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103화 (103/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03화 >

* * *

이동진 감독은 현재 KBO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한국시리즈 2회 우승에 빛나는 인물로 2025월드베이스볼클래식의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대표팀 감독이란 자리는 부담스런 자리였다.

잘해도 본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는 맡아야 했다.

대표팀 전담 감독을 고용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도쿄올림픽의 실패 이후 공석이 된 자리를 누군가는 맡아야 했고 결국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감독이 맡는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갔다.

“언제쯤 오지?”

이동진 감독이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올해 48세가 된 이동진은 감독은 물론이거니와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나이가 젊은편에 속했다.

투수코치를 지내고 있는 이진철이 그와 동기라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빠르게 감독이 됐는지 알 수 있었다.

“곧 올 거야. 그런데 뭐 그렇게 긴장을 하고 있어?”

“메이저리거잖아.”

“그렇다고 선수한테 긴장하는 감독이 어딨나?”

“처음 보는 선수인데 당연히 긴장되지. 그리고 어디 보통 선수인가? 메이저리그를 아주 박살낸 선수인데.”

친구인 이동진의 말에 이진철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의 말에 틀린 건 없었다.

단지 한국시리즈에서 2회나 우승을 한 감독이 저런 말을 하니 웃긴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평소 성격을 알기에 웃어넘기며 시간을 확인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왔나 보군. 들어오게.”

뒤이어 문이 열리며 신우가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응, 잘 지냈지?”

“예, 코치님. 잘 지내셨죠?”

“캠프 준비하느라 머리만 아프지. 참, 인사해. 여기는 이동진 대표팀 감독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신우라고 합니다.”

“나도 반갑네. 이동진이야.”

방금전만 하더라도 떨린다고 했던 이동진이다.

하지만 지금은 제법 중후한 멋을 내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감독이니만큼 자존심을 챙겨주며 각자 자리에 앉았다.

곧 음식이 나오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시작됐다.

“자네의 활약 덕분에 아침마다 눈이 떠지더라고. 정말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었어.”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니야. 자네 활약 덕분에 죽어가던 국내야구의 흥행에 다시 불씨가 붙었어. 작년 대비 관중이 15퍼센트가 증가했어.”

“데블스 관중이 가장 많이 늘었지.”

다양한 인터뷰를 했기에 알고 있던 내용이다.

특히 데블스의 관중이 늘었다는 건 신기했다.

자신과 관련해서 악평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언론에 자주 거론이 되고 신우와 연관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기다 각 구단들도 2군을 더 정밀하게 체크하기 시작했지.”

“2군을요?”

“바로 자네와 같은 숨은 진주를 찾아내기 위해서 말이야.”

이건 다른 의미로 감격이었다.

2군에서 오래 지냈던 신우였기에 그곳의 생리를 잘 안다.

처음 프로에 입문하면 열정과 꿈에 넘친다.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는 것 같고 언제든지 노력하면 1군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1년, 2년.

열정은 점점 사그라들고 꿈은 현실로 바뀐다.

매년 새로운 진주들이 들어오니 과거의 진주들은 빛을 잃고 점점 진흙속으로 파묻힌다.

결국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이들이 많았다.

“여러모로 자네가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 고맙네.”

“아닙니다. 저는 그냥 제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요.”

덕담이 오가며 이야기꽃이 피어갔다.

식사가 끝나고 세 사람의 앞에 차와 디저트가 놓였다.

차를 한모금 마신 이동진의 시선이 이진철에게 향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 이진철이 본론을 꺼냈다.

“신우야.”

“예, 코치님.”

“오늘 이렇게 만나자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WBC 때문이다.”

신우의 시선이 이진철에게 향했다.

“너도 알겠지만, 이번 WBC는 시즌종료가 된 11월에 열린다. 메이저리그 선수협과 사무국이 서로 협상을 통해 대회기간을 뒤로 미루었지.”

