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67화 >
* * *
다음 날.
구장에 나온 신우는 클럽하우스에 변화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시누. 왔어?”
2루수 루이스가 다가와 신우의 등을 툭 쳤다.
“어, 루이스. 그런데 그렉의 자리가 보이지 않는데?”
신우의 옆은 레이먼드 그리고 그 옆이 그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렉의 자리에 짐이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선수들은 클럽하우스에 약간씩의 짐을 두고 다닌다.
가족의 사진을 붙여두거나 화장품 같은 걸 두는 이들도 있었다.
그렉 역시 가족사진을 붙여두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었다.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됐다고 들었어.”
“클리블랜드?”
“응. 이제 슬슬 트레이드의 계절이 왔다는 거지.”
메이저리그 트레이드.
KBO를 즐겨 시청하던 한국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문화 중 하나였다.
한국은 선수풀이 좁고 단일리그로 시즌이 치러진다.
그렇기에 트레이드가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다.
트레이드 된 선수가 다른 팀에서 성공할 경우 비수가 되어 날아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메이저리그도 비슷하다.
트레이드가 활발하더라도 같은 지구나 리그의 팀보다는 다른 리그의 팀과의 거래에 활발했다.
또 다른 이유는 구단의 성향에 있었다.
KBO구단의 운영비는 대부분이 모그룹에서 나온다.
반면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자체적으로 조달한다.
그렇기에 선수를 팔면서 구단의 운영비를 충당하는 일은 당연하게 이루어졌다.
[이번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케이스지.]
[메츠도 우승을 노리고 있지만 선발이 약하고 클리블랜드도 우승을 노리지만 불펜이 약하다. 그러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이루어진 트레이드니까.]
‘그래도 설마 그렉 버드정도 되는 네임밸류의 선수가 하루아침에 타구단으로 사라지다니. 생각도 못했어요.’
[그만큼 데려올 선수도 네임밸류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지.]
[빅리그에서는 1선발 투수가 트레이드 되는 일도 매년 일어난다. 전 마무리투수의 트레이드는 언제나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지.]
[이건 시작에 불과할 거야.]
작년에 합류한 빅리그.
하지만 신우는 아직 많은 게 어색한 곳이었다.
* * *
[뻐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모니터에 비친 투수가 삼진을 잡아냈다.
“크리스라는 저 친구, 커브가 인상적이네.”
레이먼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12시에서 6시로 뚝 떨어지는 각이 큰 커브에 타자들의 배트가 헛돌기 일쑤였다.
최고구속은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다양한 로케이션을 통해 이닝을 막아가고 있었다.
‘그렉을 보내고 데려온 이유를 알 수 있는 투구야.’
6이닝 2실점.
홈런 하나를 허용한 게 아쉽긴 했지만 모두 크게 무너지지 않으며 크리스의 첫 등판이 마무리됐다.
“오랜만에 일할 기회가 찾아왔군.”
레이먼드의 말대로였다.
현재 스코어는 4 대 2.
이대로 레이먼드까지 이어진다면 오랜만에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팀의 승리를 지킬 수 있는 기회가.
* * *
딱-!
[4구 때렸습니다! 높게 떠오른 타구! 중견수 뒤로 이동해 워닝 트랙에서 잡아냅니다. 이닝 종료! 스코어 여전히 4 대 2의 상황에서 9회말로 이어집니다.]
신우는 문을 열고 불펜을 나섰다.
“우-! 우-! 우-!!”
메츠 팬들이 쏟아내는 신우의 챈트와 함께 마운드에 도착한 신우는 투수코치인 베이커에게 공을 전해받았다.
“오랜만의 등판인데, 몸은 제대로 풀었어?”
“예. 괜찮습니다.”
신우는 곧 연습투구를 시작했다.
오랜만의 등판.
마지막 등판 이후 7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개점휴업상태가 이어지면서 마이크는 신우에게 실전감각을 유지할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만약 오늘까지 기회가 없었다면 그랬을 거다.
그렇기에 걱정이 되었다.
뻐억-!
퍽-!
하지만 신우는 개의치 않고 공을 던졌다.
[네가 해야 될 일은 무척이나 단순하다. 그게 뭐지?]
‘세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 겁니다.’
[정답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너는 지금 해야 될 일을 하면 된다.]
‘예.’
오랜만의 등판이라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
뻐억-!
“좋은 공이다. 평소대로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베이커가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홀로 마운드에 선 신우는 돌아온 공을 받아들고 로진을 손에 묻혔다.
