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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121화 (121/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21화 >

* * *

투수들의 무덤이란 별명.

그것이 괜히 생긴 게 아니란 걸 신우는 첫 경기에서 알 수 있었다.

딱-!!

“와아아아아!!”

경쾌한 소리와 함께 로키스 팬들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그리고 신우는 담장밖으로 사라지는 타구를 볼 수 있었다.

[휘유-! 비거리 쩌네.]

[오늘 너네 1선발 배팅볼 잘 던져주네.]

[로키스 애들 돈 넣고 쳐야 되는 거 아니냐? 개꿀잼 각인데.]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들의 말에 틀린 건 없었다.

‘4회에 벌써 5실점.’

[ㄴㄴ 6실점임.]

[방금 홈런 맞았잖아.]

정정한다.

4회 6실점.

삼진은 전무했고 삼자범퇴이닝도 없었다.

매 이닝마다 점수를 내주며 난타를 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커브와 싱커가 전혀 통하지 않네요.’

[이게 쿠어스필드의 무서운 점임.]

[공의 회전수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 제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그 이유가 뭘까요?’

[논문에 의하면 공기의 밀도가 줄어들면서 마그누스 효과에 영향이 간다는군. 즉, 변화를 일으켜야 되는 공들의 효과가 줄어든다는 소리야.]

‘그럼 제구가 흔들리는 이유는요?’

[쿠어스 필드가 있는 이곳은 해발 1610미터에 위치해 있다. 이런 곳에서는 사람이 가진 심폐지구력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몸상태도 정상이 아니게 되지.]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생 시절 설악산으로 전지훈련을 갔었다.

그중에서도 대청봉은 해발 1700m에 위치해 있었다.

근처에서 훈련을 할 때, 정말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숨은 금방 차오르고 근육들은 비명을 질렀지. 거기다 균형감각이나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어.’

[그것과 비슷한 이유다.]

[투수가 투구를 하는 건 정밀기계가 움직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정밀성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기계는 정확히 움직이지 않게 되지.]

투구를 하다보니 알게 됐다.

투구동작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동작 하나하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구속이나 구위 무브먼트, 마지막으로 제구력에도 문제가 생긴다.

즉, 정밀기계에 부품이 빠져 고장나는 것과 같은 문제였다.

‘환경이 변한다는 게 무섭네요.’

[그런 셈이지.]

[게다가 여기는 해발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니 아래 있을 때보다 확실히 환경의 변화가 커. 그러다보니 이곳에서 던지는 투수들도 꽤 골치아픈 거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을 들으니 이곳에서 던지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이 됐다.

[우리 시누 벌써 쫄았누.]

[표정 개심각하네 ㅋㅋ]

레전드플레이어들은 그런 신우를 보며 즐거워했다.

저들 입장에서는 야구의 여러 면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제가 당하는 것보단 이왕이면 쩌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놉!]

[네가 발리는 것도 개꿀잼임.]

[우리한테 약 팔려고 한다?]

역시 통하지 않았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은 하나 같이 여우나 다를바 없었다.

산전수전은 물론이거니와 공중전도 경험한 이들이다.

[물론이지! 내가 1차 대전에 나갔을 때 말이야.]

[에헤이-! 2차 대전이 더 쩔었다니까요?]

...레알로 나갔었다.

* * *

1차전은 완패였다.

메츠의 타선도 힘을 내긴 했지만, 선발이 무너진 것을 메울 순 없었다.

「메츠는 1선발 리올 에르난데스가 크게 무너지면서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1차전에서 패배했습니다.

투수들의 무덤인 쿠어스 필드를 넘지 못한 리올 에르난데스는 1회부터 강판한 4회까지 매 이닝 실점을 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편, 내일은 메츠의 2선발인 파비오 카벨, 그리고 이틀 뒤에는 정신우 선수가 쿠어스 필드에 등판할 예정입니다.」

신우는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확인했다.

[그걸 뭐하러 보냐?]

[맨탈 안갈림?]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하여간 이상한데서 맨탈 강하다니까.]

[ㅇㅇ 나도 가끔 내가 올라온 글 보면 그냥 갈리던데.]

레전드플레이어들의 감탄을 들으며 신우는 댓글을 확인했다.

사실 최근에는 악플이랄 게 없었다.

최소한 베스트댓글에는 말이다.

덕분에 별 다른 스트레스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리올 얘가 어떻게 1선발이냐?

ㄴ 나이로 먹은 듯.

ㄴㄴ 작년에에 제대로 된 에이스가 없었지만 올해는 다른데. 슬슬 내려와야지.

-리올 4월 성적 5전 2승 2패. 탈삼진 31개 볼넷 17개. ERA는 3점대.

ㄴ 신우랑 비교하면 너무하네.

ㄴㄴ 그냥 2선발로 내려보내지.

ㄴㄴㄴ 레알 이제 신우를 1선발로 보내자.

ㄴㄴㄴㄴ 국대에서도 신우 1선발 가야 됨.

