔! 누가 자신없대?]

[엌ㅋㅋ 방금까지 자신없다고 한 분이 역정냄?]

[야! 당장 나와! 한판 떠!]

또 이 루트인가...

이제는 지겨울 정도다.

신우는 고개를 저으며 투기장이 된 채팅을 무시한 채, 훈련에 열중했다.

‘머리는 복잡해도 루틴은 지켜야 된다.’

매튜슨의 조언을 떠올리며 단계를 밟아갔다.

체력훈련을 끝낸 신우는 캐치볼을 위해 파트너를 찾으려고 했다.

그런 신우에게 리올이 다가왔다.

“시누, 같이 할까?”

“루틴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신우는 더 묻지 않았다.

곧 두 사람은 글러브를 착용한 채, 쿠어스필드로 나갔다.

몇몇 팬들이 관중석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시누-!!”

“사인 플리즈!!”

“시누!!”

팬들이 신우의 이름을 연호했다.

신우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연습에 들어갔다.

팡-!

팡-!

말없이 캐치볼을 하며 어깨를 풀었다.

[이게 그건가? 불편한 적막. 뭐 그런거.]

[숨이 턱턱 막힌다.]

[어색경보 발령! 어색경보 발령!]

투기장을 끝낸 레전드플레이어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신우도 동감하는 내용이었다.

‘어색함에 질식하겠네. 이러다가는 풀릴 몸도 다시 굳어버리겠어.’

[몸풀기훈련인데, 몸이 굳어버리는 선수가 있다? 뿌슝빠슝?]

“시누.”

그때였다.

어색함을 깨고 리올이 입을 열었다.

“어제 경기가 끝나고 파비오가 그러더군. 자신의 생각대로 공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이야.”

투수들의 무덤은 파비오마저 잡아먹었다.

그 결과 올 시즌 최다실점을 기록하며 파비오는 마운드를 내려갔다.

“패배보다 더 최악은 불펜에 무리가 간 거다.”

1, 2차전.

두 경기를 합쳐 투입된 불펜투수만 8명에 달했다.

1차전에서도 아꼈던 레이먼드지만, 2차전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투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의 투수가 등판했고 불펜에는 빈 자리가 많아졌다.

그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의문을 가질 무렵.

리올이 말했다.

“다른 투수들과 이야기를 한 결과, 답은 비슷했다. 쿠어스필드에서 던지는 건 영점을 더 낮춰야 된다는 걸 말이야.”

휙-!

리올이 공을 던졌다.

그런데 평소보다 다소 높은 위치에서 공을 때렸다.

타점이 높은 걸 확인한 신우가 글러브를 조금 더 들었다.

그 순간.

공의 궤적에 변화가 일어나더니 뚝 떨어졌다.

신우는 급히 글러브를 옮겨 공을 캐치했다.

퍽-!

“갑자기 변화구를...”

[변화구가 아니다.]

매튜슨의 채팅이 올라왔다.

[녀석은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어. 단지 회전수를 줄였을 뿐이지.]

‘회전수를 줄여요?’

[그래. 회전축을 조금 바꾼 거다. 어렵지는 않아. 채는 순간에 손목을 살짝 눕히면 되는 거니까. 한 2-300회전 정도 줄었을 거다.]

본래 투수는 공을 던질 때 손목과 팔꿈치 그리고 팔이 수평을 이룬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이 구간에서 손목이 뒤로 젖혀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경우 공을 채기 위해 팔을 앞으로 끌고오는데 시간이 소모되고 불필요한 에너지의 발산이 이루어진다.

또한 제대로 된 포인트에서 공을 때리지 못함으로 인해 회전축이 어긋나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공의 회전수가 떨어지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흔히들 회전수 = 구속이라 생각하지만 이건 틀렸다. 회전수는 구속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단지 얼마나 정확하게 회전을 시켰는지에 따라 회전수가 결정된다.]

‘그런데 왜 일부러 회전축을 틀어낸 거죠?’

[쿠어스필드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기 위해서지.]

퍽!

이번에도 공이 생각보다 떨어졌다.

평소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머리 높이로 들어와야 될 공이 가슴 높이까지 떨어진 것이다.

만약 이게 실전이었고 스트라이크존이 적용되었다면.

