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83화 >
* * *
- 슬라이더 아님?
ㄴ 맞는 듯?
ㄴㄴ 언제부터 신우가 슬라이더를 던짐?
ㄴㄴㄴ 오늘 첨 봤음.
- 와...각도 꺾이는 거 실화냐?
ㄴ 무브먼트 보면 종슬라이더 같은데?
ㄴㄴ 꺾이는 거 보면 횡슬 아님?
- 구속은 87마일이 찍힌 거 보면 고속슬라이더잖아?
ㄴ ㅅㅂ 고속슬라이더가 저 각으로 꺾이는 거 실화냐?
ㄴㄴ 도대체 얘 뭐야?
한 마디로 경악스런 장면이었다.
슬라이더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횡, 종적인 변화가 스탠다드하게 일어나는 노멀슬라이더.
평범한 슬라이더라고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횡슬라이더가 있습니다.]
[노멀슬라이더와 어떤 차이가 있죠?]
[일단 더 많이 휘어서 들어갑니다. 그리고 종적인 변화가 거의 없죠. 즉, 떨어지지는 않고 휘어서 들어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국의 야구프로그램 중 하나인 메이저리그 투데이.
그곳에서 오늘 신우가 던진 공에 대한 토론이 열심히 이어지고 있었다.
[세 번째는 종슬라이더입니다.]
[많이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의미하죠?]
[맞습니다. 휘어지진 않고 떨어지는 각도가 더 큽니다. 그래서 커브나 포크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엄연히 다른 공이고 가장 큰 차이점은 구속에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종슬라이더의 구속이 더 빠르죠?]
[그렇습니다.]
예시와 함께 다양한 슬라이더들이 소개됐다.
마지막으로 고속슬라이더까지 소개를 한 프로그램의 영상이 오늘 경기로 바뀌었다.
[오늘 정신우 선수는 하퍼 선수와 대결에서 7구까지 가는 승부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던진 7구에서 정말 멋진 장면이 나왔죠, 함께 보시겠습니다.]
정지되어 있던 화면이 재생됐다.
[정신우 선수가 던진 공에 하퍼 선수가 스윙을 했지만 헛치면서 균형이 무너지는 모습입니다.]
[집중해서 보셔야 될 건 공의 무브먼트입니다.]
화면이 되감기가 되더니 슬로우가 걸려 재생이 됐다.
[저도 중계를 하면서 처음에는 커터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우 선수의 커터가 보여주는 궤적은 보통 이런 형태죠.]
해설위원의 버튼을 누르자 그래픽으로 붉은선이 그려졌다.
그것은 공의 궤적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종과 횡의 변화가 매우 짧게 일어났다.
[이 붉은색 선이 그동안 정신우 선수가 던졌던 커터의 궤적입니다. 그리고 이건...]
화면이 다시 재생됐다.
이번에는 공이 지나간 자리에 푸른색 선이 그려졌다.
[7구에 던진 구종의 궤적을 그리고 있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혀 다른 궤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부터는 비슷한 궤적을 보였다.
하지만 홈플레이트에 근접한 순간.
급격하게 변화를 일으키며 몸쪽을 파고들었다.
[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건 사실상 슬라이더밖에 없죠.]
[말씀해주신대로입니다. 스탯캐스트를 비롯해 현지의 여러 사이트에서도 정신우 선수의 7구의 구종은 슬라이더로 체크하고 있습니다.]
[체인지업을 선보였을 때도 놀랐지만 이번 슬라이더도 정말 완성도가 높습니다.]
[슬라이더를 장착한 정신우 선수,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몇 경기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저 공을 자유자재로 던질 수 있다면 강력한 무기가 될 겁니다. 사실 정신우 선수는 횡적인 변화를 주는 변화구가 제대로 없었습니다.]
[커터가 있지 않았나요?]
[그렇긴 합니다만 변화자체는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공은 변화가 매우 큽니다. 즉, 커터임을 알고 스윙을 했는데 거기에서 한 번 더 변화를 일으킨 겁니다.]
[아...타자들의 머리가 복잡해지겠군요.]
많은 평가들이 오갔다.
그리고 그 평가를 내리는 이들 모두 신우의 공을 슬라이더로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시누, 2차전에서 하퍼와 상대할 때 던졌던 슬라이더는 언제부터 연마를 한 거죠?]
2차전이 끝나고 인터뷰에서 묻지 못했던 기자들이 신우에게 질문을 했다.
