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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110화 (110/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10화 >

* * *

메이저리그 스프링트레이닝에는 메이저리거만 참가하지 않았다.

과거 신우가 그러했듯이 다양한 리그에서 메이저리그 캠프에 합류했다.

또한 베테랑급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계약을 따내기 위해 초청을 받아 캠프에 오기도 했다.

초청선수는 로스터에 들어있지 않는다.

즉,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기 전에 그들의 컨디션과 실력을 점검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스프링트레이닝 기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하나 둘 사라져갔다.

‘빈자리가 많이 생겼네.’

이제는 제법 빈 라커가 많이 보였다.

신우의 옆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이제는 제법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뭐, 언제나 그렇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는 건 힘든 법이지.]

[그래도 빨리 보내주는 게 그들에게도 낫지. 그래야 해외팀도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은 옳았다.

메이저리그 스프링트레이닝에 합류하고 있다는 건 메이저리그 계약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함부로 다른 구단이나 해외리그의 진출을 꾀할 수 없다.

만약 구단이 선수와 계약할 마음이 없다면 일찌감치 놓아주는 게 선수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나저나 시누, 이제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걱정은 안하누?]

‘저도 이제 알 건 아니까요.’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신우는 마이너리그 강등을 걱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사이영상까지 탄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보낼 구단은 없었다.

[그래. 그런 자신감으로 캠프에 임해야 된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기 때문에 베스트임.]

‘예.’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올!”

그때 라커룸으로 한 사내가 들어왔다.

리올이었다.

2년동안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아온 그는 투수들의 리더이기도 했다.

신우가 처음 불펜으로 합류했을 때.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리올이었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아주 좋아. 오늘 시범경기에서 팀의 1선발이 누군지 보여줄게.”

리올은 대답을 하면서 시선이 신우에게 향했다.

[선전포고 나왔네.]

[최근에 쟤가 너 신경 많이 쓰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대로였다.

트레이닝 첫날부터 리올과 뭔가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리올이 신우를 경계하고 있었다.

[1선발은 팀의 에이스를 뜻하지. 메츠의 비어있던 에이스자리를 뺏길 수도 있으니, 그로서는 경계를 하는 게 당연해.]

신우가 선발로의 전환을 예고하면서 선발 로테이션의 변화는 불가피했다.

[이걸 이겨내는 것 역시 네가 해야 될 일이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우는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았다.

프로세계가 경쟁의 세계라는 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는 놀러온 게 아니니까요.’

프로의식만큼은 확실한 신우였다.

* * *

KBO와 달리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는 스프링캠프가 있는 플로리다와 애리조나에서 열린다.

메츠는 일명 자몽리그라 불리는 그레이프프루트리그에서 시범경기를 진행했다.

시범경기는 일반인에게도 공개되어 경기관람을 할 수 있었다.

선수들과의 거리 역시 일반 구장보다 가깝기에 많은 야구팬들이 시범경기를 보기 위해 플로리다를 찾았다.

“올해도 사람들이 많네.”

신우가 플로리다에 넘어와 신세를 졌던 박현성 역시 시범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올해는 한국인들도 정말 많네요.”

“그럴 수밖에! 아시아인 최초로 사이영상을 탄 선수잖아.”

아들의 질문에 박현성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설마 그때 만난 청년이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낼 줄이야.’

처음 게스트하우스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일을 해낼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꿈을 쫓는 훌륭한 청년이라고만 생각했던 박현성이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바꿔내다니.

거기에 짧은 인연을 맺은 자신을 잊지 않고 시범경기티켓을 보내주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정말 대단한 친구야.”

“감탄은 그만하고 이제 들어가요.”

“하하! 그럴까?”

박현성이 웃으며 가족들과 함께 이동했다.

* * *

시범경기가 시작됐다.

메츠의 첫 투수는 리올이 마운드에 섰다.

[리올 에르난데스 선수가 메츠의 첫 선발로 마운드에 서는군요.]

[2년 동안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고 올 시즌에도 큰 변수가 없다면 1선발을 맡을 선수이기에 그의 컨디션을 가장 먼저 점검하는 게 정석이죠.]

오늘 시범경기는 한국에서도 중계가 됐다.

TV에서는 볼 수 없지만 인터넷으로 누구든지 시청이 가능했다.

특히 메츠 시범경기를 보는 시청자의 숫자는 매우 많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단 하나.

신우가 과연 등판하냐는 것이었다.

