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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94화 (94/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94화 >

* * *

머리가 백지였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없었다.

호흡은 턱끝까지 몰아쳤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바깥쪽, 체인지업. 낮게 들어와.’

그럼에도 사인을 확인하면 몸이 움직였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듯.

와인드업을 하고 투구에 들어갔다.

신우는 그 움직임에 그저 몸을 맡겼다.

‘공을...’

촤앗-!

스트라이드와 함께 몸의 회전을 시작한 신우가 이내 릴리스포인트에서 공을 던졌다.

‘던져야 돼.’

쐐애애액-!

딱-!

[5구를 강타!! 타구 높게 떴습니다!! 좌익수 앞으로 달려나와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포구합니다! 원아웃!!]

[위력적인 무브먼트는 아니었지만, 타자의 포인트를 어긋나게 하기에는 충분한 공이었습니다.]

첫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갔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두 개.

다시 공을 받은 신우는 평소대로 몸을 돌려 손에 로진을 묻혔다.

‘괜찮은 거냐?’

그 모습에 마이크는 갈등을 했다.

‘이미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8회가 끝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신우는 지쳐 있었다.

하지만 등판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보냈다.

한 타자라도 루상에 내보내면 교체할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신우는 다시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묵직한 구위는 사라지고 구속은 떨어졌다. 그럼에도 아웃카운트를 잡아내고 있어.’

체력은 한계에 달했다는 게 보여지고 있었다.

언제 맞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딱-!

“파울!!”

[파울입니다!]

[이번에 던진 커터는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타자 역시 머리가 복잡한 듯, 제대로 된 타격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꾸역꾸역 카운트를 잡아가는 신우.

그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젠장...’

마이크는 속으로 욕설을 뱉었다.

선수가 전력을 다해 저런 모습을 보이는데 교체할 감독은 없었다.

최소한 마이크는 그럴 수 있는 감독이 아니었다.

‘안타를 하나라도 맞으면...그때 바꾼다.’

마지노선을 결정한 마이크는 말없이 신우를 바라봤다.

딱-!!

“파울!!”

[2구 연속 파울!! 정신우 선수, 투혼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퍽-!

“볼!!”

[타자 역시 침착하게 타구를 지켜보는 상황! 원볼 투스트라이크가 됩니다!]

“헉...헉...”

3구를 연달아 뿌린 신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럼에도 영역은 깨지지 않았다.

이미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

신우는 오직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해야 될 건...’

‘몸쪽 포심.’

사인을 받은 신우가 피처플레이트에 발을 걸쳤다.

그리고 와인드업과 함께 4구를 뿌렸다.

‘공을 던지는 것에만 집중하는 거다!!’

쐐애애액-!!

[4구 던졌습니다!!]

타자가 몸쪽을 파고드는 타구에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그때 공이 좌우로 약하게 흔들렸다.

‘커터?!’

그것을 깨달은 순간 오픈스탠스를 열며 급히 궤적을 바꾸었다.

하지만 공의 궤적은 변하지 않고 배트의 위를 지나가 미트에 꽂혔다.

뻐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투아웃입니다!! 93마일의 포심 패스트볼로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해내는 정신우 선수!! 멋진 삼진을 잡아냅니다!!]

타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흔들렸는데?’

이런 무브먼트는 처음이었다.

공이 심하게 흔들려서 커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커트라도 시킬 생각으로 배트의 궤적을 강제로 바꾸었다.

헌데 포심의 궤적으로 미트에 꽂히다니?

마운드 위의 신우를 바라보는 타자의 눈에는 황당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쉑, 간만에 재밌는 공 던지네.]

[공에 가해지는 손가락의 힘이 양쪽이 미세하게 달라지면서 공의 무브먼트가 심해졌네.]

[의식적으로 중지에 힘을 더 주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바꾸고 있으니 랜덤으로 공이 휘어버리네.]

[회전수가 평소대로였다면 엄청 지저분해졌겠는데?]

[이런 공이면 타자입장에선 싱커인지 커터인지 알아보지도 못할 듯?]

레전드플레이어들도 놀라 채팅이 많아졌다.

하지만 신우는 여전히 그러한 내용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의도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몸이 보내오는 신호에 따라 공을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아쉽군. 이런 감각을 의식하고 던진다면 순식간에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텐데.]

[어쩔 수 없지. 일단 손 끝에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익힐 가능성도 있으니까, 일단 지켜볼 수밖에.]

매튜슨과 스판이 의견을 교환하는 사이.

신우는 세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여기까지 온 거.]

그 모습을 보던 루스가 채팅을 쳤다.

