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76화 >
* * *
LA에서의 원정경기를 끝내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다저스와의 3연전에서 신우는 1개의 세이브 포인트를 획득하며 메이저리그 세이브부문 전체 1위를 유지했다.
2위와의 격차는 무려 13개.
아직 변수가 있긴 하지만 수상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한국에서도 연일 신우의 수상 가능성에 대해 보도를 내놓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아직은 너무 이른 이야기인데.’
뉴스를 본 신우는 이내 포털사이트를 닫았다.
8월이 된 현재.
앞으로 시즌은 한 달하고도 보름이 남았다.
수상가능성을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점이었다.
특히 사이영상 수상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하면서 부담이 커지고 있었다.
‘흐흐, 그래도 타면 정말 좋을 거 같은데.’
신우 역시 상에 대한 욕심은 있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다.
그동안 노력한 보상을 어떠한 형태로든 증명받고 싶어한다.
그것이 상을 주는 이유 중 하나다.
거기에 통달할 수 있는 건 정신적으로 통달하거나 혹은 너무 많이 받아 무감각해진 사람들 뿐이다.
저들처럼 말이다.
[상 하나 가지고 오락가락하누.]
[그런 상은 원래 집 한쪽 벽면에 가득 채워둬야 되는 거 아님?]
[아놔, 우리때는 상 주는 게 많이 없었음.]
[영 죽고 난 뒤에 사이영상 생겨서 나는 못받아봤지.]
[나 부름?]
결국 본인까지 등판하는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그때 카페로 제이슨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제이슨의 곁에는 한 여인이 함께였다.
곧 두 사람이 신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우가 제이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여인을 바라봤다.
동양인으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은 미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D.E에이전시의 김이나 실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정신우입니다.”
D.E에이전시의 실장이라 밝힌 그녀와 악수를 나누었다.
손을 잡은 신우는 속으로 놀라워했다.
‘굳은살이...’
악수를 나눈 그녀의 손에서 굳은살들이 가득 잡혔기 때문이다.
평범한 여성의 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야기들 나누세요. 저는 가보겠습니다.”
“예.”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김이나 실장의 감사인사를 받은 제이슨이 웃으며 카페를 나갔다.
“앉으시죠.”
“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저희쪽에 연락을 주셔서 감사해요. 마치 선물을 받은 거 같은 기분이었어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좋은 조건을 먼저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늦게 연락을 드린 거 같아 죄송해요. 내부적으로 정신우 선수가 앞으로 한국을 대표할 스포츠스타가 될 것이란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어요. 하지만 업계의 관행을 깨야 될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논의가 길어져 연락이 늦어졌어요.”
“이해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쪽에서 준비한 선물이에요.”
그녀가 손에 들고 왔던 쇼핑백을 내밀었다.
“아시아 최다 세이브 기록을 갱신한 걸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선물을 받기는 제가 좀 부담스럽습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계약을 끝나고 선물을 드리는 걸로 할게요.”
[오올-!]
[자신만만한데?]
[그만큼 계약조건을 후하게 가져오긴 했지.]
[하지만 지금 다른 회사들에서도 그 정도 조건을 제시하는 곳도 있잖아?]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그들의 말대로였다.
신우의 주가가 올라가면서 당연히 공격적으로 배팅을 하는 곳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D.E에이전시와 비슷한 크기의 회사들도 있었다.
규모가 작은 곳에서는 오히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에이전시 계약은 제대로 해야 됨.]
[어중간하게 하면 나중에 가서 고생할 수도 있음.]
‘예.’
레전드플레이어들의 경험이 녹아든 조언에 신우는 다시 한 번 다짐을 했다.
“그럼 먼저 보여드릴 건 이거겠네요.”
김이나 실장이 하드파일을 꺼내 펼쳤다.
그 안에는 5장으로 구성된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이쪽은 계약서에요. 그동안 이메일을 주고 받은 내용을 토대로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검토 후 말씀해주시면 회사와 연락을 해서 최대한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계약서를 들자 또 다른 서류가 있었다.
“저희쪽에서 정신우 선수와 함께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들을 추려놓은 것들이에요.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도 보실 수 있으니 편하신쪽으로 말씀해주시면 준비하도록 할게요.”
“프로젝트요?”
“네. 사실 지금 계약을 맺으면 정신우 선수가 국내에 들어오기까지 2-3개월 정도의 여유시간밖에 없다 보니 한국에서 좀 바쁘게 움직여야 돼요.”
김이나의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본래 광고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 전부터 협상에 들어가야 된다.
하지만 신우는 국내에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었다.
딱 한 달.
훈련을 생각하면 국내에서 머물 시간은 그게 한계였다.
그 시간 역시 오로지 광고에만 투자하는 건 무리였다.
행사는 물론 개인시간도 필요하기에 적절한 스케줄 관리가 필요했다.
이러한 관리를 에이전시에서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선수는 말 그대로 일만 하면서 비시즌을 보낼 수도 있었다.
문제는 비시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새로운 시즌에서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부분을 정리한 게 지금 보여준 프로젝트다.
“이쪽부터 보시겠어요?”
“예.”
흥미가 가는 쪽은 계약서보다 저쪽이었다.
어떻게 준비했는지 말이다.
* * *
[이열...]
[잘 준비했네.]
[일처리 잘하네.]
태블릿을 통해 그들이 준비한 자료를 살폈다.
예상대로 비시즌기간 어떻게 스케줄을 잡을 것인지에 대한 자료들이었다.
여기까지는 예상이 됐다.
놀라운 건 자료의 퀄리티였다.
