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07화 >
* * *
파앙-!
신우는 박광수와 캐치볼을 하며 가볍게 어깨를 풀었다.
오랜만에 하는 캐치볼은 느낌이 좋았다.
공을 채는 느낌이 이전보다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오오! 선배님! 공이 아주 쫙쫙 날아가는데요?!”
그건 박광수 역시 마찬가지인 듯 했다.
박광수는 그걸 겉으로 드러내며 기뻐했지만 신우는 달랐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캐치볼을 이어나갔다.
실상은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일단 무빙패스트볼의 정의부터 제대로 집고 넘어가자. 너는 무빙패스트볼이 뭐라고 생각하냐?]
‘일반적으로 커터나 투심이 무빙패스트볼의 일종이라 할 수 있겠지만...메이저리그에서는 흔히들 볼끝이 살아있는 공을 무빙패스트볼이라 하더군요.’
[정답이다. 커터와 투심은 이제 메이저리그에서는 특정구종으로 분류한다. 기록에는 패스트볼로 기재되지만 말이지.]
여기까지는 알고 있는 내용이다.
[네가 궁금한 무빙패스트볼은 시즌 막판에 던졌던 것이지?]
‘예. 영상을 봤을 때는 마치 볼끝이 살아있는 것처럼 휘어서 들어갔어요.’
신우는 시즌 막판 마운드에 올라 던졌던 기록이 거의 없다.
무아지경에 빠져 공을 던졌었다.
그래서 영상을 통해 어떤 공을 던졌는지 확인했다.
거기에서 자신이 던진 패스트볼들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심한 변화를 일으켰다.
문제는 그 공을 던지는 법을 모르겠단 것이었다.
[네가 무빙패스트볼에 익숙하지 않는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두 가지 이유요?’
[첫째는 한국과 미국의 교육방식에 있다. 한국의 경우 교과서적인 교육을 주로 하지. 정석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수를 거기에 맞추려고 한다.]
‘와...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저승에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드니까. 도서관은 그러한 이들이 만든 책이 모인 곳이고.]
한 마디로 저승에선 전 세계의 정보를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최신의 훈련법이나 연구결과들을 알고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리고 매튜슨의 말은 정확했다.
실제 고교야구에서 흔히 하는 것은 기초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초는 교과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선수의 개성보다는 정석을 우선으로 했고 개성을 죽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사제지간이라는 독특한 관계에서 나오는 결과였다.
[이제는 너도 알겠지만, 미국은 조금 다르다. 미국에선 선수의 개성을 우선시해. 선수가 어떻게 던지든 별로 신경을 안쓰지. 애초에 선수도 코치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말이야.]
[어떤 게 정답이라 할 순 없어. 하지만 야구에서만큼은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지.]
[스포츠에서 개성만큼 중요한 부분은 없으니까.]
그들의 말은 정확했다.
개성.
그것은 선수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특히 학창시절에 개성을 죽이면 다시는 그걸 찾을 수 없게 된다.
[즉, 재능이 묻히게 된다는 거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은 그걸 안타까워했다.
신우에게 조언을 하면서도 그러한 부분들을 거론할 때가 많았다.
그렇기에 신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어쨌건 지금의 너는 이전의 개성을 찾은 상태다. 오른손으로 바꾸면서 말이지.]
[그리고 너는 이미 무빙패스트볼을 던지고 있어.]
‘제가요?’
[단지 네가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고 있다.]
‘제약이라면...?’
[그걸 지금부터 알려줄 생각이야. 저놈 보고 타석에 서라고 해봐.]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신호를 보냈다.
“타석에 서봐.”
“예!!”
박광수도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메이저리거의 공을 상대해보는 건 어렵다.
그것도 현역이라면.
거기에 사이영상까지 탄 선수라면 재벌이라 해도 불가능하다.
‘아버지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 어쨌든 난 불가능하고.’
배팅장갑을 착용하고 타석에 섰다.
‘이 기회를 위해 합숙을 제안한 거지.’
박광수 역시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지금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몸이 가벼웠어.’
캐치볼을 하면서 컨디션을 체크했다.
그 어느 때보다 몸이 가벼웠다.
‘이상한 일이지. 근육통은 평소보다 심했는데, 몸이 가볍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컨디션이 좋을 때, 한 방 날릴 수 있어야 돼.’
