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74화 >
* * *
신우의 미소를 본 네티즌들도 각종 의견을 내놓았다.
- 지금 이 상황에 웃는 게 말이 됨?
- 미친 건가?
- 어이없어서 정줄 놓은 듯.
-그게 아니라 배짱이 좋은 거 아님?
ㄴ 이 상황에서 배짱 운운할 수 있겠음?
ㄴㄴ 그냥 어이없어 하는 것인 듯.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대부분 의견은 부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멘탈이 깨질 상황.
그런 상황에 웃고 있으니 부정적인 의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와...레알 이런 상황도 있군요.’
본인은 그저 어이없어서 나온 웃음이었다.
그저 그게 카메라에 잡힌 것 뿐이다.
[야구란 녀석이 원래 이렇지.]
[야구의 신이 장난이라도 친 듯.]
[나 부름?]
루스의 대답에 신우가 고개를 저었다.
[눈치없는쉑!]
[또 뇌절치쥬?]
다른 이들의 도발에 루스가 광분을 했다.
채팅창을 외면한 신우의 시선에 마이크 감독이 나오려는 게 보였다.
신우가 글러브를 낀 손을 뻗었다.
[아-! 정신우 선수,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오려는 걸 제지합니다.]
[자신에게 맡기라는 제스처를 보냈습니다. 이게 루키 투수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인지 다시 한 번 의문이 생기네요.]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해설위원마저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마이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고?’
베테랑 투수들은 가능하다.
그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키투수는?
‘최소한 그동안 겪어온 선수들 중에는 없었다.’
마이크 본인도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기분을 잘 안다.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그게 최악의 상황이다.
평정심을 잃게 되는 순간, 투수는 본인의 공을 던질 수 없다.
그래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투수가 그것을 제지하고 있었다.
루키투수가 말이다.
‘이건 전혀 예상밖이야.’
그동안 보여준 신우의 모습들은 루키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예상을 벗어났다.
‘내가 올라가지 않는 게 맞는 걸까?’
일순간의 호승심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걸 수도 있다.
‘그래도...’
마이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보고 싶다.’
이 순간을 스스로 이겨내는 모습을.
* * *
신우는 로진을 손에 묻혔다.
평소와 같은 루틴이었다.
[흔들릴 필요는 없다.]
매튜슨의 채팅이 보였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주워담을 수도 없고 후회해도 돌아가지 않는다. 단지 이제부터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해야 된다.]
과거를 후회하는 것.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누구나 하는 후회.
하지만 그것만큼 쓸데없는 짓도 없었다.
무엇보다 현재를 진행해야 되는 투수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신우는 매튜슨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네 공만 던져라.]
‘예.’
[이런 순간이야말로 클로저의 진가가 드러나는 거다.]
클로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
그것은 바로 삼진능력이다.
공이 그라운드 인을 하는 순간, 그때부터는 변수가 생긴다.
방금 전의 변수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삼진으로 타자를 돌려세운다면 변수는 사라지게 된다.
그렇기에 클로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탈삼진능력이었다.
‘바깥쪽 커터.’
토마스의 사인에 신우가 고개를 저었다.
신우의 커터는 사실 삼진을 잡는 능력이 탁월한 공이 아니었다.
포심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다 마지막 순간 변화를 일으킨다.
즉, 상대에게 포심이란 인식을 심어주고 궤적을 바꾸어 빗맞는 타구를 양산해내는 것이 그의 커터가 가진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커터가 탈삼진을 잡아내는 비율은 포심 패스트볼이나 써클체인지업보다 낮았다.
물론 가장 많이 던진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되긴 했지만, 확실히 인플레이 타구가 많이 나오게 됐다.
[정신우 선수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탈삼진입니다. 9이닝당 탈삼진이 리그에서 압도적이진 않지만, 정신우 선수는 뛰어난 구위를 가지고 있으니 이 위기를 멋지게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해설위원의 장밋빛 전망.
하지만 그 전망은 일종의 자기위안과 같았다.
그렇기에 중계를 보는 많은 네티즌들의 반발을 낳았다.
- 무사 1, 3루에서 점수를 안 준다고? 기적을 바라나?
ㄴ 기도 메타 가즈아-!
ㄴㄴ 해설위원이란 양반이 좀 전문적인 해설을 해야지, 너무 편파적인 거 아니냐?
ㄴㄴㄴ 이게 정답이지.
-이런 상황에 기적 좀 바라면 안 됨?
ㄴ 꼭 이럴 때만 공평, 전문적 찾더라. 평소에는 조용히 있던 쉑들이.
ㄴㄴ 같은 야구판 선배인데, 이럴 때 편 좀 들 수 있는 거지.
ㄴㄴㄴ 쿨병 난 애들한테 화내봐야 손해임.