[잘한거지. 선수들은 대부분 시즌에 맞춰 몸상태를 끌어올리는데, 그걸 한 달이나 먼저 시작하면 정상컨디션과 달라지니까.]

[거기다 비시즌에 몸상태를 끌어올리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걸 일찍 하면서 루틴이 깨지면 선수한테는 큰 타격이 오거든.]

실제 그런 적이 있었다.

WBC에 출전했던 선수가 같은 해, 시즌을 망친 것이다.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니 선수협에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협상 끝에 결국 2025시즌에 열리는 6회 대회에서는 경기개최를 뒤로 미루는 방안이 채택됐다.

“사실 이것도 말이 많긴 하지. 시즌이 끝나고 몸이 지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휴식이란 루틴을 건너뛰는 거니까 말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일단 뭐라도 해봐야지.”

두 사람의 대화에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해봐야 답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야기가 길어졌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사실 자네가 대표팀에 합류해줬으면 해서 꺼냈네.”

대표팀 합류.

선발이 되더라도 선수가 거부하면 대표팀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특히 신우 같은 메이저리거라면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의사를 물어보고 결정을 해야 했다.

대표팀 엔트리는 총 3회에 걸쳐서 발표한다.

1차 엔트리에서는 대부분의 선수가 포함된다.

이 단계에서는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포함되는 경우도 많았다.

2차 엔트리에서는 어느 정도 걸러진다.

선수들의 의사를 듣고 가장 최적의 인원을 뽑는다.

최종엔트리는 말 그대로 확정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최고의 전력을 유지하는 게 기본이었다.

물론 언제나 그게 명분이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자네가 군복무를 한 것도 알고 있어. 애초에 이번 대회는 병역과는 무관한 대회기도 하고 말이야.”

국가에서 선수에게 병역혜택을 주는 건 아시안게임부터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은 병역과는 전혀 무관한 대회.

거기다 신우는 이미 현역으로 군문제를 해결한 선수였다.

만약 병역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메리트가 없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고려해주지 않겠나?”

대표팀 입장에서는 신우의 합류가 절실했다.

현재 KBO의 상태는 심각했다.

국가대표 에이스라 불릴 수 있는 선수는 전무한 실정.

각 팀의 1선발은 이미 외국인 선수에게 자리를 내준지 오래다.

자연스레 대표팀에서도 에이스를 맡길 투수가 사라졌다.

일본은 오타니와 같은 선수가 매년 나타나는 것에 비해서 말이다.

‘신우가 와주면 우리에게는 엄청난 전력이 된다.’

이번 대표팀 서브코치로 합류하게 될 이진철.

그는 신우를 가장 가까이에서 봐왔다.

그렇기에 신우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고 있었다.

‘선발전환에 실패하더라도 올해 보여준 압도적인 세이브능력이라면 팀을 운용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거기에 만약 선발전환에 성공한다면...’

언론이나 팬들은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야구관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메이저리그에서 선발로 이겨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진철만큼은 달랐다.

그는 신우가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과거에도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타니 이상의 선발을 얻게 되는 셈이야.’

그렇기에 신우의 합류가 절실했다.

제대로 된 팀을 꾸리기 위해서 말이다.

이동진과 이진철은 떨리는 마음으로 신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죄송하지만 당장 확답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그...그런가?”

“예. 일단 에이전시와도 이야기를 나누어야 되고 가장 중요한 건 현재는 선발전환에 집중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군...하긴, 지금 자네는 그것만 생각해도 정신이 없겠어. 미안하네, 내가 너무 우리쪽 생각만 했군.”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쉬웠다.

확답까지는 아니어도 긍정적인 대답을 듣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때 신우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만약 선발전환에 성공하고 이번 시즌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다면 그때는 긍정적으로 합류를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그게 정말인가?”

“예. 물론 확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당연하지! 검토만 해줘도 환영이라네!”

그렇게 식사자리가 마무리됐다.

