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75화 >
* * *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클로저로 활약하고 있는 정신우 선수가 시즌 46세이브를 달성, 전 메이저리거 사사키 가즈히로 선수가 보유하고 있던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거 한시즌 최다세이브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현재 메이저리그 세이브부문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는 정신우 선수는 수비의 실책으로 무사 1, 3루의 위기에 빠졌지만 이후 3명의 타자를 모두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진기록을 달성하며 무실점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아시아인 최다세이브 기록을 갱신한 정신우 선수는 이제 메이저리그 한시즌 최다세이브 기록을 정준합니다.
참고로 메이저리그 한시즌 최다세이브 기록은 2008년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선수가 LA에인절스 소속으로 기록한 62개로 정신우 선수는 남은 경기에서 16세이브를 더 올리면 타이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경기가 끝난 직후.
신우의 기록갱신과 함께 수많은 기사가 업데이트 됐다.
-오늘 레알 정신우 지렸다.
ㄴ 기저귀 입고 봄.
ㄴㄴ ㄹㅇ. 무사 1, 3루에서 3타자 연속 삼구삼진 실화냐?
ㄴㄴㄴ 타자들이 공에 손도 못대더라.
-메이저리그까지 씹어먹는 정신우 클라스!
ㄴ 이런 선수에게 세이버매트릭스가 어쩌니 저쩌니하는 키보드 좆문가들 실화냐?
ㄴㄴ 이런 선수를 방출한 데블스...그곳은 어디인가?!
ㄴㄴㄴ 데블스가즈아 : ㅠㅠㅠ
-오늘처럼만 던지면 시즌 최다세이브도 쌉가능?
ㄴ 쌉가능!!
ㄴㄴ 그냥 씹어먹는 거지!
ㄴㄴㄴ 불가능하다고 했던 애들 다 버로우!!
댓글창의 분위기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분위기가 완벽하게 돌아섰다는 걸 말이다.
이제 누구도 신우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압도적인 피칭을 선보인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그와 접촉하고 있던 매니지먼트 회사들이다.
“정신우 선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오늘 등판 이후부터 정신우 선수에 대한 블로그와 검색빈도가 급격하게 상승했습니다.”
“연계된 광고회사에서도 정신우 선수를 모델로 쓸 수 없냐는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고요.”
“우리쪽에서 제안을 보냈잖아? 어떻게 됐어?”
“지난번에 정신우 선수가 제안했던 8 대 2의 제안에 오케이를 보냈지만 그 뒤로 별 다른 연락이 없습니다.”
직원의 보고에 대표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이건 소문입니다만...”
“뭔데?”
“DE에서 정신우에게 9 대 1의 조건을 제안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뭐?! 9 대 1?!”
“말이 안 되지 않을까요? 9 대 1이라면 S급 모델료를 받는 일부 톱스타들이나 가능한 수치잖아요?”
“맞습니다. 정신우의 가치가 높기는 하지만 아직 S급 수준은 아니죠.”
“일단 접촉을 해보도록 해. 그쪽에서 원하는 조건을 들어야 협상을 하든 뭘 하든 할 테니까.”
“그럼 9 대 1까지 열어두고 협상을 할까요?”
“안 돼. 8.5까지는 양보를 할 수 있지만 9까지 가게 되면 우리가 먹는 게 너무 줄어들어. 애당초 그 정도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곳도 없고.”
“알겠습니다.”
떡 줄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런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형국이었다.
대부분의 매니지먼트나 에이전시들은 이러한 마인드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저 편하게 앉아서 메일이나 전화로 접촉을 하고 있었다.
조금 머리가 돌아가는 곳들은 사람을 파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D.E에이전시처럼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곳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문제는 그 타이밍이 D.E에이전시보다 한박자 늦었다는 것이다.
“정신우 선수에게서 회신이 왔습니다!!”
신우와 D.E에이전시가 접촉했다.
* * *
전화를 끊은 신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혀...어째 어제보다 이게 더 힘드냐.”
사람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평소 그런 일을 해보지 않았던 신우이기에 더더욱 말이다.
[ㅋㅋㅋ 어제 같은 상황에서도 떨지 않던 놈이 고작 전화 한통화에 떠냐?]
[하여간 경기 때와 너무 다르다니까.]
‘솔직히 이게 더 빡세거든요?’
그의 엄살에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웃음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46세이브를 달성하고 하루가 지났다.
어제 경기가 끝나고 있었던 인터뷰들이 꿈만 같았다.
‘사실 어떻게 공을 던졌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고요.’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으니까.]
[ㅇㅈ.]
‘그런데 어떻게 된 걸까요?’
[뭐가?]
‘어제 제가 했던 거요. 그런 건 처음이었어요.’
[처음은 아니었을걸?]
‘예?’
[너 전에도 그랬던 적 있잖아. 홈런 때릴 때.]
스판의 말에 떠올랐다.
확실히 그때와 감각이 비슷했다.
하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있었다.