마치 진영을 나누고 싸우는 병사들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잠재울 수 있는 건 결과밖에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던 싸움은 끝날 것이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접속해 신우의 피칭을 지켜봤다.
“동시접속자 300만명 돌파했습니다.”
네이버를 통한 중계방송의 접속자가 끊임없이 올라갔다.
오늘 경기의 클라이막스임을 깨달은 사람들이 짬을 내어 접속했다.
거기에 점심시간이란 것 역시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신우의 경기를 관전했다.
수많은 중계방에 사람들이 해일처럼 몰아쳤다.
‘정말 전국이 보고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단순히 흥미를 가진 이들.
야구를 모르지만 무슨 일인가 싶어 접속한 이들까지.
모든 이들의 시선이 뉴욕메츠의 9회로 향해 있었다.
* * *
[정신우 선수, 직접 사인을 냅니다. 어떤 사인을 냈을까요?]
[아마 코스를 정하는 사인이었을 겁니다. 정신우 선수는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니까요. 또한 이런 상황에서 초구는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공을 던질 겁니다.]
[커터일 확률이 높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신우가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신우야.]
매튜슨의 채팅이 올라갔다.
[모든 집중력을 끌어올려라.]
그의 말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주위가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그의 시선에 관중들이 사라지고 더그아웃이 사라졌다.
보이는 건 베이스, 그리고 주자와 수비들.
마지막으로 캐처와 타자만이 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는 주자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
매튜슨의 말에 집중력을 홈플레이트 방향으로 향했다.
[타자도 신경쓸 필요가 없다.]
이번에는 타자마저 지워졌다.
[네가 해야 될 건...]
슬라이드스텝을 밟으며 양팔을 분리했다.
[존을 향해 너의 공을 꽂아넣는 거다.]
신우의 시선이 배터박스로 향했을 때.
보이는 건 오직 토마스의 미트밖에 없었다.
“흐아아앗!!”
쐐애애액-!
그리고 그곳을 향해 전력을 쏟아부었다.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 미트에 꽂히고 구심의 손 올라갔습니다!! 타자 꼼짝도 하지 못한 이 공의 구속은...100마일입니다!!]
[한 마디로 광속구네요.]
“나이스볼!!”
토마스가 공을 던져주며 외쳤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동안 받아본 공들 중 최고였다.’
최고구속 104마일도 직접 받아봤다.
하지만 그때의 공보다 지금 공이 더 위력적이었다.
‘특히 미트를 전혀 움직이지 않아도 됐어.’
구위가 좋고 제구까지 잡힌 공.
무엇보다 더 압도적인 건 신우의 기백이었다.
‘캐처박스에 있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야.’
마운드 위에 서있는 신우의 집중력이 여기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저런 투수를 상대하는 타자가 불쌍했다.
‘오늘 신우는...’
그리고 토마스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평소와 다르다.’
2구의 사인이 나왔다.
* * *
뻐어억-!
공이 미트에 꽂히고.
후웅-!
배트가 힘없이 허공을 갈랐다.
“스트라이크!! 투!”
구심이 스윙을 인정하며 카운트가 올라갔다.
[완전히 타이밍을 뺏겼군.]
[회전력과 구속까지 쭉 올랐으니까.]
[무엇보다 몸쪽 보더라인을 아슬아슬하게 찌르니까, 때리기 어렵겠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이 연달아 올라갔다.
하지만 신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보이지 않는거네.]
[진짜 이쉑 집중력은 넘사벽이라니까.]
[타격할 때도 봤지만 이 정도로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게 가능한가?]
[그게 이 녀석의 무기니까.]
[야발! 이쉑이 무슨 람보냐? 무기가 끝없이 나오게?]
[진즉 보여줬던 거잖아? 다만 투구에서 보여주는 게 처음일 뿐이지.]
신우의 집중력은 타격에서 먼저 빛을 발했다.
마운드 위에서는 그때와 같은 집중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걸 보여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하여간 밸런스 좆망겜!!]
[ㅋㅋㅋ 현실에서만큼 밸런스가 좆같은 게 없지.]
[그래도 재밌잖아.]
채팅과 무관하게 사인을 교환한 신우가 3구를 뿌렸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섭게 날아갔다.
타자는 이미 그의 투구에 말려 기다리지 못하고 배트를 돌렸다.
그 순간.
눈높이를 향해 날아가던 공이 뚝 떨어지더니 몸쪽으로 휘어 들어갔다.
마치 스크류볼과 같은 궤적을 그리면서 말이다.
후웅-!
퍽!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이런 녀석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말이야.]
* * *
[삼구삼진!! 첫 타자를 단 3개의 공으로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캐스터의 흥분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전국에 전해졌다.
- 와-! 방금 무브먼트 뭐임?
ㄴ 써체 맞음?
ㄴㄴ 구속 보면 맞는 거 같은데, 무브먼트가 완전히 다름.
