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58화 >
* * *
경기 종료 이후.
수많은 기자들이 신우를 둘러쌌다.
[올~오늘은 역대급인데?]
[이렇게 기자가 많이 온 적이 있었음?]
[처음임.]
현대야구에서 클로저의 가치는 나날이 상승하고 있다.
중요도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인기도는 별개의 문제였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꼽히는 신우만 하더라도 전체 유니폼판매순위에선 20위권 밖에 있었다.
신인이라고는 하나 실력에 비해 너무 낮은 순위였다.
같은 신인인 케이버트 루이스가 4위, 베리 터커가 7위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확실한 차이를 알 수 있었다.
한이닝을 막는 클로저.
승리를 지킨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바꿔말하면 대중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적었다.
또한 야구를 자세히 모르는 이들에겐 불펜투수와 클로저는 크게 다를 게 없었다.
1이닝을 던지는 건 마찬가지로 보였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신우의 인지도가 미국내에서 높아지지 않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전반기 30세이브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역대 19번째 기록에 해당하는데,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런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록달성을 앞두고 떨리진 않았나요? 아니면 당연히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기록보다는 팀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정석적인 질문들이 이어졌다.
[에혀...]
[흐아아아암-!]
[인터뷰 졸 지루하누.]
[이러니 인기가 없지.]
‘아니, 그럼 이런 대답 말고 어떻게 하라고요?’
[이렇게 해야지!]
[30세이브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벌써 축하를 하시면 앞으로 40세이브, 50세이브, 60세이브에도 축하를 해주셔야 될 텐데요.]
[역대 19번째 기록에 해당되는데,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소감은 첫 번째 기록을 달성했을 때 하겠습니다.]
[기록달성을 앞두고 떨리진 않았습니까?]
[농담이죠? 최다세이브 기록도 아닌데, 떨 리가 있겠습니까?]
[캬하-! 대답 쥑이네.]
[요렇게 해야 어그로 좀 끌지!]
이 양반들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제정신이라니?!]
[얌마! 네가 무슨 모범생이냐? 팍팍 질러줘야 관심이 쏠리지!]
[프로선수 몸값이 실력으로만 정해지는 줄 알아? 스타성도 있어야 돼!]
[스타성은 실력도 좋지만 마이크웍도 쩔어야 되거든?]
무시하자, 무시.
신우는 채팅에서 눈을 떼고 인터뷰에 집중했다.
인터뷰는 스무스하게 진행되어 마지막 질문이 이어졌다.
“올 시즌 최종목표는 무엇인가요?”
정석적인 답이 떠올랐다.
그것이 입밖에 나오려는 순간.
[베이브루스님이 1000노잣돈을 후원하셨습니다.]
[최다세이브를 노리겠습니다!!!]
머리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기계목소리가 들려왔다.
워낙 큰 소리에 신우는 자신도 모르게.
“최다세이브!!”
“예?”
“예?”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면서 나온 대답에 기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리고 신우는 자신이 뭔짓을 했는지 몰라 다시 물었다.
그 순간, 기자들의 눈이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변했다.
“최다세이브를 노리겠다는 의미인가요?”
“예? 아...아니...”
“메이저리그 최다세이브라면 시즌 62세이브를 노리시겠다는 거죠?”
“그...그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미 자신의 입으로 내뱉었기에 신우는 거기에 맞춰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채팅창은 축제가 열렸다.
[ㅋㅋㅋㅋㅋㅋㅋ]
[당황하는 거 보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즐겨라, 짜샤!]
* * *
[정신우! 최다세이브를 노리겠다!]
[당차게 자신의 목표를 밝힌 정신우!!]
[메이저리그 최다세이브가 목표라고 밝힌 정신우!!]
신우의 인터뷰는 국내외 언론을 통해 빠르게 퍼졌다.
그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미국의 유명 커뮤니티사이트인 레딧은.
- 신우 정이 누구야?
ㄴ 메츠의 클로저.
ㄴㄴ 루키시즌인데 전반기에만 세이브 포인트 30개 획득.
ㄴㄴㄴ 오~쩌는데?
- 메이저리그 최다세이브가 몇 개지?
ㄴ 62개
ㄴㄴ 절반쯤 왔네.
-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가 전반기에 몇 개를 했었지?
ㄴ 38개.
ㄴㄴ 올스타브레이크 전에 38개 채우면 가능성은 있겠네.
ㄴㄴㄴ 과연 ㅋㅋ
- 오랜만에 재밌는 인터뷰 나왔네.
ㄴ 당돌해서 좋다.
- 아시안들 인터뷰 재미없었는데, 얘는 좀 재밌네.
ㄴ 인종차별임?
ㄴㄴ 그게 아니잖아. 그냥 그렇다는 거지.
ㄴㄴㄴ ㅋㅋㅋㅋ
레딧에선 재밌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하지만 한국은 조금 달랐다.
- 너무 헛바람 든 거 아님?
