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52화 >
* * *
신우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가장 적응이 되지 않았던 부분이 바로 휴식일이었다.
KBO의 경우 휴식일이 딱 정해져 있었다.
매주 월요일.
이날은 모든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간혹 경기일정이 많이 밀릴 경우 시즌 후반기에 경기가 잡히기도 했다.
2군의 일정은 조금 더 유동적이긴 했지만 휴식은 비슷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달랐다.
휴식일이 딱 정해져 있지 않고 유동적이었다.
언제 쉴지 제대로 된 일정이 나오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그건 이동거리가 짧아서 그럴 수 있다니까.]
[이쪽은 꼭 경기를 보여줘야 된다는 마인드가 강하니까.]
[옛날부터 그랬음.]
[우리때는 전쟁날 때 빼고는 리그를 쉬는 일이 없었지.]
[나 징병될 때 구단에서 가지 말라고 난리였잖슴 ㅋㅋ]
저들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는 1,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참전해 전쟁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전성기를 잃어버린 선수들도 있었고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 사망한 선수도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크리스틴 매튜슨이었다.
“미스터 정?”
그때 한 여인이 신우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다가왔다.
“마리아씨?”
“네. 매니지먼트 부서의 마리아 윌슨이에요.”
“반갑습니다, 신우 정입니다.”
3일 전.
신우는 보라스와 스폰서에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서 보라스 코퍼레이션, 매니지먼트 부서의 직원을 보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은 크게 3개의 부서로 나뉜다.
보라스를 필두로 한 에이전트 부서.
회사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었고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부서였다.
두 번째는 매니지먼트 부서.
이곳은 선수의 일정을 관리하고 오프시즌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한다.
스폰서와 같은 선수의 운동 외적인 부분에 대한 미팅도 잡아주는 곳이었다.
마지막은 재무관리 부서가 있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막대한 수익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에 투자해야 하기에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른다.
재무관리 부서는 이러한 부분을 해결해주는 곳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바로 업무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번에 들어온 스폰은 글러브쪽이에요.”
메이저리그 선수는 장비의 대부분을 지원받는다.
[글러브라면 개인 지원이네.]
[커스텀오더로 가즈아.]
“롤링스사에서 제안이 들어왔고 1년 단위 계약이에요. 기본계약조건은 여기 있어요.”
마리아가 태블릿PC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계약서가 PDF 파일로 볼 수 있게끔 켜져 있었다.
‘1년 단위 계약, 지원해주는 글러브의 개수는 무제한, 미리 통보를 하면 커스텀오더가 가능하지만 일주일 이내로는 기성품을 제공함.’
[나쁘지 않네.]
[계약금은?]
‘10만 달러로 되어 있네요.’
[그 정도면 괜찮은 듯?]
[ㅇㅇ]
[아직 전국구도 아닌데다가 신인인데 10만달러면 훌륭하지.]
스포츠 마케팅 시장은 무척이나 크다.
그렇기에 스포츠 제작용품사들은 매년 큰 돈을 들여 스포츠스타들에게 스폰서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스포츠스타는 이들의 상품을 이용하는 대신 매년 계약금과 용품을 받으며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MLB에서 스폰서 계약을 통해 높은 수익을 내는 선수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실제 포브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20위권내에 MLB스타는 단 한 명, 마이크 트라웃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 역시 17위에 랭크, 명성에 비하면 낮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야구선수의 스폰서 금액이 낮은 이유는 간단했다.
노출도와 세계적인 유명도에 있었다.
대표적인 농구와 축구의 경우도 팀플레이였지만 한 명의 선수가 팀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야구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한 명의 선수가 경기 자체를 뒤집는 게 어려웠다.
분명 그러한 경기도 나오지만 매번 자주 나오지 않았다.
또한 야구는 일부 국가에서만 인기가 높은 스포츠였다.
그러다 보니 상위 1퍼센트의 인기스타가 아닌 이상 스폰서 금액이 다른 종목보다 크지 않았다.
[근데 이게 저쪽에서 제시한 조건이라 하지 않음?]
[ㅇㅇ 그랬지.]
[그럼 수정도 가능하다는 소리 아님?]
[응?]
[듣고 보니 그러네?]
[쌉가능!]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이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이내 그들이 채팅에 질문을 남겼다.
신우는 그것을 그대로 마리아에게 물었다.
“이게 기본조건이라 하셨죠?”
“네.”
“그럼 수정도 가능하다는 건가요?”
“수정이요? 네, 물론 협상이 가능한 부분이에요. 어떤 부분을 수정하고 싶으세요?”
“수정보다는 조건을 걸고 싶습니다.”
“조건이요?”
“네. 예를 들어 30세이브를 올리면 추가로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방식으로 말이죠.”
“아, 이해했어요. 인센티브를 요구한다는 거죠? 음, 그 정도면 뭐 문제는 없겠네요.”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스마트폰에 무언가를 작성했다.
“그럼 인센티브 조건은 클로저에 집중을 해서 넣도록 할게요. 세이브 타이틀을 획득했을 때도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을 넣으면 좋겠네요.”
“네, 그러면 좋을 거 같네요.”
