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78화 >
* * *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촤앗-!
킥킹과 함께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디서 다리를 멈춰야 되는지, 어디서 허리를 비틀어야 되는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설명할 순 없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여기에서 던져야 된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근육들이 말이다.
‘그저 나는 따라가면 된다.’
신우는 거기에 맞춰 그저 투구동작을 이어가면 됐다.
킥킹을 한 다리를 내디디며 스트라이드를 하고.
콰직!!
야구화의 징이 마운드 위에 단단히 박히는 순간, 발가락에 힘을 주어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 힘이 하체를 타고 올라오자 허리를 회전시켜 힘을 증폭시키는 것과 동시에 상체로 이동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모든 움직임이 느껴진다.’
투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확한 동작이다.
언제 어디서 정확하게 몸을 움직이느냐에 따라 힘을 제대로 쓰느냐 못쓰느냐가 결정된다.
그런데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세세하게 느껴지니 그저 거기에 따르면 충분했다.
그리고 모든 힘을 집중시킬 수 있는 포인트에서.
파앙-!
있는 힘껏 공을 때렸다.
그러자 마치 채찍으로 허공을 때리는 것과 같은 소리가 울려퍼지며 공이 그의 손을 떠났다.
쐐애애애액-!
맹렬한 회전을 시작한 공이 토마스의 미트에 꽂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구심의 외침과 함께 전광판에 스트라이크에 불이 들어왔다.
[초구 100마일의 빠른 공으로 카운트를 잡습니다!]
[대단히 좋은 공이 들어갔습니다. 구속도 좋았지만 회전수를 비롯해 코너웍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공이었습니다.]
[오늘 컨디션이 매우 좋은 정신우 선수! 하퍼 선수와의 승부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습니다!!]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동시에 극찬을 쏟아냈다.
인터넷 반응 역시 뜨거워졌다.
- 크...지렸다!
ㄴ 오늘 컨디션 좋은 듯.
- 신우 컨디션 좋으면 하퍼 정도는 무난하지!
ㄴ 글쎄. 최근 하퍼 타격감 보면 그리 쉽지만은 않을 듯.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번에는 한국만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신우의 경기내용을 속보로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사이를 생각하면 이례적이었다.
일단 기사가 된다는 건 그만큼 이슈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실시간 업데이트는 이야기가 달랐다.
웬만큼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즉, 현재 신우의 성적은 일본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엄청난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사이영상 수상이 유력해지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건 대만이나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신우에 대한 명성은 점점 아시아 전체로 퍼지고 있었다.
미국 역시 많은 사람들이 신우의 50세이브를 지켜보기 위해 TV 앞에 앉았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클로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
두 사람의 대결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정신우 선수, 사인을 교환하고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다행이었다.
2구에서도 신우는 집중력이 깨지지 않았다.
지난번에 1이닝이 유지되었다고 해서 이번에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었다.
[집중력이란 건 약간의 변수라도 생기면 쉽게 깨지지.]
[ㅇㅈ.]
[어차피 못 볼 텐데, 채팅은 왜 치냐?]
[스트리머가 못 본다고 채팅을 안 치냐?]
[하여간 이래가지고 뉴비는...절레]
신우가 저 영역에 들어가면 채팅창을 보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볼 수 있겠지만 고도의 집중력상태에 빠져 주위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인이라도 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횡단보도 앞에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신호가 바뀐 걸 모른다거나,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을 못 보고 부딪히는 일들이 고도의 집중력상태다.
일상생활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사고로 빠질 수 있지만 엘리트 운동선수들에게는 큰 무기가 됐다.
그리고 신우는 이 상태에 빠져 2구를 뿌렸다.
“흐아아앗!!”
쐐애애액-!
강력한 기합소리와 함께 던진 공이 하퍼의 몸쪽 높은 곳을 정확히 찔렀다.
하퍼는 거기에 반응을 보였다.
촤앗-!
발을 내딛고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그 순간.
휘릭-!
기다렸다는 듯 공이 뚝 떨어졌다.
하퍼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후웅-!
배트가 회전하고.
퍽-!
공이 미트에 꽂혔다.
“스트라이크! 투!”
구심의 손이 올라갔다.
[헛스윙입니다! 단번에 투스트라이크를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
[기가막힌 무브먼트를 보여주는 써클체인지업이었습니다. 좌타자의 몸쪽 가장 높은 곳으로 들어오다 바깥쪽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이 궤적은 쉽사리 때려낼 수 없을 겁니다.]
신우의 써클체인지업은 메이저리그 평균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영역에 들어와서 던지는 써클체인지업은 완전히 다른 구종이 되었다.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비견이 될 정도로 엄청난 무브먼트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타자들은 그의 강속구와 써클체인지업을 모두 신경써야 했다.
‘역시 오늘 상태도 좋아.’
토마스는 첫 공을 받으면서 신우의 컨디션이 최고조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커터가 아닌 포심과 써클체인지업으로 하퍼를 상대하고 있었다.
이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공 역시 비슷하게 선택을 했다.
‘포심.’
컨디션이 좋은 신우의 포심은 이전과 다르다.
구위부터 공의 궤적까지.
모든 게 완벽한 공이 된다.
‘하이.’
이런 공이 하이 패스트볼로 들어온다면?
속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노볼 투스트라이크! 정신우 선수,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대결.
신우는 모든 힘을 손 끝에 집중시켰다.
“흐아아아앗!!”
쐐애애애액-!
괴성과 함께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섭게 날아갔다.
높게 들어오는 공에 하퍼가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돌렸다.
후웅-!
