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59화 (59/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59화 >

* * *

LA원정은 두 번째다.

작년에 한 번, 올해 한 번.

‘여긴 정말 한국 같네.’

뉴욕에도 코리아타운이 있을 정도로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LA는 또 LA만의 느낌이 있었다.

‘무엇보다...’

특히 LA에 올 때는 원정을 온다는 느낌보다는 마치 홈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는 단연 팬들에게 있었다.

“신우-!”

“사인 해줘요!!”

“사진 한 번만 같이 찍어요!”

다저스타디움으로 들어가는 입구.

그곳에 모인 수많은 팬들이 신우가 등장하자 환호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그들 중 90퍼센트가 한인들이었다.

LA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 다음이 뉴욕이니만큼 이 두 도시를 오갈 때 한국인들의 반응을 더욱 체감할 수 있었다.

“휘유-! 시누는 정말 한국인들 사이에선 슈퍼스타네.”

토마스가 농담을 하며 지나갔다.

그리고는 팬들에게 다가가 사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신우가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 * *

가볍게 단체훈련을 끝낸 신우는 오랜만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상대는 베이스볼 투나잇의 장태호 기자였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인터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겸손은. 한국의 모든 언론들이 신우씨를 인터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요. 제가 고맙죠.”

신우가 씩 웃었다.

“일단 상투적인 질문부터 할까요?”

“옙!”

인터뷰가 시작됐다.

상투적인 질문부터 시작하여 날카로운 질문들로 이어졌다.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다른 변화구를 사용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신우는 애초에 안타를 자주 맞지 않는 타입의 투수다.

그렇다고 삼진율이 높지도 않았다.

K/9이 11이 넘긴 했다.

하지만 특급마무리의 경우 이 수치가 15 전후를 찍어야 했다.

마무리투수는 애초 타구를 만들어내지 않고 타자를 잡는 게 가장 이상적인 투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변수를 없애고 투수의 힘으로만 이닝을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메이저리그에서의 특급마무리에 대한 정의였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신우는 아직 더 올라갈 곳이 남아 있는 셈이었다.

“제가 던질 수 있는 구종에서 체인지업이 가장 떨어지기 하지만 아직까진 다른 구종을 추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당장은 두 개의 구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개의 구종이 커터와 포심이겠죠?”

“예.”

“확실히 커터의 피안타율이 0.132로 메이저리그 역사로 보더라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합니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10시즌의 1할 7푼 4리보다 낮은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그렇습니까? 사실 그런 건 잘 몰랐는데.”

“선수들이 대부분 이런 상세한 데이터에는 관심이 없긴 하죠.”

의외로 야구매니아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선수들이 데이터에 민감할 거란 점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 세이버매트릭스의 세부스탯을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실제 2010년대 최고의 투수였던 클레이튼 커쇼는 세이버매트릭스보다는 선수의 근성론을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도 했었다.

“음, 어쨌건 리베라보다 커터의 피안타율이 낮다니. 기분이 좋네요. 시즌이 끝나면 어찌될지 알 수 없지만 일단 현재를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대답이었다.

시즌 절반이 지났고 앞으로는 페넌트레이스 후반기가 시작된다.

체력은 떨어질 것이고 피안타율은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래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맞춰 한 대답은 정답과 가까웠다.

그 뒤로도 신우는 신인답지 않게 좋은 대답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렇게 삼십여분의 인터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났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다음에 또 인터뷰할 수 있도록 부탁드릴게요.”

“예. 그럼 오늘 경기 이기시길 바라겠습니다.”

장태호와 인사를 나누고 신우는 라커룸으로 향했다.

이제 경기를 준비해야 될 시간이었다.

* * *

다저스는 2010년 중반부터 본격적인 내셔널리그의 강자로 군림했다.

2010년 초반의 맥코트 구단주 시대는 LA다저스의 최대 암흑기라 불릴 정도로 막장인 시대였다.

하지만 구단주가 바뀐 이후부터 그들은 내셔널리그의 절대강자로 매년 가을야구는 당연한 팀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24시즌인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코어 0 대 7.

6회가 끝난 시점에서 뉴욕 메츠는 완벽히 다저스에게 밀리고 있었다.

[다저스의 공격력이 무섭네요.]

[그렇습니다. 럭스-벨린저-루이스로 이어지는 중심타선도 무섭지만 하위타선 역시 피해갈 곳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만만한 타순은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밖에 없죠.]

신우가 보더라도 다저스 타선은 매서웠다.