‘하이패스트볼을 던졌을 때 가운데로 몰렸을 거다.’

[회전수가 높아진다면 오히려 공이 떨어지지 않고 존의 위에 꽂혔을 거다.]

[그럼 볼 아니면 홈런 둘 중에 하나라는 소리네?]

[와...여기 엄청 까다롭네.]

레전드플레이어들마저 탄성을 자아내는 구장.

그곳이 바로 쿠어스필드였다.

[그런데 이런 걸 어떻게 암?]

월터 존슨의 질문에 신우도 동의했다.

분명 매튜슨도 쿠어스필드를 경험해보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그가 해준 조언들은 마치 실제로 뛰어본 다음에 해준 조언과 비슷했다.

[도서관에 갈 일이 있어서 조금 찾아본 거다.]

서투른 변명이었다.

도서관에 가더라도 굳이 쿠어스필드를 찾아볼 이유는 없었다.

[제자가 걱정됐나 보네.]

[크흐흠!!]

[이거 완전 츤데레였자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신우 너도 공을 던질 때 쿠어스필드의 특징을 생각하면서 던져라. 저 녀석이 원하는 것도 그런 걸 테니까.]

채팅이었지만 분명히 보였다.

매튜슨이 욱하는 모습이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했다가는 혼날 것임을 알기에 신우는 말없이 공을 던졌다.

이번에는 조금 낮은 타점에서 말이다.

조금 더 힘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은 정확한 높이로 들어갔다.

‘타점을 바꾸니 확실히 공이 들어가는 높이가 달라졌어.’

두 사람의 조언 덕분에 신우는 쿠어스필드에 대한 감을 잡아갈 수 있었다.

* * *

장태호는 미디어실에 자리를 잡았다.

‘투수들의 무덤이라...’

수많은 투수들이 눈물을 흘렸던 구장.

쿠어스필드.

한국인 선수들 역시 이곳에서 성적은 크게 좋지 않았다.

특히 2019년 류진현은 쿠어스필드에서 무척이나 고전을 했었다.

‘과연 정신우는 다를까?’

팀이 2패를 떠안고 불펜마저 지친 상황.

‘올 시즌 메츠에게 찾아온 첫 번째 위기라고 할 수 있어.’

이번 3차전에 따라서 5월의 성적이 결정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여파가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메츠 입장에선 반드시 잡아야 했다.

선발투수가 버텨주면서 말이다.

“오! 미스터 장!”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동양인 기자가 반가운 미소와 함께 다가왔다.

“기무라상.”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저는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일본에서 기사를 쓰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기무라 료스케.

아사히 스포츠의 메이저리그 LA다저스를 담당하던 기자였다.

LA다저스의 마지막 일본인 투수였던 마에다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그 역시 귀국을 했었다.

당시 장태호 역시 LA다저스를 전문으로 취재했기에 안면이 있었다.

“곤조 선배가 최근에 본사로 발령이 나서 그 대타로 제가 급히 오게 됐습니다.”

“아...”

대충 이해가 됐다.

곤조는 최근 기사에서 매번 신우를 비난에 가까운 기사를 썼다.

문제는 기사에 나온 예측이 모두 빗나갔다는 점이다.

기사는 점쟁이가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 예상을 하면 거기에 책임을 지게 되어 있었다.

특히 메이저리그 같은 데이터가 확실한 기사는 더더욱 말이다.

‘질책성 인사이동이군.’

리그가 한창인 지금 시점에 인사이동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내부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기무라 기자의 얼굴을 보니 생각하는 게 맞는 듯 했다.

“그나저나 정신우 선수의 활약이 정말 대단하네요. 일본에서도 인기가 대단합니다. 프로선수들을 만나도 정신우 선수를 이야기합니다.”

“그 정도입니까?”

“예. 거기다 고교선수들 중에는 정신우 선수가 롤모델이라도 말하는 선수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고교선수들의 경우 대부분 자국내 스타플레이어나 메이저리그의 스타를 롤모델로 삼는다.

아무리 메이저리거라 하더라도 한국선수를 롤모델로 꼽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거기다 신우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지 이제 고작 2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본에서의 인지도가 이 정도라니.

이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오늘 경기가 궁금하네요.”

기무라의 시선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투수의 무덤에서 어떤 공을 던질지 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태호 역시 경기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경기가 시작됐다.

