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87화 >
* * *
[메츠의 8회말 공격은 삼자범퇴 이닝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역시 메츠는 중심타선을 제외하고는 타격감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느낌입니다.]
9회초.
신우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우-! 우-! 우-! 우-!!”
관중석에서는 신우를 향한 응원이 쏟아졌다.
마치 인디언들이 상대를 압박할 때 사용하는 구호처럼.
씨티필드를 가득 채운 팬들이 일제히 신우의 우!를 외쳤다.
그 소리는 그라운드를 가득 메워 내셔널스 타자들을 압박했다.
“젠장, 저 소리 정말 듣기 싫다니까.”
“우리가 사냥감이야 뭐야?”
“메츠 팬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단합력이 좋았어?”
내셔널스 타자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신우는 그들의 불만을 무시한 채, 투구를 준비했다.
[메츠는 경기를 끝내기 위해 정신우 선수를 등판시킵니다.]
뻑-!
연습투구를 하는 그를 카메라가 잡았다.
[51세이브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정신우 선수, 현지에서는 내셔널리그 신인왕은 거의 확정짓는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죠?]
[그렇습니다. 세이브기록도 놀랍지만 일단 SVO, 세이브성공률이 백퍼센트입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5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투수 중 100퍼센트 성공률을 자랑한 투수는 그동안 단 한 명이었습니다.]
[그게 누구죠?]
[바로 LA다저스의 특급마무리였던 에릭 가니에 선수입니다. 2003시즌 55개의 세이브를 성공률 100퍼센트를 기록하며 그 해 사이영상을 받은 마무리투수가 됐죠.]
[하지만 그 선수는...]
[예. 미첼리포트에 오르며 약물복용이 적발되었죠. 즉, 정신우 선수는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은 선수 중 유일한 기록을 써가고 있습니다..]
마무리투수로 마지막 사이영상을 받은 에릭 가니에.
하지만 약물복용으로 인해 명성에 금이 간 상태.
이후 08시즌 브래드 릿지, 11시즌 호세 발베르데, 16시즌 잭 브리튼이 세이브 성공률 100퍼센트를 달성했었다.
그러나 50세이브 이상을 거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참고로 정신우 선수는 한시즌 50이닝 이상 투구한 투수 중 메이저리그 역대 최저 평균자책점 기록을 갱신한 상태입니다.]
종전기록은 16시즌의 잭 브리튼이 기록했던 0.54.
당시 브리튼은 사이영상 컨덴더로서 언급이 될 정도로 경이로운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와일드카드전에서는 연장전까지 등판하지 못하고 팀이 패배하는 걸 지켜봐야만 했었다.
[루키시즌에 전설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신우 선수, 오늘 세이브를 기록하게 되면 52세이브를 달성하면서 역대 한시즌 최다세이브 공동 9위에 오르게 됩니다.]
[말 그대로 정신우 선수가 내딛는 걸음은 하나하나가 역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중계를 통해 신우의 기록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을 때.
“플레이볼!!”
연습투구가 끝나고 경기가 재개됐다.
토마스의 손은 빠르게 움직여 사인을 냈다.
‘바깥쪽 커터.’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상체를 펴고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뱉었지만 오늘은 영역에 접어들지 못했다.
‘왜지?’
신우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
[잡념을 떨쳐내라.]
[지금은 타자에게만 신경써야지.]
매튜슨과 스판의 채팅이 연달아 올라갔다.
그들의 말에 신우는 곧 정답을 찾았다.
‘야구 외적인 부분에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 거야.’
[정답이다.]
[이제 제법 머리가 굴러가네.]
사이영과 애덤 존슨이 신우의 생각에 동의했다.
‘지금은 타자와 상대하는 것에만 집중하자.’
[그게 투수가 가져야 될 최고의 덕목이다.]
[잡념이 많은 투수는 경기에 집중하지 못해.]
[큰 경기에 약한 녀석들이 꼭 잡념이 많아지지.]
그들의 말을 되씹으며 신우는 토마스의 미트에 집중했다.
[잊지마라.]
매튜슨의 채팅이 올라갔다.
[영역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영역에 들어간 날도. 너는 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와인드업했다.
타자의 시선은 그런 신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초구니까 커터일 가능성이 높아.’
시즌 막판.
50이닝을 넘게 던지면서 신우에 대한 데이터가 조금씩 쌓여갔다.
데이터가 쌓인다는 건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각 팀의 전력분석원들은 데이터를 선수들에게 제공한다.
내셔널스의 2번 타자이자 유격수인 해멀드 역시 데이터를 받았다.