대부분 댓글이 선발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최근 미국에서도 꾸준히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어째서 신우가 아닌 리올을 1선발로 기용하고 있느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언론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선발의 순서를 바꾸는 건 루틴을 바꾸는 것과 다름없는데도, 너무 쉽게들 이야기한다니까.]

[큰 문제 없으면 대충 올스타 전후로 바꾸겠지.]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앞으로 2달.

그 전에는 크게 바뀔 일이 없을 거다.

그것을 알기에 신우도 마음 편하게 자신이 할 일에 충실했다.

[야야! 다음 뉴스 뭐냐?]

스판의 말에 신우가 다음 뉴스를 확인했다.

「한국대표팀 1차 엔트리 발표. 메이저리거 정신우 선수도 포함.」

신우가 1차 엔트리에 들었다는 기사였다.

* * *

다음 날.

신우는 쿠어스필드 등판을 앞두고 불펜피칭에 나섰다.

파앙-!

파앙-!

연달아 공을 뿌리는 신우의 모습에 마이크 감독과 베이커 투수코치의 표정이 심각했다.

“후우...”

사실 가장 심각하면서 답답한 건 신우 본인이었다.

‘왜 이렇게 안 들어가?’

컨디션이 나쁜 게 아니었다.

아프지도 않았다.

릴리스 포인트와 투구루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파앙-!!

공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와-! 어떻게 30개를 던졌는데, 제구가 하나도 되지 않냐?]

[공의 구위도 너무 떨어졌다.]

[무브먼트가 거의 보이지 않네.]

[가운데로 몰리는 공도 너무 많고.]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혹평이 쏟아졌다.

‘으...매튜슨 선배님은 왜 안 보이시지.’

게다가 가장 믿는 매튜슨도 없었다.

그의 조언을 들으면 맨탈관리가 가능할 거 같았는데, 어찌된 이유인지 어제부터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저들의 채팅에 더욱 혼란이 커지는 신우였다.

[매튜슨도 포기한 듯.]

[ㅇㅇ. 걔도 보살은 아니니까.]

[포기각 날카롭게 섰다.]

이 양반들은 자신을 갈구기 위해 온 것이다.

지옥에서 온 사자다.

그런 생각에 신우는 한숨이 많아졌다.

“시누! 여기까지만 하자.”

그때 감독의 스탑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했던 30구를 모두 던졌으니 그만할 때가 됐다.

[그게 아니라 그냥 포기한 듯.]

[엌ㅋㅋ 팩폭날리누.]

저승튜브에는 강퇴시키는 기능이 없는 건가?

아쉬움을 삼키며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강퇴기능 있지.]

반가운 이가 채팅을 쳤다.

‘매튜슨 선배님!!’

[왜 이렇게 반가워하냐? 부담스럽게?]

‘정말 반갑습니다!! 어디 다녀오신 겁니까?’

[잠깐 도서관에. 그런데 너희들 얼마나 괴롭혔으면 애가 이 지경이 됨?]

[크허험! 괴롭히기는 무슨.]

[그냥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방송을 즐긴...]

[신우야. 강퇴시킬 수 있으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블랙 먹여버려.]

‘옙!’

[아니, 거참 너무하네.]

[우리가 뭘 어쨌다고 블랙임?]

[ㅈㅅ.]

신우를 갈구던 이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시누!!”

클럽하우스로 막 들어설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리올 에르난데스가 서있는 게 보였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최근 껄끄러운 관계가 된 리올이다.

그의 면담요청에 신우는 순간 흠칫했다.

그리고 그때를 놓치지 않는 레전드플레이어들이었다.

[엌ㅋㅋ 현피요청.]

[다이다이 까나요?]

[크-! 이걸 직관하네.]

[팝콘 팝니다! 옥수수도 팔아요!!]

신우는 채팅을 바라보다 매튜슨에게 물었다.

‘선배님 강퇴 어떻게 한다고요?’

[ㅈㅅㅈㅅ]

[아...]

[쏘리.]

그제야 조용해지는 채팅창을 뒤로하고 신우는 리올의 뒤를 따랐다.

* * *

리올이 도착한 곳은 원정팀이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거기에는 이미 손님이 있었다.

오늘 등판할 예정인 파비오와 에이든이었다.

“앉아라.”

리올이 자리를 권하자 신우가 빈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리올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너희들이 등판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서 어제 있었던 등판을 좀 설명해주려고 한다.”

“설명이라니?”

파비오가 되물었다.

“쿠어스필드는 다른 구장들과 전혀 달라.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리올의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됐다.

“나는 쿠어스필드에서 앞서 2번의 등판이 있었어. 그럼에도 오늘 다시 얻어맞고 말았지. 그 이유는 내가 제대로 컨트롤을 하지 못해서 그렇다.”

“컨트롤?”

“쿠어스필드에서는 파비오 네가 던지던 포인트보다 더 낮게 던져야 된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서부터는 제가 설명하죠.”

그때 에이든이 나섰다.

그가 엔터키를 누르자 곧 모니터가 켜졌다.

거기에는 야구공이 있었고 야구공 주위로 회전하는 방향이나 공의 움직임이 표시되었다.

“두 분 모두 마그누스 효과라는 걸 아실 겁니다.”

