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45화 >
* * *
3일 뒤.
야수조의 소집일이 되면서 캠프가 시끌벅적해졌다.
“시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신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루이스!”
메츠의 2루수인 루이스가 신우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응? 몸이 커졌는데? 벌크라도 한 거야?”
“조금 했지. 올해는 풀로 뛰게 될 테니까.”
“올~자신만만한데? 저 친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빈틈을 노리고 있는데, 자신있는 거야?”
루이스가 장난스런 미소와 함께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마이너리거들과 초청선수로서 캠프에 합류한 메이저리거들이 있었다.
루이스의 말대로 그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작년 이맘때까지만 하더라도 신우는 저들과 같은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이지.”
그렇다고 자리를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신우씨!”
그때 대니얼이 다가왔다.
신우는 루이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니얼과 마주했다.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어요.”
“인터뷰요?”
“예. 좀 많은데, 하나하나 말씀드릴까요?”
“예.”
수첩을 꺼낸 대니얼이 내용을 읽어갔다.
“크게 미국이랑 한국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어요. 미국쪽은 MLB.COM이랑 NBC스포츠, ESPN, 폭스스포츠 그리고 뉴욕타임즈와 뉴욕포스트, 더 트렌토니안...”
“자...잠깐만요.”
“아직 많이 남았는데...”
“그곳들이랑 모두 인터뷰를 하면 연습할 시간이 없을 거 같은데요.”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서 인터뷰를 공동으로 할까 하는데, 어떠세요?”
“음, 그것도 괜찮겠네요.”
“그럼 미국과 한국 언론으로 나눠서 진행하도록 할게요. 날짜는 언제가 편하세요?”
“연습경기 전에는 모두 처리했으면 하는데요.”
투수조와 야수조가 모두 소집이 된 지금.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연습경기를 통해 실전감각을 키워나갈 시기였다.
그렇기에 그 전에는 인터뷰와 같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첫 연습경기가 삼일 뒤에 있으니, 내일 미국쪽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이틀뒤에 한국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하도록 할까요?”
“예,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확정 되는대로 다시 말씀드릴게요.”
대니얼이 돌아가자 신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흐흐, 인터뷰다. 인터뷰!’
[신났누.]
‘당연히 신나죠! 제가 인터뷰를 해볼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작년에 경기 끝나고 많이 해봤잖아?]
‘그건 그렇지만 시즌 전에 하는 인터뷰는 처음이잖아요.’
[작년에는 안했던가?]
[안했음.]
[얘 마이너에 있던 것도 몰랐지.]
[존재감 제로.]
‘거 너무하시네들...’
채팅창에 연달아 웃음 이모티콘들이 올라왔다.
그것을 보며 고개를 젓는 신우였다.
* * *
장태호는 질문지를 확인했다.
빼곡하게 적힌 질문들의 숫자는 수십개가 넘었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질문을 준비하면 뭐하냐. 질문하기도 어려울 텐데.”
정신우와의 인터뷰는 단독이 아닌 단체로 진행이 됐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언론들이 그와의 인터뷰를 원했으니 말이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꼭 해보고 싶은 질문을 체크하고 대기실로 들어섰다.
잠시 후.
대기실로 메츠의 직원과 함께 신우가 들어왔다.
메츠 유니폼을 입은 그를 본 장태호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몸이 커졌네.’
투수가 벌크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구속증가였다.
신우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95마일이었다.
시속으로 환산하면 152.8km였다.
메이저리그 평균구속이 150km였으니 평균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불펜으로 한정하면 신우의 평균구속은 딱 중간에 위치하게 된다.
상위권에는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즉, 불펜에서는 구속이 그렇게까지 특출난 수준이 아니란 소리였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구속과 관련된 부분을 약점으로 지목하기도 했지.’
메이저리그는 타고투저의 시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타자들의 타격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과거에는 어퍼스윙, 레벨스윙, 다운스윙과 같은 여러 스윙법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2010년이 지나서부터는 새로운 스윙 매커니즘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바로 배럴의 회전이었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더 이상 스윙을 세분화하지 않았다.
단지 배럴을 어떻게 존에 더 머물게 하는지에 대해서 집중했다.
투수의 공은 결국 스트라이크존을 지나야 된다.
그 소리는 배럴이 존에 오래 머문다면 공을 때려낼 시간 역시 증가한다는 소리였다.
타자들은 여기에 집중했고 점점 매커니즘이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타격법이 진화를 하면서 타자들의 수준이 한단계 높아졌다.
문제는 투수들이었다.
‘타자의 수준이 높아진만큼 투수들의 수준 역시 높아져야 했다. 하지만 투수의 매커니즘은 거의 완성이 된 상황이었어. 타자와는 달리 변화를 줄 부분이 한정적이었지.’
