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86화 (86/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86화 >

신우는 예상하지 못했던 단어가 나왔다.

거기에서 보라스는 한 발을 더 나갔다.

“오타니 쇼헤이가 일본에서 보여주었던 투타겸업의 어마어마한 임팩트는 메이저리그 단장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오타니 쇼헤이는 일종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투타겸업.

간혹 그것에 도전하는 선수는 있었지만, 현실의 벽에 무너졌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투수나 타자 하나만 하더라도 생존하기 어려운 곳이 메이저리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타니는 투타겸업을 선언했다.

그리고 돈보다 꿈을 우선시하는 모습에 많은 야구팬들이 열광했다.

그 증거로 LA에인절스와 계약한 2018년.

그의 유니폼판매량이 메이저리그 전체 8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부상으로 인해 19시즌 타자로만 경기에 나섰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투타겸업에 도전을 하고 있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베이스볼 그 자체를 바꾸진 못했습니다.”

2018시즌이 끝난 뒤.

오타니는 토미존 서저리를 받으며 19시즌을 타자로만 출장했다.

이후로도 이런저런 부상으로 인해 투타겸업으로 풀시즌을 치르지 못했다.

“시누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보라스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리고 신우는 그런 그를 말없이 지켜봤다.

룸에는 한참동안 적막이 흘렀다.

* * *

보라스와의 만남 이후.

신우는 구장에 나와 평소대로 운동을 했다.

“훅...훅...!”

가볍게 러닝을 하며 몸을 푸는 그의 머릿속에는 투타겸업이란 단어가 맴돌았다.

[보라스가 원한 건 클로저 앤드 배터였네.]

[뭐, 그게 현실적이지.]

보라스는 선발을 제안하지 않았다.

투수는 클로저로 뛰고 거기에 전문타자로 활약하는 것이 보라스의 생각이었다.

‘가능성이 있다고 보세요?’

[충분히 가능하지.]

[너도 알고 있잖아? 마무리만 해서는 네 체력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

‘그건...그렇네요.’

시즌초반.

전문가들은 신우의 여름시즌을 걱정했다.

본격적인 무더위와 메이저리그의 살인적인 일정으로 인해 그가 지칠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제 체력이 꽤 좋은가 봐요.’

[당연하지. 네가 받은 체력단련은 메이저리그에 뛰던 애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거기에 걔네들이 하는 거 이상으로 스케줄을 짰으니 체력만 놓고보면 충분하지.]

‘역시 선배님들은 주도면밀하시네요.’

[에헴-!]

[클로저로 뛴 것도 체력을 보전할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다.]

클로저의 체력소모는 아무래도 선발보다 적은 편이었다.

또한 신우는 1이닝을 전문적으로 던져왔다.

올 시즌 2이닝을 던진 경기는 단 1경기밖에 없을 정도로 관리를 받아왔다.

간혹 타석에 서는 게 문제였지만 체력에 지장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려를 낳는 건 이닝이었다.

현재까지 신우는 53이닝을 던졌다.

클로저가 던지는 이닝은 평균적으로 60이닝 전후다.

등판기회가 적은 시즌은 50이닝 중반대를 던지기도 했다.

실제 메이저리그에서 신우보다 더 많은 이닝을 던진 클로저는 2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신우가 너무 많은 이닝을 던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당사자의 생각은 달랐다.

‘체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아.’

[원래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해.]

[게다가 넌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레 구속을 떨어트리고 있잖아.]

‘그건 선배님들이 그렇게 조언해주셨잖아요. 제구에 더 신경쓰라고.’

[그래. 체력이 떨어지면 구속이 먼저 떨어진다. 투수는 그러면 구속을 올리기 위해 팔의 각도를 내리게 되지. 각도가 변하면 자연스레 다른 근육에 부하가 걸리고 부상으로 이어진다.]

[거기에 폼이 바뀌니 제구도 흔들리지.]

[그래서 그냥 구속을 떨어트리고 제구를 잡는쪽에 신경쓰도록 한 거임.]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시누, 베켓이 찾습니다.”

제이슨이 와서 말을 전했다.

* * *

베켓의 사무실에 도착한 신우는 그와 마주보고 앉았다.