[네가 마무리해라! 애송이!]

[마무리 못 하면 사내가 아니지!!]

뒤이어 타이콥의 채팅도 올라갔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멋지게 삼진으로 마무리해라!]

[빨리 경기 끝내고 좀 쉬자!!]

[임마! 전력을 다해서 가!!]

레프티 그로브, 월터 존슨, 테드 윌리엄스 등.

레전드플레이어들이 신우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우는 세 번째 타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딱-!

“파울!!”

[초구 체인지업을 커트해냅니다!]

퍽-!

“볼!!”

[2구 커터가 보더라인 밖에 꽂힙니다!]

[역시 평소의 제구력이 아닙니다. 포수가 요구한 방향과 정반대로 공이 들어갔어요.]

퍽-!

“볼!!”

[3구 역시 볼이 됩니다. 포심 패스트볼이 너무 낮게 형성됐네요.]

뻐억!!

“스트라이크!!”

[4구, 하이 패스트볼을 그냥 지켜봅니다! 하지만 이건 보더라인에 걸치면서 카운트는 투볼 투스트라이크가 됐습니다!]

마지막이다.

그것을 깨달은 듯 관중석에 적막이 흘렀다.

간혹 짧은 응원이 터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조용히 신우를 주시했다.

‘이걸로 가자.’

토마스가 사인을 냈다.

‘그래.’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을 교환한 투포수!! 정신우 선수가 피처플레이트에 발을 걸칩니다!!]

와인드업을 한 신우는 모든 감각을 신체가 내보내는 신호에 집중시켰다.

모든 정신은 단 하나.

공을 던지는 것에 집중했다.

킥킹과 함께 다리를 차올린 신우는 몸을 비틀어 힘을 모았다.

힘을 아낄 필요는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날카로워진 감각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걸로 끝이다.

‘젖 먹던 힘까지...’

비틀었던 몸을 풀면서 그 힘을 이용해 스트라이드를 뻗었다.

‘쏟는다!!’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며 앞으로 쏠리는 힘을 강제로 멈췄다.

급격한 제동에 몸이 앞으로 쏠렸지만, 신우는 무게중심을 뒤로 둔 채, 골반을 돌리며 돌아가는 하체의 힘을 상체로 끌어올렸다.

하체의 힘이 골반을 지나 상체로 넘어오는 순간.

여전히 뒤에 있던 상체를 앞으로 끌어오며 동시에 회전을 시켰다.

왼손을 당기자 상체의 회전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벽을 만들어 제동을 걸자 뒤에 있던 오른쪽 어깨가 앞으로 넘어왔다.

최대한 뻗은 오른손이 어깨, 등, 그리고 발뒤꿈치와 일직선이 되는 순간.

“흐아아아앗!!!”

괴성에 가까운 기합을 터트린 신우가 공을 때렸다.

쐐애애애애액-!!

[괴성과 함께 5구 던졌습니다!!]

신우의 손을 떠난 공이 굉장한 기세로 날아갔다.

타자는 그것을 보고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이번 공에서 승부가 들어올 거다.’

승부를 걸어올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신우의 손을 떠난 공이 익숙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자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돌렸다.

‘앞에서 포심을 던졌다. 연속해서 던질 리가 없어.’

정확히 예상을 했다.

토마스가 낸 사인은 커터.

그리고 타자 역시 그것을 예상하고 배트를 내밀었다.

휘릭!!

그때 공이 휘었다.

‘걸렸어!!’

타자가 모든 힘을 집중시켜 배트를 돌렸다.

배트의 궤적이 공을 때려내려는 순간.

휘릭!!

‘어?!’

공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났다.

퍽!!

급격하게 떨어진 공이 미트에 꽂혔다.

“스윙!! 아웃!”

[삼진입니다!! 5구 승부 끝에 삼진을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

구심의 콜이 떨어지는 순간.

“으랴아아앗!!”

[괴성과 함께 기쁨을 표출합니다!!]

신우가 포효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시즌 62세이브!! 메이저리그 최다세이브 기록과 타이를 세우는 기염을 토합니다!!]

[정말 대단한 기록을 달성합니다! 루키시즌에 최다세이브라니!! 믿을 수 없는 기록을 남기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마운드 위에서 토마스와 격한 포옹을 나누는 정신우 선수에게 씨티필드의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 * *

- 62세이브 실화냐?!!

ㄴ 평자 제로가 더 경악임.

- 7회부터 3이닝 퍼펙트 실화임?

ㄴ 마지막 이닝에는 거의 억지로 꽂아넣더라.

