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15화 >
* * *
딱-!!
8회초.
1사 무사의 상황에서 신우가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잘 맞은 타구!! 3루수 몸을 날렸지만 타구 지나칩니다! 하지만 뒤에서 유격수 몸을 날려 캐치!!]
다이빙캐치를 한 유격수가 스프링처럼 몸을 일으켜 1루를 향해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정확한 송구!! 정신우 선수도 전력으로 다리를 뻗습니다!!]
퍽!
팟!
공이 1루수의 미트에 꽂히는 순간.
신우의 발도 베이스를 밟았다.
[거의 동타이밍!! 과연 1루심의 판단은?!]
“아웃!!”
[1루심 아웃을 선언합니다!! 세이프로 보였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네요.]
[아마 정확히 본 듯 합니다. 그것보다 전력질주를 한 정신우 선수의 상태가 조금 우려됩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체력이 어느 정도 소진되어 있기에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드네요.]
타격은 의외로 체력소모가 심하다.
공에 집중하고 스윙을 하는 것에도 많은 체력이 소모된다.
거기에 베이스로 질주를 하는 것 역시 체력적인 소모가 분명히 있었다.
평소라면 상관없겠지만 퍼펙트게임이 진행중이라면 그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제 1981년 이후로 등장한 15번의 퍼펙트게임 중 10번이 아메리칸리그, 5번이 내셔널리그에서 나온 기록이었다.
투수가 투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좋은 투구를 할 수 있다는 반증이었다.
“헤이! 이건 아니지! 세이프 아니었어?!”
[아-! 갑자기 마이크 감독이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옵니다. 이건 좀 이상하군요. 비슷한 타이밍으로 보일 수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면 비디오판독을 요구했을 텐데요.]
캐스터가 의아하듯 말했다.
판정번복을 위해서는 비디오판독을 요구한다.
그것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마이크 감독은 비디오판독을 요구하지 않고 강하게 항의를 했다.
그는 1루쪽으로 걸어가다 마주오는 신우에게 조용히 말했다.
“내가 시간을 끌게. 충분히 쉬고 있어.”
그 말을 들은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크의 항의는 판정을 번복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주루플레이를 한 신우에게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었다.
보통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퇴장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었다.
퍼펙트게임이란 대기록이 진행중이었기에 마이크는 노련하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항의를 하던 마이크 감독, 결국 비디오판독까지 요구하는군요.]
현장이 아니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마이크의 노련함 덕분에 신우는 약간의 시간을 더 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신우는 마이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최대한 호흡을 안정시켰다.
* * *
8회초.
메츠는 점수를 내지 못하고 공격을 마무리했다.
[마이크 감독의 항의가 있었지만 큰 변수없이 이닝은 마무리됐습니다. 그리고 8회말! 대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정신우 선수가 다시 마운드에 오릅니다!!]
중계카메라에 담긴 신우는 로진을 손에 묻히고 있었다.
[데뷔 이래 첫 선발로 나선 정신우 선수는 7이닝동안 83개의 공을 던졌으며 총 21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냈습니다. 현재까지 13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으며 사사구는 제로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필리스 선수들 중 1루 베이스를 밟은 선수는 없습니다.
즉! 정신우 선수가 7이닝 퍼펙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경기 후반.
이제는 캐스터 역시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었다.
퍼펙트게임을 말이다.
그때 카메라에 잡혔던 신우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어? 정신우 선수 갑자기 타임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마운드에서 잠깐 내려오네요.]
[음, 아무래도 8회초에서 전력질주를 했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해설위원의 말은 정확했다.
영향은 분명 남아 있었다.
문제는 그 영향이 꽤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왜지...?’
신우는 당황했다.
‘하필이면 왜 지금...?’
[왜긴 왜야.]
그때 신우의 눈에 채팅이 보였다.
신우가 영역이라 부르는 고도의 집중상태에선 볼 수 없는 채팅.
그게 보인다는 건.
[체력이 바닥났다는 소리지.]
매튜슨의 말에 신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연한 결과다.]
[5회부터 마무리처럼 던졌으니 슬슬 깨질 때도 됐지.]
[원래라면 진즉 깨졌어야 됨.]
[ㅇㅇ.]
[장거리 뛰는 놈이 스프린터처럼 달렸으니 당연한 거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매튜슨이 채팅이 올라갔다.
[일단 지금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지에 생각을 해야지.]
[뭐, 당장 방법이 있나?]
[영역이 문제가 아니라 영역이 깨졌다는 건 그만큼 체력이 소모됐다는 건데. 이러면 구위와 구속 그리고 제구까지 문제가 생길 걸.]
최악의 상황이었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이 말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현재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걸 말이다.
[그래도 저 녀석이 눈치가 빨라서 다행이군.]
매튜슨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 신우의 눈에 토마스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시누, 괜찮아?”
“아...그게.”
토마스가 신우에게 바짝 다가왔다.
평소보다 더 다가온 그의 행동에 신우는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제가 생긴 거지?”
토마스의 말에 신우는 그를 바라봤다.
“전력질주를 한 게 문제가 된 거야?”
“아마 그런 거 같아. 손에 힘이 떨어졌어. 제구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
“구위는?”
“해봐야 알겠지만...아마...”
신우의 대답에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걱정하지마.”
“어?”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리드하는 곳으로만 공을 던지면 돼. 다른 건 신경쓰지마. 오직 내 미트만 보고 던지는 거야.”
토마스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그 힘은 신우에게 신뢰를 주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변화를 바로 눈치챈 그의 행동은 강한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헤이! 슬슬 끝내라고.”