“오늘 보라스에게서 연락이 왔었어. 자네의 대타 기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더군.”

[쯧, 이놈도 어지간히 떠보기 좋아하네.]

[이런 애들 딱 별로임.]

“그렇습니까?”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에 신우는 몰랐다는 듯 반문했다.

확신을 주지 않음으로서 상대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몰랐나 보군. 자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서 이렇게 불렀네. 혹시 대타로 나가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나?”

[이걸 진즉 물어봤어야지.]

[하여간 선수를 멋대로 굴리는 놈들이 있다니까.]

“딱히 불만은 없습니다만, 문제는 제가 대타를 나가면서 투구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루틴에 문제가 생기는 건가?”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흠...”

신우는 메츠에서 중요했다.

루키시즌이지만 최다세이브에 도전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그런 신우가 제대로 된 컨디션을 내지 못한다면 타격은 클 것이다.

“시즌 막판까지만 어떻게 안 되겠나?”

“음...”

신우는 고민하는 척을 했다.

사실 베켓이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은 예상했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의견도 베켓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놈은 정말 선수를 어떻게 다루는지 모르는군.]

[리빌딩에만 전념하는 놈들이 비슷하지.]

리빌딩은 팀을 재구축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간혹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팀을 만든다고 착각한다.

베테랑과 신인의 조화야말로 리빌딩의 가장 좋은 그림임을 잊어버리고 말이다.

[그래도 예상대로 나와줘서 오히려 땡큐네.]

베켓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신우가 해야 될 건 현재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음...팀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죠.”

“오! 그렇다면...!”

“단, 나중에 제가 부탁드리는 걸 하나쯤은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부탁이라고?”

“예. 물론 연봉과 관련된 내용은 아닙니다. 그러한 부분은 제가 조건을 내걸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음...”

사실 지금 신우는 베켓에게 받아낼 게 적었다.

그렇다면 일단 받아낼 것을 유보하는 게 가장 좋았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이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연봉과 같은 당장 결정내릴 수 있는 부탁이 아니란 걸 어필하면서 빠른 결정을 유도했다.

[거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손해를 보지 않는 거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받을 물건을 확정지을 수 없는 상황도 있지.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뒤에 청구를 하는 거다.]

콥의 조언을 떠올리며 신우는 베켓을 바라봤다.

베켓은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그는 마지막까지 안전장치를 설치했다.

“수락하도록 하지.”

* * *

신우는 불펜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일 경기의 승리로 메츠는 내셔널스와의 게임차를 1경기 더 늘릴 수 있었다.

“오늘도 경기가 잘 풀리네.”

레이먼드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당연하지. 알론소가 미쳐 날뛰고 있다고.”

“진짜 저 새끼는 미쳤다니까.”

다른 불펜투수들의 사기도 높았다.

어제 경기에서 백투백투백 홈런을 때려내면서 팀은 끝내기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신우는 파워에이드에 흠뻑 적셔져야 했다.

그나마 신우가 투수였기에 과격한 퍼포먼스를 제외해서 다행이었지, 타자가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냈다면 유니폼이 찢어지고 난리였을 거다.

[팀 분위기 좋네.]

[어제까지만 해도 다들 죽을라고 하더만. 오늘은 아주 신나셨네.]

[솔까 이해하지. 어제처럼 경기에서 이기면 춤이라도 출 거 같음.]

다른 레전드플레이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채팅을 보던 신우는 경기상황을 체크했다.

‘게일러가 잘 던지고 있네.’

트레이드로 메츠에 온 게일러.

성격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마운드에서 본인의 역할은 잘 해주고 있었다.

오늘도 5회 원아웃까지 1실점만 하며 경기를 잘 풀어가고 있었다.

“머피! 잭! 슬슬 몸풀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불펜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게일러의 평균적인 투구수는 90구 전후였다.

100구가 넘어가면 확실하게 구위와 구속이 떨어지며 약점을 드러냈다.

현재 77구를 던졌으니, 불펜이 준비를 해야 될 때였다.

[오늘 잘하면 기회가 오겠네.]

스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경기에서 이겼지만 세이브를 거두지 못했다.

