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12화 >
* * *
더그아웃에선 긴장감이 흘렀다.
‘나까지 긴장되는군.’
감독인 마이크마저 긴장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는 그만큼 중요했다.
개막 3연전을 패배로 맞이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도를 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불펜은?”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전화해서 체크해두도록 해.”
“알겠습니다.”
현장을 지휘하는 감독은 최악을 대비해야 했다.
‘시즌 초반부터 불펜이 과부하되는 건 피해야 되지만, 연패를 막는 게 우선이다.’
마이크는 다시 마운드를 바라봤다.
연습투구를 끝낸 신우가 몸을 돌려 로진을 손에 묻히고 있었다.
‘작년과 같은 기적을 보여주길 바란다.’
혜성 같이 등장한 클로저 신우.
말도 안 되는 기록과 함께 구단역사를 넘어 메이저리그 역사를 갈아치웠다.
그런 기적이 오늘 일어나길, 마이크는 간절히 빌었다.
“플레이볼!!”
그리고 구심의 콜과 함께 신우의 첫 선발게임이 시작됐다.
* * *
“후우...”
한숨을 내쉰 신우가 상체를 숙이고 토마스와 사인을 교환했다.
‘역사적인 초구니까...’
토마스의 손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그는 노련한 포수였다.
투수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걸로 가야겠지?’
사인이 나온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
코스는 바깥쪽이었다.
[좌타자를 상대니까 커터성이 아니라 싱커성으로 던져야겠네.]
‘예.’
고개를 끄덕이고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양손을 모아 포심 그립을 잡은 뒤, 몸을 틀며 킥킹을 했다.
영역으로 들어가지진 않았지만 신우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거기에 기대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로저와 다르지 않다. 네가 해야 될 건...]
‘1이닝을 막는 거죠.’
투구폼에 바뀐 건 없었다.
힘의 배분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신우는 비시즌기간 이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철저한 계획속에 움직였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무게중심을 뒤로 하고 킥킹동작에서 멈춘 신우는 스트라이드와 함께 모아두었던 힘을 방출시켰다.
콰직!!
야구화의 징이 마운드 위에 박히며 그의 하체를 단단하게 고정시켜주었다.
이전보다 더 강한 힘이 하체를 타고 올라왔다.
몸속에 있는 모든 근육들이 깨어나며 올라오는 힘에 추진력을 보태주었다.
[모든 힘을...]
그 힘이 허리를 타고 올라오자 신우는 망설이지 않고 골반을 돌렸다.
그렇게 더해진 회전력과 코어근육에서 발현된 힘은 하체를 타고 올라오는 파도에 더해져 더욱 거대한 힘의 해일을 만들어냈다.
[방출해라!]
매튜슨의 채팅이 신호라도 된 듯.
신우는 골반을 지나 상체로 올라오는 힘을 느끼며 상체를 회전시켰다.
마지막으로 더해진 상체의 회전력은 힘의 해일을 더욱 거대하게 만들었다.
해일은 신우가 만들어둔 길을 따라 어깨를 지나 오른팔로 그리고 손목을 지나 손끝으로 이어졌다.
“흐아아앗-!!”
신우는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힘을 폭발시키듯 괴성과 함께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초구!! 던졌습니다!!]
손을 떠난 공을 본 타자가 시동을 걸었다.
‘초구를 노려라.’
야구의 격언을 그대로 따랐다.
무엇보다 신우가 가진 공격성을 노린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건 정확히 맞았다.
‘맞았다!!’
스윙과 공의 궤적이 일치했다.
안타를 직감하는 순간.
휘릭-!
‘어?’
눈앞에서 공이 변화했다.
마치 뱀처럼 휘어서 바깥쪽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친 뱀은 집으로 안전하게 들어갔다.
뻐어억-!!
공이 미트에 꽂히고.
부앙!!
배트는 선풍기가 되어 허공을 갈랐다.
“스트라이크!”
구심의 짧은 한 마디에 타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미트를 바라봤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에 토마스가 씩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살살 좀 돌려라. 그렇게 헛치다가 허리 나간다.”
“크...!”
“나이스볼!!”
토마스의 도발에 입술을 깨물은 타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장면은 카메라를 통해 생생하게 중계되고 있었다.
[초구!! 헛스윙입니다!! 구속 98마일의 강속구로 타자의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정신우 선수!! 방금 구종은 싱커로 보였는데, 맞나요?]
[궤적을 봤을 때 싱커 혹은 투심으로 보입니다.]
[그럼 새로운 구종을 익힌 거군요?]
[예. 분명 작년에는 우타자 기준 몸쪽으로 파고드는 공은 써클체인지업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공을 던진 적이...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준 적이 있었군요.]