[작년보다 더 무서워졌누.]

‘그러게요. 작년에 루이스가 없어서 그래도 중간에서 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추석에 고속도로 타고 고향 내려가는 기분이네요.’

[그게 무슨 기분임?]

‘꽉 막혔다는 거죠.’

[표현력 죽이누.]

[물론 우리는 모름.]

[ㅋㅋㅋㅋㅋ]

채팅을 보며 신우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자신이 나갈 기회가 없을 듯 했다.

‘이게 아쉽다니까.’

마무리투수로서 승리를 지킨다는 자부심은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주는 건 자신 스스로가 아니었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기에 팀이 지고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럴 때는 매번 짙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신우는 애써 그 아쉬움을 삼키며 경기를 관전했다.

* * *

6월 30일.

메츠는 올스타 브레이크를 남겨두고 마지막 경기를 위해 뉴욕으로 돌아왔다.

홈경기는 아니었다.

뉴욕에는 두 개의 메이저리그 팀이 연고지를 두고 있었다.

양키스와 메츠.

사실 두 팀의 라이벌리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는 팀이라는 점, 그리고 각기 다른 리그에 속해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역사적으로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가 라이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들이 섞여 인터리그에서 괜찮은 흥행을 낳고 있었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꽤 좋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도 이 시리즈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메츠는 기본적으로 브루클린 다저스의 색깔이 강하게 남아 있는 팀이다.

과거 다저스가 있었던 브루클린의 옆인 퀸즈에 위치해 있어 다저스의 팬이 많이 유입된 탓도 컸다.

메츠의 유니폼이 자이언츠의 노란색과 다저스의 파란색이 섞여 만들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런 두 팀의 대결은 지하철로 각 구장을 오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 서브웨이 시리즈라 불린다.

‘지역라이벌전이란 거 편하네요.’

[그래?]

‘예.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신우의 입장에선 지역라이벌전이라 해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참여해본 적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미국의 정서를 아직 백퍼센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신우는 아직까지 이방인이었다.

이곳에서 먹고 자고 한다지만 생각하는 건 한국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서브웨이 시리즈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실제 전쟁에 나가는 병사는 여유로운데.]

매튜슨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거 같았다.

[구경꾼들은 이미 전쟁을 시작했네.]

[하-! 메츠가 양키스를 이긴다고?]

루스의 말에 메츠의 초대감독인 케이시가 채팅을 쳤다.

[당연하지. 양키스따위 올해는 지구 2위밖에 못하지 않았나?]

[작년에 월시 우승한 거 모르냐?]

[하하! 작년 이야기를 꺼내다니. 누가 고리타분한 노친네 아니랄까봐.]

[네가 나보다 일찍 태어났거든?!]

루스가 발끈했다.

루스는 95년생이고 케이시가 90년생이니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물론 1800년대의 이야기다.

[저승에 먼저 온 사람이 누구더라?]

[아놔...!]

[무엇보다 8회까지만 막으면 시누가 9회는 지울 건데, 당연히 메츠가 유리하지.]

[젠장! 시누, 너 오늘 대충 던져라!!]

‘예?’

[그럼 내가 타격 제대로 알려준다!]

[어허-! 승부조작을 권하는 거냐?]

[조작은 무슨!! 어때? 구미가 당기지?]

루스의 말에 신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럴 수 없잖습니까.”

“응? 뭐가 그럴 수가 없어?”

그때 레이먼드가 다가오며 물었다.

“어, 아니야.”

“너무 경기에 못 나가서 긴장이 풀린 거야?”

“하하...”

최근 10경기에서 신우는 3번밖에 등판을 하지 못했다.

모든 경기에서 세이브를 기록해 현재 34세이브를 달성했다.

하지만 나가지 못한 경기가 더 많으니 아쉬움이 남은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 긴장풀지 말라고. 서브웨이 시리즈는 대체적으로 박빙으로 이어지니까.”

“그래?”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매 경기 3 대 1, 2 대 1 경기가 이어졌어. 덕분에 불펜이 죽어나는 시리즈였지. 너는 이번 시리즈 끝나고 올스타에 나가야 되니까, 체력도 비축해야 되잖아.”

“아직 발표도 안났다.”

“너 아니면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뽑을 수 있는 선수가 누가 있냐?”

레이먼드는 이제 완벽하게 신우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일 옆에서 지켜보는데 그를 언제까지나 시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신우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야구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네.”

“어쨌건 이번 시리즈는 너까지 나갈 가능성이 높으니까, 각오해둬.”

