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72화 >
* * *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23년 만에 메이저리그 아시아출신 최다세이브 기록과 동률인 45세이브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 기록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는 일본의 전설적인 마무리투수이자 대마신으로 불렸던 사사키 가즈히로 선수로서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 기록했었습니다.
앞으로 메이저리그의 잔여일정이 많이 남아 있어 정신우 선수는 기록갱신이 확실해보입니다.
한편, 일본 언론들 역시 23년 만의 기록달성을 보도하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23년 만의 타이기록의 달성에 한국언론은 물론 네티즌들 역시 환호했다.
- 크-! 아침부터 주모 찾게 만드네. 주모-!
ㄴ 여기 한 잔 추가!
ㄴㄴ 합석하죠?
- 일본언론들 ㅂㄷㅂㄷ대는 중.
ㄴ 못 깰거라 생각한 듯 ㅋㅋ
ㄴㄴ 커뮤니티 사이트도 난리던데?
ㄴㄴㄴ ㄹㅇ 번역된 거 보면 개웃김.
- 사실상 이제 아시아인 최다세이브가 아니라 한시즌 최다세이브도 가시권 아님?
ㄴ 그건 모름.
ㄴㄴ 이건 좀 너무 간 듯.
ㄴㄴㄴ 시즌기록이 62개니까, 남은 경기에서 17세이브를 거둬야 된다는 건데. 으음...
ㄴㄴㄴㄴ 가시권이긴 하지만 세이브는 팀상황도 영향을 끼치니까.
- 오늘 완급조절 봤음? 뭔가 타이밍 맞으니까. 바로 전력투구! 이 정도 완급조절이면 선발 각 아님?
ㄴ ㅇㅈ.
ㄴㄴ 솔까 이 정도 체력과 완급조절이면 선발시켜도 될 듯.
ㄴㄴㄴ 선발은 쫌...
ㄴㄴㄴㄴ BK 케이스도 있으니 마무리로 잘했으면 좋겠음.
- 데블스 있었으면 1선발 씹어먹었다. ㅇㅈ?
ㄴ 킹정!
ㄴㄴ 이건 부정 못하지.
ㄴㄴㄴ 데블스가즈아 : 우리팀에 있었으면 투타 씹어먹었을 듯...
ㄴㄴㄴㄴ ㅋㅋㅋㅋㅋㅋ
* * *
미국에서는 큰 이슈가 되지 않은 신우의 46세이브 도전.
하지만 한일 양국에서는 이미 커다란 이슈가 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연하게도 메츠의 모든 경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정신우 선수, 저희 회사에서 드릴 수 있는 조건을 수정해서 보내드립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면서 자연스레 한국의 매니지먼트들의 조건도 올라갔다.
‘8 대 2로 올라갔네요.’
[바보들이네.]
[멍충이들.]
[네가 최초에 제시했던 조건으로 올린 것 뿐이네.]
매니지먼트사의 제안에 레전드플레이어들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수료 8 대 2의 조건은 신우가 최초에 제시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매니지먼트들은 그 조건을 거절했다.
수락했던 곳들은 중소매니지먼트밖에 없었다.
대형매니지먼트나 에이전시들은 하나 같이 업계의 관행을 이유로 거절과 협상을 요구해왔다.
문제는 신우가 그러한 일에 일일이 대응할 시간이 없단 것이었다.
원정경기가 연속해서 이어짐에 따라 신우는 일단 협상을 중단했다.
그리고 원정경기를 다녀온 뒤.
신우가 아시아인 최다세이브 기록을 달성하자 단숨에 그의 몸값은 상승했다.
이전부터 계약조건에 대한 협상을 요구해왔던 회사들도 있었으나 원정길에서 그러한 협상에 대응할 수 없었다.
[회사들만 똥줄이 타는 상황이 됐네.]
[상황이 바뀌었는데, 같은 조건으로 먹으려고 하네.]
[생각있는 곳이 없는 듯.]
상황이 바뀌면 조건도 바뀐다.
아주 간단한 시장의 논리로 접근하는 이들이 없었다.
그들이 처음 제시한 것이 시장의 관행이면서 말이다.
덕분에 신우는 수많은 에이전시들 중 골라낼 곳들을 자연스레 추려낼 수 있었다.
‘벌써 8월이라...’
정규시즌은 앞으로 2개월이 남았다.
메츠는 여전히 동부지구 2위에 머물고 있었다.
빅네임 영입을 원했던 메츠였지만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내줄 수 있는 유망주의 숫자가 다른 구단에 비해 현저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소규모의 트레이드를 활발히 진행했다.
