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95화 >
* * *
시리즈 마지막 경기.
두 팀의 선수, 코칭스태프, 그리고 팬들까지.
모든 이들의 긴장감과 집중력은 최고조에 닿아 있었다.
딱-!!
[알론소, 초구를 강타!!]
중심타선이 잘 맞은 타구를 만들어내면.
퍽-!!
[유격수 몸을 날려 캐치!! 곧장 일어나 1루로 송구!!]
뻑-!!
“아웃!!”
[아-! 좋은 타구가 만들어졌지만, 호수비에 막힙니다!!]
수비가 호수비를 펼쳐 안타를 지워버렸다.
이런 양상이 5회까지 이어지며 두 팀은 선취점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점수는 단 1점도 나지 않은 상황! 하지만 경기는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두 팀이 매우 수준높은 경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티켓을 놓고 겨루는 최후의 일전이기에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경기는 계속 이런 분위기로 이어질까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집중력이 매우 높은 상황이지만 단 한 번의 플레이로 집중력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도미노처럼 선수들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 가능성도 있죠.]
경기는 6회로 넘어갔다.
양팀의 투수들은 여전히 타자들을 상대로 좋은 공을 던지며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수비 역시 안타성 타구를 연거푸 잡아내며 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얼마나 이어질까요?’
[곧 깨지겠지.]
[이런 경기는 분위기가 바뀌는 순간, 깨진다.]
분위기가 바뀌는 순간.
그 순간이 뭐가 있을까?
큰 거 한 방이 터지거나 혹은 에러가 나오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거 말고도 있지. 선수가 교체될 때.]
‘투수 교체요?’
[그래. 그리고 갑작스런 부상으로 타자나 수비를 교체해야 될 때도 분위기가 바뀐다.]
[이런 팽팽한 경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대타나 대수비로 나간 선수는 긴장감에 짓눌리게 되어 있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실수가 나오는 이유지.]
[투수도 마찬가지야.]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을 들으니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불펜에서 보고 있지만, 신우 역시 느낄 수 있었다.
그라운드에 흐르고 있는 이 긴장감을 말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숨이 턱 막힐 정도야.’
[그라운드에 있는 애들의 집중력이 최고조라는 소리지.]
제대로 몸을 풀지 않으면 긴장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몸이 굳어버릴 것이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조언을 들은 신우는 일찌감치 몸을 풀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일찍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레이먼드가 다가왔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풀어?”
“이런 경기는 한순간에 요동칠 수도 있으니까. 갑작스레 투입될 때를 대비해야지.”
“아...”
신우의 말은 주위의 투수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투수들은 서로를 바라보다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펜은 곧 몸을 푸는 투수들로 가득 채워졌다.
‘정말 저 녀석은 루키 같지가 않아.’
불펜코치인 글렌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신우가 한 말은 모두 정확했다.
그래서 슬슬 불펜투수들을 준비시키려고 했는데, 그가 먼저 나서서 주도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다른 불펜투수들이 그의 말에 수긍한다는 것이다.
‘이미 불펜에서 시누는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어.’
글렌의 생각을 모른 채, 신우는 경기를 주시하며 몸을 풀었다.
* * *
박빙으로 이어지던 대결.
7회가 끝날 때까지 두 팀은 고무줄을 양쪽에서 잡아 팽팽하게 당기고만 있었다.
언제 고무줄이 끊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
퍽-!
“볼! 베이스 온 볼!!”
[7구 커브를 던졌지만 타자의 배트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좀 아쉬운 공이 들어갔습니다, 쓰리볼에 주자가 없는 상황인데 유인구라니 말이죠.]
[토마스 선수의 움직임을 보았을 때, 이건 실투로 보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타자의 타이밍을 뺏으며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했는데, 공이 더 떨어지면서 볼이 되고 만 거죠. 어쨌건 아쉬운 상황인 건 분명히 맞습니다.]
[무사 주자 1루의 찬스를 맞이하는 카디널스! 반면 위기를 맞은 메츠의 더그아웃도 분주해졌습니다!]
두 번째 투수로 올라온 대니얼.
경험이 많은 그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젠장...공이 제대로 채지지가 않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어깨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숨이 턱 막혀 호흡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차라리 포스트시즌이 더 쉽겠어.’
포스트시즌에서도 경험이 다수 있는 대니얼.
하지만 이런 경기는 처음이었다.
페넌트레이스 마지막까지 와일드카드 티켓을 놓고 싸우다니.
그 압박감은 결국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딱-!
[4구를 강타!!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입니다! 볼넷 이후에 안타까지 내주며 주자 1, 2루의 위기를 맞는 메츠의 대니얼 피셔 투수입니다!]
[이건 좀 위험하네요. 이번에 들어간 공들이 모두 제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포수가 원하는 위치로 단 1개의 공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해설위원이 봐도 명확히 드러나는 상황.
그것을 마이크 감독이 놓쳤을리 없었다.
“불펜에 전화해.”
“예, 시누를 올릴까요?”
베이커 투수코치의 질문에 마이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제 쉬었으니 어느 정도 회복을 했을 테지만...’
마이크 감독이 망설이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오늘 경기는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선수생활의 경험.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는 연장까지 갈 것임을 말이다.
‘신우는 팀이 확실히 이기고 있을 때, 올려야 돼.’
신우는 확실한 믿을맨이었다.
언제든지 올려도 1이닝은 반드시 지울 수 있다.
그렇기에 동점 상황에서 올리는 건 아까웠다.
결정을 내린 마이크가 더그아웃을 나서며 말했다.
“레이먼드를 올려.”
“알겠습니다.”
