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11화 >
* * *
스프링트레이닝 마지막 날.
신우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박현성과 그 가족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잘 지내셨죠?”
“물론 잘 지냈지. 자네의 활약을 보면서 매일매일 즐겁게 보냈네.”
“형! 잘 지내셨죠?”
“오빠, 안녕하세요.”
“응. 다들 많이 컸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 큰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플로리다에는 꽤 많은 한식당이 있었는데, 이곳 역시 그러한 곳중에 하나였다.
다들 자리에 앉은 뒤, 음식을 시키고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나야 뭐, 여전히 똑같지. 변호사 일하고 게스트하우스 운영하면서 지냈다.”
자신에게 너무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박현성은 크게 변한 게 없는 듯 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각자 자신들이 할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참! 저 이번에 레귤러가 됐어요!”
“그래? 포지션은?”
“투수에요. 클로저로 뛰고 있어요.”
“클로저?”
“하하! 아들녀석이 자네를 보고 반해서 언제나 클로저를 고집하더라고. 코치는 선발로 뛰면서 천천히 클로저로 자리를 잡으라고 하는데, 말을 듣지 않아.”
“아...그럼 내가 좀 미안해지는데.”
“아니에요! 형은 이미 클로저로서 보여줄 수 있는 걸 모두 보여주셨잖아요! 이제 제가 할 건 형이 세운 업적을 따라가는 거죠!”
“하하, 업적이라니.”
“아니야. 자네가 세운 기록은 정말 대단한 거야. 자네 덕분에 미국에 있는 교포들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
박현성의 말에 신우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자부심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찡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진심이란 걸 알기에 박현성도 웃으면서 신우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곧 음식이 나오고 식사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이었다.
훈련도 잊고 식단조절도 신경쓰지 않으며 힐링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쉬는 것도 좋지.]
[항상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으면 결국 지칠 수밖에 없으니까.]
레전드플레이어들은 그 장면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박현성의 아들인 박태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형.”
“응?”
“선발전환하는 거...정말 괜찮은 거 맞죠?”
“괜찮냐니?”
“그...인터넷에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형의 선발전환이 무모한 모험이었다면서 자주 이야기를 해서요.”
“태준아!”
박현성이 급히 아들이 제지했다.
시즌을 앞두고 있는 선수다.
한창 예민해져 있을 선수에게 해서는 안 될 질문이었다.
하지만 신우는 개의치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태준아.”
“예.”
“전문가 분들은 자신의 주관대로 평가하는 게 일이야.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가지고 나에 대한 성적을 예상하는 거지. 그건 어디까지나 예상에 불과하다. 꼭 맞는단 보장은 없어.”
“그건 그렇죠.”
“그리고 인터넷에서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야. 그들 각자의 생각이 있고 의도가 있다. 하지만 결국에 나는 나더라고. 내가 잘하면 모든 안 좋은 의도는 사라지게 되더라.”
태준이 뭔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야구를 가르쳐준 분들이 해준 이야기인데. 언제나 계획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면 옆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더라.”
“계획...”
“그리고 난 계획대로 하고 있을 뿐이야. 주위에서 아무리 잘못된 길이라고 해도 겁은 나지 않아.”
태준이 신우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과 표정 그리고 말투에서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이 맞는지는 첫 선발등판을 보면 알 거야.”
마치 선언과도 같은 그의 말에 순간 적막이 흘렀다.
* * *
개막전.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첫 경기이니만큼 관중은 물론이거니와 선수들 역시 남다른 심정으로 경기에 임한다.
그렇기에 필리스의 홈구장인 시티즌스 뱅크 파크가 열광에 도가니가 되는 건 당연했다.
“메츠 개자식들아!! 우리 개막전의 재물이 되어라!!”
“하퍼!! 저 쓰레기 같은 새끼들한테 홈런을 먹여버려!!”
“시누가 없는 메츠의 불펜은 쓰레기야!! 빨리 투수를 끌어내려!!”
여기저기서 욕설에 가까운 야유가 쏟아졌다.
[역시 필리스의 홈구장입니다. 경기 초반부터 엄청난 야유가 리올 선수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영향인지 리올 선수는 경기 초반을 어렵게 가져가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평소 자랑이었던 슬라이더가 제대로 통하지 않으면서 경기를 어렵게 풀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구가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어요.]
해설위원의 평가는 정확했다.