팬들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어쨌건 결과는 나왔다.
이 결과를 가지고 남은 시즌을 치러야 된다.
목표는 단 하나.
우승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신우에게는 거기에 또 하나의 목적이 더해진 상태였다.
‘최다세이브 기록까지 17개.’
한시즌 62개의 세이브.
이 기록을 달성하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은 아니다.
문제는 팀의 상황이다.
[역사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다.]
매튜슨이 말했다.
[무엇보다 너의 클로저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즉, 한시즌 최다세이브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마지막 클로저 시즌.
그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신우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시즌을 치르면서 알게 되었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훈련이 얼마나 체계적이었고 무엇을 목표하고 있었는지.
‘절 선발로 훈련시키신 거죠?’
선발과 클로저.
투수라는 건 동일하지만 훈련방식은 전혀 다르다.
달리기로 예를 들면 단거리와 마라톤의 차이가.
클로저는 1이닝에 모든 걸 쏟아내야 한다.
하지만 선발은 마라톤처럼 긴 이닝을 책임져야 했다.
또 클로저는 연투를 할 필요도 있었다.
반면 선발투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루틴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훈련방식에서도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네가 어떤 보직을 택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훈련을 시켰다.]
‘어떤 보직을 택하더라도요?’
[그래. 우리는 시청자다. 조언은 하지만 거기까지다. 선택을 강요할 수 없어. 그리고 그게 되지 않는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
레전드플레이어들.
그들 중 대다수는 선수시절 대단한 활약을 했다.
덕분에 은퇴 이후에도 야구계에서 지도자로 활약을 이어간 이들이 많았다.
물론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좋은 선수가 좋은 지도자가 되는 법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어쨌건 저들 중 많은 이들은 지도자로서도 족적을 남겼다.
덕분에 신우에게 조언을 할 때도 필요한 것도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낼 수 있었다.
특히 매튜슨은 저승에 간 이후에도 자신만의 훈련법을 연구해왔다.
100년 동안 오직 야구만 생각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 진수를 신우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응?]
‘매튜슨 당신이 저한테 이러한 훈련법을 알려주는 이유가 뭐에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처음 말했던대로 그저 재미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매튜슨만은 자신에게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정말 스승이 된 것처럼 말이다.
[당연한 걸 묻는군.]
매튜슨의 채팅이 올라갔다.
[100년 동안 저승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면 당연히 궁금하지 않을까? 과연 이게 실전에서 통할 것인지. 그리고 통한다면 얼마나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을지 말이다.]
‘즉, 저는 당신이 공부한 것이 실전에서 통할지 증명할 대상이군요.’
[그래. 네가 앞으로 클로저로 계속 남던, 아니면 선발로 전향을 하던. 그건 어디까지나 네 선택이다. 나와 다른 이들은 여기에서 네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다.]
[물론 훈수도 두겠지.]
[ㅇㅈ.]
[그냥 내버려두면 애들은 꼭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되거든.]
그들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였다.
지잉-!
스마트폰이 울렸다.
신우는 한통의 문자를 확인했다.
(정신우 선수, D.E에이전시입니다. 새로운 제안서를 첨부해서 보냅니다. 검토 후 연락 부탁드립니다. 좋은 답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D.E에이전시.
스포츠선수를 비롯해 연예인들도 다수 소속되어 있는 회사였다.
국내만이 아니라 아시아권에서 영향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이상의 정보는 찾아보지 않았다.
신우에게 필요한 것은 국내에서의 영향력이었으니 말이다.
‘새로운 제안서라고?’
이들 역시 첫 제안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수료 7 대 3의 제안.
새로운 제안서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곳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큰 기대감 없이 첨부파일을 열었다.
[오호.]
[얘네들은 생각이 좀 있네.]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놈들도 있었군.]
[혹할만한 제안인데?
첨부파일을 본 레전드플레이어들이 말한대로다.
확실히 혹할만한 제안이 파일 안을 채우고 있었다.
(5년 이상의 계약조건을 약속해주신다면 1년째에 수수료 10 대 0으로, 2년째부터 9 대 1의 조건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그 어떤 제안서보다 최고의 제안서였다.
* * *
2차전에서 신우가 등판할 기회는 없었다.
아쉬움이 남긴 했다.
최다세이브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초조해하진 않았다.
초조해지려 하면 날카로운 바늘처럼 날아들었다.
[쫄보쉑!]
[벌써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쥬?]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일침이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일침 덕분에 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늘은 기회가 올 수도 있겠네.”