연습이다.
하지만 박광수는 실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허무하게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준비됐습니다!!”
“처음에는 포심이다.”
“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신우가 킥킹을 했다.
풀 와인드업은 아니다.
이제 막 피칭을 시작하는 상황.
게다가 연습에서 풀파워로 피칭을 할 이유는 없었다.
“마음껏 때려봐!”
신우가 1구를 뿌렸다.
가운데를 파고드는 공에 박광수가 스윙을 돌렸다.
후웅-!
퍽!!
배트의 위로 지나간 공이 고무판에 박혔다.
그 모습을 본 박광수가 고개를 저었다.
‘다른 투수들의 공보다 한 개 정도는 위로 들어오고 있어.’
“원스트라이크다!”
“예!”
생각을 정리한 박광수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 * *
10개의 공을 던졌다.
포심과 커터를 적절히 섞어서 던졌다.
때로는 슬라이더성 커터를 던지며 컨트롤을 점검했다.
딱-!!
“이번건 안타입니다!!”
박광수가 호기롭게 외쳤다.
그의 말대로 타구는 안타성이었다.
‘흐흐, 내가 사이영 투수의 공을 안타로 만들어내다니.’
박광수는 자신감을 얻었다.
연습이라고는 해도 신우의 공을 안타로 만들었다는 건 뿌듯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우는 그걸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어깨는 슬슬 풀린 거 같네요.’
오늘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무빙패스트볼을 익히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10구를 던지며 어깨를 풀었다.
[무빙패스트볼을 던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신우는 긴장된 얼굴로 채팅창을 주시했다.
그리고 비밀이 풀렸다.
[손가락의 힘의 분배를 매번 다르게 해주면 된다.]
‘...끝이에요?’
[응.]
‘그건 커터와 다를 게 없잖아요?’
[그래서 좋은 거지.]
‘예?’
[무빙패스트볼이란 볼 끝이 지저분한 공을 의미한다. 흔히 미국이나 남미쪽 선수들의 볼 끝이 지저분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를 알고 있나?]
‘아니요.’
[간단히 설명하면 자유분방함에 있다. 특히 남미쪽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왜냐하면 인프라가 그만큼 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로진을 손 끝에 묻혔다.
매튜슨의 설명은 계속됐다.
[그렇기 때문에 남미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공을 던지면서 논다. 그렇게 야구를 익혔기 때문에 포심 패스트볼만 하더라도 그립이 제각각이지.]
‘즉, 그립을 다르게 잡으면 볼 끝이 지저분해진다는 건가요?’
[정답이다. 같은 패스트볼임에도 불구하고 공의 무브먼트가 모두 다른 이유는 그립이 틀리기 때문이지.]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초등학교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 한국에선 가장 먼저 배우는 게 포심 패스트볼의 그립이다.
자유롭게 쥐는 건 인정되지 않는다.
오직 네 개의 실밥을 통과하는 그립을 쥐어야지만 인정된다.
거기에 투구폼은 로봇처럼 같아야 했다.
간혹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90퍼센트 이상의 선수는 오버핸드나 쓰리쿼터로 던진다.
변화구의 그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문화에서 자란 신우에게 매튜슨의 말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매튜슨이 준 힌트로 인해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럼 혹시 제가 그런 공을 던질 수 있었던 건...’
[너는 참 특이한 녀석이다. 그립을 다르게 잡지 않아도 너의 장점을 살려 공의 무브먼트를 바꿀 수 있지.]
[그거 하나는 타고난 놈이지.]
[이제는 알겠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우가 다시 피처플레이트를 밟고 섰다.
“간다.”
“예!”
자신감이 넘치는 박광수를 보며 신우가 그립을 확인했다.
포심의 그립.
두 개의 손가락이 네 개의 실밥을 교차하는 가장 교과서적인 그립이었다.
신우는 이 상태에서 포심과 커터를 던진다.
‘커터를 던질 때는 중지에 더 힘을 준다. 그렇게 해서 공의 회전축을 바꿨지.’
자신도 모르게 던졌던 커터.
이후에 커터는 신우의 주무기가 되어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다.
‘그동안 포심을 던지면서는 손가락에 주어지는 힘을 맞추려고 했다.’
그것에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다.