아직 계약도 하지 않은 선수를 잡기에는 매우 수준이 높은 퀄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레전드플레이어들이 놀랄 정도로 선수에게 포커스가 집중이 되어 있었다.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들면 선수를 더 많은 굴려서 회수를 하려고 생각하는 곳들도 있을 텐데.]
[이 정도라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데도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은데?]
[괜찮은 듯.]
‘그런 거 같죠?’
신우 역시 동감이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도 알짤배기들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궁금한 건 없으세요?”
“아, 다름이 아니라 여기 나와 있는 광고 예시들이요. 말 그대로 예시인가요?”
“네, 확정은 아닙니다. 다만 원하신다면 계약을 잡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정신우 선수는 국내에서 가장 핫한 스포츠스타입니다. 당연히 대기업들에서 광고모델로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접촉을 하면 계약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궁금한 게 한 번에 풀리는 대답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이번에는 계약서를 살폈다.
계약서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에이전시 계약은 대행을 기본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계약서가 복잡할 부분이 없었다.
또한 돈이 오가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이라도 언제든지 계약파기가 가능하다.
물론 금전적인 투자가 들어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말이다.
“계약서는 천천히 보셔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검토를 하고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아, 뉴욕에는 언제까지 머무르시나요?”
“날짜를 따로 정하지 않고 왔어요. 당분간은 뉴욕에 계속 있을 예정입니다.”
이건 좀 파격적이다.
D.E에이전시는 미국에 지사가 없다.
즉, 신우를 위해 귀국을 정하지 않고 출장을 왔다는 소리다.
[크-! 당연히 이래야지.]
[ㅇㅈ.]
점점 마음에 드는 회사였다.
하지만 첫 만남에 사인을 할 수 없는 일.
이날의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 * *
홈으로 돌아온 메츠는 시카고 컵스를 맞이했다.
불펜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는 신우를 수많은 관중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김이나도 있었다.
그녀는 경기는 전혀 보지도 않은 채, 신우만을 보고 있었다.
‘확실히 여유롭네.’
그녀 역시 다양한 무대에서 연기를 했다.
철봉.
그것이 그녀가 10대를 바쳤던 운동이다.
하지만 올림픽무대에는 서지 못했다.
부상으로 이른 은퇴를 했고 남은 건 손바닥의 굳은살과 운동선수로서의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신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루키시즌이 맞긴 한 거야?’
여유로움 그 자체인 신우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루키시즌이라는 게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확실히 떡잎이 다른 선수야.’
이런 순간에 떨지 않는다는 게 그의 그릇을 말해주고 있었다.
루키시즌에도 이러한데 연차가 쌓인다면?
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46세이브를 올렸을 때처럼 말이지.’
그때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47세이브에는 살짝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크게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거지. 아마 경험이 쌓이면 더 자주 보여줄 수 있을 거야.’
그때가 되면 신우의 인기는 더 오를 것이다.
글로벌스타도 꿈이 아니다.
미국진출을 꿈꾸고 있는 D.E에이전시 입장에서는 최고의 파트너인 셈이었다.
“와아아아아-!!”
그때 주위의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를 터트렸다.
깜짝 놀란 김이나가 놀란 토끼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그녀의 눈에 불펜의 문을 열고 그라운드로 나가는 신우의 모습이 보였다.
‘미국에서도 이 정도의 인기라니...’
에이전시 회사들에서는 신우에 대한 인기를 아직까진 국내한정으로 보고 있었다.
스포츠스타의 경우 국내와 국외의 인기가 별개인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아직 신우의 인기가 높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뉴욕메츠만을 한정으로 한다면.
‘엄청난 인기야.’
이 정도라면 메이저리그 최고타자인 알론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오늘 홈런을 때렸을 때도 대단한 반응이었지.’
그런 알론소와 동급의 환호성이라니.
‘국내에서 오히려 과소평가를 하고 있었어.’
현장에 오니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신우의 인기는 국내용이 아니란 점을 말이다.
* * *
연습투구를 끝내고 마운드에 홀로 남은 신우는 크게 심호흡을 뱉었다.
“후우-!!”
[긴장되냐?]
‘당연히 되죠.’
지난 등판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어떻게 된 것이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영역에 발을 들이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마치 나사가 빠진 것처럼 집중력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당연하지. 그 영역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집중력소모가 심한데.]
‘며칠이나 쉬었는데 회복이 안 됐다는 게 놀라울 뿐이에요.’
[어쩔 수 없음. 경기 때 사용하는 집중력은 다른 분류라고 생각 해야 되니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설명에 납득은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게 회복됐냐는 거죠.’
[실전에 들어가보면 알겠지.]
저게 정답이다.
공을 던지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다.
그것을 떠올리며 신우가 로진을 손에 묻혔다.
그리고 마운드에 서서 상체를 숙였다.
“플레이볼!!”
구심의 경기재개와 함께 토마스의 사인이 나왔다.
‘바깥쪽, 낮게.’
[조심스럽게 가네.]
[쟤도 지난번 등판을 알고 있으니까.]
토마스는 귀신 같이 신우가 원하는 공을 골라냈다.
참으로 고마운 선택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피처플레이트에 발을 걸쳤다.
“후우...”
다시 호흡을 뱉어 긴장을 털어낸 신우에게 매튜슨이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은 잊어라.]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이전의 그 영역으로는 발을 들이지 못했지만 신우는 개의치 않았다.
‘지나간 일은 잊는다.’
그 지나간 일에는 영역으로 발을 들인 것까지 포함이었다.
신우는 새로운 마음으로 공에 모든 힘을 실었다.
“하아아앗!!”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섭게 날아갔다.
뻐억-!!
“스트라이크!!”
원하는 코스에 꽂히는 공을 본 신우가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