옆자리에 앉은 레이먼드의 말대로였다.
5회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경기는 메츠가 2점을 리드하고 있었다.
스코어 2 대 0.
1선발투수인 리올이 5회까지 무실점 피칭을 이어가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대로만 이어진다면 신우에게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현재까지 던진 투구수는 모두 74구.’
5회까지 투구를 했다는 걸 감안했을 때 많은 투구수는 아니었다.
‘6회, 잘하면 7회까지는 던질 수 있다.’
오늘 리올의 제구력과 구위를 봤을 때, 남은 이닝 역시 무실점으로 막을 가능성이 높았다.
최소한 다실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메츠의 타선 역시 2점을 내긴 했지만 안타는 단 3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알론소의 투런포로 선취점을 얻었지만 그 이후 나온 안타는 1개에 불과했다.
즉, 타선의 타격감도 썩 좋은 편이 아니란 소리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박빙의 승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내게 기회가 온다.’
팀 역시 그걸 느끼고 있었다.
“대니얼, 레이먼드.”
불펜코치인 글렌이 두 사람을 불렀다.
“슬슬 몸 풀도록 해.”
“알겠습니다.”
“예.”
글렌이 부른 두 사람은 메츠의 필승조였다.
대니얼 레이먼드 그리고 신우로 이어지는 필승조라인은 내셔널리그 최고의 불펜진으로 불리고 있었다.
특히 레이먼드가 후반기 짧은 슬럼프에서 벗어나면서 막강함은 더해졌다.
‘앞서 몸을 푼 투수들도 필승조에 가까운 녀석들이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팀은 이 경기를 확실히 잠그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는 걸 말이다.
[너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매튜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경기는 자신에게까지 기회가 올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 * *
딱-!
[타구 높게 떠오릅니다. 중견수 자리를 잡습니다. 안정적으로 세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냅니다. 메츠의 두 번째 투수, 대니얼 피셔가 하나의 안타를 허용했지만 실점하지 않고 이닝을 마감합니다.]
[대니얼의 슬라이더는 언제 보더라도 일품이네요.]
[맞습니다. 저희는 광고 후에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PD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캐스터가 한숨을 내쉬며 헤드셋의 한쪽을 열었다.
“오늘은 기회가 올 거 같은데, 어때요?”
“흐름이 나쁘지 않아. 아마 신우에게까지 기회가 오겠지.”
해설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어후, 7회 첫 타자한테 홈런을 맞았을 때는 식겁했다니까요.”
“그래도 그 홈런이 나왔으니 마이크 감독도 투수교체를 할 수 있었지.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무실점으로 7회까지 온 리올을 함부로 교체할 순 없었을 테니까.”
“하긴, 투구수도 100구를 넘기지 않았으니까요.”
선발투수에게 100구는 일종의 한계선이다.
이 선을 넘어가면 선발투수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보게 된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다.
100구를 넘기지 않았다면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다 판단을 하고 교체를 하는 게 어렵다.
이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교체 타이밍이 한박자 늦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리올이 홈런을 허용하면서 다행이 타이밍이 나왔다.
“신우의 등판을 바라는 우리한테는 오히려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오늘 등판하면 기록 세우겠죠?”
“당연한 거 아니야? 올 시즌 세이브성공률 100퍼센트 투수인데, 실패할 리가 없지.”
“그렇죠. 그런데 야구를 보다보면 꼭 이런 중요한 순간에 뭔가 일이 터지더라고요.”
똑똑-!
“광고 끝납니다.”
그때 PD가 신호를 주었다.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 다시 방송을 준비했다.
‘야구라는 놈이 그런 게 심하긴 하지만...’
해설위원은 캐스터의 불길한 말을 애써 고개를 저어 떨쳐내며 경기에 집중했다.
* * *
뻐억-!
“나이스 볼!!”
불펜에서 신우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의 공이 공간을 가로질러 포수의 미트에 꽂히자 주위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와...”
“지렸다.”
“무브먼트 오늘도 죽이네.”
불펜을 바라보는 팬들의 감탄사에 신우도 동감했다.
‘백퍼센트다.’
하루를 쉬어서 그런가 몸상태가 최고조로 좋았다.
덕분에 자신감이 붙었다.
“시누.”
그때 글렌이 그를 불렀다.
모니터를 바라보다 8회말 공격이 끝나가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스트라이크! 아웃!]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갔다.
“가라.”
글렌의 신호에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불펜의 문을 올렸다.
46번째 세이브사냥을 나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