“거기에 호프만 상을 탄다는 조항도 필요할 거 같아요. 최근 페이스라면 미스터 정이 가장 유력하잖아요?”
트레버 호프만 상.
페넌트 레이스에서 가장 뛰어났던 구원투수에게 주는 상이다.
내셔널리그는 트레버 호프만의 이름을, 아메리칸리그는 마리아노 리베라의 이름을 붙여 상을 만들었다.
구원투수들이 사이영상을 받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연말에 배제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그들을 위해 2014년부터 수상을 하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내셔널리그에서 신우가 가장 유력한 후보자였다.
물론 변수는 많았다.
아직 시즌이 시작되고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르긴 하지만, 넣는 게 좋겠네요.”
“네. 그 외에 더 추가하고 싶은 건 없으세요?”
마리아의 질문에 채팅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야야! 사이영상도 넣어.]
‘사이영상을 왜요?’
[사람 일이란 모르는 법이야.]
[ㅇㅈ]
‘아니, 솔직히 마무리투수가 사이영상을 어떻게 받습니까?’
[어쭈? 전에 없었다고?]
‘있기야 했지만...’
마무리투수의 사이영상 수상은 무척이나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2000년대에 마지막 마무리투수 사이영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LA다저스의 에릭 가니에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2003년 82.1이닝 2승 3패 55세이브 평균자책점 1.20 탈삼진 137개를 기록하며 마무리투수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문제는 불법약물투여를 받은 게 훗날 밝혀졌지만 말이다.
이후 20년간 마무리투수 사이영상 수상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집어넣자.]
[ㅇㅇ 네가 손해보는 게 있음?]
[있음? 있음?]
“하아...”
“응? 왜 그러세요?”
“예? 아...그...다른 게 아니라...”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래야 저도 업체와 협상할 때 편하거든요.”
“예...혹시 사이영상 수상과 관련된 인센티브 조건도 넣을 수 있을까요?”
“사이...영상이요?”
“네.”
[ㅋㅋㅋㅋㅋ]
[표정 보소 ㅋㅋㅋㅋㅋ]
[표정으로 말한다. 진심이세요? ㅋㅋㅋㅋㅋ]
[대박!!]
이래서 말하기 싫었다.
누가 들어도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자신의 표정을 숨기려고 하는 마리아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씨...그러니까 안 한다고 했잖아요.’
[ㅋㅋㅋㅋㅋ]
연신 웃음이 올라갔다.
저 양반들 분명 놀리려고 일부러 시킨거다.
‘하아...’
처음 만나는 여자 앞에서 이런 꼴이라니.
제에에엔장!!
* * *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오...정신우 선수, 오늘 공이 무척이나 강력합니다. 묵직해요! 초구 2구 모두 100마일의 구속이 찍힙니다.]
[마치 상대를 잡아먹겠다는 듯, 공격적인 피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바로 저 눈빛입니다.]
[눈빛이요?]
[예. 상대를 계속 노려보면서 있는 힘껏 공을 뿌리고 있어요. 기싸움에서 지지 않겠다!! 그런 의미의 눈빛인 거죠.]
[오-! 그렇군요. 정신우 선수, 3구 던집니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첫 번째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신우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로진을 손에 묻히고 있을 때.
채팅이 눈에 들어왔다.
[왐마, 무서버라.]
[너 저기 타자 우리라고 생각하고 던지는 거지?]
[우리 앞에 있었으면 한 대 쳤겠네?]
‘제가 어찌 하늘 같은 선배님들을 치겠습니까? 그저 선배님들하고 야구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아~? 싶은 마음으로 던지는 거죠.’
[그게 그거 아님?]
[메쟈리거 됐더니 비꼬는 실력이 늘었누.]
‘다 선배님들한테 배운 거죠.’
토마스와 사인을 교환한 신우가 두 번째 타자를 상대로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초구 던졌습니다!]
바깥쪽을 찌르는 공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후웅-!
그 순간 신우가 던진 공이 변화했다.
타자의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좌타석에 있던 타자쪽으로 흘러 들어가니 배트의 얇은 부분과 충돌하려는 순간.
타자가 왼팔을 몸쪽으로 당기며 오른손을 놓았다.
그리고 왼팔로만 스윙을 이어나갔다.
딱-!
그 결과 배트의 궤적이 더욱 몸쪽으로 붙으며 공의 궤적과 일치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외야로 날아가는 타구를 본 신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중견수가 급히 앞으로 달려나왔지만 힘없는 타구는 그대로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툭!
[아아-! 안타입니다! 정신우 선수, 5월 들어 첫 번째 안타를 허용했습니다!]
[이건 정신우 선수가 실투를 했다기보다는 매우 기술적인 타격이 나왔다고 봐야 됩니다.]
[기술적인 타구요?]
[예. 본래 타자는 스윙할 때 주로 사용하는 팔, 그러니까 우타자면 오른손, 좌타자면 왼손을 몸에 붙이면서 스윙을 합니다.
