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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114화 (114/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14화 >

* * *

신우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신우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피하고 있었다.

야구의 불문율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인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노런을 기록중인 투수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다.

[정신우 선수가 홀로 벤치에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동료들도 이제 인지를 하는 듯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네요.]

[많은 야구팬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혹여나 모르실 분들을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대기록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는 동료들이 투수에게 말을 걸지 않습니다.]

[집중력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정확합니다. 이런 대기록이 진행중일 때, 투수의 집중력은 외줄에 서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작은 것으로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죠.]

외줄에 선 집중력.

그것보다 잘 어울리는 표현은 없었다.

“후우...”

경기를 바라보던 신우가 스코어판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아직 0의 향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안타 3개가 다 산탄총이누.]

[이럴 때 한 방이 나와야 되는데.]

[중심타선이니 기대해볼 수도?]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경기를 이기지 못한다.

점수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7회초! 피트 알론소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첫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했던 알론소 선수, 하지만 후속타가 터지지 않으면서 점수로 이어지지는 않았죠.]

[그렇습니다. 두 번째 타석에서는 우익수 정면으로 가는 플라이볼로 아웃이 되긴 했지만, 타구의 질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피트 알론소.

메츠에는 양대산맥이 있다.

투수에는 신우, 타자에는 알론소.

2019시즌 데뷔한 알론소는 그해 홈런왕,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 내셔널리그 올해의 신인을 휩쓴 슈퍼스타다.

딱!!

“파울!!”

[초구 파울입니다. 참, 가볍게 스윙을 하는 거 같은데. 날아가는 타구의 비거리를 보면 괴력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거 같습니다.]

[원체 타고난 파워가 있는 선수다보니 컨택위주의 스윙으로도 타구를 멀리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알론소 선수는 내년 시즌을 끝으로 FA인데, 연장계약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군요.]

[예. 22시즌의 부상이 아니었다면 올 시즌이 끝나고 FA가 되었을 텐데요. 1년이 미뤄졌습니다.]

[연장계약을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피트 알론소 선수의 선택으로 보입니다. 시장에 나간다면 엄청난 계약을 할 수 있는데, 굳이 연장계약을 할 이유가 없죠.]

[그건 그렇겠군요. 그래서인지 작년부터 피트 알론소 선수의 트레이드와 관련된 소식이 매년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고요.]

메츠는 돈이 없는 구단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선수들에게 그리 큰 돈을 쓰지 않았다.

젊은 선수들을 데려와 충분히 써먹는 구단.

메츠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실제 메츠 역사상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투수는 제이콥 디그롬이었다.

그는 2019시즌을 앞두고 메츠와 5년 1억 375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맺었다.

많은 금액이지만 빅마켓 구단들이 특급선수에게 3억 달러이상의 돈을 쓰는 걸 생각하면 저렴한 규모였다.

그렇기에 전문가들은 메츠가 탱킹을 결정하는 순간, 알론소를 트레이드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딱-!!

[3구 때렸습니다!! 빠르게 뻗어가는 공!! 이번에는 좌익수 키를 넘깁니다!!]

장타를 터트린 알론소가 2루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세 번째 타석에서 2루타를 기록하는 알론소 선수! 그리고 메츠는 오늘 경기 처음으로 선두타자가 득점권에 나가게 됐습니다!]

[좋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토마스 선수 역시 오늘 타격감이 나쁘지 않거든요.]

[4회초 공격에서 안타를 추가했었던 토마스 선수, 득점권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선취점을 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토마스는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 점수를 내야 된다.’

경기에는 흐름이 있고 지금 자신의 손에 흐름이 잡히려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파트너가 저렇게...’

투수가 세트포지션에 공을 뿌렸다.

‘고생하는데...!’

그리고 토마스는 그 타이밍에 맞춰 발을 내디뎠다.

순간 그의 집중력이 높아지면서 날아오는 공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켜볼수만은 없지!!’

후웅-!!

공의 궤적에 따라 배트를 돌리는 순간.

느려졌던 공의 속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따악-!!

[때렸습니다!! 그리고 토마스는...!!]

배트를 쥔 손을 놓았다.

휘리리릭-!!

[배트를 던졌습니다!!]

