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04화 >
* * *
12월 중순.
신우는 광고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브리핑했던 대로 오늘의 촬영컨셉은 간단합니다. 그러니 너무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돼요.”
“예.”
김이나의 설명을 들으며 촬영장에 들어섰다.
촬영장에는 이미 수많은 스태프들이 모여 있었다.
“오오...정신우 선수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정말 큰데?”
스태프들이 감탄을 할 때.
신우가 패딩을 벗었다.
“오오...뭐야?”
“패딩을 벗어도 몸이 큰 건 사라지지 않네.”
“와...진짜 몸이 좋다.”
“어깨 딱 벌어진 거 봐라. 야구선수가 아니라 수영선수 아니야?”
스태프들의 감상은 김이나의 귀에도 들려왔다.
‘매일 봐서 변화를 잘 몰랐는데, 듣고보니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근육이 커진 느낌이야.’
“오! 김 실장!”
그때 감독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최 감독님. 오랜만이에요!”
“그러게. 잘 지냈지?”
“덕분에 잘 지냈죠. 참, 여기는 정신우 선수.”
“안녕하십니까?”
“반가워요. 최영환 감독이에요. 이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까 핏이 완전 모델이네.”
“감사합니다.”
“오늘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오겠어. 컨셉에 대해서는 알고 있죠?”
“예.”
“좋아요. 그럼 아직 여배우가 도착하지 않으셨으니 잠깐 대기하고 계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오늘 촬영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상대 배우가 있었기에 일단은 대기해야 했다.
대기실로 이동한 신우는 곧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다시 한 번 손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똑똑-!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스태프가 들어왔다.
“정신우님, 이번 촬영에 입을 정장이랑 그리고 이건 악세사리에요. 한 번 체크해주시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전 잠깐 나가 있을게요.”
김이나가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대기하고 있을 때.
“어?”
“왜 이러지?”
갑자기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김 실장님! 잠깐 들어오셔야겠어요!”
“네?”
김이나가 급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신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와이셔츠가 쪼여보였기 때문이다.
“사이즈가 작아요.”
“예? 하지만 저번에 실측했었잖아요?”
“네. 그런데 그때보다 사이즈가 커지셨어요.”
“예?”
김이나의 눈이 커졌다.
실측을 한 건 한 달 전이었다.
즉, 그 짧은 시간동안 사이즈가 커졌다는 뜻이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방법이 없나요?”
“잠시만요. 일단 저희쪽도 회의를 해볼게요.”
“네. 부탁 좀 드릴게요.”
스태프와 김이나가 바빠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설마 사이즈가 커졌을 줄은 몰랐네요.’
[좀 빡세게 굴리긴 했나?]
‘빡세긴 했죠...’
[크흠...]
왜인지 모르지만 매튜슨의 채팅에서 당혹감이 느껴지는 신우였다.
* * *
“자, 촬영시작하겠습니다.”
다행히도 촬영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업체측에서 바로 한치수가 큰 정장을 보내주었고 지장 없이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오케이! 아주 좋아요!”
신우는 사전미팅대로 포즈를 잡으며 촬영에 임했다.
이번 촬영은 TV광고와 화보촬영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래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상대배역이 있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자, 이번에는 지연씨가 신우씨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포즈를 잡을게요.”
“어...너무 크셔서 좀 어색한데요?”
상대배역인 김지연이 웃으며 말했다.
신우의 키가 190cm가 넘으니 웬만한 여성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하! 그건 그렇네. 그럼 자세를 바꿔서 해볼까요?”
“네~”
김지연은 광고촬영의 경험이 많은 듯 분위기를 잘 유도해나갔다.
덕분에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이 됐다.
하지만 분량이 꽤 됐기에 저녁이 되어서야 모든 촬영이 마무리됐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촬영이 끝난 후.
옷을 갈아입고 대기실을 나오자 스태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신우씨! 혹시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도요!”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그런데 제가 공을...”
“공은 저희들이 준비했습니다!”