피처플레이트를 밟은 그의 시선이 토마스에게 향했다.
‘바깥쪽, 커터.’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우타석에 선 타자를 바라봤다.
오늘 말린스의 2타점을 홀로 올린 파울로였다.
빠른 공에 강점을 가진 그는 컨택과 파워를 겸비한 타자로 정평이 나있었다.
“후우...”
깊게 숨을 뱉은 신우가 다리를 차올렸다.
그리고 초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딱!
“파울!!”
[94마일의 커터를 타격! 하지만 파울이 됩니다!]
[아슬아슬하게 라인 밖으로 흘러나가는 타구였어요. 조금 더 각이 날카롭게 꺾어야 합니다.]
다소 밋밋한 커터가 들어갔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신우는 다시 사인을 교환했다.
‘몸쪽, 커터.’
고개를 끄덕였다.
신우의 가장 큰 강점은 몸쪽과 바깥쪽을 자유자재로 던질 수 있는 제구력에 있었다.
바깥쪽은 대부분 투수들이 별 다른 어려움 없이 던질 수 있다.
하지만 몸쪽은 다르다.
제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데드볼과 볼이 한가운데로 쏠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몸쪽 코스를 어려워하는 투수들이 많았다.
그러나 신우에게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몸쪽을 공략하지 못하는 투수는 투수가 아니다.]
[그런 새가슴은 공을 던지면 안 되지.]
[얼마나 본인의 제구력에 자신이 없으면 그렇게 함?]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잔소리와 함께 제구력에 힘을 기울였다.
제구력은 투수의 일정한 딜리버리에서 나온다.
투구를 할 때의 모든 움직임이 기계처럼 정확하다면 제구력은 자연스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신우는 그 딜리버리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덕분에 강속구와 함께 제구력 역시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쐐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타자 엉덩이를 뒤로 뺐지만 구심의 손은 올라갔습니다!]
[이번에는 커터가 매우 날카롭게 존을 찔렀습니다. 타자 입장에선 포심이 몸쪽으로 붙어 날아오니 불안한 마음에 피했겠지만, 마지막에 백도어성으로 존에 들어가면서 스트라이크 콜이 올라갔습니다.]
[초구와는 달랐다고 보시는군요?]
[예, 초구보다는 확실히 날카롭게 공이 들어갔습니다.]
신우는 로진을 묻히며 만족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들어갔다.’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이전과 같았다.
큰 이상이 없었다는 걸 판단한 신우가 다시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리고 사인을 교환했다.
‘바깥쪽 커터.’
고개를 저었다.
‘하이 패스트볼?’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체인지업.’
고개를 끄덕였다.
토마스는 약간 의아함을 가졌다.
신우는 체인지업을 자주 던지는 투수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기 위해 던졌고 그것을 택하는 건 대부분 포수인 자신이었다.
먼저 체인지업을 요구한 것은 최초로 선보일 때가 처음이었다.
그가 스스로 체인지업을 요구한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하이 패스트볼을 한 번 더 보여주는 게 좋겠지만.’
하이 패스트볼을 보여준다면 체인지업의 효과는 한층 더 올라간다.
체감속도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수가 먼저 요구한 것을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토마스가 미트를 내미자 신우가 와인드업을 했다.
뒤이어 패스트볼과 동일한 딜리버리에서 팔이 뻗어나왔다.
“흡-!”
쐐애애액-!
외마디 기합소리와 함께 손을 떠난 공이 타자를 향해 날아왔다.
촤앗-!
토마스의 눈에 타자가 오픈스탠스를 하는 게 보였다.
체인지업을 예상한 건지, 아니면 몸쪽 코스를 예상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스윙의 궤적과 공의 궤적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위험...!’
후웅-!
배트가 눈앞을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토마스는 배트가 시야를 가리기 직전.
공의 궤적에 변화가 일었다.
마치 뱀이 배트를 피해 먹잇감을 노리고 달려들 듯,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들어갔다.
후웅!!
배트가 허공을 가르고 그 밑으로 공이 통과해 날아들었다.
글러브로 그것을 받으려고 했던 토마스는 이내 몸을 날렸다.
‘늦었...!’
늦었다는 걸 간파한 토마스가 급히 팔을 상체 왼쪽으로 기울었다.
공이 그의 가슴팍을 맞고 땅에 떨어졌다.
그것을 본 타자는 급히 1루를 향해 내달렸다.