어웨이인 메츠는 1회초 공격을 진행했다.

[뉴욕 메츠와 콜로라도 로키스의 시즌 첫 번째 시리즈의 마지막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현재까지 로키스가 2승 0패로 전적에서 앞서 있는 상황인데요.

이번 시리즈 전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일단 로키스의 타선이 제대로 불을 뿜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에서 중계하는 해설위원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로키스의 타선은 매서웠다.

이건 메츠와의 경기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2010년대 최약팀으로 불렸던 로키스입니다만, 2022년을 기점으로 유망주들의 포텐셜이 폭발하면서 타선이 무척이나 강해졌습니다.]

[오늘 정신우 선수도 조심을 해야겠군요.]

[그렇습니다. 특히 쿠어스필드에서의 첫 등판이니만큼 신중을 기해 공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쿠어스필드의 악명은 한국에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

2019년 사이영 레이스의 선두에 서서 달리던 류진현이 쿠어스필드라는 산을 넘지 못하고 선두에서 낙마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많은 야구팬들은 오늘 경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투수들의 무덤이고 나발이고! 동양인 최초 사이영상 받은 정신우가 넘지 못할 산은 없다!!

ㄴ 이거 ㅇㅈ.

ㄴㄴ 여기에서 신우가 무너지면 갓직히 여기에서 제대로 던질 수 있는 투수 없다. ㅇㅈ?

ㄴㄴㄴ ㅇㅇ ㅇㅈ!!

-5월에도 이달의 투수 가즈아-!

ㄴ 두 달 연속 이달의 투수 가즈아!!!

ㄴㄴ 2년 연속 사이영도 가즈아-!!!

중계방의 실시간채팅에서는 신우에 대한 응원이 쏟아졌다.

딱-!!

[4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유격수 정면으로 가는 타구! 알론소 아쉽게도 평범한 그라운드볼을 만들며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이번 로키스와의 대결에서 알론소가 이렇다할 활약을 하지 못하네요.]

[삼자범퇴로 메츠의 1회초 공격이 마무리됩니다.]

1회초 중계가 끝나고 광고가 나가는 타임.

마이크가 꺼진 것을 확인한 캐스터 이종철이 말했다.

“정신우 선수가 잘 던질까요?”

“아무도 모르지. 다른 곳도 아닌 쿠어스필드니까.”

“하...제발 여기에서 완벽하게 던져줬으면 좋겠네요.”

지금 경기를 시청하는 대다수 팬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만큼 신우의 호투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신우가 호투를 해도 문제는 또 있어.”

“문제요?”

“메츠의 타선.”

“아...”

“1차전과 2차전 합쳐서 타율이 1할대에 불과해. 특히 알론소와 토마스의 부진이 뼈아픈 상태지.”

두 사람은 메츠의 중심타선들이다.

그들이 침묵한다는 건 팀에게 독이나 다름없었다.

“어찌됐건 신우가 호투를 해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이지만 말이지.”

“마지막 광고입니다.”

PD의 말에 두 사람이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어느덧 마운드에 올라온 신우가 연습투구를 하고 있었다.

평소와 크게 다를 거 없는 모습.

하지만 오늘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보는 이들을 잠식하고 있었다.

* * *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후웅-!!

퍽!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쿠어스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과학적인 이유로 설명하고 비과학적인 이유로도 이야기를 했다.

딱-!!

[높이 떠오른 타구! 2루수 거의 제 자리에서 콜을 외치고...잡습니다!! 투아웃!!]

어떤 이유를 말하건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투수는 쿠어스필드에 잡아먹힐 것이라고 이야기들을 했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하지만.

그러한 관념이 깨지고 있었다.

[삼구삼진!! 로키스의 라이징스타!! 제 2의 놀란 아레나도라 불리는 로키스의 거포, 브라이언 덤프를 스탠딩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정신우 선수!!]

만 25세의 투수.

한국나이로 27세이자 메이저리그 데뷔 2년차가 된 정신우에 의해서 말이다.

[당당하게 마운드를 내려오는 정신우 선수!! 그의 모습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1회에만 두 개의 탈삼진, 그리고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낸 정신우 선수!! 오늘도 기대를 걸게 만드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세계로 생중계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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