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09화 >
* * *
짐을 풀고 있던 신우는 단장의 호출을 받았다.
객실을 나와 도착한 객실에서 단장과 감독 그리고 에이든이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네.”
“어서오세요.”
“이거 몸이 더 좋아졌구만.”
신우가 인사를 하자 단장 베켓과 에이든 그리고 감독인 마이크가 연달아 인사를 건넸다.
와일드카드에서 패배했지만, 마이크는 자리를 보전했다.
[팀에서도 알고 있는 거지. 자신들의 전력이 개판이란 거.]
[그 개판인 전력으로 와일드카드까지 갔으니 오히려 계약기간을 늘려줘야 될 판이지 ㅋㅋ]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마이크의 말대로 몸이 더 좋아졌어. 새로운 시즌이 기대되는군.”
“육안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좋아졌군요. 하지만 무작정 증량한다고 해서 실전에서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 과하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아아, 그건 천천히 알아보자고.”
“예.”
에이든의 말이 길어질 것 같자 적절하게 끊은 베켓이 신우를 바라봤다.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자네의 몸을 보니 정말 진행할 생각인가 보군.”
베켓의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선발로의 전환.
그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신우의 대답은 단순명확했다.
“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어째서지? 굳이 선발이 아니더라도 자네는 클로저로서 이미 최고의 위치에 있어. 무리하면서까지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베켓은 마지막까지 신우를 만류하고 싶었다.
하지만 신우의 의지는 확실했다.
“단장님과 제 사이에는 한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
“제가 부탁을 드릴 때, 한 가지는 들어주시기로 하셨죠.”
“분명 그랬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선에서의 이야기야.”
“선수의 포지션에 대한 권한은 단장님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24시즌 막판.
신우는 타자로도 종종 타석에 섰다.
합의가 되지 않은 출전에 불만이 생긴 신우를 어떻게든 달래기 위해 베켓은 약속을 했다.
‘젠장...이거 된통 당했군.’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신우의 의견을 무작정 들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
신우가 베켓을 바라봤다.
“이번 스프링트레이닝은 선발로 진행을 하도록 해. 하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시 클로저로 돌아가는 걸세.”
“유의미한 성과라면 어떤 걸 의미하시죠?”
“그레이프프루트 리그에서의 1승.”
“어렵습니다. 스프링트레이닝에서 저는 제 루틴에 맞춰 몸상태를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스프링트레이닝 기간에는 성적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베켓의 시선이 에이든에게 향했다.
정보를 달라는 제스처였다.
에이든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우 선수의 작년 스프링트레이닝 기간에 보여준 모습을 보면 가능성은 높습니다.”
“흠...”
베켓은 고민에 잠겼다.
그의 고민이유는 명확했다.
‘개막 이후 클로저로 전환하는데 시간이 소요돼. 그 사이 공백이 생기고 그것을 메워야 한다.’
단장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고민해야 했다.
문제는 상대가 보통선수가 아니란 점이었다.
디그롬 이후 처음으로 메츠에 사이영상을 가져다준 선수.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바꿔버린 선수.
아무리 서비스타임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그에게 무조건 안 된다고만 이야기할 순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 선발기회를 5번 주겠어. 그 안에 퀄리티스타트플러스를 단 1경기라도 한다면 인정하지.”
퀄리티스타트.
선발투수가 6이닝동안 3자책점 이하를 한 경기를 의미한다.
거기에서 나아가 7이닝동안 3자책점 이하를 한 경기를 퀄리티스타트플러스라고 말한다.
즉, 선발투수로서 이닝이터로서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신우도 이 정도는 예상했기에 딜을 받아들였다.
5번의 기회.
[그거면 충분하지.]
[5경기에서 보여주지 못하면 솔까 클로저로 가야지.]
‘인정합니다.’
신우는 레전드플레이어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
메이저리그 스프링트레이닝은 짧다.
투수를 기준으로 캠프 합류이후 시범경기까지 보름이란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즉, 보름이란 시간동안 투수는 불펜피칭, 시뮬레이션피칭 그리고 연습경기를 통해 실전감각을 만들어낸다.
