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55화 (55/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55화 >

* * *

마리아는 당황했다.

“네,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마리아입니다. 아-! 진! 잘 지냈죠? 네, 네. 메츠의 신우 정이요? 네, 저희쪽과 계약이 되어 있어요. 아, 배팅장갑이랑 야구화요? 알겠습니다. 선수의 의사를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그녀가 수첩을 확인했다.

‘오늘만 벌써 5건이야.’

5건은 물론 스폰을 제안한 회사다.

스포츠용품을 제작하는 곳들로 메이저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들이었다.

‘현재 시누가 스폰을 받고 있는 건 글러브 하나.’

메이저리그 선수가 스폰을 받을 수 있는 용품은 다양하다.

유니폼과 헬맷을 제외한 용품을 스폰받을 수 있다.

메이저급인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과 같은 회사와 계약을 맺으면 막대한 수익도 얻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장비를 제작할 때 선수의 네임밸류를 활용한 마케팅을 포함한다.

즉,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어야 이러한 계약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 외의 대부분 선수들은 적은 계약금과 장비를 지원받는 계약을 통해 장비를 수급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스타플레이어들의 경우지. 신인이나 AAAA급 선수들은 이런 스폰제안도 오지 않아.’

신인도 대형루키가 아니고서는 루키시즌에 이러한 제안이 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신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년 9월과 포스트시즌에서 충격적인 데뷔전을 보여주었지만 스폰계약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동양인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스폰을 한다는 건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지.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백인선수에게 후원을 해주는 게 좋지 동양인은 마케팅 효과가 약해.’

이는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있었다.

같은 비용을 투자해서 더 높은 효율의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그쪽에 투자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시누한테 스폰을 하겠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어.’

출근을 하자마자 전화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때 불현 듯 머리에서 번쩍이는 게 있었다.

의자에 앉은 그녀가 일정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곧장 인터넷을 열어 신우의 이름을 검색했다.

[메츠의 배트 브레이커, 애스트로즈를 잠재우다.]

[괴물 루키들간의 대결은 배트 브레이커의 승리?]

수많은 기사들이 떴다.

그중에 하나를 클릭해 내용을 읽어갔다.

어제 저녁 애스트로즈와의 경기 내용과 함께 신우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간파한 마리아는 내선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데이터분석팀에 연락을 넣었다.

“마리아에요. 어제 저녁부터 신우 정에 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보고해요. 급한 사안이니까, 최대한 빨리 해줘요.”

전화를 끊은 그녀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하며 신우에 대한 반응을 체크했다.

- 이 녀석 괴물이라니까!

- 내셔널리그에 이런 루키가 숨어 있었어?

- 도대체 이 녀석 누구야?

신우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하고 있었다.

‘어제 경기는 애스트로즈와의 인터리그였으니까, 전국으로 방영이 됐을 거고. 거기서 활약을 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진 거야.’

상황판단은 끝났다.

이제 중요한 건 대중의 반응이 얼마나 높은지였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선 제대로 된 데이터가 나와야 했다.

‘데이터가 나온 뒤에...’

마리아의 시선이 수첩으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거지.’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 * *

애스트로즈와의 3차전.

9회에 신우가 마운드에 올랐다.

“우우우우우-!!”

관중석에서 기다렸다는 듯 야유가 쏟아졌다.

[악당이 됐누.]

[ㅋㅋㅋㅋ 휴스턴 팬들이 단단히 화났나 보네.]

2차전 패배 이후, 애스트로즈는 지구 3위로 내려가게 됐다.

딱히 신우 탓은 아니었지만 애스트로즈 팬들은 신우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2차전은 애스트로즈의 승리로 끝났을 거다.

그렇게만 됐다면 2위를 수성했을 거고 1위와의 게임차도 좁힐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퍽-!

“우우우우우-!”

퍽-!

“우우우우우!!”

신우가 연습투구를 할 때마다 야유가 쏟아졌다.

[연습이라도 한 거 같누.]