* * *
불펜에서 글렌이 전화를 받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이먼드의 표정이 굳었다.
[쟤 또 굳었다야.]
[벌써 굳어버리누.]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에 신우도 그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었다.
그때 전화를 끊은 글렌이 이쪽을 바라봤다.
“레이먼드!!”
“예, 예.”
“너부터다.”
“예...”
긴장한 티가 역력한 레이먼드.
하지만 이미 충분한 의견교환 이후 이루어진 선택이기에 글렌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때 신우가 다가가는 게 보였다.
“레이먼드.”
“어?”
“나 세이브 하나 더 올리고 싶다.”
신우의 말을 들은 글렌이 귀를 기울였다.
현 상황에 저게 무슨 소리일까?
“최소한 던질 수 있는 기회라도 내게 주라.”
글렌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 마디로 등판해서 실점을 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자칫 잘못하면 레이먼드의 부담감이 커질 수 있는 상황.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내딛는 순간.
신우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만 믿는다.”
글렌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신우와 레이먼드를 바라봤다.
그때 레이먼드의 표정에 긴장감이 사라지고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나만 믿어라.”
그리고는 불펜을 나갔다.
글렌은 깜짝 놀랐다.
‘레이먼드의 성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이야기를 꺼냈다.’
레이먼드는 자존심이 강했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큰 선수였다.
그런 선수에게 어설픈 조언을 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신우는 오히려 그에게 부탁을 했다.
뻔히 보이는 수였지만 레이먼드에게는 그게 통했다.
‘그러고보니 저 두 사람은 평소에도 사이가 괜찮았지.’
처음에는 사이가 나빴던 두 사람.
하지만 지금은 불펜에서 매일 붙어 다니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신우의 말이 레이먼드에게 통한 것이었다.
‘오늘의 레이먼드는 지켜봐도 되겠어.’
글렌은 기대어린 시선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 * *
뻐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6구!! 타자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세 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처리하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레이먼드 선수!!]
[아-! 오늘 레이먼드의 피칭은 완벽 그 자체입니다. 마치 정신우 선수를 보는 듯 타자들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레이먼드는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8회에 마운드에 오른 레이먼드의 활약으로 분위기는 메츠쪽으로 기울었다.
딱-!!
[루이스 선수 5구를 강타!! 그리고 이 타구는 중견수 앞에 떨어집니다!!]
[살짝 빗맞은 타구지만 중견수 앞에 떨어지면서 출루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타석에는 오늘 2안타 경기를 펼치고 있는 피트 알론소 선수가 들어섭니다!! 앞선 타석에서는 모두 주자가 없는 상태에서 들어섰던 알론소 선수입니다.]
[앞에 나온 안타들이 모두 좋은 타구였기 때문에 이번 타석이 기대됩니다.]
북극곰 피트 알론소의 등장에 씨티필드가 들썩였다.
“피트!! 한 방 날려라!!”
“여기서 경기 끝내자!!”
“네가 홈런 치고 바로 시누가 올라오면 돼!!”
관중들이 원하는 건 홈런이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선취점을 내고 단숨에 승리를 굳히는 것.
수만관중의 기대를 받으며 피트가 타석에 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토마스는 다음 타순들을 확인했다.
‘토마스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오늘 토마스의 타구질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투수를 안정적으로 리드하기 위해서는 토마스를 교체할 순 없었다.
문제는 그 이후의 타순들이었다.
‘미구엘과 베이크의 타격이 좋지 않아.’
유격수인 미구엘과 우익수인 베이크는 오늘 경기에서 아직 안타가 없었다.
앞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고 그들에게 기회가 간다면 점수를 내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어쩔 수 없지.’
만약의 경우지만 미리 대비를 해서 나쁠 건 없었다.
마이크는 직접 전화를 들었다.
* * *
퍽-!
“볼! 베이스 온 볼!!”
구심의 손이 1루를 가리켰다.
타석에 서있던 토마스는 마운드에 있던 투수를 노려보고는 이내 1루로 걸어나갔다.
[볼넷입니다! 정면승부를 피하네요.]
[어쩔 수 없습니다. 토마스 선수의 오늘 타격감은 나쁘지 않으니까요. 알론소를 뜬공 처리하면서 원아웃을 잡은 이상, 굳이 정면승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 타석의 미구엘과 상대할 생각이겠군요.]
[예. 미구엘 선수의 최근 타격감은 썩 좋지 않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모두 범타로 물러섰죠. 거기다 1사 1, 3루라면 더블플레이도 노려볼 수 있습니다.]
영리한 플레이였다.
알론소를 뜬공으로 처리했지만 그와의 승부를 신경쓰다 루이스는 2루 도루에 성공했다.
거기에 외야플라이가 나왔을 때 태그업을 통해 3루까지 진루한 상황.
그라운드볼 하나가 나온다면 점수를 내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1루에 주자가 있다면 그라운드볼로 게임을 끝낼 수 있었다.
모든 계산이 끝난 상황에서 나온 영리한 플레이.
그리고 마이크는 이 플레이를 깨기 위해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여기서 마이크 감독이 나오네요.]
[아무래도 대타를 기용할 듯 합니다. 한 방이 있는 고든 선수 혹은 데이비드를 대타로 내세울 수...]
그때 카메라의 시점이 바뀌었다.
그리고 더그아웃에서 나오는 선수를 클로즈업했다.
[아아-! 더그아웃에서 정신우 선수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정신우의 등장.
헬맷과 배트를 든 그의 모습에 씨티필드가 뜨거워졌다.
“와아아아아-!!”
“시누-!!”
“우-! 우-! 우-! 우-!!”
메츠의 팬들이 일제히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