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65화 >
* * *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LA다저스의 케이버트 루이스 선수가 메츠의 피트 알론소 선수를 누르고 우승을 하였습니다.
(중략)
내일 올스타전에는 한국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올스타전에 뽑힌 정신우 선수가 출전이 유력해 많은 한국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기사를 본 신우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후우...”
아침에 일어나는 건 모든 사람들에게 곤욕이다.
그건 신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신우는 아침이 아니라 점심즈음에 일어나는 거지만 말이다.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들이켰다.
그리고 샤워를 한 뒤에 잠에서 깨어났다.
“흠냐...”
어느 정도 잠에서 깨어난 신우는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그러자 눈앞에 작은 창이 떠올랐다.
[방송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저승방송.
정식명칭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우는 그렇게 불렀다.
저승으로 연결되는 이 방송은 잠이 들 때면 비활성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원할 때에는 방송송출을 중단할 수 있었다.
이는 방송중단과는 다른 의미였다.
일시적인 중지로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만약 이 상태로 일주일동안 방송을 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연결이 끊어지면서 두 번 다시 저승방송을 켤 수 없게 된다.
[매튜슨님이 입장하셨습니다.]
[ㅎㅇ]
“어서오세요.”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매튜슨이었다.
[사이영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월터존슨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뒤이어 많은 레전드플레이어들이 입장했다.
대부분 신우에게 직접적인 조언을 해주는 이들이었다.
“어서들오세요.”
[운동했음?]
[아직 안했네.]
[운동 ㄱㄱ 하자.]
“예, 예.”
그들의 재촉에 신우는 하품을 하며 객실을 나섰다.
‘그런데 선배님들은 안주무십니까?’
[응?]
[죽은 놈들한테 잠을 자라는 거임?]
[이건 뭐, 물고기한테 숨 안막히십니까? 라고 묻는 꼴이네.]
‘아니, 제가 저승에 가본 것이 아니잖습니까. 모를 수도 있지.’
[안 자도 된다. 육체가 없기 때문에 딱히 피곤하거나 그런 건 없어.]
[막 죽은 애들은 버릇처럼 잠도 자고 밥도 먹지만, 그것도 잠깐 하는 거지, 대부분 곧 저승에 적응함.]
‘그렇군요.’
신기한 저승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우는 피트니스 센터에 도착했다.
평소 머물던 호텔이 아니었기에 구조가 조금 달랐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신우는 평소 하던대로 러닝부터 시작하여 스트레칭, 근육운동 순으로 루틴을 시작했다.
“후우-! 후우-!”
2년 전.
레전드 플레이어들과 만난 후.
신우의 아침운동은 일종의 루틴이 되어 지켜지고 있었다.
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잔소리가 시작되며 그의 발을 피트니스센터로 향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펑크를 내지 않고 루틴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올스타전 당일에도 신우는 이러한 루틴을 지키면서 자신만의 규칙을 이어나갔다.
* * *
[메이저리그 올스타전도 어느덧 후반전이 이르렀습니다. 7회까지 내셔널리그가 3 대 2의 스코어로 아메리칸리그를 앞서고 있습니다.]
올스타전도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한선예는 신우 덕분에 그라운드 근처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내셔널리그가 이기고 있네.’
예전에는 메이저리그에 대해 잘 모르던 그녀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꾸준히 공부를 하고 관심을 두면서 이제는 웬만한 사람들만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신우의 팀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이어지면 신우가 곧 등판하겠네.’
클로저라는 보직이 팀이 이기고 있을 때 오른다는 걸 알고 있는 그녀였다.
거기다 8회가 진행이 될 차례이니 다음 이닝에 마운드에 오를 확률이 높았다.
“신우씨가 몸을 풀기 시작하네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제이슨이 말하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중계화면이 나오고 있었는데, 내셔널리그의 불펜을 비춰주고 있었다.
불펜에선 투수 두 명이 몸을 풀고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이 바로 신우였다.
“8회를 잘 넘어가면 9회에 등판할 거 같네요.”
“어서 등판했으면 좋겠어요.”
포스트시즌에도 와서 직접 관람을 했었던 한선예다.
그렇기에 메이저리그 경기가 얼마나 열광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올스타전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축제와 같은 이 느낌이 포스트시즌보다 그녀에게는 더욱 즐겁고 부담이 없었다.
덕분에 경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딱-!
그때 그라운드에서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와아아아아-!!”
뒤이어 관중들이 환호를 질렀다.
한선예는 경기장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했다.