스태프들은 철두철미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메이저리그 공인구를 꺼내는 그들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이번에 촬영하신다고 하셔서 단체로 구매를 해뒀죠.”
“하하...”
신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사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퇴근시간이 늦어졌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새 시즌에도 꼭 좋은 성적 올려주세요!!”
“멀리서나마 응원할게요!!”
스태프들의 배웅을 받으며 신우는 김이나와 함께 촬영장을 떠났다.
“고생하셨어요.”
“김 실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일정은 모두 마무리됐어요. 원하시면 더 잡아드릴 수도 있고요.”
“아닙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가야죠.”
“네? 본격적이요? 하지만 이미...”
“아직은 준비단계입니다. 체력을 먼저 올려둬야 본격적인 기술훈련에 들어갈 수 있거든요.”
김이나는 경악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게 준비단계라니 말이다.
“한국에서 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괌이나 따뜻한 곳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곳에서 훈련을 해야 몸 만드는 게 좋거든요.”
“아...그럼 곧 한국을 떠나시겠네요.”
“예. 아마 크리스마스 전으로 해서 가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군요.”
대화가 마무리 되어갈 때쯤.
지잉-!
신우의 전화가 울렸다.
* * *
다음 날.
신우는 신라호텔의 라운지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지배인이 곧 나와 그를 안내했다.
안내받은 자리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아, 코치님!”
“오랜만이야.”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곧 두 사람의 앞에 음료와 다과가 놓였다.
두 사람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올 시즌 정말 대단했습니다. 코치님과 상대할 때 분명 성공하실 거라 생각했는데...설마 이 정도의 기록을 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고맙다. 너도 신인왕 받았다면서?”
“예, 작년에 받았습니다. 올해는 말아먹었지만요.”
박광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예전과 많이 달라졌네.’
[그러게.]
[예전에는 자신감이 넘쳤던 애 아님?]
[지금은 완전 쭈구리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처럼 박광수는 과거와 달라져 있었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던 모습은 없어졌다.
그 이유를 대충 알 수 있었다.
‘성적이 떨어지면 저렇게 될 수밖에 없지.’
그는 어릴 때부터 실패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즉, 처음으로 실패한 것이다.
그렇기에 절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저...코치님.”
“응?”
“혹시 저와 함께 훈련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훈련을?”
“예. 작년에는 제가 겨울훈련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구단의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하긴 했는데...어쨌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배님의 훈련을 좀 배우고 싶습니다.”
“흠...”
신우는 고민에 잠겼다.
누군가와 같이 훈련을 해본적이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컨디션이 무너지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물론 비용은 제가 다 대겠습니다. 이건 선배님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같이 훈련을 해주시는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 그러면 내가 오히려 부담이 되는데...”
“아닙니다. 원래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겨울 전지훈련을 다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계약이 되어있어 한 명이 더 간다고 금액이 크게 늘어나진 않습니다.”
잊고 있었다.
이 녀석 부자라는 걸.
“그래? 훈련은 어디로 가는데?”
“하와이로 갑니다!”
정정한다.
이 녀석 재벌 3세였다는 걸 잊고 있었다.
사실 신우도 돈이 궁하지는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하와이에서 전지훈련캠프를 차릴 정도는 충분했다.
하지만.
[파트너가 있다면 더 효율이 좋아진다.]
[게다가 타격이니 기술훈련할 때 꽤 도움이 되겠네.]
[공짠데 거절할 이유는 없을 듯?]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파트너가 합류하게 됐다.
* * *
12월 20일.
신우는 한국을 떠났다.
‘어머니가 홀가분하게 보내주셔서 다행이야.’
[홀가분하시겠냐?]
[그냥 겉으로만 그렇게 표현하신 거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이 맞을 것이다.
“선배님, 그런데 오늘 기자들은 안나왔던데요?”
그때 옆자리에 앉은 박광수가 물었다.
“아아, 매니지먼트쪽에 부탁해서 언론쪽이 모르게 출국할 수 있게 좀 도와달라고 했거든.”