그 데이터에 따르면 신우가 타자들에게 던진 초구 173구 중에서 커터일 확률이 73구에 달했다.
무려 42.196퍼센트.
절반에 달하는 확률이었다.
‘하지만 최근 10경기에서 커터일 확률이 매우 낮아졌는데.’
그 순간 다른 데이터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때 신우가 킥킹을 했다.
뒤이어 타자에게 등번호의 절반이 보일 정도로 상체를 틀었다.
‘최근 10경기에서 상대한 33명의 타자 중 녀석이 초구에 던진 공은...’
틀어졌던 상체가 돌아가면서 신우가 스트라이드를 했다.
다리가 땅에 닿는 순간, 골반을 돌리며 회전력을 상체로 끌어왔다.
‘포심이다!’
“흡-!!”
18.44m가 떨어진 마운드 위에서 신우가 기합을 터트렸다.
그리고 팔로스로와 함께 던진 공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이미 공이 손을 떠나기 전.
날아올 구종을 결정한 해멀드는 포심과 같은 궤적을 날아오는 공에 배트를 돌렸다.
159km의 공이 포수의 미트에 박히는 시간은 고작 0.4초.
타자는 0.2초라는 짧은 시간에 그 공의 궤적을 예상하고 배트를 돌려야 된다.
그리고 투수는 타자의 그러한 예상을 벗어나는 공을 던져야 했다.
지금 신우처럼 말이다.
휘릭!
홈플레이트 직전.
공의 궤적이 흔들렸다.
빠각-!!
“큭...!!”
궤적이 어긋나며 배트의 끝으로 공을 때린 해멀드가 급히 1루로 달렸다.
하지만 그가 절반도 달려가기 전, 유격수가 공을 잡아 1루로 뿌렸다.
퍽-!
“아웃!”
[공 하나로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올립니다. 부러진 배트를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짓는 해멀드 선수, 더그아웃으로 힘없이 돌아갑니다.]
[93마일, 149km의 커터가 마지막 순간에 변하면서 배트의 끝으로 타격이 이루어졌습니다.]
올 시즌 22개의 홈런과 출루율 3할 8푼 9리를 기록중이던 해멀드를 가볍게 돌려세운 신우는 다음 타자를 기다렸다.
[내셔널스의 3번 타자, 와그너 선수가 들어섭니다.]
[21시즌에 빅리그에 데뷔한 와그너 선수, 내셔널스의 유망주로 22시즌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23시즌 커리어하이 시즌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시즌인 올해. 41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커리어 통산 첫 번째 40홈런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아직 어린 선수지만 와그너는 타격기술이 매우 뛰어납니다. 조심스럽게 상대를 해야 합니다.]
토마스와 사인을 교환한 신우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해멀드에게 커터를 던졌다. 첫 타자를 상대로 커터를 던졌을 때, 다음 타자를 상대로 커터를 다시 던질 확률은 62.4퍼센트였어.’
와그너는 커터의 궤적을 떠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두 번째 타자, 와그너를 상대로 초구 던집니다!!]
신우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그것을 본 와그너가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걸렸...!’
커터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에 와그너가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잡은 것처럼 공이 갑자기 멈췄다.
그러더니 몸쪽으로 궤적을 바꾸더니 공이 뚝 떨어졌다.
‘체인지...!!’
촤앗!!
와그너는 급히 스탠스를 오픈하며 타격의 궤적을 바꾸었다.
카운트가 올라간 상황이 아니었다.
즉, 헛스윙이 되더라도 이후에 기회가 있다는 소리였다.
만약 경험이 많았다면 스윙궤적을 억지로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와그너는 이제 메이저리그 3년차 선수였다.
경험이 부족하단 것이었고 그로 인해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됐다.
그리고 결과는.
딱-!
[빗맞은 타구!!]
제대로 된 타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는 공을 억지로 퍼 올렸다.
그렇게 맞은 타구는 내야에 높게 떠올랐다.
[토마스 선수, 마스크를 벗고 타구를 쫓습니다!]
[아슬아슬하겠는데요.]
메츠 더그아웃으로 날아가는 타구가 빠르게 낙하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
토마스는 자세를 낮추며 슬라이딩을 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타구를 끝까지 쫓으며 미트를 내밀었다.
퍽-!
탁!!
공을 잡으면서 발을 뻗어 더그아웃의 안전바에 올리며 속도를 줄였다.
[환상적인 슬라이딩 캐치!! 토마스 선수가 파울타구를 끝까지 쫓아가 잡아냅니다! 투아웃!!]