토마스는 급히 일어나며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공을 찾았다.
“라인!! 라인!!”
그때 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토마스의 시선이 3루 라인을 확인했다.
그곳에 공이 있는 걸 발견한 토마스는 재빨리 낚아채 1루로 송구했다.
퍽-!
“아웃!!”
[스트라이크 낫아웃에서 재빨리 1루에 송구! 첫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토마스 선수의 블로킹도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정신우 선수가 던진 써클체인지업의 무브먼트가 환상적이었습니다.]
[때마침 다시 나오는군요.]
영상속에서 신우가 공을 던졌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이 타자의 몸쪽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포심 혹은 커터라고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타자의 스윙이 시작된 순간.
공의 궤적이 변했다.
아래로 뚝 떨어지더니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들어갔다.
[이 무브먼트입니다. 종으로 뚝 떨어지면서 우타자의 몸쪽을 파고들었어요. 이전보다 더 날카롭고 변화가 심한 무브먼트를 보여주었습니다.]
[확실히 이전보다 무브먼트가 더 심해진 것 같군요.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글쎄요. 본래 정신우 선수의 써드피치(세 번째 구종)인 써클체인지업의 완성도는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던진 구종은 커터나 포심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즉, 한단계 레벨업을 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신우가 홈플레이트로 걸어와 토마스의 마스크를 집어 건넸다.
“얌마, 이런 공을 던질거면 미리 언질이라도 주지.”
토마스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잘 들어갈지 몰랐죠.”
“언제 이런 공을 연습한 거야?”
“개점휴업 상태에서 놀 순 없잖습니까? 그래서 매일 불펜장을 찾았죠.”
“매일?”
“예.”
가볍게 대답을 하는 신우의 모습에 토마스는 고개를 저었다.
‘루키가 저렇게 한다고?’
루키가 왜 루키일까?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루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것이 미숙하다.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서 해결할 능력이 없다.
코치가 있고 감독이 있는 이유가 그래서다.
‘대부분 루키들은 출장을 하지 못하면 초조함만 느낀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 아니,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지. 그게 당연한 거야. 처음 경험하는 거니까.’
토마스는 마스크를 쓰며 캐처박스에 앉았다.
‘그런데 혼자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었다고?’
이게 정말 루키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었다.
‘지금 고민할 건 이런 게 아니지.’
신우의 약점으로 지목되던 것이 바로 써드피치의 부재였다.
커터와 포심 패스트볼은 악력에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신우의 커터는 더더욱 악력에 영향을 받는다.
체력소모가 심해지는 여름이 되면 악력이 떨어지면서 신우의 약점이 드러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었다.
그런데 그 약점이 드러나기 전에 느닷없이 세 번째 무기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수준의 공을 말이다.
‘이런 놈을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만약 자신이 상대해야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황당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곧 현실이 되어 상대타자들에게서 나타났다.
후웅-!
퍽!
“스윙! 아웃!!”
[써클체인지업으로 또 다시 헛스윙을 유도합니다!!]
[이 정도의 무브먼트라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후웅-!
퍽!!
“스윙 아웃!!”
[자세 무너지며 스윙했지만 공을 건들지 못합니다! 세 번째 아웃카운트 역시 써클체인지업으로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 세 타자를 상대로 3K를 기록하며 시즌 35세이브를 기록합니다!]
오랜만의 등판에 긴장했던 한국팬들은 경기가 끝나자 일제히 댓글을 달았다.
- 써체 무브먼트 봤음?
ㄴ 레알 지리던데.
ㄴㄴ 와...페드로 마르티네즈 보는 줄.
- 예전에는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었는데, 어케 한 거지?
- 레알 미쳤다.
- 일주일만에 등판인데 이 안정감 무엇?
ㄴ 침대는 에이스, 세이브는 정신우.
ㄴㄴ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 써체를 이 정도로 계속 던질 수 있으면 레알 써드피치까지 완성형이네.
- 포피치 장착하면 바로 선발가능?
ㄴ 쌉가능.
ㄴㄴ 뜬금없이 웬 선발?
ㄴㄴㄴ BK 케이스 모르냐? 클로저 잘한다고 선발도 잘 하는 거 아님.
ㄴㄴㄴㄴ 야구의 꽃은 선발임. 아무리 클로저의 가치가 높아졌다지만 WAR나 연봉만 놓고 보더라도 선발이 우선임.
뜬금없는 선발전환에 관한 이야기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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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스가즈아의 공허한 외침에 오늘도 추천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