[현재 생중계를 시청하는 많은 야구팬분들이 정신우 선수의 등판을 기대하고 있을 거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시범경기이니만큼 투수들을 길게 운용하지 않을 겁니다. 정신우 선수를 오늘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때마침 카메라에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는 신우가 잡혔다.

[정신우 선수가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습니다. 익숙한 모습이지만, 평소와 다른 기대를 하게 만드는군요.]

선발을 준비하는 신우의 모습에 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정말 선발로 나설까?”

“이미 언론에서도 그렇게 보도했으니까, 그렇겠지.”

“드디어 제 2의 디그롬이 등장하는 건가?”

“그건 아직 모르지. 실패하면 클로저에 공백이 생기니까, 더 안 좋지.”

“그래도 시누라면 해낼 수 있을 거야!”

누가 보더라도 어려운 일.

하지만 신우는 그걸 해냈기에 사람들은 기대와 함께 경기를 관람했다.

뻐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리올 선수가 1사 1, 2루의 위기에서 두 타자를 연속으로 돌려세우며 2회를 1실점으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옵니다.]

[비록 실점은 했지만, 구위와 구속 그리고 제구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준 리올 에르난데스입니다.]

불펜에서 리올의 호투를 바라보던 신우에게 글렌이 말했다.

“시누, 예정대로 다음 이닝부터는 자네 차례야.”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발로서의 첫 실전등판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 * *

3회말.

[정신우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마무리로서가 아니라 선발투수로서 마운드에 오른 정신우 선수, 과연 오늘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네요.]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목소리가 한껏 고조됐다.

마무리투수 역시 야구에서 중요한 보직이다.

하지만 가장 가치가 있는 보직은 당연하게도 선발투수였다.

가장 많은 연봉, 가장 많은 승리기여도를 부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우-! 우-! 우-! 우-!”

[메츠 팬들이 정신우 선수의 챈트를 외치고 있습니다!]

[한국 분들도 많이 보이네요. 플랜카드부터 태극기까지 펄럭이고 있습니다.]

수많은 관중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신우는 로진을 손에 묻히며 가볍게 몸상태를 체크했다.

[어떠냐? 첫 선발등판은.]

‘경기 중반에 등판해서 그런가, 평소와 기분은 같아요.’

[시범경기니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오늘 던질 30개의 공은 마무리투수로서가 아닌 선발투수의 사이클을 밟아야 된다.]

[힘의 분배를 처음부터 철저하게 해야 됨.]

[특히 오늘 네가 해야 될 건 무빙패스트볼의 점검이다.]

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무빙패스트볼.

연습경기와 불펜피칭을 통해 몇 차례 점검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점검이었기에 실전에서 통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이번 시범경기동안 무빙패스트볼에 대한 점검을 끝내자.]

‘예.’

새로운 보직으로의 변경.

일종의 도박이기도 한 선택이지만 신우는 침착했다.

혼자였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곁에서 레전드플레이어들이 그를 도와주기에 가능했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선발투수로서의 첫 시범경기를 시작했다.

* * *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첫 시범경기에서 3이닝을 소화하며 1실점을 기록했습니다. 투구수는 모두 27개을 던졌으면 이중 패스트볼이 22개로 가장 많았으며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각각 4개, 1개를 던졌습니다.

정신우 선수는 페넌트레이스에서 67이닝동안 무실점을 기록하며 단일시즌 최다무실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신우가 실점했다.

이와 같은 소식에 여론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와...1년만에 첫 실점을 하누.

ㄴ 첫 시즌부터 합치면 78이닝만에 첫 실점한 거. ㄹㅇ 괴물이네.

ㄴㄴ 이렇게 들으니 인간이 아니네.

-시범경기니까 슬슬 던졌나보네.

ㄴ ㅇㄱㄹㅇ. 패스트볼 비율이 대부분인 걸 보니 컨디션 점검임.

ㄴㄴ 그래도 오늘 타자들이 모두 컨택을 했다는 게 좀 걸리네.

ㄴㄴㄴ 그건 좀 걸리네.

많은 의견이 신우의 실점에 신기해했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존재했다.

-첫 경기부터 바로 드러났죠? 선발은 무리죠?

ㄴ ㅋㅋㅋ 설마 첫 경기부터 바로 실점할 줄은 몰랐다.

-오늘 경기 최고구속 94마일. 실화냐?

ㄴ 101마일 던지던 놈이 94마일이라니 ㅋㅋㅋ ㄹㅇ 코미디다.