ㄴㄴ TV로만 보는데도 압박감이 장난 아니던데.

ㄴㄴㄴ 루키시즌의 투수로는 절대 안 보임.

- 사이영 확정인 듯.

ㄴ 레알 내셔널리그에서 신우보다 잘한 투수 없음. 꼭 줘야 됨.

ㄴㄴ 못 받으면 메이저리그 기자들 병신들이지.

- 이왕이면 1세이브 더 올리면 좋겠다.

ㄴ 갱신하면 최고지.

ㄴㄴ ㅅㅂ 근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메츠 물빠따 새끼들.

ㄴㄴㄴ 차라리 신우를 타석에 계속 세우는 게 나을 듯.

ㄴㄴㄴㄴ 이건 반대. 체력 때문에 타석에 계속 세우면 문제 생길 듯.

인터넷에서도 뜨거운 반응이 오가고 있었다.

그러한 반응을 보며 D.E에이전시의 김태성 실장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이제 주도권은 완전히 넘어왔다.’

많은 회사들이 신우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메츠의 활약이 저조해지면서 세이브 기회가 사라지자 몇몇 회사들이 간을 보기 시작했다.

‘상황이 바뀌었다.’

최다세이브 기록을 달성했다.

이건 신우의 가치가 올라갔다는 소리다.

그 증거로 스마트폰이 미치도록 울리고 있었다.

상대들은 모두 간을 보기 시작했던 회사들이다.

김태성은 그 전화를 일부러 무시했다.

‘미안하지만 배는 떠났어. 이 배를 잡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더 높은 값을 불러야지.’

철저한 협상가인 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만약 남은 2경기에서 1개의 세이브만 추가한다면...’

유일한 최다세이브 기록자.

그것이 의미하는 건 남달랐다.

이미 공이 넘어온 상황에서 급할 필요는 없었다.

시즌종료까지 보고 마지막 기록의 달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더 이상 등판을 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지. 메이저리그 최초의 평균자책점 제로의 선수가 되는 셈이니까.’

63세이브.

평균자책점 제로.

두 개 중 하나만 달성해도 대박이다.

‘만약 둘 다 이룬다면...’

광고업계가 발칵 뒤집힐 상상을 하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 * *

딱-!!

“와아아아아-!!”

높게 떠오른 타구에 씨티필드의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마스 에드윈! 배트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 타구는 담장 밖으로...! 사라집니다!!!]

1루 베이스로 뛰어가는 토마스가 팔을 들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토마스!! 토마스!!”

[정말 중요한 순간에 터지는 토마스 에드윈의 시즌 44호 홈런!! 그동안의 부진을 단숨에 털어내는 모습에 메츠의 팬들이 일제히 그의 이름을 환호합니다!!]

[7경기만에 홈런포를 가동하는 토마스 선수입니다. 그동안의 부진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정말 중요한 순간에 역전 쓰리런 홈런을 터트립니다.]

[이걸로 메츠가 다시 경기를 앞서나가기 시작합니다!!]

카디널스와의 2차전.

토마스의 쓰리런홈런으로 승기를 잡은 메츠는 흐름을 넘겨주지 않은 채 2차전을 승리로 가져갔다.

[2연승을 거두는 메츠!! 남은 3차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 * *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갈 수 있는 티켓은 단 1장.

이 티켓을 손에 넣기 위해 두 팀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오게 되었다.

신우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씨티필드를 바라봤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기 전이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씨티필드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뉴욕의 시민은 물론 한국에서 찾아온 이들도 많았다.

[우리 시누 출세했누.]

[레알 태극기가 더 많이 보이냐 ㅋㅋ]

[여기가 뉴욕인지 한국인지 헷갈림.]

[ㅇㅈ.]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최근 한국에서 뉴욕으로 오는 한국인이 작년대비 12퍼센트가 증가했다는 기사가 떴다.

거기에 여행사에선 뉴욕투어에 꼭 씨티필드를 코스로 넣을 정도였다.

그들이 씨티필드를 방문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신우의 경기를 직관하기 위함이다.

[소감이 어떠냐?]

스판의 질문에 신우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죽이죠.”

지금 기분을 한 마디로 표현한 신우가 손잡이를 잡았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꼭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네요.”

[뭔 소리임? 62세이브면 이미 올라가 있잖아.]

“공동이잖아요.”

딸칵-!

“이왕이면 단독으로 올라가고 싶습니다.”

[오올-!]

[자신감 뿜뿜이네.]

[그래! 여까지 왔으니 함 가봐야지.]

[가즈아-!!]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응원과 함께 63세이브를 위해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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