“예, 알겠습니다.”
구심의 말에 토마스가 대답하며 미트로 신우의 등을 쳤다.
“우리를 믿어라.”
자신을 믿으라는 토마스.
문제는 신우 스스로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때 매튜슨이 말했다.
[언제부터 야구를 너 혼자 했었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9명이 되어야지만 경기를 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신우가 다시 마운드에 섰다.
* * *
[잠깐의 지체가 있었지만 정신우 선수가 다시 마운드에 섭니다. 토마스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가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조금 환기를 시켜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군요. 정신우 선수, 사인을 교환합니다.]
토마스가 가슴을 활짝 폈다.
포수가 가슴을 피는 이유는 투수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함이다.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는 18m가 넘는다.
상당히 먼 거리였다.
그렇기에 포수가 조금이라도 덩치를 크게 만들어준다면 투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었다.
토마스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쉑 포수로서 마인드가 됐다니까.]
[ㅇㅈ]
[저런 애랑 같이 호흡맞추면 베스트지.]
[얌마! 너는 딴 생각하지 말고 쟤 미트만 보고 던지면 되겠다.]
레전드플레이어들 역시 토마스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들의 채팅은 신우에게 강한 신뢰를 주었다.
토마스, 그리고 그가 했던 모든 말들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졌다.
‘예.’
망설임을 버린 신우가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8회! 초구 던집니다!]
와인드업과 함께 스트라이드를 한 신우는 느낄 수 있었다.
‘느낌이 오지 않아.’
이전에는 공을 던질 때 하체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지탱해주는 힘이 약해졌다.
신우는 억지로 버티며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았어!’
공을 놓는 순간.
신우는 느낄 수 있었다.
공에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은 걸 말이다.
밋밋한 공이 들어갔고 타자가 배트만 돌린다면 그대로 날아갈 게 분명했다.
하지만.
퍽-!
“스트라이크!!”
[한가운데 꽂히는 공! 하지만 타자는 그냥 지켜봅니다!]
[타자의 심리를 잘 이용한 공이었습니다. 퍼펙트게임이 진행중이니 타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게다가 4번 타자인 조나단 선수는 개막전 이후 타격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더 신중하게 공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해설위원의 해설은 정확했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토마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조나단은 이제 고작 3년차다. 아직 햇병아리지. 무엇보다 이런 순간에는 항상 신중하게 나섰어.’
토마스는 좋은 포수였다.
단순히 타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배짱 쩌네.]
[이런 순간에서도 저런 공을 요구하다니 말이야.]
레전드플레이어들 역시 토마스의 리드에 감탄했다.
퍼펙트게임이다.
평생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다.
그 기회가 날아갈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한 리드였다.
만약 이 리드로 기록이 날아갔다면 포수의 책임이 커진다.
그러한 상황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영원히 피할 수는 없지.]
[결국 야구란 선택의 연속이니까.]
볼이냐 스트라이크냐.
몸쪽이냐 바깥쪽이냐.
높은 코스냐 낮은 코스냐.
그리고 구종의 배합까지.
수많은 조합을 통해 선택을 내려야 되는 게 야구다.
어떤 선택을 하던 결과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것을 두려워하면 결국 그저그런 선수밖에 될 수 없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에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마스는 자신을 믿으라고 했다.
그 말은 괜히 한 것이 아니다.
그 역시 엄청난 압박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을 리드했다.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면...’
[사인을 교환한 정신우 선수, 다시 와인드업 합니다!]
‘쪽팔리지!!’
[2구 던졌습니다!!]
쐐애애애액-!
초구보다 조금 더 구위가 살아있었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을 때에 비하면 형편없는 공이었다.
그리고 1구를 봤던 타자이기에 그 공을 놓치지 않았다.
후웅-!
[타자 배트 돌렸습니다!!]
그 순간, 공이 떨어졌다.
변화가 심해 갑자기 눈에서 사라지는 듯한 인상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타자도 공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리하게 따라간 스윙이 제대로 된 타격으로 이어질리 없었다.
딱-!!
[때렸습니다! 높게 뜬 타구! 꽤 멀리 날아갑니다! 중견수 뒤로 물러나 워닝트랙에서 자리를 잡습니다!]
퍽!
[안정적으로 포구를 합니다! 22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첫 번째 아웃카운트.
그리고 오늘 경기 22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신우가 주먹을 불끈쥐었다.
* * *
딱-!!
[때렸습니다!! 잘 맞은 타구!!]
투아웃에 등장한 대타가 초구를 때렸다.
잘 맞은 타구는 외야로 날아갔다.
누가 보더라도 좌중간을 가를 수도 있는 상황.
[중견수 모슬리 달려나오면서 그대로 몸을 날립니다!!]
모슬리가 달려오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이빙을 했다.
고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모든 힘을 다해 팔을 뻗었다.
퍽!
[모슬리! 땅에 떨어졌습니다! 공은...!]
다이빙을 함과 동시에 한바퀴 구른 모슬리는 일어나면서 글러브를 높게 치켜들었다.
[잡았습니다!! 24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면서 8회말! 이닝 종료!! 엄청난 호수비로 퍼펙트게임을 지켜내는 게리 모슬리!!]
카메라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신우를 잡았다.
신우는 더그아웃 앞에서 멈춰 돌아오는 모슬리를 기다리다 그와 글러브를 부딪혔다.
“나이스 플레이!”
“오우!”
두 사람은 동료들의 환호를 받으며 함께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