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89화 >
* * *
코디 벨린저.
명실상부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스타.
올 시즌 5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본인의 커리어하이를 작성했다.
하지만 며칠 전.
본인의 타구에 정강이를 맞았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우승이 확실시되는 다저스 입장에선 무리를 시킬 이유가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서지 않았던 벨린저 선수, 하지만 9회말에는 타석에 들어섭니다.]
[아마 1점차 상황이 아니었다면 다저스 더그아웃에서도 굳이 내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1점차 상황이기에 그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죠. 다저스 입장에선 일찌감치 지구 1위를 확정짓고 싶을 테니까요.]
타석에 들어서기 전.
벨린저가 가볍게 배트를 돌렸다.
“M.V.P!! M.V.P!!”
그러자 다저스타디움이 들썩였다.
[다저스의 팬들이 일제히 MVP를 연호하고 있습니다.]
코디 벨린저.
한국인들에게도 매우 인기가 높은 선수였다.
류진현 선수가 LA다저스에서 활약할 당시 그의 기량이 만개한 덕분에 같이 노출이 됐었다.
“여, 발은 좀 어때?”
타석으로 들어오는 벨린저에게 토마스가 물었다.
“별거 아니야. GM이 호들갑을 떨어서 문제지.”
부상을 당한 선수가 그것을 티내는 일은 잘 없다.
벨린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의 상태가 정상적인 컨디션에서 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상적인 컨디션이었다면 선발로 내보내겠지.’
토마스는 에이든이 주었던 자료를 떠올렸다.
‘몸쪽을 파고드는 우투수의 커터를 치다가 파울타구가 정강이를 때렸다.’
고작 일주일 전의 일이다.
기억을 떨쳐내기는 너무 짧은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토마스의 손이 빠르게 움직여 사인을 냈다.
‘포심, 몸쪽으로.’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후우...”
뒤이어 눈을 감고 심호흡을 뱉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신우는 영역에 들어가 있었다.
‘잡는다.’
코디 벨린저.
메이저리그에서도 한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선수였다.
이기고 싶은 게 당연했다.
거기까지였다.
신우의 머릿속에서 잡념이 사라지며 이내 토마스의 미트만이 눈에 들어왔다.
촤앗-!
[정신우 선수, 와인드업!!]
다리를 차올린 신우가 초구를 뿌렸다.
노리는 곳은 토마스의 미트.
벨린저의 몸쪽을 파고드는 공이었다.
쐐애애애액-!
굉음과 함께 날아온 공이 몸쪽을 파고드는 순간.
벨린저가 움찔 놀라 엉덩이를 뒤로 뺐다.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 몸쪽 깊숙한 곳에 꽂히는 포심 패스트볼!! 구심의 손이 올라갑니다! 구속은 99마일!! 회전수는 2743rpm을 기록합니다!]
[벨린저 선수가 엉덩이를 뺄 정도로 위력적인 공이었습니다.]
토마스가 신우에게 공을 던지며 벨린저에게 말을 건넸다.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데? 괜찮은 거 맞아?”
벨린저는 대답없이 토마스를 노려봤다.
방금 공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 역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벨린저의 눈빛에는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흥분해주면 쌩큐지.’
오히려 그런 벨린저의 반응은 토마스가 원하던 것이었다.
타자건 투수건 흥분을 하면 제대로 된 승부를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을 잘 알기에 포수는 타자가 타석에 서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토마스는 그것을 매우 잘 하는 포수였다.
“부상이 걱정되면 푹 쉬라고. 괜히 경기에 나와서 다치면 자네 연봉이 울지 않겠어?”
“그만 좀 지껄이지?”
“하하! 너무 날카롭게 반응하지마. 나는 동료가 걱정되서 하는 소리니까.”
두 사람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영역에 들어간 신우는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영역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모른다.
작은 소리로 대화하는 걸 듣기엔 18m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리고 투수가 그런 것들까지 일일이 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투수가 해야 될 건.
‘바깥쪽 체인지업.’
포수가 원하는 곳에.
촤앗-!
[정신우 선수 와인드업!! 2구 던집니다!!]
“흐읍!!”
쐐애애액-!!
정확히 공을 꽂아넣는 일이었다.
신우의 손을 떠난 공이 1/3가량 날아갔을 때였다.
피잉-!
영역에 접어들어 날카로워진 신우의 감각에 괴이한 노이즈가 걸렸다.