그리고 신우의 입에서는 예상밖의 대답이 나왔다.
[저는 슬라이더를 던진 적이 없습니다.]
[네?]
[제가 던졌던 건 커터였습니다. 슬라이더성 커터죠.]
슬라이더가 아닌 커터라는 답변에 기자들은 단체로 맨붕에 빠지고 말았다.
* * *
메츠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2승 1패라.’
메츠의 단장 베켓은 동부지구의 순위표를 확인했다.
여전히 1위는 필리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1게임차로 따라잡았다.’
2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게임차가 줄었다.
만약 3차전까지 승리로 가져갔다면 역전이 가능했었을 거다.
하지만 3차전에서 하퍼가 각성하며 2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덕분에 순위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기회는 충분하다.’
한 경기로 좁힌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버튼을 누르자 내셔널리그 전체순위가 나타났다.
‘와일드카드는 거의 확보가 된 상태인데...’
각 지구에서 순위권들이 확정되고 있었다.
디비전시리즈에 직행할 수 있는 건 각 지구의 1위 팀들.
그리고 또 한 번의 경기인 와일드카드를 통해 각 지구에서 가장 높은 승률을 자랑하는 두 팀이 맞붙어 승자가 나갈 수 있게 된다.
‘남은 경기는 모두 27경기.’
베켓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만약 1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승률에서 우리와 겨룰 수 있는 건 컵스와 자이언츠밖에 없다.’
가장 좋은 건 필리스를 제치고 1위를 가는 것이다.
‘남은 경기에서 전력을 쏟아야 된다.’
베켓의 시선이 메츠의 로스터에 향했다.
2020시즌부터 40인 확장로스터가 사라짐에 따라 선수운영에 제한이 생겼다.
‘어쩔 수 없지.’
이제부터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승리가 최우선이 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반드시 디비전시리즈에 직행으로 간다.’
지구 1위.
그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됐다.
문제는 현재 보유한 전력에서 그 기록을 이루어야 된다는 것이다.
‘타격쪽이 많이 약해졌어.’
7월까지 좋았던 팀 타율은 8월 들어 급격히 나빠져 8월 2할 1푼 7리로 지구에서 4위를 기록했다.
총 5개의 팀이 하나의 지구를 이루고 있으니 메츠의 뒤에는 꼴찌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어떻게든 전력을 키워야 된다.’
그러기 위해 베켓은 한 가지 도박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통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왔을 때 해볼만한 도박이었다.
똑똑-!
“마이크입니다.”
“들어오도록 해.”
곧 문이 열리며 마이크가 들어왔다.
맞은편에 앉은 그를 보던 베켓이 말했다.
“마이크 시누를 어떻게 생각하나?”
“시누요? 당연히 좋은 투수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없으면 우리 팀의 불펜을 어떻게 활용해야 될지...”
“아니, 내가 말한 건 투수로서가 아니야.”
“예?”
“타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지.”
베켓의 말에 마이크의 얼굴이 굳어졌다.
“혹시...”
“역시 자네는 눈치가 빠르군.”
베켓의 입가에 미소가 진하게 그려졌다.
* * *
필리스와의 일전을 끝낸 메츠는 홈인 씨티필드에서 같은 지구 3위인 워싱턴 내셔널스를 맞이했다.
[내셔널스와의 3연전, 그 첫 경기도 어느덧 중반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3연전은 메츠 입장에선 중요하지 않습니까?]
[사실 메츠는 이제 모든 경기가 중요한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3위 팀인 내셔널스와의 대결이 더 중요한 이유는 따라오는 내셔널스와 거리를 벌릴 수 있기 때문이죠.]
내셔널스와 메츠의 게임차는 6경기차.
앞으로 두 팀이 만날 시리즈는 한 번이 더 있었다.
즉, 오늘 경기를 포함해서 총 6번을 싸워야 된다는 소리다.
만약 같은 기간동안 동일한 승률을 보유하게 된다면 두 팀은 서로와의 경기에서 순위가 역전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맞상대를 하게 됐을 때, 확실히 도망쳐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메츠는 도망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네요.]
두 팀의 경기는 어느덧 6회를 넘어서고 있었다.
현재까지 스코어는 1 대 4.
메츠가 좀처럼 따라붙지 못하고 있었다.
[메츠도 몇차례 기회를 잡았지만 영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타선이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습니다. 알론소나 토마스가 포진한 상위타선은 어떻게든 버텨주고 있지만 문제는 하위타선입니다.]