“애런 저지 선수가 안타를 때렸네요.”
“아메리칸리그 선수였죠?”
“네. 뉴욕 양키스 소속의 선수입니다. 아주 잘 하는 선수죠.”
“아...그렇군요.”
제이슨의 설명에 한선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선수가 출루를 하는 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어서 끝나고 아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모여 경기를 하는 올스타전이지만 한선예의 관심은 오직 신우에게만 쏠려 있었다.
부모가 원래 그랬다.
세상에 아무리 큰일이 터지더라도 자식이 우선이었다.
따악-!
“와아아아아!!”
그때 또 다시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자가 만들어졌다.
“연속 안타네요.”
제이슨의 시선은 그라운드에 고정됐다.
두 명의 주자가 쌓이는 동안 하나의 아웃카운트도 올라가지 않은 상황.
결국 마운드에 코치가 올라왔다.
그리고 투수에게 공을 받았다.
“교체하나본데요?”
“그래요?”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결국 투수 교체됩니다. 신우 정이 불펜에서 나옵니다.]
“신우씨가 나오나 봐요.”
“정말요?!”
한선예가 급히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그러는 사이, 마운드에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서있었다.
신우의 등판이었다.
* * *
[정신우 선수, 마운드에 오릅니다.]
한국방송 역시 신우의 등판에 흥분했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인 선수가 올스타전에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2019년 류진현 선수가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스타전 선발로 나서는 역사를 써낸 뒤로는 최초의 일이죠.]
[그렇습니다.]
최고의 한국인 메이저리거 선수 중 한 명이었던 류진현.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최고의 시즌 중 하나로 기록되었던 2019년 그는 올스타전 선발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내며 한국인 메이저리거로서 역사를 장식했었다.
[팀에서 언제나 위기의 상황에 등판했던 정신우 선수인데, 올스타전에서도 그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사 1, 2루. 거기다 1점차라는 타이트한 상황에서 등판을 하게 됐습니다.]
[김진수 해설위원께서는 현역시절 많은 올스타전에 나가보셨지 않습니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KBO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무척이나 떨립니다. 마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특히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뽑혔을 때는 사실 정신없습니다. 경기 전에 수많은 팬들에게 사인하죠. 거기에 관계자들도 정말 많이 만나게 됩니다.]
[아, 그렇겠군요.]
[특히 다른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야 된다는 게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렇습니까?]
[예. 같이 호흡을 맞춰오던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게 되어 있거든요. 물론 이들이 모두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라는 건 알지만 익숙함에서 오는 안정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그렇겠군요. 듣고보니 정신우 선수가 걱정됩니다. 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에서 그것도 올스타전에 뽑힌 그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겠습니다.]
[지금 정신우 선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해설위원의 걱정과 달리 마운드에 있는 신우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팔 각도 내려갔다.]
[왜 손이 먼저 나오냐? 상체를 돌리고 손이 나와야지?]
[마지막 순간에 공을 팡-! 하고 쳐줘야지!]
그의 눈앞에는 수많은 레전드들의 훈수로 채팅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후우...”
[왜 한숨임?]
[긴장됨?]
‘당연히 긴장되죠.’
[풉!]
[간땡이가 쥐방울만하자너.]
‘아니, 솔직히 이런 상황에 긴장 안되십니까?’
[왜?]
[와이?]
[모르겠는걸? 나는 간땡이가 쥐방울만하지 않아서 모르겠는걸~?]
[짜샤! 나 때는 말이지. 관중들이 이렇게 얌전하지도 않았어.]
[ㅇㅈㅇㅈ]
[우린 경기에서 지면 씨바-! 돌에 쳐 맞았지.]
[캬하-! 그때는 안전요원 같은 게 있지도 않았지. 그냥 관중난입하면 쳐 맞는 게 일이었지.]
[패배하기라도 했다가는 길거리가다가 쳐 맞기도 했다니까? 물론 그 새끼는 나도 면상에 콱! 주먹을 날려줬지만 말이야.]
[ㅋㅋㅋㅋ 레알 그랬었지.]
[그때가 그립구만.]
1900년대 초반.
그 시대를 생각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던 시대니 말이다.
하지만 신우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들이었다.
관중과 주먹다짐을 하다니 말이다.
‘아니, 그게 진짭니까?’
[뭐가?]
‘관중하고 주먹다짐을 하다니...’
[레알이지.]
[우리가 구라치는 거 같음?]
[그때는 관중이고 기자고 뭐고 없었어. 그냥 후려치는 거지.]