화려하게 회전하는 배트를 뒤로 하고 토마스가 1루 베이스를 향해 뛰어갔다.

그의 시선에는 담장밖으로 사라지는 타구가 보였다.

[타구는 담장을 넘어갔습니다! 투런포로 선취득점을 기록하는 토마스 에드윈!! 스코어 2 대 0으로 메츠가 앞서가기 시작합니다!!]

* * *

2점의 리드는 신우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뻐억-!!

“스트라이크! 아웃!”

덕분에 7회에도 타자들을 압도해 나갔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구속, 제구, 그리고 투구수까지.

이대로만 간다면 퍼펙트게임은 따놓은 것과 같았다.

[첫 타자를 가볍게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정신우 선수! 현재까지 19개의 아웃카운트 중 12개를 삼진으로 기록했습니다. 현재까지 투구수는 75개!]

[투구수에는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정말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설위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퍼펙트게임.

동양인으로서 누구도 밟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다.

거기에 도전하고 있는 후배를 보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타자는 조심해야 됩니다.]

카메라에 타석으로 들어오는 선수가 잡혔다.

[필리스의 슈퍼스타! 그리고 24시즌 내셔널리그 MVP인 브라이스하퍼가 들어섭니다!]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하퍼.

그가 신우를 노려보고 타석에 들어섰다.

‘작년에는 빚을 졌지.’

작년 시즌 신우와 하퍼는 꽤 자주 만났다.

같은 지구에 클로저와 중심타선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까지 두 번의 대결에서 정신우 선수가 완승을 거둔 상황! 하지만 브라이스 하퍼는 1차전과 2차전에서 8타석 6타수 4안타 2볼넷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4개의 안타들 중 3개가 장타였고 그중에 1개는 홈런이었죠.]

[작년에도 무서운 선수였지만 올 시즌 개막시리즈에서는 더욱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브라이스 하퍼가 타석에 섰다.

그러자 카메라가 시점을 바꾸어 신우를 비춰주었다.

[아아-! 정신우 선수! 마운드 위에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나오는 신우의 미소.

그 모습은 다소 기괴하기까지 느껴졌다.

-쟤 또 웃는다.

-완전 사이코인 듯.

ㄴ 조커가 더 어울릴 듯.

그 모습을 본 팬들은 신우에게 각종 별명을 붙였다.

사이코, 조커.

유명한 단어들을 가져다가 그를 불렀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런 걸 모른 체, 여전히 영역 안에서 공을 뿌렸다.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이번에도 구속은 100마일!! 5회부터 90마일 후반의 공이 연달아 전광판에 찍힙니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정신우 선수가 선발로 뛰게 되면 광속구를 잃게 될 거란 예상을 했는데요. 이건 너무 예상밖의 모습입니다.]

신우의 광속구에 팬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레전드플레이어들은 그 모습을 우려했다.

[너무 오버하는데?]

[아직도 자기가 클로저인 줄 아는 듯.]

[영역에 들어가서 우리 채팅은 보이지도 않는 거잖아?]

고도의 집중력이 시각화된 현상.

그것이 영역이다.

신우는 5회부터 이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로 인한 부작용이다.

고도의 집중 상태가 깨지는 순간, 탈력감으로 인해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현대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번아웃 증상과 비슷했다.

뻐어억-!

“스윙! 스트라이크!! 투!!”

[2구 98마일! 하퍼의 스윙이 허공을 가릅니다!]

[아-! 하퍼 같은 초일류 타자도 압박하는 정신우 선수! 멋집니다!]

언뜻 보면 완벽한 피칭.

하지만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눈에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와 같았다.

균형을 잃으면 그대로 추락하는 상황.

[일단 이거 깨야 될 거 같지 않음?]

[퍼펙트는 어쩌고?]

[젠장, 그것도 그렇네.]

[지금은 지켜보는 것밖에 할 게 없어.]

[ㅇㅈ]

[이런 기록이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까.]

퍼펙트게임.

레전드플레이어들조차 이 기록을 달성한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뻐어억!!

후웅-!!

“스윙! 아웃!”

[삼구삼진!! 세 번째 공 역시 100마일이 찍히는 하이 패스트볼에 하퍼의 배트가 헛돕니다! MVP 타자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괴력의 정신우 선수!!]