[아-! 기억납니다. 하지만 당시에 정신우 선수는 포심을 던졌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긴 합니다만...]
해설위원은 할 말을 잃었다.
신우는 분명 포심을 던졌다고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다양한 분석사이트에서 신우가 던진 우타자 몸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공에 대한 분석을 다르게 내놓았다.
분석사이트가 구종을 판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다양한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구종과 정보들을 분석해서 알아낸다.
그런곳에서조차 신우의 구종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라고 어떻게 알겠는가?
‘좀 대충 넘어가라!’
해설위원은 캐스터에게 눈치를 주었고 다행히 호흡을 오래 맞춘 캐스터는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시범경기에서 최고구속이 97마일까지밖에 찍히지 않았던 정신우 선수지만 오늘 경기에서는 무려 초구부터 98마일을 찍어내는군요!]
그제야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올린 해설위원이 자신만의 해설을 펼쳐나갔다.
목소리만 나가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 * *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세 번째 공이 미트에 꽂혔다.
바깥쪽 낮은 코스.
좌타자에게 가장 먼 코스에 타자는 움직이지 못했다.
울려퍼지는 구심의 콜과 동시에 야유가 쏟아졌다.
“우우우우-!!”
“젠장! 도대체 뭐하는 거야?!!”
“이 새끼야!! 인형이냐?!”
야유는 신우가 아닌 필리스의 타자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 고작 3회다.
경기초반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
그럼에도 이런 야유가 쏟아진다는 건 언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휘유-! 필리건들이 어지간히 너 싫어하나보다.]
[너 필라델피아로 여행이라도 오면 우리랑 면담할 듯.]
면담이란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신우는 애써 채팅을 무시하며 몸을 돌려 로진을 손에 묻혔다.
그 모습은 카메라로 중계되는 중이었고 캐스터의 멘트가 이어졌다.
[3회 원아웃을 가볍게 잡아낸 정신우 선수, 현재까지 7명의 타자를 상대로 5개의 탈삼진을 잡아내고 있습니다. 시범경기와는 전혀 다른 탈삼진능력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오늘 정신우 선수의 패스트볼이 절묘하게 제구가 되고 있습니다. 구속 역시 때에 따라서 98마일 이상을 던지면서 완급조절도 완벽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구위가 정말 인상적입니다.]
[구위요?]
[예. 정신우 선수가 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으면서 던진 29개의 공들 중 20개가 패스트볼 계열이었는데, 보통의 포심 패스트볼처럼 들어간 공은 단 1개도 없습니다.]
[하긴, 오늘 공들은 모두 휘어지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더군요.]
[예. 타자들 입장에선 포심을 노리는 것 같았지만 쉽사리 쳐내기 어려운 공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현재까지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는 괴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와 1/3이닝동안 5K.
시범경기에서 기록했던 K/9의 수치하락으로 전문가들은 많은 우려를 내비쳤다.
하지만 신우는 개막 첫 경기에서 그러한 우려를 비웃듯이 탈삼진을 수집하고 있었다.
한편, 기자석 역시 술렁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번 공도 98마일이 찍혔어.”
“RPM이 2811이 찍혔는데? 이거 포심의 RPM 아니야?”
“뭐? 하지만 마지막에 변했잖아?”
“변화의 위치도 이상했어. 그냥 구위가 좋은 포심인 거 같은데?”
기자들 역시 의견은 분분했다.
다들 혼란스러워했다.
그건 장태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싱커나 투심처럼 보였어. 하지만 RPM을 봤을 때는 포심과 흡사하다. 거기다가 공이 변화한 위치도 홈플레이트 직전이었다.’
장태호는 빠르게 자료를 찾았다.
곧 신우의 과거인터뷰 중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정신우는 커터를 포심처럼 던진다고했다. 마치 마리아노 리베라처럼. 만약 지금 던진 것이 커터의 연장선상에 있는 공이라면...?’
아직까지는 가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만약 이게 맞다면 신우는 엄청난 무기를 얻은 셈이었다.
“칙쇼...!”
그때 옆에서 낮은 목소리의 일본어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주먹을 쥐고 있는 곤조기자가 있었다.
‘열 좀 받겠지.’
그는 일본에 연일 신우를 깎아내리는 기사를 썼다.
바로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개막 3연패를 예약한 뉴욕메츠.」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고 이건 일본 유명 언론사의 톱을 차지했다.
거기에 나온 내용은 화가 치밀어오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1-2선발이 무너진 메츠를 정신우는 구하지 못한다. 그는 영웅이 아니다. 경험이 부족한 선발에 불과하며 이번 경기를 통해 마무리투수가 어째서 선발로 실패할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줄 것이다.