‘이건...?’
그리고 보였다.
자신의 공을 정확히 바라보면서 스윙을 가져가고 있는 벨린저의 모습이.
‘녀석도...’
공이 뚝 떨어지는 순간.
배트 궤적도 공의 궤적과 함께 움직이며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퍼올렸다.
‘영역에 들어올 수 있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유리가 깨지듯 영역이 산산조각나며 집중력이 깨졌다.
[2구를 강타!! 이건 큽니다!!]
신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빠르게 날아가는 타구를 쫓았다.
[다행이네.]
[그러게.]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에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하지만 곧 말뜻을 알 수 있었다.
“아아-!!”
관중석에서 눈치빠른 관중들이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타구가 폴대 바깥으로 휘어져 나갔다.
[담장을 넘어갔지만 파울입니다!]
[존 바깥으로 떨어지는 공을 억지로 퍼올리면서 정확한 임팩트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파울타구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정신우 선수의 체인지업에 정확히 반응하는 걸 보니 역시 벨린저 선수라는 생각이 드네요.]
해설위원까지 감탄하게 만드는 타격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장면에 인터넷이 떠들썩해졌다.
- 까비...누가 봐도 무실점 깨질 각이었는데.
ㄴ 님 국적이?
ㄴㄴ 여기서 국적 드립 실화냐?
- 해설위원 뭐냐? 이런 상황에서 타자를 응원하네.
ㄴ 해설위원이 경기를 해설한건데, 이걸 응원한다 ㅇㅈㄹ.
ㄴㄴ ㅅㅂ. 이러니까 국뽕쉑들 야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ㄴㄴㄴ 신우 응원하는데 뭔 상관임?
인터넷에서는 또 다시 싸움이 벌어졌다.
그 사이.
딱-!
“파울!!”
[7구 다시 한 번 파울!!]
어느덧 신우와 벨린저의 싸움은 7구까지 진행됐다.
* * *
신우가 볼카운트를 확인했다.
‘풀카운트.’
모든 불이 들어와 있는 상황.
한 번이라도 존에서 빠지면 승부에서 진다.
‘그럴 순 없지.’
[이쉑, 승부욕 도졌네.]
[뭐, 이런 맛에 이 녀석 경기 보는 거지.]
강한 타자를 피한다?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붙는다.
그리고 이긴다.
오로지 그 생각만이 신우의 머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기기 위해 신우는 8구에서 변화를 주었다.
스윽-!
[아, 정신우 선수. 오늘 경기 처음으로 직접 사인을 냅니다!]
[아무래도 본인이 가장 자신있는 공을 던지겠단 사인 같군요.]
해설위원의 말은 정확했다.
7개의 공을 던지며 신우는 본인이 가지고 있던 모든 공들을 던졌다.
슬라이더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오늘 손에 가장 잘 걸리는 공은...’
메이저리거라고 하더라도 당일 컨디션에 따라 구종마다 차이가 있었다.
‘커터다.’
신우가 낸 사인에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환을 끝낸 신우가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후우...”
깊게 호흡을 뱉으며 눈을 감은 신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서서히 보이는 풍경은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달라진 것이 없는 영역.
하지만 이전과 다른 게 딱 하나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영역에는 혼자 있었다.
관중이 사라지고 심판이 사라지고 동료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종내에는 파트너인 토마스마저 사라져 홀로 마운드에 서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타석의 벨린저가 보였다.
‘같은 영역에 있는 선수는 볼 수 있는 건가?’
그 소리는 벨린저 역시 자신을 볼 수 있단 소리였다.
‘역시 괴물이었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벨린저 역시 영역에 들어서 신우를 보고 있었다.
작년 확장로스터에 합류한 그와의 첫 승부에서 괴물이란 걸 느꼈다.
하지만 영역까지는 알지 못했다.
‘고작 1년만에 여기까지 왔단 말이지.’
같은 야구선수이기에 알 수 있는 영역.
이곳까지 온 신우의 능력이 얼마나 비범한 것인지 벨린저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기고 싶다.’
그 사실은 벨린저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리고.
‘이긴다.’
신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촤앗-!
[정신우 선수 와인드업!!]
와인드업과 함께 몸을 비틀어 킥킹을 했다.
흙먼지와 함께 무릎이 가슴 높이까지 올라오며 하체와 골반 그리고 상체를 비틀었다.
‘평소보다 등번호가 더 보인다.’