[우리 시누 맨탈 탈탈 털릴 수도 있겠는데?]

연습투구를 끝낸 신우에게 마이크가 말했다.

“야유는 신경쓰지마라. 저 야유에 신경을 쓰면 오히려 저들의 계획에 넘어가게 되는 거야.”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의 어깨를 두드리고 마이크가 내려갔다.

홀로 남은 신우는 로진에 손에 묻히고 주위를 둘러봤다.

[신경쓰이냐?]

‘그럴리가요.’

매튜슨의 질문에 즉시 대답했다.

신경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기뻐? 변태임?]

‘제가 야구하던 퓨처스리그에는 관중이 없습니다.’

피처플레이트를 밟은 신우가 사인을 교환했다.

KBO 2군 리그인 퓨처스 리그.

그곳에는 관중이 거의 없었다.

가끔 찾아오는 관중들이 있긴 했지만 소수였다.

그 소수의 관중이 오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기에서는 무관중 경기를 해야 했다.

그게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야유를 쏟아내더라도...’

그런 경험을 했기에 신우는 지금의 상황이 기뻤다.

‘수만의 관중앞에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게 기쁠 뿐입니다.’

사인을 교환한 신우가 초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우우우우우!!”

초구부터 스트라이크가 꽂히자 야유가 더욱 심해졌다.

[변태는 아니고 관종이었네.]

‘아놔...’

[맞잖아?]

[팩튼데?]

[아니라고 해보시지?]

‘...’

연달아 이어지는 팩폭에 신우는 분노를 공에 담아 뿌렸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 * *

인터리그 첫 번째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끝낸 메츠가 홈으로 돌아왔다.

원정에 동행했던 단장 존 베켓은 구장에 출근하자마자 부하직원들의 보고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번 인터리그는 뉴욕에서도 큰 화제가 됐습니다. 특히 시누에 대한 뉴스가 가장 크게 나오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전체적으로 상승했습니다.”

“단순히 관심에서 그치지 않고 상품판매로 이어지면서 애스트로즈와의 3연전 기간동안 시누와 관련된 상품의 판매가 220퍼센트 상승했습니다.”

“기존에는 한국에서의 주문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미국 전역에서 골고루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

신우에 대한 보고가 연달아 이어졌다.

인터리그 3연전.

그곳에서 신우는 2게임에 등판해 3이닝동안 9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1승 1세이브를 만들어냈다.

특히 애스트로즈와의 2차전에서 보여준 무사만루를 이겨내는 모습은 3연전의 하이라이트로 꼽힐 정도였다.

각종 매체에서도 매일 같이 다루며 노출 역시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그날의 경기가 전국으로 송출되었다는 게 중요했다.

‘우리 팀의 마무리가 주목받는 게 얼마만이지?’

지역라이벌인 뉴욕 양키스.

대표적인 마무리투수로는 마리아노 리베라, 아롤디스 채프먼이 있었다.

반면 메츠의 대표적인 마무리투수는 딱히 생각나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그나마 이름을 댈 수 있는 투수가 빌리 와그너 정도밖에 없었다.

그 역시 2000년대의 투수로 3년밖에 메츠에서 뛰지 않았기에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 수는 없었다.

빌리 와그너가 팀을 떠난 뒤로는 메츠의 뒷문은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신우의 등장으로 8회까지만 경기를 이기고 있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전국에 있는 야구팬들이 그 사실을 알아가야 될 때였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중요한 건 지금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릴지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선수와 관련된 상품을 팔아 수익을 내야 했다.

즉,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시누의 유니폼 판매량은 6월달에 들어 전체 6위에 올라...”

“현재 구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시누의 상품이 뭐뭐 있지?”

“스탠다드 상품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시누의 상품판매량이 높지 않았으니까요.”

신우는 작년 9월부터 두각을 드러낸 선수다.

한국에서 많은 매출이 나오고 있었지만 한계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인터리그에서 신우가 좋은 활약을 펼치고 올스타전까지 출전할 수 있다면.

