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98화 >
* * *
신우의 발언은 곧장 기사가 되어 나갔다.
조금 와전되어서 말이다.
「“선발에 도전하겠다!” 귀국기자회견에서 공언한 정신우 선수!」
「메이저리그 최다세이브의 주인공 정신우, 선발로 성공할까?」
신우는 도전해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언론은 마치 그의 도전이 기정사실이 된 것처럼 보도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네티즌들에게 와전된 정보를 전달했다.
- 선발전환은 좀...
ㄴ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님?
ㄴㄴ 구단과 이야기 된 건가?
ㄴㄴㄴ 클로저로 잘 하고 있는데, 뜬금포네.
- BK의 재림인가.
ㄴ 불길한 소리 ㄴ
ㄴㄴ 불길한 소리가 아니라 현실이지. 선발과 클로저의 갭이 얼마나 큰데.
ㄴㄴㄴ ㅇㅈ.
- 백퍼 실패한다에 내 파이어에그를 걸지.
ㄴ 내가 고자라니!!!
ㄴㄴ 더러워서 누가 가져감?
네티즌의 반응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수많은 투수가 클로저에서 선발로 전환했다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외국으로도 바로 퍼져나갔다.
「뉴욕메츠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투수인 정신우가 귀국 인터뷰에서 선발로 전환하겠다는 발언을 해서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략)
메이저리그의 정통한 전문가인 야마구치 요시키씨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정신우는 훌륭한 클로저로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하지만 선발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라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다른 대다수 전문가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며 정신우의 내년 행보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일본은 바로 기사화를 했다.
그것도 가장 거대한 신문사 중 하나인 아사히신문과 요리우리신문에 실리며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ㅋㅋㅋㅋ 미쳤네
-잠깐 잘 나가니까, 뇌가 터진 듯.
-부상병동인 오타니보다 나은 듯?
ㄴ 너 조센징이지?
ㄴㄴ 병신새끼. 너희 나라로 꺼져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뒤이어 미국에도 관련 기사가 떴다.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발전환?!」
당연하게도 위와 같은 내용은 메츠의 단장인 베켓에게 바로 알려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기사를 확인한 베켓은 화를 냈다.
그리고 그 화를 낸 상대는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스캇 보라스였다.
“보는 그대로라네.”
“갑자기 선발이라니?! 그리고 마치 확정적인 듯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선수의 보직은 구단이 결정한다.
연차가 쌓이고 FA와 마이너갈등이 불가능한 베테랑들의 경우는 제외다.
그들은 서비스타임을 모두 채우고 선수로서 보여준 게 있기 때문에 구단입장에서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전문마무리투수가 선발로 전환하겠다 이야기를 하면 최소한의 기회는 준다.
하지만 신우는 달랐다.
“아직 서비스타임을 2년도 채우지 않은 선수야! 이제 막 루키시즌을 치른 선수가 자기 마음대로 이런 발표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일단 진정 좀 하지. 그 기사는 다소 와전이 되어 있으니 말이야.”
“와전이 됐다고?”
“미스터 정은 선발전환을 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어. 도전을 해보고 싶다 했지.”
“그게 무슨 말 장난...!”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현재 메츠에 확실한 1선발이 누가 있지? 리올? 그는 경험이 부족해. 연륜은 있지만 1선발로 뛸 수 있는 재목은 아니야.”
보라스는 정확하고 냉정하게 평가내렸다.
리올은 어디까지나 예상치 못한 잭팟이었다.
2년 동안 36경기에 등판해 20승을 올렸다.
매년 10승 이상씩은 해준 셈이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히 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 팀의 에이스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로테이션을 지킬 수 있는 선수.
그것이 리올에 대한 냉정한 평가였다.
“하지만 미스터 정이라면 다르지. 그의 루키시즌 보라고. 어마어마한 성적을 올렸어. ERA는 제로에 연속이닝 무실점기록은 67이닝까지 늘렸지. 거기에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시즌 최고 세이브보유자가 됐어!”
보라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해가 됐다.
실로 엄청난 기록이었다.