삼구삼진으로 하퍼를 돌려세운 신우의 모습에 씨티즌스 오브 파크를 찾은 필리건들이 적막에 물들었다.

“씨발...진짜냐?”

그들 중 누군가 말했다.

자신들의 슈퍼스타마저 삼구삼진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 * *

「(속보) 정신우 7이닝 퍼펙트 진행중」

한국이 발칵 뒤집혔다.

야구에 관심있는 사람.

야구에 관심없던 사람.

모든 이들이 메이저리그의 소식을 접했다.

업무, 수업시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스마트폰과 TV, 모니터 앞에 모여 경기를 보고 있었다.

“부장님! 이거 결제 좀...!”

“지금 결제가 중요해?!”

사원부터 부장까지.

“얘들아 이거 꼭 봐라! 2002월드컵 때 쌤의 담임선생님은 8강 경기를 안 보여주셨던 게 지금도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모르겠다.”

“선생님 갑자기 라떼는 하시는 건가요?”

“이런 순간에는 좀 할 수도 있지!”

“인정입니다!”

선생님과 학생까지.

한 마음이 되어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을 위한 이벤트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한국만의 이벤트는 아니었다.

미국에서도 신우의 퍼펙트게임 진행은 엄청난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신우 정이 7회까지 퍼펙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83구를 던진 신우 정은 앞으로 6개의 아웃카운트를 더 올리면 25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하게 됩니다.]

폭스, ESPN, ABC 방송국 등.

전국구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중계진들이 신우의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현지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기자들 역시 바빠졌다.

“자료는 준비 다 됐어?!”

“여기 있습니다.”

“자료에 부족함이 있으면 안 돼!”

“데스크에도 연락해!”

기자들은 손을 쉬지 않으며 입으로는 소속 언론사에 연락을 하고 있었다.

그건 장태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마! 그러니까, 어떻게든 단독인터뷰를 준비하라니까?!]

“일단 해볼게요! 그런데 확정은 할 수 없습니다!”

[야! 못한다고 말할 때야? 동양인 최초의 퍼펙트게임이야! 달성만하면 말 그대로 대박이라고!]

“알았어요! 최선을 다할게요!”

전화를 끊은 장태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일본어가 들려왔다.

“내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어떻게 알았소?! 뭐? 여론이 좋지 않다고? 언제부터 대중의 의견이 그렇게 중요했다고!”

노한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이는 곤조였다.

그가 코너에 몰렸다는 건 대화를 들으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장태호는 인터넷 창 중 하나를 열어 일본의 상황을 살폈다.

“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한 장태호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대단하긴 하네.’

분명 일본의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그런데 보이는 건 한국어가 태반이었다.

한국인들이 제대로 점령을 해버린 것이다.

‘간간이 보이는 일본어들은...’

곤조를 욕하거나 일본의 현 상태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곤조의 기사를 캡쳐해서 조롱하는 글들도 많았다.

“으음...”

그것을 보고 장태호는 결심했다.

‘저 꼴 나기 싫으면 함부로 예상을 하지 말자.’

“젠장!! 끊으시오!!”

전화를 거칠게 끊는 곤조를 보며 장태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창밖으로 보이는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앞으로 남은 아웃카운트는 6개.’

단 2이닝.

위대한 기록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

하지만 장태호는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정말 조심해야 돼.’

동양인 최초로 퍼펙트게임에 다가갔던 다르빗슈 유.

메이저리그 2년차였던 2013시즌.

그는 개막전 퍼펙트게임이라는 엄청난 대기록을 작성할 뻔 했었다.

하지만 9회 2사에서 안타를 허용하며 기록을 놓쳤다.

그리고 2014시즌에도 7회 2사까지 퍼펙트게임을 이어오다 수비실책으로 기록이 무산됐다.

‘경기가 막판에 이르면 투수의 체력은 떨어진다. 또한 수비들 역시 긴장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평소 나오지 않을 실책이 나올 확률이 높아.’

높은 장애물이 남은 상황.

하지만 장태호는 간절히 바랬다.

‘부디 역사를 내 눈으로 볼 수 있기를...!’

기자이기 이전에 메이저리그의 팬인 장태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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