“응.”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도 비슷했다.

5회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까지 양팀의 스코어는 0 대 0이었다.

공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두 팀의 선발투수들이 수준 높은 투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단하긴 하네.]

[두 투수 모두 오늘 제대로 긁히는 날이야.]

[릴리스 포인트도 일정하고 무엇보다 변화구의 각이 크게 들어가고 있어.]

[이렇게 양팀의 투수가 컨디션이 좋을 때도 드문데.]

[라이벌전이 원래 이렇다니까.]

레전드 플레이어들 역시 동의하고 있었다.

그만큼 두 팀의 선발이 갑자기 무너질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불펜싸움이 되겠네요.’

[그렇겠지.]

[그리고 그때가 경기의 흐름이 바뀔 수 있는 타이밍이고.]

[양키스가 유리하겠네.]

‘응? 그게 무슨 소리에요?’

신우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두 팀의 불펜만 놓고 보면 메츠의 우위를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세부적인 스탯만 보더라도 메츠의 불펜이 더 좋았다.

특히 마무리까지만 온다면 신우가 있기에 메츠의 승리가 확정적일 거란 이야기를 하는 곳들이 많았다.

그런데 레전드 플레이어들은 오히려 양키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여기가 양키스타디움이란 게 그들에게 유리한 이유야.]

‘예?’

대답을 들었지만 이번에도 이해하지 못했다.

[보면 안다.]

알 수 없는 대답.

하지만 거기에서 약간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신우는 말없이 경기를 지켜봤다.

그 불안감을 지워보려 했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 * *

예상대로 선발투수들은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감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서브웨이 시리즈! 두 팀의 선발투수가 모두 마운드를 내려갔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매우 좋은 투수전이었습니다. 두 팀의 선발투수들은 7이닝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완벽한 투구를 했습니다. 지역라이벌전이라 그런지 흠을 잡을 곳이 없는 투구였습니다.]

[그리고 양키스는 곧장 셋업맨인 프란시스코 선수를 등판시켰는데요.]

[이건 좀 의외였습니다. 프란시스코 선수는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지만 1이닝이 한계인 투수거든요? 그런데 벌써 그를 소모했다는 게 바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8회말에서 점수를 낼 자신이 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만약 정규이닝에 경기를 끝내지 못한다면 양키스가 불리한 싸움이 될 겁니다.]

[그렇군요. 과연 메츠가 경기를 연장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혹은 9회초에 점수를 내서 정신우 선수에게 마운드를 건네줄 수 있을지.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8회말을 무실점으로 막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만약 8회말에 양키스가 점수를 낸다면 메츠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메츠의 마이크 감독, 여기서 셋업맨인 레이먼드 선수를 등판시킵니다.]

[좋은 선택입니다. 메츠는 레이먼드 선수 이후에도 그렉 버드라는 전 마무리투수가 있거든요? 비록 올 시즌 마무리였던 지난 시즌에 비하면 폼이 좀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운드에 안정감을 줄 수 있는 투수입니다.]

[즉, 뒤를 봐줄 투수가 여유있다는 소리군요.]

[예.]

마운드에 선 레이먼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레이먼드가 세 명의 타자를 가볍게 돌려세울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신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이먼드는 올 시즌 셋업맨으로서 평균자책점 1점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WHIP 역시 0.8을 기록하면서 신우와 함께 메츠의 뒷문을 단단하게 잠그고 있었다.

하지만.

딱-!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첫 타자부터 피안타를 허용하는 레이먼드!!]

첫 타자 안타를 시작으로.

퍽!

“볼!”

[볼넷입니다! 풀카운트 승부에서 던진 승부구에 타자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타자는 볼넷으로 내보낸 상황.

그리고 타석에는 양키스의 스타인 애런 저지가 들어섰다.

“이상한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우는 이상함을 느꼈다.

레이먼드의 공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볼끝이나 구위 무브먼트는 최고조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구속이나 제구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타자들은 속지 않았다.

‘마치 어떤 공이 들어오는지 아는 거 같아요.’

[정답이다.]

‘예?’

그냥 내뱉은 말에 정답이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신우는 당황했다.

그리고.

따악-!

경쾌한 소리가 그라운드에 울렸다.

그리고 마운드에 주저앉은 레이먼드와 그라운드를 도는 타자와 주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열광하는 팬들과 달리 신우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리고 그의 눈에 믿을 수 없는 채팅이 보였다.

[사인을 훔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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