신우의 인지도는 단번에 전국레벨이 될 것이다.

구단에서 그때부터 상품을 준비하고 선보인다면 시즌 막판에야 그와 관련된 상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된다.

즉, 너무 늦어진다는 소리였다.

“시누에 대한 상품을 준비해보도록 해. 다른 구단에서 선보였던 한국인 선수와 관련된 마케팅을 조사하고 준비를 들어가.”

“준비라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말씀이시죠?”

“언제든지 상품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품화라는 건 완성단계까지 만들어두란 소리였다.

다소 이를 수도 있지만 대량생산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큰 손해는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사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다음 안건입니다.”

회의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존 베켓은 여전히 신우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에 계약을 해둘 걸 그랬었나?’

정신우와의 연장계약.

최근 메이저리그 계약 트랜드를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물론 위험성도 있었다.

강속구 투수는 부상위험이 크다.

특히 체격이 작은 투수가 강속구를 던지면 부상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동양인이라는 것 역시 불안요소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켓은 연장계약을 통해 그를 장기적으로 잡아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 에이전트는 보라스였다.

녹록하지 않았다.

다양한 협상을 했지만 결국 그들이 먼저 문을 닫았다.

아쉽지만 굳이 매달리지 않았다.

3년이란 시간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최근 성적을 보고 있자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값이 올라갈 게 눈에 보였다.

‘일단 이번 시즌이 끝나면 다시 논의를 해야겠어.’

이미 계약의 문을 닫은 지금, 무리하게 계약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었다.

시즌이 끝난 뒤 본격적인 협상을 이어가면 됐다.

존 베켓은 후회를 접고 회의를 이어갔다.

* * *

[메이저리그 소식입니다.]

설거지를 하던 한선예의 손이 멈췄다.

물을 잠근 그녀는 고무장갑을 벗고 TV 앞에 앉았다.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시즌 28번째 세이브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전체 세이브 1위에 다시 이름을 올렸습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2차전 9회초에 등판한 정신우 선수는 첫 타자를 깔끔하게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두 번째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지만 다음 타자를 상대로 커터를 던져 2루 땅볼을 유도, 병살타로 이닝을 마감하며 팀의 승리를 지켰습니다.]

TV에서 나오는 아들의 모습에 한선예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최근 TV에서는 매일 같이 아들과 관련된 뉴스가 방송되면서 굳이 아들의 기사를 찾아보지 않아도 됐다.

[여전히 메이저리그 유일의 평균자책점 제로를 유지하고 있는 정신우 선수는 7월 열리는 올스타전에 출전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올스타전의 출전명단은 7월 1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발표합니다.]

한선예는 아들의 기사가 끝나자 다시 설거지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지잉-!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를 확인한 그녀가 급히 전화를 받았다.

“아들~”

[엄마, 뭐하고 계셨어요?]

“저녁 먹고 설거지하고 있었지. 아들은?”

[이제 막 일어났어요. 엄마, 혹시 7월 초순에 미국에 오시겠어요?]

“미국에?”

[예. 아직 확정은 아닌데, 올스타전에 나갈 수도 있을 거 같아서요. 구단에서 올스타전에 나갈 선수들 가족들에게 비행기 티켓을 제공해준다 하더라고요.]

“아! 뉴스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니.”

[그래요?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닌데. 못 나갈 수도 있지만 일단 구단에서는 티켓을 제공해준다고 하니까, 오랜만에 미국에 와서 좀 지내시는 건 어때요?]

“그것도 좋지~요즘 집에만 있으니 심심했는데, 잘 됐다.”

한선예는 공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평일에는 평소 배우고 싶었던 베이커리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공장을 다닐 때보다 여유로웠지만 덕분에 시간이 남는 것도 사실이었다.

[알겠어요. 그럼 구단에는 그렇게 이야기해둘 게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나야 잘 지내지. 요전번에 마카롱을 만들었는데, 선생님이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주셨어.”

오랜만의 아들과 통화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한선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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