* * *

식사가 끝나고 신우는 이진철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감독님을 처음 뵙는데, 저를 많이 배려해주시네요.”

“널 배려하지 않을 감독이 어디에 있겠냐? 메이저리그를 뒤흔들어놓은 투수인데. 어떻게든 넣고 싶어지지. 게다가 요즘 KBO 상황이 영 아니다.”

“그 정도에요?”

“응. 네가 2군에 있을 때보다 더 안 좋아졌어. 그나마 이름이 있던 애들도 부상에다가 기량이 떨어져서 저 친구가 고민이 많아.”

“아...”

이제야 이동진의 반응을 알 수 있었다.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사실 한시름 덜었다.”

“확답은 아닌데요. 망하면 일단 제 밥그릇부터 챙길 겁니다.”

“그게 맞는 거지. 그때는 내가 이 감독을 설득시킬게.”

“감사함다. 그런데 코치님.”

“어?”

“그렇게 선수가 없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대표팀 감독님이 저렇게 말씀하실 줄은 예상밖이었습니다.”

“후우...투수쪽은 원래 부족했고 요즘은 타자쪽도 부족한 실정이야.”

신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부족한데 1군을 뚫지 못했다는 건...’

[개판이었단 거지.]

[우리도 처음 너 봤을 때는 뭐 이런 놈이 프로생활을 하나 했음.]

[우리 안만났으면 야구 접었을 걸?]

‘윽...!’

팩트폭력에 심장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그런데 타자도 부족하다고요?”

“어. 요즘 돋보이는 선수가 전반적으로 줄었어.”

“하지만 그 친구는 잘 하고 있지 않아요?”

“누구?”

“박광수요.”

중앙대에서 짧은 인연을 맺었던 선수였다.

2차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이 될 정도로 재능이 있던 선수.

거기다가.

[아, 그 녀석.]

[참 잘 쳤지.]

[재능이 넘쳐 흐르는 놈이었어.]

[아마 콥이나 루스, 애런이 봤으면 군침 좀 흘렸을 거야.]

레전드플레이어들 역시 그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라면 한국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아...그 녀석 잘 나갔지. 작년에 신인왕도 받았고.”

“오! 첫해에 바로 1군에 간 건가요?”

“응. 대학에 들어간 뒤에 넘어간 거기 때문에 피지컬이나 실력은 고졸 애들하고는 비교가 힘들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녀석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넘어왔어도 바로 신인왕 먹었을 거 같지만.”

“크...역시 쩌는 녀석이네요. 올해는요?”

“나가리됐어.”

“예?”

신우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작년에 날아다녔는데, 올해 부상을 입었어. 거기다가 멘탈도 많이 흔들리는 거 같더라고.”

“멘탈이 흔들려요?”

“너도 알겠지만 페넌트레이스를 치르다보면 자연스레 슬럼프가 찾아오잖아.”

알고 있다.

자신 역시 그런 일을 수도 없이 겪었다.

그때마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이 조언을 해주고 신우를 독려했다.

덕분에 슬럼프에 빠질 수가 없었다.

“그걸 이겨내려면 주변에서 조언을 해줘야 되는데. 사실 조언이란 것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보니까, 제대로 먹히지 않은 거지.”

주관적인 조언.

그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슬럼프가 찾아오는 케이스도 달랐다.

거기에 맞춘 조언을 해주는 게 가장 베스트였다.

레전드플레이어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슬럼프가 깊어지고 결국에는 작년의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어. 올해는 1군에서 뛴 기간도 절반밖에 되지 않고 말이야.”

“으음...”

“그렇지 않아도 얼마전에 만났을 때, 네 이야기 하더라.”

“제 이야기요?”

“그래. 자신과 상대했던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면서 말이야.”

“그렇군요.”

박광수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다.

하지만 신경은 쓰였다.

자신이 처음으로 코치로서 만났던 선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없지.’

그 역시 프로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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