토마스는 신우의 변화를 바로 간파했다.
평소라면 등번호가 절반정도밖에 보이지 않을 텐데.
지금은 등번호의 2/3가 노출되고 있었다.
‘힘을 더 모으는 건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저런 상태에서 제구가 될지 의문이었다.
‘녀석을 믿자.’
토마스는 걱정을 떨쳐냈다.
녀석이 하는 것이라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누는 천재야.’
그동안 봐온 신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미 투구에 들어간 신우에 대한 걱정을 해봤자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토마스는 미트를 내밀고 기다렸다.
신우가 이곳에 공을 찔러넣기를 말이다.
휘릭!!
그때 신우가 비틀렸던 몸을 회전시켰다.
스트라이드를 하며 다리를 뻗은 신우는 무게중심을 뒤로 둔 상태로 다리가 땅에 닿는 순간.
뿌드득-!!
엄지에 힘을 주어 하체를 고정시키고 허리를 틀었다.
근육이 돌아가며 하체의 힘을 이동시켜주는 통로를 열어주었다.
‘조금 더...’
그때까지도 상체의 무게중심을 뒤로 둔 신우는 하체의 힘이 허리를 통과하는 순간.
‘지금!!’
휘릭!!
상체의 무게중심을 앞으로 이동시키며 동시에 왼팔을 당기며 가슴근육을 당겨주었다.
당겨주는 힘에 의해 회전하던 상체에 가속력이 붙으며 마지막 힘까지 충전시켰다.
마지막으로 왼쪽어깨를 낮추었다.
그러자 왼쪽과 오른쪽 어깨가 사선이 되며 오른팔이 머리보다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갔다.
‘모든 힘을 담아...!’
손이 릴리스포인트에 도달하는 순간.
‘터트린다!!’
촤아아앗-!!
공을 때린다는 느낌으로 힘을 폭발시켰다.
[8구 던졌습니다!!]
쐐애애애애액-!!
공이 매서운 소리를 토해내며 공간을 가로질렀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공에 벨린저는 일찌감치 스윙에 들어갔다.
특유의 콤팩트한 스타트.
뒤이어 이어지는 파워풀한 스윙은 장내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후웅-!!
스윙이 절반쯤 이루어졌을 때였다.
휘릭!
공의 궤적이 미묘하게 바뀌는 순간.
벨린저는 오른발을 구부리며 스윙의 궤적을 바꾸었다.
딱-!!
“크...!”
경쾌한 소리와 함께 벨린저의 배트가 공을 때렸다.
공은 낮고 빠르게 날아갔다.
방향은 정확히 마운드를 향하고 있었다.
‘2루까지 갈 수 있다!’
마운드 위의 신우는 자세가 불안정했다.
잡을 수 있을리 없었다.
그것을 간파한 벨린저가 1루로 전력질주했다.
그 순간.
자세가 불안했던 신우가 마운드 위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그리고 2루를 바라보는 자세에서 글러브를 내밀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이 글러브로 빨려들어갔다.
“아웃!!”
[아웃입니다!! 엄청난 호수비를 보여주는 정신우 선수! 벨린저 선수의 안타성 타구를 지워버립니다!!]
[아-! 이건 정말 대단한 수비가 나왔어요. 마치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반사적인 움직임으로 공을 낚아챕니다!!]
[1루로 내달리던 벨린저 선수! 허탈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춘 채, 마운드 위의 정신우 선수를 바라봅니다!]
모든 이들이 안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우는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잡아내며 안타를 지웠다.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다니.’
벨린저는 감탄했다.
설마 공을 던진 뒤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다니 말이다.
‘만약 내가 정상적인 컨디션이었다면...’
이내 벨린저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전력을 다했고 졌다.’
스스로의 패배를 인정한 벨린저가 다저스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우가 몸을 돌려 로진을 손에 묻혔다.
[내셔널리그 최다세이브 기록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하나!!]
다저스타디움을 찾은 한국팬들의 열렬한 응원이 쏟아졌다.
* * *
[뉴욕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LA다저스를 상대로 시즌 56세이브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이전까지 에릭 가니에 선수와 내셔널리그 최다세이브 타이기록을 이루었던 정신우 선수는 단독기록보유자가 되었으며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단독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루키시즌부터 역사에 도전하고 있는 정신우 선수가 과연 메이저리그 최다세이브 기록인 62세이브를 달성할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