“공이 날아갈 때 받는 힘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있어야 공이 휘어서 들어가고 덜 떨어지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거요.”

파비오의 말에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비슷합니다. 사실 투수들은 이러한 효과를 모른 채, 공을 던지는 일도 많습니다만. 어쨌건 쿠어스필드에서 마그누스 효과는 평지보다 감소합니다. 그 이유는 해발이 높기 때문에 공기의 밀도가 줄어들기 때문이죠.”

여기까지는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에이든이 콜로라도로 오는 비행기에서 나눠준 자료에도 들어있던 내용이었다.

이걸 다시 확인시켜주기 위해 부른 건 아닌 듯 했다.

예상대로 리올이 말을 받아 이어갔다.

“내가 직접 던져본 결과, 나름대로 해법을 찾았다.”

“해법?”

“평소보다 더 낮게 던져야 돼. 미트가 여기에 있어서 영점을 여기로 잡았다면...”

리올이 손으로 자신의 가슴 위치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그걸 내려 배꼽 부근까지 내렸다.

“쿠어스필드에서는 여기에 영점을 맞춰야 된다. 마치 패대기를 치는 듯이 던져야 제대로 공을 던질 수 있다.”

“그렇게나 차이가 심한 거야?”

파비오가 놀라서 물었다.

고작 해발이 조금 높아졌는데 이 정도의 차이라니?

리올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와...저 정도면 아예 다른 투수가 되란 소린데?]

[어지간히 감각 있는 애들 아니면 답이 없겠네.]

[그럼 시누도 저 정도에 맞춰서 던지면 된다는 소린가?]

신우도 그 말에 동감했다.

앞이 캄캄했는데, 어느 정도 답이 보이자 안심이 됐다.

그때였다.

[틀렸다.]

[응?]

‘예?’

매튜슨이 느닷없이 틀렸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에이든의 시선이 신우에게 고정이 됐다.

“그리고 신우 정은 조금 다르게 던져야 됩니다.”

[확실히 이 녀석은 머리가 좋은 녀석이군.]

“그게 무슨 소리죠?”

신우는 매튜슨에게 물었다.

하지만 흐름상 에이든은 자신에게 묻는다고 생각하고 대답했다.

“투수에게 쿠어스필드가 어려운 이유는 공기와의 마찰이 줄어들어 공이 빨라진다는 것과 마그누스 효과의 감소로 인해 더 빨리 가라앉으려 한다는 것, 두 가지입니다.”

[정확하군.]

매튜슨이 에이든의 설명에 감탄했다.

그리고 다른 레전드플레이어들은.

[이게 뭔 개소리야?!]

신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쿠어스필드에서 공기의 마찰이 떨어지면서 구속은 빨라진다. 즉, 평소 날아가는 속도보다 더 빨리 목표점에 도착하게 된다는 소리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 변화가 줄어든다.]

[그럼 좋은 거 아님?]

언뜻 들으면 패스트볼이 주무기인 투수에게는 좋은 현상이었다.

[문제는 마그누스 효과가 덜 생긴다는 점이다. 이는 패스트볼의 회전력이 높으면 중력을 이겨내고 덜 떨어지는 현상이 생기는 것과 연관이 되어 있지.]

[오홍...]

[뭐가 오홍이야? 너 못 알아들었잖아!]

[대충은 알겠거든?]

레전드플레이어들끼리 싸움이 붙었다.

신우는 거기에서 신경을 끄고 매튜슨의 말에 집중했다.

[한 마디로 신우, 네가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의 수직무브먼트가 평소 11.1인치였다면 여기에서는 마그누스 효과의 저하로 인해 수직무브먼트의 수치가 떨어지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하이 패스트볼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네요?’

[정답이다.]

신우의 수직무브먼트는 선발기준 리그 전체 3위에 해당되는 수치였다.

회전수만 아니라 완벽한 회전축을 이용하면서 단숨에 리그를 압도하는 수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을 이용해 하이 패스트볼을 주로 던지면서 타자들을 압도해나갔다.

문제는 이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단 소리였다.

“신우 정이 다르게 던져야 되는 이유는...”

“하이 패스트볼이 제대로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알고 있었습니까?”

에이든이 놀라서 물었다.

그런 에이든을 보며 신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알려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채팅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 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신우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매튜슨 선배님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걸 안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다.]

‘예?’

매튜슨의 말이 무엇인지 신우는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 * *

딱!!

[아아! 이번에도 큽니다!! 타구는 담장밖으로 사라집니다! 파비오 투수! 연속홈런을 내주면서 마운드에 주저앉습니다!]

리올과 에이든의 조언이 있었지만, 파비오는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 결과 메츠는 2경기 연속 대량실점을 하며 일찌감치 승부를 내주고 말았다.

[아무리 주위에서 이야기해줘도 실전에서 느끼는 건 다른 법이지.]

모든 게 해결된 게 아니다.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신우였다.

[신우 좆됐누.]

이번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쿠어스필드를 바라보는 신우의 눈에 마운드는 정말 무덤처럼 보였다.

‘젠장...’

신우는 착잡한 심정으로 팀이 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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