“언론이 싫으신가 봅니다?”
“어휴...저번에 입국할 때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출국할 때도 그 꼴을 당할 생각을 하면...그냥 입국할 때만 당하는 게 좋지.”
“그러시군요.”
박광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까지만 코치로 부르던 그에게 선배라 부르라고 했다.
이제는 코치가 아닌 선수였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신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퍼스트클래스라니,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
이번 비행기표도 박광수가 마련해주었다.
끽해야 비즈니스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퍼스트클래스를 장만해주었다.
자주 타고 다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선물을 받은 티켓이었다.
한국에 돌아올 때도 선물을 받은 게 아니었다면 아마 비즈니스를 탔을 것이다.
천만원이 넘는 금액은 아직 부담되는 신우였다.
하지만.
“원래 비행기는 퍼클이죠!”
재벌 3세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대답을 들은 신우는 부담감을 떨쳐내고 의자를 눕혀 휴식을 취했다.
“벌써 주무십니까?”
“훈련에 대비하려면 쉴 수 있을 때 쉬어야지. 너도 좀 쉬어라.”
“저는 영화 좀 보다가 자겠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적당히 쉬어.”
“예.”
박광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릴 때부터 전지훈련을 다니며 훈련을 했다.
그렇기에 고강도 훈련에 자신이 있었다.
‘메이저리거만의 특별한 훈련이 있을 거야. 그걸 배울 수만 있다면 난 다시 올라갈 수 있다.’
박광수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다시 되새겼다.
그렇게 각자의 생각을 가진 채, 두 선수가 하와이로 향했다.
* * *
하와이에 도착한 신우는 숙소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오...쩐다.”
“괜찮죠? 빌라형식인데. 독채로 되어 있고 각 객실이 떨어져 있어서 로비를 제외하고는 다른 손님을 마주칠 일이 없어요.”
“그거 좋네.”
“원래 아파트를 구입할까도 생각했는데, 관리도 문제가 되고 해외에 재산이 잡히면 좀 그렇거든요. 그래서 그냥 여기 회원권 구매해서 훈련때마다 사용하고 있죠.”
“오호...”
아파트를 구입하다니.
재벌의 클라스는 확실히 다른 듯 했다.
[너도 몇 년만 기다려 임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확실히 돈이 있으면 훈련에도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있으니 좋을 듯 했다.
미래의 성공한 자신을 떠올리며 신우는 객실로 향했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객실은 한 마디로 고급아파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객실에서 굳이 나가지 않아도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고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풍경이 매우 좋았다.
“크...역시 돈이 좋네.”
짧은 감탄을 터트린 신우는 짐을 풀고 거실로 나왔다.
때마침 박광수도 거실로 나오며 물었다.
“선배님, 훈련센터의 트레이너가 도착했답니다.”
“그래?”
박광수는 하와이에 훈련센터를 계약하고 트레이너를 고용했다.
그들이 도착한 것이다.
잠시 후.
객실로 두 명의 남자트레이너와 한 명의 여성이 들어왔다.
“이 분은 웨이트 트레이너인 루스고요.”
“헬로우, 미스터 정. 당신의 경기를 즐겁게 봤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도널드. 전체적인 컨디션을 체크해줄 분이에요. 마사지쪽으로도 유명하시고요.”
“도널드입니다. 당신을 도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쪽은 식단을 책임져줄 이사벨 박사님.”
“이사벨이에요.”
“신우 정입니다.”
각자의 소개가 끝난 뒤.
신우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번 훈련은 제가 프로그램을 짜두었습니다.”
신우는 미리 준비한 세 장의 종이를 건넸다.
각 파트에 필요한 프로그램들이었다.
그리고 그걸 본 세 사람은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Holy shit!”
“What the...!”
“Oh my god! 시누, 정말 이 프로그램대로 하는 건가요?”
세 사람의 반응에 박광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갈 겁니다.”
그렇게 신우는 전지훈련의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