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06화 >
* * *
다음 날.
신우는 언제나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으으...”
[일어나자마자 앓는 소리를 내누.]
‘앓는 소리가 아니라 온 몸이 비명을 지릅니다.’
[내일 쉬는 날이니까, 엄살은 그만 피어라.]
‘으으...이걸 엄살이라 하시다니...’
당장이라도 누워서 더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신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그렇게 폼 잡아놓고는.]
[그래도 속 시원히 잘 말했다. 마인드가 아직 애더만.]
[뭐, 이놈이 철이 일찍 든 거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을 들으며 박광수를 떠올렸다.
어제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별 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객실에서 마주쳐도 곧 자리를 피했다.
‘쩝, 좀 쪽팔리네요.’
[뭐가?]
‘결국 제가 한 말은 선배님들의 조언을 그대로 한 거에 불과하잖아요. 그것도 선배님들이 보는 앞에서요.’
[그게 뭐가 쪽팔려?]
[원래 조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거임.]
[너와 우리의 관계는 조금 특별해서 계속 보고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거고.]
‘흠흠,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시청자가 적어서 그런지 훈훈한 채팅이 오갔다.
시즌이 끝난 뒤.
시청자는 떡락을 했다.
경기를 하지 않으니 레전드플레이어들이 찾을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매튜슨이나 스판과 같은 자신에게 무언가 알려주는 걸 즐기는 레전드플레이어들은 매일 같이 찾아왔다.
이런 걸 보면 시청하는 의미는 레전드플레이어들마다 다른 듯 했다.
딸칵-!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준비를 끝낸 신우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실로 나왔을 때.
소파에 앉아 있는 박광수를 볼 수 있었다.
“나오셨습니까?”
“어?”
“가시죠.”
어제 일은 벌써 잊었다는 듯.
박광수가 앞장섰다.
그 모습을 본 신우는 멍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그때 매튜슨의 채팅이 올라갔다.
[저놈도 그냥 포기할 놈은 아닌가 보네.]
‘그러게요.’
[저러다가 갑자기 포기할 수도 있음. 지금은 너한테 빡쳐서 오기가 생긴 걸 수도 있거든.]
[뭐, 그거야 두고보면 알겠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에 동의하며 신우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 * *
결론적으로 말하면 매튜슨의 말이 정답이었다.
박광수는 그냥 포기할 놈이 아니었다.
마치 악에 받친 사람처럼 훈련에 모든 걸 쏟아냈다.
“흐윽...! 우웩!!”
물론 바로 신우만큼 따라오진 못했다.
하지만 따라오려고 노력했다.
[첫 번째는 통과했네.]
매튜슨의 말대로였다.
할 수 없다고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나아갈 수 있다.
원래의 길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괜찮냐?”
신우는 헛구역질까지 하는 박광수에게 물을 건넸다.
그걸 조금씩 들이킨 박광수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죽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선배님.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뭔데?”
“원래 이런 훈련을 해오신 겁니까? 한국에 계실 때부터?”
“전혀. 한국에 있을 때는 그냥 구단에서 시키는 것만 했지. 개인훈련은 거의 안했어.”
박광수가 의문어린 시선으로 신우를 바라봤다.
답을 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부를 알려줄 순 없지만 궁금증은 해결해줄 수 있기에 신우가 말을 이어갔다.
“우연찮게 야구를 가르쳐주는 분들을 만났어. 그분들을 믿고 훈련을 했지. 그렇게 마이너리그를 갔는데, 딱 보이더라고.”
“뭐가요?”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는 선수, 갈 수 없는 선수.”
“정말 그런 게 보입니까?”
“응. 훈련량이 다르거든. 메이저리그를 간절하게 노리는 선수들은 마이너시절부터 빡세도록 훈련을 해. 하지만 간절하지 않은 선수들은 설렁설렁해. 물론 이러한 차이가 꼭 결과로 이어지진 않지.”
트리플A에서 머물던 1년.
신우는 많은 걸 봤다.
그리고 느꼈다.
그렇기에 더욱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그 뒤로는 계속 훈련을 해왔지. 밀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야.”
“으음...”
“위로 가는 건 결국 남보다 더 노력한 사람이더라고. 난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더 빡세게 할 수밖에 없는 거고.”
삐삑-!
그때 스마트워치의 시간이 울렸다.
“난 다시 훈련 시작이다.”