결국 투수들이 찾은 해법은 구속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른 공을 던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매커니즘을 발전시켜왔다.
그 결과 매년 투수들의 평균구속은 상승해왔다.
과거에는 100마일이 꿈의 구속이었다면 지금은 파이어볼러의 기준이 되었다.
그만큼 투수들은 구속에 집중을 해왔고 발전해왔다.
‘정신우 역시 스스로 발전을 택했다. 그게 어떤 결과를 나을지 궁금하네.’
신체의 변화만 놓고보면 성공을 한 것으로 보였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봐야 될 문제였다.
“장 기자, 안 받아써?”
“아, 예.”
혼자만의 생각에 너무 빠져 있었다.
선배의 말에 장태호는 다급히 타이핑을 이어갔다.
그때 리포터가 물었다.
“국내에서 내년에 열릴 WBC에 정신우 선수를 국가대표로 차출해야 된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정신우 선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줄여서 WBC라 불리는 국제대회는 야구월드컵이라 할 수 있는 대회였다.
2006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2021년까지 총 5번의 대회를 치루었다.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곳은 일본과 미국이었다.
각각 2회씩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은 아직 WBC 우승트로피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뭐라 말씀을 드리긴 어렵지만 만약 뽑아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신우는 정석에 가까운 대답을 이어나갔다.
WBC라는 대회에 나가는 건 사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일단은 올 시즌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면서 메이저리그에 완벽하게 정착하는게 첫 번째 목적이었다.
그 외에는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뒤로도 다양한 질문들이 들어왔다.
신우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어나갔다.
“자, 마지막 질문 받겠습니다.”
인터뷰 시간이 끝나가자 대니얼이 말했다.
그의 말에 기자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나타났다.
곧 여자리포터가 마지막 질문을 했다.
“24시즌에 목표가 있으실 거 같은데, 구체적인 목표를 하나만 말씀해주세요.”
구체적인 목표.
질문을 들은 신우는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이번 시즌 목표는 구속을 증가시키는 겁니다.”
“구속의 증가라면 구체적인 수치가 있나요?”
“100마일을 던지는 게 목표입니다.”
“오오-!”
신우의 대답에 기자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수치를 말해줄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베스트였다.
이런 기사야말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으니 말이다.
* * *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 목표는 100마일을 던지는 것이라 밝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뉴욕 메츠의 정신우, “이번 시즌 100마일을 던지겠다.” 라고 공언!!]
[정신우 100마일을 보여주겠다!]
신우는 기사를 보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미친...”
자신은 분명 100마일을 던지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대로 기사를 쓴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언론들이 마치 기정사실처럼 제목을 쓰고 있었다.
[ㅋㅋㅋㅋ 제목 어그로 오지네.]
[캬하-! 역시 어그로의 고향, 코레아!]
[레알 어그로는 한국사람들에게 배워야 됨.]
[저번에 말했잖슴. 한국사람들 창의력은 어메이징 하다니까.]
변명할 힘도 없었다.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이 저들의 말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우 패기보소.]
[100마일을 던지겠다고?]
[작년 최고구속이 98마일이었으니까, 가능하지 않겠음?]
[ㄴㄴ 한국인이 100마일 어케 던짐.]
[ㄴ 임창섭 전성기에 100마일 찍었는데요?]
[ㄴㄴ 정신우 투구 매커니즘은 임창섭처럼 전신의 힘을 다 이용하는 게 아니고 상체의 힘으로만 던지기 때문에 100마일은 어려움.]
[이래놓고 100마일 못 던지면 쪽팔리겠네.]
[ㄴ 이불킥 각.]
[ㄴㄴ 레알 입 터는 애들치고 제대로 하는 애들 못봤음.]
[ㄴㄴㄴ 동감. 한시즌 반짝하고 사라지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일단 시즌준비나 잘 하지. 작년에 잠깐 잘했다고 벌써부터 입이나 털고 있네.]
그 밑에 달린 댓글을 본 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헐...]
[방금 내가 본 거 실화임?]
[와...]
[사탄도 울고 가겠다.]
[악마 애들한테 한국 가서 좀 배우라고 해야 될 듯.]
[레알 심했다.]
사탄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의 댓글들이 즐비했다.
누가 보더라도 심한 내용들이었다.
[신우야, 너무 신경쓰지마라. 얼굴을 맞대고는 본인의 의견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비겁한 자들이다.]
매튜슨이 신우를 걱정하며 말했다.
투수의 맨탈은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런 댓글에도맨탈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매튜슨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신우를 안정시키려 했다.
그때 신우가 말했다.
“열받네요.”
[나라도 열받겠음.]
[ㅇㅈ]
“다들 입다물게 만들고 싶어졌어요.”