고작 루키시즌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선수가 역사상 또 나타날까?”
“으음...”
10년이나 100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하는 선수가 아니다.
역사상 다시 등장할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그런 선수가 만약에 선발로 전환을 해. 그리고 성공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성공한다면 그가 대단한 선발투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꼭 성공만 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
목소리가 누그러진 베켓이었다.
보라스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니 시범경기를 보자는 거지.”
보라스와 신우는 뉴욕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발로 전환하겠다는 것.
그리고 구단을 어떻게 설득한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보라스는 신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구단을 설득하는 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 선발을 준비하십시오.)
호언장담.
그 한 마디를 받았기에 신우는 망설이지 않고 선발을 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라스는 자신의 호언장담을 지키기 위해 베켓을 설득했다.
“미스터정의 재능이라면 시범경기에서 다시 클로저로 전환한다 하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야.”
“으음...”
다른 선수들 같은 경우에도 선발을 준비하다 마무리로 가는 일은 흔했다.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베켓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보라스는 그 흔들림을 정확히 캐치해냈다.
“미스터정이 선발로 전환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가 클로저로서 보여주었던 능력을 다시 보여준다면, 메츠는 역대급 에이스를 얻게 되는 셈이야.”
모든 팀의 염원.
에이스.
만약 신우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면 메츠는 디그롬 은퇴 이후 공석이었던 새로운 에이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누가 선발로 들어간다면 레이먼드를 클로저로 고정시키면 된다. 만약 선발에 실패하면 다시 클로저자리로 보내면 되겠지.’
다른 선수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선발과 클로저의 매커니즘은 다르다.
그것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신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올 시즌 괴물 같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메이저리그 역사를 갈아치우기까지 했다.
그런 신우가 선발에 도전했다가 다시 마무리로 간다고 해서 크게 무너질 거 같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베켓의 마음은 기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보라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 * *
한국에 들어온 신우는 집으로 향했다.
신우가 미국에서 받았던 월급은 어머니에게 대부분 송금했다.
그리고 김포에 아파트를 하나 구매했다.
즉, 신우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셈이었다.
“와...집 좋네요.”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낼만할 거야.”
“안성에서 살던 집과 비교하면 너무 좋은데요?”
“호호, 그렇지?”
신도시에 지어진 아파트라 그런지 무척이나 좋았다.
내부 역시 깔끔하게 인테리어 되어 있었다.
“너무 오래 비웠나보다. 집이 엉망이네. 네 방부터 얼른 치워줄게.”
어머니가 방청소를 하시러 들어간 사이.
신우는 집을 살폈다.
‘정말 좋네.’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30평대 아파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우는 한 번도 이런 집에 살아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말이다.
그렇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어머니도 정말 좋아하시는 거 같고.’
집의 인테리어는 어머니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집을 고르고 인테리어를 꾸미고.
어머니가 얼마나 즐거워하셨는지 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졌다.
[집이 좋군.]
그때 적막이 흐르던 채팅창에 채팅이 올라갔다.
‘매튜슨. 오늘은 채팅방이 조용하네요.’
[작년에도 경험했잖아. 시즌이 끝나면 별로 관심없는거. 타자 애들은 다른 방을 보러 갔다. 우리쪽 시즌이 시작된 것도 있고.]
‘저승에도 시즌이 있어요?’
[심심하니까 몇 명이 모여서 만들었어. 보고 공부하고 이론을 쌓는 것도 좋지만 결국 직접 하는 게 가장 재밌으니까.]
격하게 공감이 갔다.
한 때, 방출을 당하고 잠깐 야구를 쉬었다.
당시 TV에서 야구가 나오면 몸이 근질근질했다.
당장이라도 나가서 공을 던지고 싶었다.
‘저승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군요.’
[야창들이 그렇지 뭐.]
스판의 채팅이 올라왔다.
야창이란 말에 웃음이 터질 뻔 했다.
‘그래도 재밌겠어요.’
상상해봤다.
시대를 호령했던 수많은 레전드플레이어들.