ㄴㄴ 아니, 이제 시범경기 막 시작했는데. 무슨 구속드립임?

ㄴㄴㄴ 메이저리그 시범경기가 무슨 KBO인 줄 아나.

-마무리나 해라. 오늘 맞는 거 보니 불안하더라.

ㄴ 무슨 배팅볼투수 보는 줄 알았다.

ㄴㄴ 그나마 수비 애들이 잘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대량실점 각이었다.

반대쪽은 시범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걸고 넘어졌다.

두 번째 경기에서도 신우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늘 경기에서 35개의 공을 던진 정신우 선수, 책임주자 한 명을 남겨두고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오늘 경기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음, 일단 두 경기 연속 실점을 했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 구속은 이전보다 1마일 증가한 95마일까지 찍혔지만 오늘 경기에서도 1실점을 허용했습니다.]

[루키시즌 보여준 강력한 퍼포먼스는 조금 줄어든 느낌이긴 합니다.]

[평균구속이 줄어든 건 선발로 전환을 하면서 생긴 어쩔 수 없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이 타자들에게 컨택을 당하기 시작한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확실히 마무리투수일 때는 헛스윙 비율이 높았지만 지금은 땅볼비율이 높더군요.]

[예. 삼진능력이 떨어지면서 생길 부작용이 염려됩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신우의 지표에 의문을 표했다.

특히 삼진비율과 헛스윙비율이 낮아진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메츠의 전력분석팀장인 에이든은 달랐다.

‘한층 더 발전했다.’

그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거기에는 오늘 경기에서 신우가 던진 공들에 대한 데이터가 표시되어 있었다.

‘타자들이 컨택하는 비율은 늘었지만, 정확한 컨택은 해내지 못하고 있어. 공이 마지막 순간에 변화를 하기 때문이다.’

딸칵-!

에이든이 엔터키를 누르자 화면이 둘로 나뉘었다.

왼쪽에는 25시즌 시범경기의 데이터, 오른쪽에는 24시즌의 페넌트레이스 데이터가 나타났다.

키보드를 몇 번 누르자 세부데이터가 사라지고 공의 궤적만이 나타났다.

딸칵-!

한 번 더 엔터키를 누르자 이번에는 초록색의 궤적만이 나타났다.

‘이번 시범경기에서는 패스트볼을 중점적으로 던지고 있다. 즉, 선수 스스로 실험을 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2년차 선수에게 바랄 수 없는 계획성이다.

하지만 신우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에이든의 머리에 있었다.

그리고 데이터를 보면서 확신을 가졌다.

‘패스트볼의 무브먼트의 변화가 심해졌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신우의 패스트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좌타자의 몸쪽으로 붙는 일반적인 컷패스트볼.

그리고 낙차가 작은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하지만 올해 시범경기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움직임 자체는 다른 커터, 싱커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에이든이 주목하는 건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일어나는 변화였다.

‘홈플레이트 앞 3피트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3피트라면 1m가 채 되지 않는다.

배트의 길이가 106.8cm이니 내밀면 닿을 거리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셈이다.

‘인간의 반사신경으로는 공의 변화를 감지할 수조차 없다.’

그렇기에 타자들이 공을 정확히 컨택을 못했다.

‘거기에 구속도 꾸준히 상승중이다.’

선발이 처음인 신우다.

처음부터 전력투구를 할 순 없었다.

모든 게 처음이다보니 자신이 어느 정도로 던져야 오래 던질 수 있는지 알아야했다.

그런점에서 보았을 때, 현재 그의 피칭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정말 재밌는 선수라니까.’

에이든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단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불안해하고 있을 양반을 좀 진정시켜야겠지.’

초조해하고 있을 베켓을 데이터로 안심시키는 것.

그것이 에이든이 해야 될 일이었다.

* * *

「메이저리그 시범경기가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던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는 4경기에 등판해 모두 12이닝을 던지면서 7피안타 0볼넷 3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삼진은 4개만을 잡았으며 최고구속은 97마일까지 찍혔으나 평균구속은 93마일을 유지해 마무리투수시절 보여준 100마일의 광속구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선발투수로 전환을 하며 체력안배를 위해 구속을 강제로 낮춘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과도한 벌크업으로 인한 구속저하가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우려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구단에서는 정신우 선수를 3선발로서 출전시킬 것임을 발표했습니다.

정신우 선수의 첫 선발등판은 지역라이벌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개막전 중 마지막 3차전이 될 예정입니다.」

신우의 메이저리그 첫 선발등판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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