메츠 타선의 중심은 알론소와 토마스다.
하지만 그들에게 기회가 오기 위해서는 하위타선이 살아줘야 했다.
시즌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그게 가능했다.
[후반 들어 타율이 급격히 떨어진 메츠의 하위타선입니다.]
[예. 특히 8번 타순에 배치된 스티브 제임스의 타격감이 많이 죽었습니다.]
[사실상 그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9번 타순에는 투수가 타격에 나서기 때문에 스티브의 출루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상위타선으로 연결이 될 수 있죠.]
스티브 제임스.
메츠의 좌익수를 책임지고 있는 선수다.
그의 출루율은 4할에 육박했었다.
7월까지만 해도 말이다.
하지만 8월이 되면서 출루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9월이 된 현재는 3할 중반으로 떨어졌다.
단지 이 수치만 보면 괜찮아 보이지만 문제는 8월의 출루율이다.
그는 8월에 0.227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즉 1할이나 출루율이 떨어진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노아웃에서의 그의 출루율이 0.140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는 같은 기간 50타석 이상 출전한 선수들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였다.
이러한 수치는 메츠의 상위타순으로 공격이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을 낳았다.
[6회말, 메츠의 공격이 7번 타순부터 이어집니다.]
하위타순부터 시작되는 공격.
마이크는 이번 공격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의 머릿속에는 베켓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대타를 내세울 타이밍이 나온다면 시누를 준비시키도록 해.)
신우를 준비시켜라.
그 말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40인 확장로스터일 때는 언제나 대타요원이 즐비했다.
하지만 확장로스터가 28인으로 줄어들면서 대타요원의 숫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 팀에는 믿고 내보낼만한 대타가 없다.’
메츠의 가장 큰 약점.
그건 바로 유망주의 부족함이었다.
즉 선수층이 얇다는 뜻이었다.
‘데이터가 충분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시누가 보여준 임팩트라면...’
그를 대타로 내보내면 뭐든 만들어낼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문제는 그가 클로저라는 것이다.
불펜에서 그를 대처할 수 있는 선수는 현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대타로 내보낼 타이밍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경기 후반에 타이밍을 봐야지.)
베켓의 말을 떠올리며 마이크는 경기의 흐름을 지켜봤다.
* * *
‘흠...’
신우는 불펜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레이먼드는 일찌감치 몸을 풀고 있었지만 그리 열정적이진 않았다.
‘기회가 오지 않으려나.’
8회초.
스코어는 2 대 4가 됐다.
7회 터진 알론소의 솔로홈런으로 1점을 좁혔다.
하지만 더 이상의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셋업맨인 레이먼드가 8회, 워싱턴의 공격에서 마운드에 오르지 않고 있었다.
‘오늘은 세이브 기회가 없겠네.’
[이 흐름이면 힘들지.]
[타선이 좀처럼 힘을 못 내네.]
레전드플레이어들 역시 부정적인 의견을 내고 있는 상황.
그때 불펜에 전화가 걸려왔다.
‘이 타이밍에 왜 전화가 오지?’
아직 8회초가 시작되지 않았다.
즉, 불펜에 전화올 타이밍이 아니란 소리였다.
그렇기에 신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전화를 끊은 드빌이 신우를 바라봤다.
“시누.”
“예?”
“마이크가 더그아웃으로 오라는군.”
“저요?”
“그래.”
“지금요?”
“어.”
의아한 상황에 몇 번이나 되물었다.
그리고 다시 확답을 받은 신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스판의 채팅이 올라갔다.
[오호-! 이거 꽤 재밌는 생각을 했네.]
뭔가 눈치를 챈 듯한 그의 채팅에 불안감이 느껴졌다.
스판의 잔머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지 알겠어요?’
[대충은?]
‘그럼 알려주세요.’
신우는 더그아웃으로 향하면서 스판에게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미리 알면 재미없으니까, 싫음.]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와 실갱이를 벌이는 사이.
신우는 어느덧 더그아웃의 입구에 도착했다.
‘치사해서 가서 물어보고 만다.’
[ㅋㅋㅋㅋ]
신우는 채팅을 무시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마이크에게 다가갔다.
“마이크.”
“아, 왔나?”
“예.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말에 공격을 나갈 수도 있어. 그러니 몸을 풀어두도록 해.”
마이크를 바라보던 신우가 눈을 껌벅거렸다.
[여윽시.]
그리고 알고 있었다는 듯 스판의 채팅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