그 말을 남기고 신우는 다시 훈련에 들어갔다.
신우의 훈련은 화려하지 않았다.
짜여진 프로그램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도 야구와 관련된 훈련은 전혀 없었다.
지금 하는 훈련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정말 경이로운 사람이야.”
“도널드.”
“루스에게 들었지? 이 훈련이 오버워크가 아니라는 거.”
어제 훈련장에 오면서 들었다.
하지만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루스의 말대로라면 이 훈련은 체력을 늘려주는 거라면서?”
“맞아. 메이저리그의 혹독한 한시즌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주는 단계지.”
“그럼 왜 다른 선수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 거야?”
“간단해. 죽을만큼 힘들고 지루하니까. 너도 해봐서 알지만, 이 훈련에는 화려함이란 전혀 없어. 그저 뛰고 헤엄치고 기구를 드는 게 전부지.”
기초적인 훈련들.
그것을 반복하는 신우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저거야말로 시즌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돼. 내가 아는 한 종목을 대표하는 선수들은 기초적인 체력훈련을 등한시하지 않는다.”
“언제나?”
“최고의 위치에 올라간 지금도 그들은 기초체력훈련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어.”
도널드의 말에 박광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즉 좀 알려주지.”
그 말과 함께 훈련에 나서는 박광수를 보며 도널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전의 너였다면 내 말을 듣지 않았을 거다. 예전처럼 말이지.’
도널드와 루스는 4년동안 박광수와 함께 했다.
그렇기에 박광수가 프로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프로 2년차를 앞두고 선배들이란 사람들과 온 박광수는 변해 있었다.
이전의 열정적이고 진지했던 모습은 사라졌다.
메이저리그 스타일이라 말하며 짧은 훈련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그를 독려하기도 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설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광수가 믿는 건 선배란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 유명한 프로선수.
이미 성공을 한 그의 말에 박광수는 더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멘토를 얻었어.’
다시 1년이 지나 이곳에 돌아온 박광수의 곁에는 제대로 된 선수가 있었다.
최소한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 인물이 말이다.
“이제야 돈값을 할 수 있겠어.”
도널드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사람을 서포트하기 시작했다.
* * *
신우와 박광수.
두 사람이 훈련하는 트레이닝 센터는 사유지다.
관광지 외곽에 위치해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다면 올 수 없는 곳이었다.
거기에 리조트는 회원제로 운영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훈련이 노출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소문은 언제나 은밀하게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선배님, ESPN이란 곳에서 취재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요.”
“ESPN?”
“예. 이미 찾아온 상태인데, 일단 트레이닝 센터 관리인이 막아두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ESPN은 미국 전역에 방송을 내보내는 거대 방송국이다.
특히 스포츠쪽에서는 탑이라 할 수 있었다.
‘굳이 숨길 필요가 있을까요?’
[없지.]
[오히려 네 이름을 알려준다고 하는데, 전혀 없지.]
신우도 같은 생각이었다.
“괜찮다고 연락해.”
“예, 알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촬영이 결정됐다.
* * *
트레이닝센터에 카메라가 설치됐다.
평소에는 한적한 분위기의 센터지만 오늘만큼은 북적였다.
“5번 카메라는 이쪽으로!”
“선수들의 동선을 잘 체크해!”
바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보던 신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PD를 보곤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이렇게 촬영을 허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훈련에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게 촬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신우는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가볍게 몸을 풀고 있자 어디선가 카메라가 다가와 그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거 좀 긴장되네요.”
“그래? 그럼 그 긴장을 즐겨. 이제 곧 긴장도 느끼지 못할 테니까.”
신우의 말에 박광수가 고개를 저었다.
잊고 있었다.
이 사람은 촬영이 있건 말건 훈련을 대충할리 없다는 걸 말이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도널드의 외침과 함께 두 사람이 트레드밀 위에 섰다.
그리고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의외로 평범하네.”
“이제 시작단계니까.”
PD는 의견을 나누며 촬영을 컨트롤했다.
“오케이! 다음!”
트레이너의 신호와 함께 두 사람이 트레드밀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곧장 철봉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곧 시작된 버터플라이 풀업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신우는 반동을 이용해 순식간에 30개를 끝내고 다시 트레드밀에 올랐다.
“고!”
“광수! 시누는 벌써 다음 세트로 넘어갔어!”