신우는 이틀째부터 불펜피칭에 들어갔다.
“가볍게 가자고!”
“예.”
투수코치인 베이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구를 던졌다.
파앙-!
파앙-!
팀의 주전포수인 토마스와 공을 주고받으며 웜업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누르며 신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선발로 전환하고 첫 불펜피칭이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기자 중에는 장태호도 있었다.
그는 신우의 연습을 바라보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데뷔 1년 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된 정신우.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냐에 따라 한국에 대한 평가가 바뀔 테니 말이다.
“연습은 이 정도로 됐어.”
“오케이!”
신우의 신호에 토마스가 자리에 앉았다.
좌중에 곧 침묵이 흘렀다.
모든 이들이 신우의 피칭을 기대하며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초구는 하프와인드업을 했다.
전력이 아닌 어느 정도 힘조절을 하며 공을 던진단 의미였다.
뒤이어 스트라이드와 함께 초구를 뿌렸다.
퍽-!
“나이스 볼!”
공이 날아가 포수의 미트에 꽂혔다.
구속을 줄여서인지 정확히 포수가 원하는 곳에 꽂혔다.
“구속은 얼마나 나왔지?”
“88마일.”
“몸을 잘 만들었네.”
다른 기자들의 말에 장태호도 동의했다.
첫 불펜피칭이다.
전력을 할 리는 없었다.
본인의 루틴에 맞춰 몸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전처럼 말이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장태호는 말없이 그의 사진을 찍었다.
* * *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첫 불펜피칭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30개의 공을 던지며 최고구속 89마일을 찍은 정신우 선수는 앞으로 두 번의 불펜피칭을 더 진행할 예정입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듯.
스프링트레이닝이 시작되면서 야구팬들도 하나 둘 기지개를 켰다.
특히 신우의 기사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불펜피칭이 30구면 선발인가?
-진짜 가나?
-와...작년에 클로저로 메이저리그 기록 세우더니 바로 선발로 바꾸네.
-너무 성급한 거 같은데.
-제발 BK의 절차는 피하자.
-올 시즌 성적 10승 12패 평자 4점대 예상. 이 글은 성지가 됨.
ㄴ 네, 다음 이불킥!
ㄴㄴ 야알못쉑.
한국에선 다양한 의견들이 달렸다.
여전히 신우를 추종하는 이들과 폄하하려는 이들이 모여 댓글은 전쟁터가 되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신우가 클로저로 계속 나갔다면 국내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은 죽었겠지.’
장태호는 자신이 올린 기사의 댓글을 확인하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선발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밀면서 신까들에게 빌미를 주고 말았다.’
국내기자들 사이에서 신우의 팬들을 신빠, 신우의 안티들을 신까라고 불렀다.
장태호의 평가는 정확했다.
만약 신우가 여전히 클로저로서 활약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여론은 형성되지 않았을 거다.
올해의 신인은 물론 사이영상 거기에 MVP 2위까지 올랐던 마무리투수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신우를 실력으로 폄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선발로 전환을 하면서 구멍을 만들었다.
‘이 구멍은 스스로 메꿔야 된다.’
신우 스스로 한 결정.
그것을 감당하는 것 역시 본인이 해야 될 일이었다.
‘그나저나 일본쪽에는 제대로 밉보였군.’
장태호는 한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심지어는 대만의 기사도 매일 체크하는 기자였다.
그렇기에 다른 국가들의 상황도 알 수 있었다.
미국은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였고 대만은 신우의 기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전혀 달랐다.
「한국의 정신우, 불펜피칭에서 실망스런 결과물을 내다.」
기사의 제목부터 공격적이었다.
내용은 더 심했다.
「뉴욕 메츠의 정신우가 불펜피칭을 진행했다. 그는 최고구속 140km초반의 공을 던지며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다. 관계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투수가 과도한 벌크업을 하는 건 금물이다. 하지만 정신우는 그것을 했다. 마치 보디빌더가 몸을 자랑하려는 듯 말이다.
짧은기간 이루어진 그의 벌크업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다.