‘유지시간이 너무 다른데요?’
[그거야 타격은 넘어가면 끝이니까.]
‘아...’
[이번에도 마지막 아웃카운트 잡고 심판이 콜 하니까, 집중력이 팟하고 풀렸자너.]
‘그건 그렇네요.’
이제야 이해가 됐다.
고도의 집중력 상태.
무협소설로 따지면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진 것이다.
오직 포수의 미트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간혹 그럴 때가 있다.]
‘그래요?’
[어, 문제는 그걸 자유자재로 꺼낼 수 없다는 거지.]
[그래서 그 집중력을 유지하고 싶어서 약을 먹는 애들도 있었다.]
‘약이요?’
[그 왜 ADHD라고 주의력결핍장애라는 거 있잖아. 그거 해결할 때 먹는 약인데, 강제적으로 집중력을 끌어올려주는 약들이 있다. 그걸 먹은 애들의 말을 들어보면 투수의 공밖에 보이지 않고 포수의 미트밖에 보이지 않는단 말을 했지.]
딱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다.
이걸 위해서 약까지 먹는다니.
악마와의 거래가 다를바 없었다.
성적을 위해 불법약물을 먹는 건 말이다.
[꿈에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매튜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재능과 노력의 영역이다. 타고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발을 들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영역에 발을 들이면 또 다시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한다는 거다.]
[그런데 슬럼프에 빠져서 그 영역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되면 미치는 거지.]
[노력을 통해 다시 영역에 발을 들여야 되는데, 편법을 쓰게 되는 거고.]
‘그게 바로 약물이군요.’
긍정의 답변이 연달아 채팅에 올라갔다.
직접 경험을 해봤기에 알 수 있다.
그 영역에 한 번이라도 발을 담그면 빠져나올 수 없다.
마치 마성에 빠진 것처럼 말이다.
[너도 기억해라. 지금은 네가 그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는 순간,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체계적인 훈련.
그것만이 영역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이가 들어 신체능력의 하락, 집중력의 저하가 생기기 전까지 말이다.
‘예.’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46세이브를 거둔 뒤.
신우는 좀처럼 세이브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신우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든 건 아니었다.
[자, 이번주 하이라이트는 과연 어떤 장면이 뽑혔을까요?]
ESPN에서는 한주의 인상깊은 장면들을 하이라이트로 만들어 홈페이지에 개재한다.
홈페이지를 방문한 팬들은 그 하이라이트들에 투표를 할 수 있는데, 투표수가 가장 많은 영상은 베이스볼 투나잇을 통해 내보냈다.
[바로 뉴욕메츠의 클로저 신우 정의 46세이브 달성 장면이군요.]
[아-! 이건 확실히 대단한 장면이었죠.]
[한 번 직접 보시죠.]
캐스터의 말과 함께 곧 영상이 틀어졌다.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이 아니다.
9회 전체를 3분으로 줄인 영상이다.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베이스볼 투나잇은 역사가 깊은 프로그램이다.
머나먼 타국인 한국에서도 메이저리그 팬들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다.
미국이라면?
메이저리그 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거기다 ESPN은 전국구 방송국이었다.
당연히 지금 방송되고 있는 베이스볼 투나잇 역시 전국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즉, 신우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전국으로 방송되고 있단 의미였다.
[9회초 2 대 1의 터프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한 신우 정, 이때만 하더라도 메츠의 승리가 확실해보였죠.]
[그렇습니다. 신우 정은 올 시즌 ERA 제로, 그리고 100퍼센트 세이브성공률을 기록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베이스볼이란 언제나 생각과 반대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것처럼 말이죠.]
캐스터의 말과 함께 경기 초반의 영상들이 재생됐다.
거기에 맞춰 해설위원이 설명을 덧붙였다.
[3루수 존 로빈슨의 실책이 먼저 발생했죠. 로빈슨의 수비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신우 정 역시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요.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다음 에러장면으로 이어졌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올 시즌 UZR이 11.4인 길로메 선수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처리하는데 큰 문제가 없는 타구였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불규칙바운드가 일어날 수 있는 존에 떨어졌고 하필이면 수비능력이 좋은 길로메 선수의 반응속도가 거기에 따라갔다는 게 문제죠.]
[동감입니다. 만약 길로메 선수가 아닌 다른 수비수였다면 반응을 하지 못했을 거고 타구는 백업을 들어오던 중견수가 처리할 수 있었을 겁니다.]
[바로 그 말입니다. 하지만 길로메 선수는 공을 처리하기 위해 반응을 보였고 하필이면 글러브의 웹 바깥쪽에 맞고 타구가 1루 파울라인 밖으로 나가버린 거죠.
결과는? 무사 1, 3루라는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 상황이 됐을 때, 신우 정의 ERA 제로가 깨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순간부터 신우 정의 진가가 드러나게 되죠.]
무사 1, 3루의 위기.
그리고 시작된 신우의 원맨쇼.