ㄴ ㅇㅈ. 이제 겨우 30개 해놓고는 무슨 메이저리그 최다 세이브야?
ㄴㄴ 국내언론에서 띄워주니까, 콧대 높아진 거지.
- 아직 루키인데, 이건 좀 아닌 듯.
ㄴ 너무 앞서간다고 본다.
ㄴㄴ 입으로 털지 말고 그냥 보여주면 되지.
ㄴㄴㄴ 맞음. 혓바닥 긴 애들중에 제대로 하는 애들 못봤음.
- 아니, 님들. 메쟈 유일의 무실점 투수인데, 이런 인터뷰 할 수도 있는 거지. 너무한 거 아님?
ㄴ 무실점 투수라는 것도 사실 선발로 따지면 4경기 좀 넘게 퀄리티스타트플러스 한 거 아님?
ㄴㄴ 이게 정답이지. 클로저니까, 아직까지 무실점인 거지. 선발이었으면 모름.
ㄴㄴㄴ 와...실환가?
- 프로선수라면 이렇게 멘트도 쳐주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ㄴ 맞말인데. 입 털어서 좋을 게 없다는 거임.
ㄴㄴ ㅇㅇ. 이렇게 호언장담해놓고 달성 못하면 그게 뭔 개쪽임?
ㄴㄴㄴ 일단 성과부터 내놓고 멘트 쳐도 안 늦음.
의견은 반반이었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댓글에도 출몰하면서 점점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사라졌다.
이내, 게시판에는 부정적인 글들만이 주르륵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일본은.
온갖 욕설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 * *
이틀 뒤.
원정경기를 위해 LA에 도착한 신우는 여전히 인터뷰로 인해 걱정이 많았다.
“에혀...”
[땅 꺼지겠네.]
[뭐가 그렇게 걱정임?]
“걱정 안되겠습니까?”
[어쭈? 이제 이까지 간다?]
[한 대 치겠네?]
“에혀...”
[까짓것 최다세이브 달성하면 되는 거 아님?]
[앞으로 32개만 하면 됨.]
“아니, 솔직히 세이브는 제 마음대로 되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아니야. 내가 저승사자한테 물어봤는데, 올해 너한테 하늘의 기운이 모여 있대.]
[ㅇㅇ 나도 들음.]
“에혀어어어어...”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무슨 한숨을 그리 쉬세요?”
“응?”
그때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마리아가 보였다.
“아닙니다. 그런데 일찍 오셨네요?”
“여기 카페 케이크가 맛있거든요. 그래서 혼자 한조각 하려고 했죠.”
전형적인 커리어우먼 스타일이면서 케이크를 이야기하며 미소를 짓는 모습에 묘하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캬하-! 저런 게 매력이지.]
[ㅇㅈㅇㅈ.]
“그럼 카페로 가실까요?”
“네.”
채팅을 무시하고 신우는 그녀와 함께 카페로 이동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뒤, 주문을 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30세이브 축하드려요.”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인터뷰 잘 봤어요. 인상적이었어요.”
“하...하하...”
“인터넷 반응도 좋더라고요.”
“그...럴리가요.”
“네?”
“저도 반응을 확인했는데, 정말 별로던데요?”
“응? 그럴 리가 없는데. 혹시 어디 사이트 보셨나요?”
“어...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봤어요.”
[얌마! 너 한국기사만 봤잖아.]
[미국인한테 한국기사에 달린 댓글을 이야기하누.]
“아...물론 한국기사에요.”
최근 말을 바꾸는 스킬이 늘어난 것만 같았다.
“아하-! 저는 미국쪽 반응만 확인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반응이 별로였어요?”
“네. 심각하게 별로였습니다.”
“으흠, 아무래도 나라마다 정서가 달라서 그런 거 같네요. 미국쪽은 반응이 무척 좋았거든요. 재밌었다면서요.”
“그...렇습니까?”
“직접 보여드릴게요, 잠시만요.”
그녀가 스마트폰을 몇 번 조작하더니 신우에게 건넸다.
“직접 보세요. 대부분 호의적인 반응이었어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 남겨진 글들은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진짜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간혹 입만 산 놈이라는 글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적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신우의 멘트를 쇼맨십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거봐라!]
[우리 말이 맞지?!]
[짜샤! 우리가 미국에서 산 게 몇 년인데!]
[다~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거든?]
단순히 저들이 장난을 친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쯤은 장난이었을걸?]
[엌ㅋㅋ 그걸 말하누.]
[재밌긴 했잖음?]
[ㅋㅋㅋㅋㅋ]
‘반쯤이 아니라 2/3는 장난 아니었습니까?’
[들켰누 ㅋㅋ]
‘젠장...!’
그래도 마음의 짐이 조금은 내려진 기분이었다.
모든 이들의 반응이 적대적이 아니라니 말이다.