한편 그는 도핑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올해에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집중관리대상 중 한 명이다.」
기사를 본 장태호는 실소를 흘렸다.
“고작 첫 불펜피칭에서 구속이 안나왔다고 이러다니. 곤조도 어지간히 열받았나 보군.”
기사를 쓴 인물은 곤조였다.
일본에서 이름이 알려진 기자였기에 그의 기사는 파급력이 컸다.
댓글의 숫자만 해도 알 수 있었다.
‘4천개.’
그중에서 악플이 90퍼센트였다.
-140km는 일본에서도 안 통한다.
-정신우 이 새끼 도핑한 거 모르는 사람도 있음?
-올 시즌 선발로 전환하면서 본모습이 나올 거라 봄.
-선발전환에 실패한다.
-도핑테스트에 걸리지 않았는데 무슨 도핑?
ㄴ 안 걸린다고 도핑이 아님?
ㄴㄴ 뭔가 최첨단 기술을 도입했겠지.
ㄴㄴㄴ 암스트롱도 결국에는 걸림. 얘도 집중적으로 테스트하면 결국 걸리게 되어 있다.
ㄴㄴㄴㄴ 너 조센징이지?
온갖 원색적인 비난에 장태호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
그만큼 인터넷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었다.
익명이니 말이다.
동시에 분노가 치밀었다.
‘한 사람의 노력을 이렇게 무참히 밟아버리다니.’
그렇기에 원했다.
정신우가 다시 한 번 기적을 보여주길 말이다.
* * *
신우가 두 번째 불펜피칭에 나섰다.
그는 스스로의 컨디션에 맞춰 천천히 어깨를 달구었다.
이번에도 수많은 기자가 그를 취재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장태호는 기자들 사이에는 곤조를 발견하고는 인상을 구겼다.
‘낯짝이 두껍긴 하네. 그런 기사를 쓰고도 멀쩡히 나타나다니 말이야.’
곤조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피칭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습피칭을 끝낸 신우가 글러브를 아래로 향했다.
토마스에게 앉으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가볍게 가자고.”
“예.”
베이커의 신호에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퍽!
“오케이!”
장태호의 시선이 스피드건으로 향했다.
‘91마일. 2마일이 상승했다.’
첫 불펜피칭에서 보여주었던 89마일의 최고구속.
하지만 두 번째 불펜피칭에서는 2마일을 올리며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칫...!”
그때 곤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스피드건을 보던 곤조가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속마음이 훤히 보이는 인간이군.’
저 인간의 콧대를 뭉개주길 원하는 장태호였다.
* * *
세 번째 피칭에서 신우는 구속을 93마일까지 높였다.
이는 모두 계획된 것이었다.
[선발투수에게 중요한 건 루틴이다. 넌 마무리투수로서의 루틴에 몸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걸 바꿀 필요가 있어.]
[그래서 너에게 개인훈련 때부터 철저하게 루틴을 지키게끔 한 거지.]
루틴은 프로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특히 선발투수의 루틴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홀로 마운드에 올라 경기를 책임져야 하는 선발투수의 특성상, 심리적인 안정을 책임져줄 것이 필요했다.
루틴은 그러한 심리적인 부분을 안정시킬 수 있기에 선발투수들은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었다.
신우 역시 그러한 루틴을 만들기 위해 철저한 훈련을 거치고 있었다.
또한 체계적인 방법으로 천천히 구속을 올려 몸의 부담을 줄였다.
그 결과 불펜피칭이 끝났을 때, 그의 몸상태는 실전에 나설 수 있을 정도로 좋아져 있었다.
‘시범경기까지 앞으로 9일.’
스프링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일주일이 흘렀다.
투수들은 불펜피칭을 끝냈고 야수들은 라이브배팅을 하며 타격감각을 끌어올렸다.
[시범경기까지 최대 95마일까지 끌어올려야 된다.]
‘예.’
인터넷에서는 연일 신우의 구속을 가지고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작년 최고구속 101마일까지 던지던 그였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우는 어떠한 흔들림도 없었다.
모든 건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컨디션을 끌어올린다.’
신우는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훈련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