[세 타자를 상대하는데 필요한 공은 단 9개에 불과했습니다.]
[몇 번을 보더라도 정말 대단한 장면이었습니다.]
하이라이트 영상이 끝나자.
레딧이 시끄러워졌다.
- 지금 베이스볼 투나잇 본 사람?
ㄴ 나.
- 신우 정이 저 정도의 투수였음?
ㄴ 나도 놀랐음.
ㄴㄴ 언터처블이긴 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마치 각성한 거 같았음.
- 진짜 대단하긴 하더라.
ㄴ 그동안에는 맞춰 잡는 피칭만 하더니 저 경기는 콜, 저리가라네.
ㄴㄴ 저걸 매 경기 할 수 있으면 진짜 대단할 듯.
지역방송을 통해 중계됐던 신우의 46세이브 경기.
하지만 이제는 전미가 신우의 그 경기를 알게 되었다.
거기에 유튜브에도 신우의 영상이 올라가면서 그의 인지도는 한층 더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 * *
5경기만의 등판.
신우가 마운드에 오르자 경기장에 들썩였다.
“와아아아아-!!”
관중들의 뜨거운 반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정신우 선수가 등판하자, 경기장이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한국에 중계되고 있는 방송에서도 캐스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곳이 홈그라운드라면 이 정도 성원은 당연하지만 이곳은 씨티필드가 아닙니다!]
중계카메라가 경기장을 비추었다.
씨티필드와는 다른 구조.
푸른색의 모자가 대부분인 이곳은 내셔널리그의 절대강자.
[적지 다저스타디움에서도 환호를 받는 선수가 된 정신우 선수입니다!!]
[그만큼 미국에서도 뜨거운 선수라는 소리죠.]
물론 다저스의 홈인 LA에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그리고 신우를 보기 위해 많은 한인들이 방문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성원을 쏟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즉, 미국인들 역시 신우의 등판을 환영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정신우 선수가 멋지게 47세이브를 올리고 이 성원에 화답을 했으면 좋겠군요.]
[그렇습니다.]
당연히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응?’
마운드에 오른 신우는 당황하고 있었다.
‘왜 안 되냐?’
분명 집중력을 끌어올렸는데, 그 영역으로 빠져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신우의 모습에 한줄의 채팅이 올라갔다.
[너 바보냐?]
오랜만에 채팅을 친 베이브루스였다.
[그 영역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으면 사기캐지.]
[ㅇㅈ.]
[아무리 밸런스 좆망겜이라도 그렇게까진 안 된다.]
‘...레알입니까?’
당황 그 자체.
하지만 심판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플레이볼!!”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된 경기에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 * *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시즌 47세이브를 거두었습니다. 3 대 1의 스코어에서 등판한 정신우 선수는 앞선 경기와 달리 진땀승부를 이어갔습니다.
모두 4명의 타자를 상대로 총 37구를 던지는 긴 승부 끝에 아웃카운트 3개를 올리며 무실점이닝을 49이닝으로 늘리며 팀의 승리를 지켰습니다.]
그의 경기결과가 올라오고 댓글이 폭발했다.
하지만 지난주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 세 타자 연속 삼구삼진 어디감?
ㄴ 지난주와 같은 투수 맞음?
ㄴㄴ 다저스 타선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건 좀...
- 그래도 무실점이잖아!!
ㄴ 나도 신우 좋아하지만 오늘은 좀...
ㄴㄴ 제구 흔들리는 게 불안하더라.
ㄴㄴㄴ ㅇㅇ. 지난주와 너무 다름.
스크롤을 내리며 댓글들을 확인하던 손가락이 익숙한 이름에 멈췄다.
- 데블스가즈아 : 잘하면 잘하는대로 슬프고 못하면 못하는대로 슬프고...어째야 되냐?
ㄴ ㅋㅋㅋ 님도 심경 복잡하겠음.
ㄴㄴ 그래도 무실점인데 못한다는 건 오바아님?
ㄴㄴㄴ 요건 인정.
ㄴㄴㄴㄴ 영원히 고통받는 그 이름은 데블스.
결국 참지 못하고 전원을 껐다.
그리고 흑백으로 물든 화면에 비춰진 신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안 될 줄 알았냐고요...”
기대했던 영역으로 발을 들이지 못했던 경기.
덕분에 멘탈이 흔들리며 제구에 고생을 했다.
하지만 얻은 게 아예 없지는 않았다.
‘선배님들. 그 말 정말이죠?’
[뭐?]
‘그 영역을 길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훈련밖에 없다는 거요.’
[ㅇㅇ]
[맞음.]
[그 영역이란 건 결국 고도의 집중력 상태를 말한다. 그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좋아야 되는 게 선제조건이지.]
[체력을 늘리기 위해선 결국 훈련밖에 없고.]
[아니면 약을 빨거나.]
후자를 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남은 건 단 하나.
‘훈련밖에 없다는 소리네요.’
길을 찾았으니 남은 건.
노력하는 것밖에 없었다.
언제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