아니, 해설위원만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리올의 상태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마이크 역시 간파하고 있었다.
‘부담감에 너무 짓눌려있다.’
리올의 개막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24시즌 개막전에서는 6이닝 1실점을 하며 훌륭하게 피칭을 성공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는 2이닝동안 벌써 3실점을 기록했다.
‘원정경기의 부담감을 넘기지 못하다니.’
리올의 첫 개막전은 홈경기였다.
홈팬들의 압도적인 응원을 받으며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빅리그 경험이 적은 그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원정경기에서의 야유는 그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제구가 되지 않았다.
“베이커.”
“예.”
“불펜쪽은 어떻게 됐어?”
“에디와 크리스가 대기중입니다.”
각각 우투와 좌투인 투수였다.
리올이 우투수였으니 그를 대신할 투수로는.
“크리스를 언제든지 등판시킬 준비를 해.”
“알겠습니다.”
좌투수가 필요했다.
‘개막전에서 허무하게 질 수는 없다.’
어떻게든 흐름을 뒤집어야 될 필요가 있었다.
* * *
개막전이 끝났다.
호텔로 돌아온 신우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스마트폰을 꺼낸 그는 자연스레 네이버에 접속해 기사를 확인했다.
「뉴욕 메츠 개막전에서 패배하다.」
메츠는 패배했다.
「정신우 선수의 소속팀인 뉴욕 메츠가 개막전에서 지역라이벌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8 대 2의 스코어로 완패했습니다.]
8 대 2라는 치욕적인 스코어.
더 큰 문제는 또 있었다.
「개막전 선발이자 사실상 팀의 1선발인 리올 에르난데스가 1과 2/3이닝동안 5실점을 하며 사실상 경기를 내주고 마운드를 내려갔습니다.
이후 불펜투수들이 투입됐지만, 추가실점을 내주면서 경기는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선발이 초반부터 무너지면서 자연스레 불펜이 소모되었다.
문제는 3연전의 첫 경기.
그것도 개막전에서부터 그랬다는 것이다.
‘내일 경기가 중요해졌다.’
만약 2차전에서도 투수가 무너지고 그로 인해 불펜이 더 소모된다면.
[최악이지.]
[네가 나갈 때는 불펜투수가 거의 없다 봐야 될 거고.]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대로였다.
[그러나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ㅇㄱㄹㅇ]
[괜히 생각 많아지면 오히려 네 피칭을 못 하게 돼.]
그들의 조언을 들으며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신우는 스마트폰을 끄며 눈을 감았다.
* * *
베켓은 TV를 보다 인상을 구기며 전원을 꺼버렸다.
“젠장...”
욕설이 절로나왔다.
개막전에서의 패배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리올이 1선발을 맡고는 있었지만 그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연 이틀 대패를 한다고는 계산하지 못했다.
‘불펜의 소모가 너무 크다.’
2선발인 아담 역시 4회를 넘기지 못하면서 불펜의 투입이 이어졌다.
결국 이틀 연속 승리는 올리지 못하고 불펜의 소모만 많아진 셈이었다.
‘내일 경기에서는...’
개막 3연전은 중요하다.
새로운 시즌을 시작함으로서 팀의 사기를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일 경기에 나설 투수는 선발 경험이 전무했다.
‘신우가 나선다.’
마음 같아서는 바꾸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이미 팀의 3선발이라고 공언을 했기 때문이다.
‘불펜이 없는 상황에서 그를 내보내야 되다니.’
현재 불펜에서 공을 던지지 않은 투수는 레이먼드가 유일했다.
즉, 신우가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해줘야 한다는 소리였다.
2연패인 상황, 그리고 가장 악랄하다는 필리건들의 앞에서 첫 선발등판을 치러야 되는 상황이었다.
“젠장...”
자칫 잘못하면 개막 3연패를 할 수도 있었다.
욕설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 베켓의 고민을 커지기만 했다.
* * *
메츠 선수단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개막전에서부터 연패를 한다는 건 팀의 사기를 크게 떨어트리는 일이었다.
클럽하우스에는 적막이 흘렀다.
이런 상황에서 선발로 등판한다는 건 압박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우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오~개막했네?]
[뭐야? 너 선발로 전환했어?]
[야야! 투수따위 때려치우고 그냥 타자나 하라니까?]
[그것보다는 그냥 투타겸업하는 거 어떰?]
채팅창이 평소와 달리 북적였기 때문이다.