ㄴㄴㄴ 스크류볼 아닌가?
- 슬라이드스텝에서 2구 연속 100마일 뿌리더니 3구에서 77마일 써체 던지는 거 실화냐?
ㄴ 거기다가 저 무브먼트를 어떻게 때림?
ㄴㄴ 저런 써체를 왜 이전에는 안 던진 거임?
ㄴㄴㄴ 써체를 던지긴 하는데, 이런 무브먼트가 아니었음.
평소보다 더 격한 무브먼트를 보여주는 써클체인지업.
그것을 본 네티즌들은 실시간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반면 신우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스트라이크존만 보였다.
‘포심, 몸쪽 높게.’
토마스가 사인을 내면.
촤앗-!
망설임 없이 공을 뿌렸다.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 다시 100마일의 강속구로 카운트를 잡아갑니다!!]
[정말 빠른 템포로 공을 뿌리고 있습니다.]
공을 다시 받은 신우가 로진을 손 끝에 묻히고 사인을 교환했다.
‘써클체인지업.’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그 순간 1루 주자의 리드폭이 길어졌다.
‘어떻게든 흐름을 깬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은 신우의 흐름이었다.
이 흐름을 깨기 위해 주자들이 움직였다.
여차하면 주자들의 작전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
어쨌건 신우의 집중력을 깨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촤앗-!
신우는 주자에게 신경도 주지 않은 채.
“하아아앗!!”
쐐애애애액-!
공을 뿌렸다.
‘그렇다면...!’
그 순간을 주자는 놓치지 않고 2루를 향해 내달렸다.
[주자 달립니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써클체인지업에 타자가 배트까지 휘두르고 거기에 3루 주자가 홈으로 파고드는 제스처까지 취하면서 토마스에게 고민을 하게끔 만들었다.
결국 토마스는 2루로 공을 뿌리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홈을 내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촤아아앗-!
[투스트라이크를 잡았지만 1루 주자가 2루에 안전하게 들어갑니다!]
[이제 단타라도 역전까지 내줄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제는 기록원의 판단에 따라 자책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전에는 자책점이 아니었던 건가요?]
[그렇습니다. 수비의 에러로 1, 3루 주자가 쌓인 것이기 때문에 주자들이 모두 들어오더라도 자책점이 올라가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도루는 투수에게도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렇기에 단타로 주자들이 모두 들어오게 된다면 자책점이 올라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아...복잡한 상황이군요.]
[예. 사실 이것보다도 지금까지 이어져온 정신우 선수의 좋은 흐름이 깨질까봐 걱정입니다.]
해설위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투수의 집중력이 깨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신우는 달랐다.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토마스는 바로 캐치해낼 수 있었다.
신우는 달라지지 않았다.
집중력은 여전했고 주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다면...’
토마스가 다시 사인을 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1사 2, 3루의 상황! 정신우 선수 3구 던집니다!!]
이번에는 세트포지션이 아니라 와인드업과 함께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바깥쪽 낮은 코스를 찌르는 날카로운 공에 타자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 아웃카운트 역시 삼구삼진을 기록하는 정신우 선수!!]
* * *
‘몸쪽, 포심.’
신기한 기분이었다.
‘근육의 모든 것들이 느껴진다.’
어디까지 킥킹을 해야 전력을 낼 수 있는지 느껴졌다.
몸을 어디까지 틀면 제구와 구위 그리고 구속을 잡아낼 수 있는지 느껴졌다.
촤앗-!
스트라이드의 한계치가 어디인지.
발을 내디뎌 발가락에 힘을 언제 주어야 되는지.
그렇게 생긴 힘이 하체를 타고 어디를 지나가고 있는지.
세세하게 느껴졌다.
더욱 놀라운 건 그러한 것들을 느끼며 몸을 제어할 수 있었다.
지면의 힘이 정강이를 지나 무릎을 지나고 허벅지를 지나 허리까지 올라오면.
휘릭-!
허리를 회전시켜 그 힘이 상체로 올라갈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거기에 회전력을 더해주었다.
그렇게 증폭된 힘은 복부와 가슴 그리고 어깨와 팔뚝과 전완근을 지나 손끝으로 전달됐다.
그 사이 팔로우스로를 이어간 손끝이 팔과 어깨 그리고 하체와 사선으로 일치하는 순간.
손 끝에 전달된 힘을 공에 보내며 있는 힘껏 실밥을 긁었다.
쐐애애애액-!
마지막의 순간 맹렬하게 회전하며 날아간 공이 어둠의 공간을 가로질러 홀로 떠있는 미트에 잡아먹히는 순간.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게임 셋!!”
어둠의 공간을 깨트리는 외침과 함께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양팔을 들어 올리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토마스를 보며 깨달았다.
‘아아...이겼구나.’
46번째 세이브를 달성했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