신우에게 세이브가 가장 중요하기에 그는 어제보다 기대감을 가지고 경기를 지켜봤다.

* * *

[메츠와 내셔널스의 2차전. 메츠의 선발투수였던 게일러 선수가 5회까지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갔습니다. 이후 메츠는 불펜을 가동했고 7회까지 무실점으로 내셔널스 타선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메츠는 사실 6회까지만 이기고 있으면 이후부터는 경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는 팀입니다.]

8회.

마운드에는 레이먼드가 올라왔다.

[레이먼드 선수 몸을 풀기 시작합니다. 방금 말씀해주신 건, 그만큼 메츠의 불펜이 강하다는 뜻이겠죠?]

[맞습니다. 대니얼-레이먼드 그리고 정신우 선수로 이어지는 불펜 로테이션은 매우 막강합니다.]

[대니얼 선수는 올 시즌 평균자책점 2.71을 기록중으로 본인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레이먼드 선수 역시 평균자책점이 2.56으로 커리어하이를 기록중이죠.

그리고 우리의 정신우 선수는 여전히 평균자책점 제로. 리그 유일의 미스터 제로로서 위용을 떨치고 있습니다.]

[대니얼과 레이먼드 선수의 평균자책점이 낮은 이유는 사실 정신우 선수의 덕이 큽니다.]

준비를 끝내고 사인교환을 한 레이먼드가 초구를 뿌렸다.

뻑-!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구속은 98마일이 찍혔습니다. 그런데 정신우 선수 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요?]

[정신우 선수라는 강력한 마무리가 뒤를 지키고 있으니, 타자들은 어떻게든 그 전에 역전을 시키고 싶어 합니다. 즉, 조바심을 느끼게 되는 거죠.]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런 게 있나요?]

[예. 실제 마리아노 리베라나 트레버 호프만 선수가 각각 양키스와 파드리스에서 활약할 당시, 두 선수가 불펜에서 몸을 풀면 타자들이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오호, 그렇군요.]

[예. 그런 특급마무리들이 뒤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타자들은 초조함을 느끼게 되죠. 그들이 나오면 점수를 낼 수 있는 확률이 줄어드니까요.]

레이먼드가 뿌린 2구를 타자가 받아쳤다.

딱-!

[2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타구 높게 떴습니다.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타구, 유격수 콜을 하고 자리를 잡습니다.]

퍽!

“아웃!!”

[8회 첫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그 말씀은 정신우 선수가 레전드 반열에 오른 마무리투수들과 같은 위치에 올랐다는 거군요.]

[레전드 반열에 올랐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예. 레전드가 되기 위해선 꾸준한 성적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리베라나 호프만 두 선수가 메이저리그의 레전드가 될 수 있었던 건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렸기 때문이죠.]

[아...]

[실제 두 선수와 동시대에 활약을 하면서 그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렸던 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레전드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반짝활약으로 끝났기 때문이죠.]

[즉, 정신우 선수가 레전드가 되기 위해선 현재와 같은 성적을 꾸준히 올려야 된다는 거군요.]

두 번째 타자 역시 빠르게 타격을 가져갔다.

딱!!

[평범한 그라운드볼. 이번에도 유격수가 공을 잡아 처리합니다.]

퍽!

“아웃!!”

[순식간에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올리는 레이먼드 선수입니다. 그리고 불펜에서는 정신우 선수가 몸을 푸는 게 보이는군요.]

불펜에서 몸을 푸는 신우의 모습에 씨티필드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는 더욱 타자를 짓눌렀다.

딱-!!

[7구를 타격! 이번 공도 평범한 플라이가 됩니다. 우익수 자리를 잡았습니다.]

퍽!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레이먼드 선수 삼자범퇴로 훌륭하게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8회초.

내셔널스의 공격이 마무리됐다.

불펜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우가 불펜포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슬라이더로 갈게.”

“오케이!!”

팡팡-!

주먹으로 미트를 때린 포수가 자세를 잡았다.

신우는 와인드업과 함께 80퍼센트의 힘을 담아 공을 뿌렸다.

뻐억-!

“굿 무브먼트!!”

고개를 끄덕인 신우는 9회초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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