[콥 쟤는 심판하고도 한바탕 했었지 ㅋㅋ]
신우는 고개를 저었다.
“신우, 괜찮나?”
내셔널리그 감독인 톰 필립스가 물었다.
그의 경험상 신우의 상태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로 보였다.
그렇기에 대화를 통해 긴장을 좀 해소시켜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괜찮습니다.”
‘뭐지? 이 변화는?’
순식간에 그의 표정에서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잘 부탁하네.”
“예.”
톰 필립스는 공을 건네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러면서도 신우를 한 번씩 돌아봤다.
‘루키시즌의 투수가 맞는 건가?’
올 시즌 정신우가 낸 성적은 말 그대로 경이로운 수준이다.
루키시즌에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그의 활약에 의문을 보내고 있었다.
톰 필립스 역시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본 그의 모습은 다른 루키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었다.
‘저러한 마인드컨트롤이 시즌내내 가능하다면...’
톱 필립스는 신우가 마인드컨트롤로 긴장감을 해소시켰다고 생각했다.
그것밖에 생각할 게 없었다.
그가 특별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활약도 납득할 수밖에 없지.’
톰 필립스는 더그아웃에 돌아와 마운드를 주시했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신우의 변화가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기다렸다.
“플레이볼!!”
[경기 재개됐습니다. 무사 주자 1, 2루의 상황. 정신우 선수가 이 위기를 막아내고 팀이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사인을 교환한 신우가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1루와 2루.
두 선수 모두 발이 빠르다.
언제든지 뛸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빠르게 슬라이드 스텝을 밟았다.
촤앗-!
야구화의 징이 마운드에 박히는 순간 하체가 회전했다.
뒤이어 허리가 회전하고 그 회전력이 상체까지 올라왔다.
그 모든 힘을 담아 초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딱-!
“파울!!”
[초구 몸쪽 낮게 찌르는 배트 맞혔지만 파울이 됩니다!]
[각이 날카롭게 꺾이면서 배트의 안쪽에 맞았습니다. 파울이 된 게 오히려 타자 입장에선 다행이죠.]
[아-! 그리고 더그아웃으로 향합니다. 배트가 부러졌군요.]
[배트 브레이커라는 별명답게 초구부터 배트를 부러트리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아직 초구밖에 던지지 않았지만, 어떻게 보시나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커터의 구속도 그렇거니와 무브먼트 역시 매우 날카롭습니다. 올스타전임에도 크게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네요.]
[그렇습니다. 이거 김 위원께서 말씀하셨던 긴장감은 정신우 선수에게는 해당되지 않은 듯 합니다.]
[하하! 그러게요. 이거 참, 제가 새가슴인 걸 말한 게 부끄럽네요.]
해설위원의 말에 댓글이 빠르게 달렸다.
- 엌ㅋㅋ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땄던 김진수 위원 새가슴으로 밝혀져.
- 이건 김진수가 새가슴이 아니라 정신우가 메탈하트인 거지.
ㄴ 메탈하트 ㅇㅈㄹ ㅋㅋㅋㅋㅋ
ㄴㄴ 근데 인정이다. 어떻게 올스타전에서도 한결같냐.
ㄴㄴㄴ 이게 정신우의 매력이지.
- 얘는 월시 7차전 무사 만루에 등판해도 똑같을 거 같음.
ㄴ ㅇㅈ
- 예전에 박승환이 돌부처였다면 얘는 메탈부처임.
ㄴ 표절 즐.
ㄴㄴ 위에 다른 애가 이미 했음.
ㄴㄴㄴ 뇌절 자제좀요.
타자가 다시 배터박스로 돌아왔다.
그런 타자를 향해 신우가 2구를 뿌렸다.
뻐억-!!
“스트라이크!!”
구심의 우렁찬 콜이 그라운드를 울렸다.
* * *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중인 정신우 선수가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팀 소속으로 참가, 8회 무사 1, 2루의 위기에서 마운드에 올라 더블플레이 1개와 삼진 1개를 곁들이며 위기에서 팀을 끌어올렸습니다.
아쉽게도 올스타전MVP에는 선정되지 못했으나 정신우 선수는 첫 올스타전에서도 언터처블의 모습을 선보이며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한편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뉴욕양키스와의 경기에서 때려낸 정신우 선수의 배트플립 영상을 올리며 (Fantastic Batflip!!)이라는 문구를 사용해 다시 한 번, 배트플립을 정착시키겠단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