파워와 정확성을 올리기 위해서죠. 그런데 다저스의 럭스 선수도 시작을 그렇게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럭스 선수는 상체를 뒤로 빼면서 공간을 더 만들어 배트가 인코스로 돌 수 있게 했어요. 거기에 오른손을 놓으면서 몸을 먼저 회전시켜 배트의 스윙스피드를 올렸습니다.
덕분에 공이 더 변화를 하기 전에 배트의 배럴 부근에 공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뭔가 복잡한 일을 순식간에 해낸 거군요.]
[럭스 선수는 강타자 이미지가 강하지만 기술적인 부분도 레벨이 무척이나 높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정신우 선수가 너무 무분별하게 정면승부를 하지 않았나 하는 거예요.]
공을 받은 신우가 혀를 찼다.
“쯧...!”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럭스를 상대로 조금 더 신중하게 공을 던졌어야 했다는 것을.
[자아아아알한다~]
[애매한 공을 던지니까 바로 맞쥬?]
[뺄 거면 확실히 빼고 정면승부를 할 거면 확실히 해야지!]
[어설프게 들어가도 될 거라 생각함?]
실수를 알기에 신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작 안타 한 개가 문제가 아니었다.
경기도중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불펜에서는 그래도 되지만.
[마운드에 섰을 때는 경기만 생각해라.]
매튜슨의 따금한 일침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타석에는 새로운 타자가 들어왔다.
1루에는 럭스가 주자로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럭스는 팀의 중심타자지만 발이 매우 빠른 선수입니다. 주의해서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럭스의 정보는 익히 알고 있었다.
신우는 어깨 너머로 그의 움직임을 체크하다 이내 발을 뺐다.
그리고 1루로.
쐐애애액-!
퍽!
“세이프!!”
[아슬아슬하게 귀루합니다! 아깝네요.]
[예. 조금만 늦었어도 잡혔을 겁니다. 순간적으로 무게중심이 1루로 쏠렸던 걸로 보아 도루도 염두에 두는 것 같습니다. 조심해야겠어요.]
[맞습니다.]
신우는 토마스와 사인을 교환했다.
‘몸쪽?’
고개를 저었다.
‘바깥쪽 낮은 코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꾸 고개를 저은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견제 한 번 했다고 그대로 있을 리가 없어.’
분명 달릴 것이다.
딴청을 부리며 1루 수비와 잡담을 나누는 게 더 수상했다.
그렇다면 한 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럼...높은 곳?’
토마스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구종은...
[정신우 선수, 세트포지션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스트라이드와 함께...! 1루 주자 달렸습니다!!]
[스타트가 빨라요!]
[정신우 선수 공 던집니다!! 아-! 토마스 선수 일어나서...]
후웅-!
타자가 스윙을 하며 토마스의 시야를 방해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에러를 범할 토마스가 아니었다.
퍽!
안정적으로 포구를 함과 동시에 양팔을 머리 뒤로 넘기며 몸을 비스듬히 틀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공을 옮기며 있는 힘껏 2루로 뿌렸다.
쐐애애액-!
마운드에서 주저앉은 신우의 머리 위로 날아간 공이 그대로 2루 글러브에 꽂혔다.
이미 자세를 낮추고 태그할 준비를 하던 주자가 포구한 글러브를 움직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확한 송구였다.
촤아아앗-!
퍽!
슬라이딩을 하는 럭스의 등을 글러브가 때렸다.
곧 사람들의 시선이 2루심에게 향했다.
“아웃!!”
[아웃입니다!! 멋진 송구로 1루 주자를 2루에서 잡아내는 토마스 에드윈!!]
[정말 멋진 송구였습니다. 무엇보다 1루 주자가 뛸 것을 예상하고 하이 패스트볼을 요구한 게 아주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다저스는 여기에서 비디오판독을 요구하네요.]
[마지막 공격이니만큼 판독을 아낄 필요가 없는 거죠. 하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
잠시 후.
비디오판독을 하던 심판들이 헤드셋을 벗었다.
“아웃!”
[원심 그대로 가져갑니다! 두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주자가 사라졌으니 이제 정신우 선수는 타자에게만 신경써야 합니다.]
신우는 로진을 손에 묻히며 다시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잊지마라.]
피처플레이트를 밟고.
[언제든지 난타당할 수 있다.]
사인을 교환했다.
[언제나 긴장을 하고 공 하나하나에 전력을 다해라.]
투구자세에 들어간 신우는.
‘예.’
와인드업과 함께 공을 뿌렸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 * *
[메이저리그가 개막한지 어느덧 2개월이 흘렀습니다. 전반기가 끝나가고 있는 현재, 각 지구에서는 어느 정도 선두권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중략)
한편 동부지구에선 뉴욕 메츠가 2위인 워싱턴을 7게임차로 따돌리고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메츠에서 뛰는 정신우 선수는 어제 경기에서 시즌 24번째 세이브 포인트를 획득하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평균자책점 제로는 이틀 전 경기에서 깨졌으나 여전히 세이브 성공률 100퍼센트라는 기록은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략)
한편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올스타전의 투표일정을 발표하며 후보명단을 공개했습니다.
정신우 선수는 내셔널리그 불펜투수에 이름을 올리며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6월.
메이저리그 전반기가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