개막전이 시작됐다는 게 알려지고 점점 시청자가 늘어났다.
비시즌에 떠났던 이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신우가 선발로 데뷔하는 날.
예전처럼 시끄러운 채팅창이 되어 있었다.
[거, 손절하고 떠났던 인간들이 말 많네.]
[그러게 말이야. 키보드에서 손 떼고 조용히 시청이나 하지?]
[엌ㅋㅋ 고인물들 텃세 부리누.]
[에헤이! 손절이라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말넘심]
정신 사나워지는 채팅창을 보며 신우는 미소를 지었다.
‘선배님들 돌아오셔서 환영합니다.’
[그래그래.]
[인사 오지게 함 박아봐라!]
[이놈이 야구는 못해도 예의 하나는 있다니까.]
사이영상을 탔는데도 여전히 야구를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줄이야.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부터는 선발로 경기에 나서니 더 재밌게 해드리겠습니다.’
[클로저나 계속하지. 갑자기 웬 선발이냐?]
‘한 번쯤은 경기를 책임져보고 싶었거든요.’
[으흠, 뭐 잘 되면 좋겠지만, 안 되면 손해가 크지 않겠음?]
‘그래도 한 번 노력해보겠습니다!’
[패기 하나는 좋네.]
[굿굿.]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니 긴장할 시간도 없었다.
신우는 오랜만에 북적이는 채팅창을 보며 경기를 준비했다.
* * *
딱-!
경쾌한 소리가 울렸지만, 타구는 높게 떠올랐다.
멀리 뻗지 않는 타구에 알론소가 혀를 차며 배트를 내동댕이쳤다.
[알론소의 4구를 강타! 하지만 중견수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습니다!]
퍽!
“아웃!”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메츠의 1회초, 삼자범퇴로 이닝이 마감됩니다!]
[1회부터 점수를 좀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조금 아쉽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공수교대와 함께 메츠의 마운드에는 정신우 선수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마운드에 올라온 정신우를 클로즈업했다.
[개막 2연패와 함께 마운드에 오른 정신우 선수의 어깨가 무척 무겁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팀의 연패를 끊어야되는 상황이니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신우의 등판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뉴욕에서도 수많은 야구팬들이 TV나 인터넷을 통해 그의 등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덕분에 역대급 접속자가 일어나며 순간적인 접속불가현상까지 일어났다.
그로 인해 실시간검색어는 신우의 이름과 메이저리그 생중계라는 단어가 1위부터 10위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신우는 이런 관심과 달리 마운드 위에서 온갖 욕설을 듣고 있었다.
“저 새끼 두들겨패고 당장 끌어내!!”
“저 망할놈에게서 홈런을 뺏지 못하면 오늘 너희들이 죽을 줄 알아!!”
필리건들의 적나라한 욕설에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다.
‘참, 적응 안 되는 동네야.’
[뭐, 이런 맛에 여기 오르는 거지.]
[긴장 되는 건 아니겠지?]
‘솔직히 조금 긴장됩니다.’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첫 선발등판에 적지다.
거기에 팀은 2연패를 한 상황이다.
아무리 강심장이라 하더라도 안 떨린다면 거짓말이었다.
[뭐 어떻게 보면 그게 당연한 거지.]
[그럼 이렇게 생각해.]
그때 스판이 말했다.
[한 경기에서 세이브를 9번 올린다고 생각해.]
[ㅋㅋㅋ 그게 뭐냐?]
[엌ㅋㅋ 기발한 발상.]
그의 말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거 좋네요.’
[얘도 참 또라이라니까.]
신우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베이브루스가 말했다.
‘또라이면 어떻습니까?’
신우는 천천히 자신의 루틴을 밟으며 경기를 준비했다.
‘경기에서 이기면 되지. 안 그렇습니까?’
신우의 말에 순간 채팅창에는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뒤이어 폭발하듯 채팅이 올라갔다.
[ㅋㅋㅋㅋㅋㅋㅋ 명언일세.]
[반박불가.]
[그게 정답이다 ㅋㅋㅋㅋ]
[또라이면 어떠냐~경기만 이기면 되지.]
채팅창의 반응에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 신우였다.
그리고 그 장면은 카메라에 잡혀 전국으로 생중계됐다.
[역시 정신우 선수!! 강철멘탈의 소유자입니다! 이 부담스런 상황에서도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오해가 커지는 신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