[정말 좋은 수비가 나왔습니다. 메츠의 홈그라운드이기에 구조가 익숙해서 토마스 선수가 과감하게 슬라이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장마다 구조는 모두 다르다.
그래서 다른 구장에 가면 수비를 하는 선수들이 과감한 수비를 하다 실수를 하거나 부상을 입는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언제나 훈련을 하기 때문에 구조가 익숙해 과감하게 플레이를 해도 걱정이 없었다.
“정말 멋진 캐치였어.”
“오, 땡큐.”
어느새 다가온 신우가 토마스의 마스크를 건넸다.
“덕분에 아웃카운트 하나 건졌다.”
“고맙냐?”
“당연히 고맙지.”
“그럼 빨리 끝내고 밥 먹으러 가자. 배고파 죽겠다.”
“오케이, 그럼 아웃카운트 올리고 가자. 내가 갈비 사줄게.”
“오-! 그거 좋지.”
뉴욕에는 꽤 많은 한국식당이 있다.
그러다 보니 메츠의 선수들은 한식에 꽤 익숙한 편이었다.
특히 토마스는 신우가 오기 전부터 한식매니아로 잘 알려져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갈비.
그것을 산다는 말에 토마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정신우 선수가 토마스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군요. 볼배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미리 어느 정도 배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겠지만, 상황에 따라 자주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습니다.]
약간의 오해가 섞인 중계와 함께 경기가 재개됐다.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공 2개로 만들어낸 정신우 선수, 세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사인을 교환합니다.]
호수비가 나오면 투수는 힘이 생긴다.
그건 신우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설마 저 공을 잡아줄지는 몰랐네요.’
[나이스 플레이긴 했지.]
[홈구장이긴 했어도 부상을 생각하지 않는 파인플레이였다.]
[몸을 사리지 않드만.]
부상의 위험이 있었다.
잡기 까다로운 위치로 타구가 날아가기도 했다.
만약 타구를 포기했어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몸을 날려 아웃카운트를 잡아주었다.
그 사실이 신우에게 큰 힘이 되었다.
‘정말...’
로진을 손에 묻히고 허리를 편 신우가 몸을 돌렸다.
‘좋은 플레이였죠.’
그의 시선이 토마스에게 닿는 순간.
주위가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크-! 하여간 기분파라니까.]
[뭐, 이럴 때도 있는 거지.]
마지막 타자를 앞두고 영역으로 들어갔다.
[세 번째 타자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여기서 깔끔하게 경기를 끝내는 게 가장 좋습니다.]
사인을 교환한 신우가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정신우 선수 와인드업!!]
영역에 빠져든 신우는 모든 신경이 보내는 신호를 체크하며 완벽한 투구폼에서 3구를 뿌렸다.
[3구 던졌습니다!]
쐐애애애액-!
‘커터...!’
타자는 커터를 떠올리며 배트를 돌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스윙궤적에 따라 공이 변화해갔다.
‘맞았어!!’
타자가 소리없는 환호를 지르며 배트를 돌리는 순간.
휘릭!!
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타자의 뇌리에 하나의 구종이 떠올랐다.
‘슬라...!!’
틱-!!
배트의 끝에 맞은 공이 힘없이 마운드를 향해 굴러갔다.
‘...이더!’
타자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린 채, 1루로 달렸다.
퍽-!
“아웃!”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발길을 더그아웃으로 돌려야했다.
“와아아아아아-!!”
[씨티필드의 모든 관중이 일어나 정신우 선수에게 환호를 보냅니다! 단, 공 3개만으로 세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면서 팀의 승리를 지켜냅니다!! 지금까지 시청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중계가 끝나고 화면에는 토마스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신우의 모습이 나왔다.
* * *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2차전에서 9회초에 등판, 세 개의 공으로 세 타자를 잡아내는 진풍경을 연출하며 팀의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이로서 정신우 선수는 시즌 52번째 세이브를 달성하게 되면서 역대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세이브 공동 9위에 오르게 됐습니다.
단일시즌 연속이닝 무실점기록 역시 53이닝으로 늘리며 4위, 잭 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불독 오렐 허샤이저가 1988년 기록한 59이닝 무실점기록까지 단 6이닝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시즌종료까지 26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정신우 선수가, 과연 종료까지 얼마나 많은 기록을 세우게 될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 미쳤다...
- 진짜 미쳤다는 말밖에 안나온다.
- 3구 쓰리아웃이 말이 되냐?
- 한국인 선수가 시즌 52세이브라니...
기사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며 신우의 성적을 칭찬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마디로 이 상황을 정리한 인물이 있었다.
(데블스가즈아 : 실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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