배트의 궤적이 정확히 공을 노리고 날아갔다.
공이 정상적인 궤적을 따라 내려온다면 그의 배트가 내밀고 있는 송곳니에 잡아먹힐 것이다.
하지만.
‘젠장!’
공의 궤적이 더 이상 내려오지 않았다.
아니, 하퍼의 눈에는 오히려 떠오르는 것과 같은 착시현상이 나타났다.
‘하이 패스트볼!!’
그것을 깨닫는 순간.
하퍼가 급히 손목을 비틀어 스윙을 멈추었다.
뻐억-!
이후 공이 미트에 꽂혔다.
순간, 경기장에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적막을 깨트린 것은 구심의 콜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젠장!!”
후웅-!
하퍼는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배트를 내려쳤다.
콰직!!
배트가 둘로 쪼개졌지만 화를 삭히지 못한 하퍼의 시선이 마운드로 향했다.
[이열...눈빛만으로 살인나겠는데?]
신우 역시 그러한 하퍼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하퍼를 끝까지 바라봤다.
[이요오오오오올-!]
[한판 뜨겠네?]
[크-! 가끔 이런 거 마음에 든다니까.]
[하여간 승부욕 하나는 쩔어요.]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아...”
[응?]
[왜 그래?]
‘집중력이...깨졌네요.’
채팅이 보인다는 건 그 영역에서 빠져나왔다는 걸 의미한다.
아직 한타자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럼?]
[어차피 1명만 상대하면서 집중력이 올라갔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음.]
‘예?’
[네가 그 영역에 들어간다는 건 고도의 집중력 상태라는 걸 의미함. 집중력이 높다는 건 그만큼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는 거거든?]
[쉽게 설명하면 이전에는 1이닝 전체를 그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심했다는 거지.]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체력소목 심하진 않을 거다.]
그들의 설명을 듣고보니 그랬다.
분명 지난번에는 집중력이 깨지는 것과 동시에 피로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멀쩡했다.
[쓸데없는 걱정말고 마지막 타자만 잘 상대해라.]
[그럼 9부능선은 넘는거다.]
[50세이브까지 아웃카운트 하나 남았다.]
[가즈아-!]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로진을 손에 묻혔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서는 마지막 타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브라이스 하퍼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운 정신우 선수, 이제 50세이브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하나가 되었습니다!!]
50세이브까지 단 하나.
그것을 깨달은 필리스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우우우우우-!!”
“꺼져라!!”
“홈런이나 맞아라!!”
“터빈!! 이번에야말로 넘겨라!!”
“쟤가 넘겨도 역전이 안 되잖아!! 망할 하퍼 새끼 때문이야!”
“하퍼 개자식아! 배트 부러트릴 힘이 있으면 저놈의 팔을 부러트렸어야지!!”
정말 갖가지 욕설이 난무했다.
‘이럴 때는 영어를 모르는 게 오히려 낫겠네.’
영어를 모른다면 fuck you 같은 욕설만 들릴 테니 말이다.
신우는 한숨을 내쉬며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집중해라.]
그때 매튜슨의 채팅이 올라왔다.
[네 상대는 관중들이 아니다. 필리건들이 하는 소리에는 귀를 닫아라.]
귀를 닫는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당연히 해야 될 일이다.
프로선수라면 말이다.
일희일비한다면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메이저리그란 정글에서.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호흡을 내뱉었다.
“후우...”
그리고 눈을 감았다.
“후우...”
다시 한 번 호흡을 내뱉으며 정신을 집중시켰다.
서서히 주위의 소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모든 소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다시 눈을 떴다.
‘역시...’
신우는 다시 그 영역에 발을 들였다.
‘매튜슨 당신은 최고에요.’
매튜슨에게 경이를 보내며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매튜슨만 최고임?]
[우리는?]
[아놔.]
[너희들은 아무것도 안했잖아.]
신우의 투구를 보며 레전드플레이어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가 정확히 존에 꽂혔다.
영역에 들어선 신우는 더 이상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채팅은 끊임없이 올라갔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했다고?]
[우리도 나름대로 훈수하거든?]
[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뿐이지.]
[그걸 풀어서 하는 게 지도자의 능력이지.]
매튜슨의 채팅에 야유가 쏟아졌다.
딱-!
“파울!!”
두 번째 공이 그라운드를 벗어나 관중석으로 날아갔다.
“터빈!! 배트를 던져서 저 망할 놈의 얼굴에...!”
“어어?”
“위험해!!”
“엉?”
맥주에 진탕 취한 필리건이 고개를 들었을 때.
흰 점에 가까웠던 공이 그의 맥주컵에 떨어졌다.
퍽-!
“으아아악!”
컵에 가득 들었던 맥주가 사방으로 튀어 필리건들의 온 몸을 적시게 만들었다.
거기에 욕설을 뱉던 필리건은 자신의 핫도그에 얼굴을 박아 케첩과 머스터드 범벅이 되었다.
[오, 저건 나이스네.]
[끌끌. 그러게 야구장에서 한눈을 팔면 안 되지.]
[어쨌건 오늘 경기 끝나고 이쉑한테 재밌는 것들 좀 알려줘야겠어.]
[그럼 우리의 위대함을 알겠지.]
채팅창에서 이상한 경쟁심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신우는 그것을 모른 채 3번째 공을 던졌다.
“흐아아앗!!”
기합소리와 함께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뱀과 같은 움직임으로 타자의 배트를 피해 도망쳤다.
후웅-!
뻐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두 타자를 연속으로 삼구삼진으로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 아시아선수 최초로 한시즌 50세이브 고지에 올라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