변화를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너에게는 그게 상식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 상식이 너에게 제약을 걸게 만든 거다.]
매튜슨과 스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상식을 파괴해야했다.
‘중지에 힘을 주면 커터성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킥킹과 함께 공을 뿌렸다.
촤앗-!!
스트라이드.
후웅-!
뒤이어 회전력을 이용해 상체를 돌렸다.
그리고 손이 릴리스포인트에 도달하는 순간.
두 손가락에 걸려 고정된 야구공의 실밥을 챘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검지에 힘을 더 가한다면...!’
이번에는 검지에 더 힘을 주었다.
전력을 10이라고 했을 때, 검지에는 8 그리고 중지에는 2의 힘을 부여했다.
‘우타자의 몸쪽으로...!“
쐐애애액-!!
그리고 있는 힘껏 공을 때렸다.
’휘어들어가겠지!!”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섭게 날아갔다.
박광수는 이전의 타이밍에 맞춰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이번에도 안타 잘 먹겠습니...!!’
다를 외치려는 순간.
후웅-!!
배트가 호쾌하게 허공을 갈랐다.
“어?”
뒤이어 단말마의 의문과 함께.
퍽!
공이 고무판을 때렸다.
박광수는 바닥을 구르는 야구공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맞았는데?’
공과 배트의 궤적은 분명 하나가 됐다.
그런데 맞지 않았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때 신우가 박스에서 공을 꺼냈다.
“바로 간다!”
“예? 예!”
박광수는 홈플레이트 위로 굴러온 공을 치워내고 다시 타석에 섰다.
‘변화구였나? 하지만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았는데?’
변화구라고 생각하기에는 무언가 이상했다.
‘내가 궤적을 잘 못 판단한 걸 거야.’
그렇게 판단을 내린 박광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 신우가 킥킹을 하는 걸 지켜봤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도 비슷한 느낌으로 가봐. 이번에는 중지를 조금 일찍 뗀다는 느낌으로.]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쐐애애액-!
‘이번에야 말로!!’
박광수는 집중해서 타이밍을 맞춰 배트를 돌렸다.
이번에야말로 정확히 타격이 이루어질 거다.
정신을 집중한 탓인지 배트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날 때까지도 시선이 고정됐다.
그리고 공이 배트의 궤적과 일치하는 걸 확인한 순간.
‘어?’
휘릭!
박광수는 볼 수 있었다.
공이 바깥으로 휘어져 나가는 걸 말이다.
더 놀라운 건 공이 떨어졌다.
이 변화는 모두 미세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도 완벽하게 배트의 궤적을 벗어나게끔 말이다.
‘제에에엔...!! 장!!!’
후웅-!!
고요속의 비명과 함께 박광수의 배트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퍽!!
고무판에 공이 부딪혀 땅에 떨어지자 마운드 위에 있던 신우가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스트라이크, 투.”
신우의 말에 박광수가 이를 악물었다.
“또 던져주십쇼!!”
“오케이.”
오기가 발동된 박광수의 요구를 신우는 환영했다.
자신도 충분히 던져볼 필요가 있었다.
이 공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리고 변화구 던질 때는 미리 말씀해주시죠!!”
“무슨 소리야?”
“예?”
신우가 킥킹을 하며 대답을 했다.
“네가 알려줄 필요없다면서? 그리고 내가 던지는 건 다 포심이야!”
“무슨...!”
“그러니까 존 안으로 들어갈 거라고. 제대로 때려라!”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고 신우가 세 번째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큭...!!”
박광수는 날아오는 공의 궤적에 맞춰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후웅!!
앞에서 보았던 두 개의 공.
그 공들은 모두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갔다.
그렇기에 박광수는 처음부터 그 궤적에 맞추어 배트를 돌렸다.
배트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날 때.
박광수는 절망했다.
‘휘어져 나가지...’
쐐애애액-!
‘않는다고?!!’
이번에는 공이 휘지 않고 오히려 덜 떨어지면서 배트의 위를 지나갔다.
후웅-!!
퍽!
허무한 헛스윙과 함께 고무판에 공이 박혔다.
너무 큰 스윙을 한 나머지 하체가 무너져 타석에 주저앉은 박광수는 자신의 무릎을 때리는 공을 보다, 고개를 돌려 마운드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신우가 손 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