“그리고 인터넷 반응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게 좋아요. 최근에는 선수들도 SNS 같은 것으로 팬들과 직접 소통을 하긴 하지만...사실 인터넷은 익명성이 보장되잖아요? 그러니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하는 경향이 커요.”
“그렇긴 하죠.”
“무엇보다 선수의 멘탈에도 그리 좋은 건 아니고요.”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본론으로...”
“실례합니다. 커피 세팅해드리겠습니다.”
“일단 먹고 본론으로 넘어가죠.”
“아, 예.”
디저트를 보고 눈을 반짝이는 마리아를 보며 헛웃음이 나오는 신우였다.
* * *
케이크를 절반쯤 먹은 뒤.
마리아가 본론을 꺼냈다.
“신우씨한테 다양한 스폰제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마리아가 태블릿PC를 건넸다.
“대부분 야구용품 전문업체들이 주를 이루었고요. 그동안 스폰이 없던 야구장갑이나 배트 야구화도 제안이 들어왔어요.”
“오호.”
“사실 이런 스폰은 마이너리그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신우씨는 너무 빠르게 빅리그로 올라와서 조금 늦어졌네요.”
“하하...그런가요?”
“네. 대부분 루키수준에서 최상위 수준으로 제안이 들어와서 부수입으로는 나쁘지 않을 거예요.”
“최저연봉만 받고 있어서 그런지, 부수입치고는 너무 많은데요?”
“한국에서 광고 많이 찍지 않아요?”
“작년에 한국에 들어가지 않아서요.”
“아...맞다. 훈련소에서 훈련만 하셨죠?”
“네, 그렇게 됐네요.”
“그럼 올해 한국에 들어가면 난리가 나겠네요. 일정 많이 잡히셨겠어요.”
“아직 한국쪽 에이전시는 계약을 하지 않아서 그것도 아직...”
“음, 그건 좀 문제인데요?”
“그렇습니까?”
“네. 광고계약 같은 건 원래 몇 달 전에 스케줄을 잡아야 되기 때문에 미리 조율을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에이전시 계약을 미리 해야 돼요.”
“아...”
몰랐던 사실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쪽에서 몇군데 에이전시를 알아봐드릴까요?”
“그럴 수 있나요?”
“한국에도 지사가 있어서 그 정도 업무는 가능해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조만간에 명단을 정리해서 따로 말씀드릴게요.”
마리아가 커피를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스폰서 계약에서 신우씨가 정해주셔야 될 부분이 있어요.”
“어떤 거죠?”
“계약기간이에요. 현재 시즌이 절반쯤 지난 시점이니 남은 절반의 시즌만 계약을 맺을 것인지, 아니면 차후 몇 년을 계약 맺을 것인지에 따라 들어오는 금액이 달라져요.”
마리아가 태블릿PC의 화면을 넘겼다.
그러자 단기적인 계약금과 장기적인 계약금의 그래프가 나타났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계약금이 더 높네요?”
“네, 선수의 발전성을 보고 계약금을 정하기 때문에 신우씨 같은 경우 계약금이 높아져요. 발전가능성이 높다고 보거든요.”
“단기적인 계약의 계약금이 낮은 건 반대의 이유겠네요.”
“현재 시점에서 신우씨의 가치만을 산정하기 때문에 낮아지는 거예요.”
냉정하게 말해 미국시장에서 신우의 가치는 높지 않았다.
스포츠용품 회사는 선수의 인지도와 인기를 이용해 자신들의 상품을 광고하길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력보다는 인기와 인지도를 더 높게 본다.
“또한 클로저라는 것 역시 하나의 장벽이고요.”
“노출이 적다는 게 약점이겠죠?”
“맞아요. 베이스볼은 원래 상품의 노출이 적어요. 그러다보니 타 스포츠보다 광고료가 적게 책정이 되죠.”
메시의 경우 연간 광고료로 받는 금액이 수천만달러에 달한다.
포브스가 발표하는 스포츠스타 광고료 순위에서 3위권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
반면 메이저리그 스타들중 가장 순 위가 높은 선수는 마이크 트라웃으로 16위에 랭크가 되는 게 최고순위였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높은 광고료가 붙는 선수들은 대부분 타자였다는 것 역시 마리아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신우씨가 최다세이브를 달성하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최다세이브...”
“그때는 상징적인 선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광고료는 올라가게 되죠. 그래서 제안드릴 게 있어요.”
신우의 시선이 마리아에게 향했다.
“일단 스폰서 계약을 단기로 맺고, 시즌이 끝난 뒤. 제대로 된 스폰서 장기계약을 맺는 게 어떨까요?”
[좋은 생각!]
[나도 동의!]
[최다세이브 가서 몸값 올리자아아!!]
[동감!!]
레전드 플레이어들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을 따라서 나쁠 건 없었다.
그리고 마리아의 생각은 분명 합당한 판단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결정!!]
[이걸로 정신우 최다세이브 무조건 해야 되자너.]
“최다세이브 꼭 달성하셔야 돼요.”
마리아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채팅이 겹쳐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