그들이 한데 모여 야구를 하는 모습을.
“아들-! 정리 다 됐어!”
“네.”
신우는 상상을 접고 방으로 들어갔다.
* * *
귀국 후.
하루를 푹 쉬었다.
그리고 곧장 일정을 소화했다.
“...여기까지 저희가 픽스해둔 광고 계약들입니다.”
김태성 실장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설명이 끝나자 김이나가 신우에게 말했다.
“태블릿안에는 저희쪽에서 선별한 광고외에도 AA급 페이를 약속한 곳들이 정리되어 있어요.”
“AA급 페이 이하로 제시한 곳들은 일단 제외했습니다. 모델료가 격차가 크면 아무래도 업계에서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김태성의 설명에도 신우는 말없이 태블릿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 조금 다른 모습에 김이나가 조용히 말했다.
“신우...씨?”
“아...네.”
“혹시 궁금하신 게 있으세요?”
“그...다름이 아니라. 여기 적힌 광고료가 정말인가요?”
“네?”
“공이 하나 더 붙은 게 아닐지...”
신우의 말에 김이나가 미소를 지었다.
“정확한 금액이에요.”
뒤이어 김태성이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현재 정신우 선수는 광고업계에서 S급 모델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톱클래스 배우들과 비슷한 수준의 광고료죠. 스포츠스타들 중에서는 1, 2위를 다툴 정도로 높은 금액입니다. 그만큼 정신우 선수가 거둔 성적과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매우 높습니다.”
메이저리그라는 월드클래스 무대.
그곳의 역사를 바꿔버린 신우였기에 톱클래스 광고료를 받게 됐다.
‘그래도 6개월에 4억이라니.’
신우가 놀란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6개월에 4억.
내년부터 본격적인 광고가 나간다는 걸 감안했을 때, 미국에서 야구만 하고 있어도 엄청난 금액의 부수입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한두곳도 아니고...’
김태성이 설명해준 광고들만 하더라도 무려 8개였다.
태블릿PC에는 수도 없이 많은 광고들이 있었다.
최소 몇천만원에서 억대의 광고료를 주는 곳들이었다.
만약 저걸 다 한다면 1년에 정말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 같았다.
[욕심내누?]
‘그럴리가요.’
스판의 말에 신우는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1달여밖에 되지 않는다.
이후에는 다시 미국으로 가서 훈련할 계획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다른 스케줄도 많이 있었기에 적절한 분배가 필요했다.
[잘 생각했다. 선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야.]
‘예.’
매튜슨의 조언을 들으며 신우는 미팅을 이어갔다.
* * *
신우의 시즌은 마무리됐지만 아직 야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메이저리그는 디비전시리즈가 한창이었고 한국에선 준플레이오프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데블스가 가을야구라니.”
“크으...기적이었지!!”
데블스야구장의 홈구장인 세종 데블스파크.
일찌감치 데블스 팬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팀의 첫 가을야구를 기뻐하고 있었다.
“진짜 올스타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미치는 줄 알았어.”
“그러게 말이야. 총체적 난국이었지. 진짜 구단 수뇌진들 죄다 씹어먹고 싶었다니까.”
“그건 지금도 그렇지 않냐? 어떻게 신우 같은 선수를 방출시키냐?”
“그건 진짜 미친 거지. 그래도 올해 가을야구 왔으니까, 오늘은 봐준다.”
시즌 막판.
극적인 5위 수성으로 와일드카드로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
현재는 준플레이오프까지 올라와 창단 첫 준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기적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응? 그런데 저기 왜 저렇게 소란스럽냐?”
“무슨 사람이 구름떼처럼 몰리는데?”
“누가 왔나?”
대화를 나누던 데블스 팬들은 선수들 전용 출입구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에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우오빠!!”
“정신우 선수!!”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이 몰려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경호를 받고 있는 정신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헐...실화냐?!”
“정신우가 여길 왜 왔어?!”
“대박! 대박!”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사진을 찍기 바빴다.
그리고는 그것을 곧장 SNS에 올렸다.
「데블스파크에 정신우 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