“젠장!!”
뒤이어 박광수 역시 풀업을 끝내고 트레드밀로 올랐다.
‘서킷트레이닝의 일종인가? 하지만 강도가 높지 않아.’
스포츠를 전문으로 촬영하는 감독답게 두 사람의 훈련이 어떤건지 알고 있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겠지?’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30분 뒤.
신우와 박광수 두 사람의 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PD와 스태프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미친...’
‘저게 말이 돼?’
‘도대체 저게 몇키로야?’
신우는 다시 풀업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에는 맨몸이 아니었다.
바벨을 30kg이나 매달고 스트릭풀업을 하고 있었다.
바벨을 달고 반동을 주면 허리에 무리가 갈 수 있다.
그렇기에 신우는 버터플라이 풀업에서 스트릭 풀업으로 자세를 바꾼 것이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철봉을 오르내리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더 놀라운 건, 세트를 끝낸 신우가 다시 트레드밀로 올라가 다음 세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다고?”
“도대체 몇 세트를 하는 거야?”
그 모습을 보는 스태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PD 역시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이미 한국에서 온 동료는 쓰러져 있다. 저 남자의 피지컬도 나쁘지 않은데, 체력은 시누를 따라가지고 못하고 있어.’
PD의 시선이 박광수에게 말했다.
박광수는 일찌감치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저 남자의 체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야. 그저 시누의 체력이 비상식적인 수준인 거다.’
이러한 훈련을 한다면 누구라도 쓰러질 거다.
쓰러지지 않는 쪽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그가 이런 고강도의 훈련을 계속 하는 이유는 하나겠지.’
신우가 작년에 공언한 한 마디.
선발로 전환하겠다.
그 소식은 미국에도 화제가 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핫한 투수가 신우였으니 말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가 성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공언했던 기록들을 작년에 모두 이루었어.’
최다세이브를 갱신하겠다는 공언.
일부 전문가들은 그의 정신을 감정해야 된다는 격한 표현까지 쓰며 신우의 말은 허언이 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해내고야 말았다.
그렇기에 대중은 열광했다.
마치 예고홈런을 때려낸 베이브루스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이번에도 그가 선발전환을 해낼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에 또 한 번의 파장이 일어날 거다.
그리고.
‘메츠는 시누와 연장계약을 맺지 않은 걸 후회하겠지.’
뭐가 되었건 방송국 입장에서는 최고의 아이템이었다.
그렇기에 PD는 신우를 관찰하며 촬영을 이어나갔다.
* * *
훈련을 시작한지 어느덧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슬슬 훈련도 끝나가네.”
박광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제 연락이 왔다.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이 되었다는 연락이었다.
‘작년에는 1차는 붙었지만 2차에서 떨어졌지.’
굴욕이었다.
신인왕을 타고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스타선수와 합숙도 했다.
당시에도 모든 비용을 그가 내면서 이루어진 합숙이었다.
‘멍청했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 선택이 얼마나 멍청한지 알 수 있었다.
신우와 진행한 훈련을 통해 이것이 진짜 메이저리거의 훈련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했던 건 모두 헛짓에 불과했어.’
2군에 있으면서 흔히 들었던 말.
메이저리그는 원래 훈련을 짧게 해.
헛소리라는 건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단체훈련은 짧은 시간만 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미치도록 노력한다.
최소한 신우는 그러했다.
‘저런 노력을 했으니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거다.’
고작 한 달의 짧은 합숙.
하지만 박광수가 얻은 건 작지 않았다.
최소한 그가 모르는 사이 마인드가 바뀌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광수야!!”
“예, 선배님!”
그때 멀리서 신우가 박광수를 불렀다.
그의 손에는 글러브와 배트가 들려 있었다.
“와서 타석에 좀 서있어라.”
예상치 못한 이벤트에 박광수의 눈이 커졌다.
“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진짜 메이저리그 톱에 위치한 선수의 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제가 들겠습니다!”
박광수가 장비를 들고 가자 신우는 편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오늘은 가르쳐주셔야 됩니다.’
[물론이지.]
[이제 슬슬 너도 준비가 됐지.]
[무엇보다 이 전지훈련도 슬슬 끝날 때가 됐고.]
오늘로서 배울 수 있게 됐다.
귀국길에서 그러한 인터뷰를 하면서 얻은 대가인 무빙패스트볼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