정신우는 시범경기에서 본인의 최고구속보다 4마일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평균구속은 무려 5마일이 하락했다.
또 K/9 수치가 눈에 띄게 하락하며 최대장점이던 탈삼진능력 역시 크게 떨어졌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정신우의 선발전환은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뉴스에는 5천개의 댓글이 달리며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인터넷과 지면에도 메인뉴스로 떴다.
거기에 뉴스에서도 그의 기사가 인용이 되면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오늘 신우의 기세를 보면 퀄리티스타트는 충분히 가능해. 더 나아가면 퀄리티스타트플러스까지도 가능이다. 아무리 메츠의 타선이 정상컨디션이 아니더라도 1-2점은 낼 수 있을 거다.’
첫 등판에서의 승리.
선발투수로 데뷔한 신우에게는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장태호의 시선이 곤조기자에게 향했다.
‘저 인간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겠는데?’
생각만 해도 짜릿한 상상에 장태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4회.
신우는 여전히 견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딱-!!
[타구 높게 떴습니다! 하지만 내야를 벗어나지 못한 타구, 유격수 뒷걸음질을 치며 자리를 잡습니다.]
퍽!
“아웃!”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4회에도 1개의 탈삼진을 추가한 정신우 선수, 이로써 오늘 경기 6K를 기록하며 4이닝동안 완벽한 피칭을 이어갑니다!]
캐스터의 멘트가 끝나고 곧 화면은 광고로 넘어갔다.
그걸 확인한 캐스터가 해설위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알고 계세요?”
주어가 없는 질문.
하지만 해설위원도 무슨 뜻인지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하지만 아직은 이른 상황이야.”
“그건 그렇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김PD 준비는 해두는 게 좋을 거 같아.”
“알겠습니다. 마지막 광고 나갑니다.”
“어, 그래.”
김PD의 신호와 함께 두 사람은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하지만 해설위원은 쉽게 집중할 수 없었다.
‘아직은 너무 일러. 하지만 4회까지 던진 투구수가 고작 48개밖에 되지 않아. 이 투구수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투구수였다.
아무리 대단한 투수라 하더라도 100구가 넘어가게 되면 제구와 구위에 문제가 생긴다.
문제는 또 있었다.
‘다음이닝부터 선발이냐 아니면 불펜이냐의 갈림길에 들어서게 된다.’
정신우는 클로저로서 한 시즌을 보냈다.
24시즌의 정신우는 누구도 반론할 수 없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클로저였다.
하지만 선발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반적인 경기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구수 관리와 이닝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된다.
현재까지 투구수 관리는 완벽하게 되고 있었다.
‘5회말부터 신우의 투구수는 50개가 넘어간다. 그때부터 진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여전히 클로저로서 남아있는지.
아니면 선발로서로 변모했는지 말이다.
* * *
메츠의 더그아웃.
신우는 벤치에 앉아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체력은 어떠냐?]
매튜슨의 질문에 신우가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뒤이어 눈을 감고 몸상태를 체크했다.
‘나쁘지 않아요.’
[훈련은 제대로 된 거 같군.]
[48구를 던졌는데 아직 구위도 떨어지지 않고, 너희들 도대체 비시즌동안 뭐 한 거냐?]
타이콥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스판이 했다.
[안 가르쳐줌.]
[망할쉑...]
[그렇게 궁금하면 비시즌에도 들어오시든가~]
[염병! 내년부터는 내가 들어오고 만다.]
어그로력 만렙의 스판을 보며 신우가 피식 웃었다.
[정신을 집중해라. 선발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집중이 끊이지 않게 하는 거야.]
[무엇보다 투구수가 50개를 넘게 되면 슬슬 체력이 떨어진다. 거기다 타순도 한 바퀴 돌았으니까 공에 익숙해질 때도 됐고.]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조언은 적절했다.
5회는 여러모로 어려운 이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5회를 잘 넘기면 흐름은 완벽하게 너의 것이 된다.]
매튜슨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눈을 감은 신우는 정신을 집중했다.
시야가 차단되자 곧 몸이 붕 뜨는 것과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뒤이어 소리가 차단되며 신우는 온전히 자신만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공간과 시간의 흐름이 사라지며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때.
툭-!
어깨를 건드리는 무언가에 신우가 눈을 떴다.
“시누, 나갈 시간이야.”
파트너인 토마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글러브를 챙기며 마운드로 향했다.
‘이런 건 또 처음이네.’
마운드로 걸어가는 상황에서 영역에 들어서 있는 기묘한 감각.
신우는 그 감각을 유지한 채 마운드에 섰다.
[5회말!! 정신우 선수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경기의 전환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