[응?]
이건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댓글 봤어요? 제 투구 매커니즘이 상체만 쓴다잖아요.”
[ㅇㅇ 봤음.]
[어이없던데.]
[야구에 ㅇ자도 모르는 놈임.]
[방구석 전문가들이 그렇지 뭐.]
“저런 양반들 입 다물게 하려면.”
신우가 글러브를 손에 끼었다.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죠.”
갑자기 의욕이 넘치는 신우였다.
[이쉑...!]
[맨탈이 티타늄으로 만들어졌누.]
[간만에 마음에 든다!]
[제대로 던져서 저놈들 입 다물게 해줘라!]
[가즈아-!]
간만에 전투본능이 끓어올랐다.
* * *
야수조가 캠프에 합류하면서 메츠 캠프는 처음으로 완전체가 되었다.
마이크는 투타를 두 팀으로 나눠 자체 연습경기를 진행했다.
딱-!
“달려! 달려!!”
연습경기를 통해서 실전감각을 기르고 오프시즌동안 어떻게 준비를 했는지 체크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연습경기에선 마이너리거들을 돌려보내는 관문이 되기도 했다.
“에이든, 어때?”
마이크는 경기를 지켜보다 에이든에게 물었다.
에이든은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첫 연습경기라는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들은 오프시즌동안 몸을 잘 만들어왔어요. 리올 역시 작년 같은 시기보다 모든 수치가 상승했습니다.”
“다행이군요.”
리올은 올 시즌에도 메츠의 1선발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리올의 컨디션이 좋다고 하니 안심이 되는 마이크였다.
“눈에 띄는 선수는?”
“아직까진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마이크가 곁에 서있던 베이커 투수코치에게 말했다.
“시누를 준비시키고 다음 이닝부터 올리도록 해.”
“알겠습니다.”
마이크 역시 신우의 상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벌크업에 대한 부작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구속이 저하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쪽으로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어.’
투구 매커니즘은 정밀기계와도 같다.
정밀한 부품들이 잘 맞물려서 공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기계에 고성능의 부품을 가져다 교체한다고 해서 꼭 성능이 올라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부품끼리 호환이 되지 않아 고장이 나는 일도 많았다.
근육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벌크업으로 인해 시즌을 망쳤던 투수들이 과거의 폼으로 돌아온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신우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신경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이닝이 끝나고 마운드에 신우가 올라왔다.
투수코치와 이야기를 나눈 신우가 로진을 손에 묻히고 투구준비에 들어갔다.
“시누는 어떤 거 같아?”
“컨디션은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가볍게 던지겠다고 하더군요.”
“아직 캠프 초기니까, 그게 당연한 거겠지.”
투수들은 캠프 기간에 따라 자신의 컨디션을 끌어올린다.
선수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캠프에 들어오면서 50퍼센트까지 몸상태를 끌어올린다.
이후 첫 불펜피칭에서 60퍼센트, 연습경기에서 70퍼센트 과 같이 점진적으로 컨디션을 올리며 투구를 이어나간다.
“에이든, 시누가 불펜피칭에서 90마일 정도 기록했던가?”
“예. 루틴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구속만 봤을 때는 평소 몸상태의 70퍼센트는 끌어올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빠른 편이군.”
“의욕이 조금 앞서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첫 오프시즌을 치른 것을 감안했을 때,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그렇지.”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사이.
마운드에서 신우는 공을 만지며 가볍게 목을 돌렸다.
그리고 피처플레이트를 밟고 포수와 사인을 교환했다.
[오늘 100마일 보여줌?]
‘그럴리가요.’
[괜히 이상한 소리하지마라. 아직 캠프 초기인데 무슨 100마일이냐.]
[그냥 해본 말이거든!]
매튜슨의 구박에 워렌이 발끈했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은 신우가 사인을 교환하고 포지션을 잡았다.
[오늘 몸상태는 얼마나 끌어올릴 거냐?]
‘불펜피칭에서...’
심호흡을 한 신우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40퍼센트 정도 끌어올렸으니...’
마이크와 에이든.
두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오늘은...’
신우는 의욕이 앞서고 있지 않았다.
만약 혼자였다면 충분히 그랬을 수 있지만 그의 곁에는 수많은 프로훈수꾼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의욕과다가 될 일이 없었다.
‘50퍼센트 정도까지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쐐애애액-!
그리고 또 하나.
뻐어어억-!
신우의 몸상태는 아직 50퍼센트 정도밖에 올라오지 않은 상태였다.
“스트라이크-!!”
강렬한 소리와 함께 공이 미트에 꽂혔다.
그 모습을 본 마이크가 에이든에게 물었다.
“구속은?”
에이든의 시선이 노트북에 찍힌 구속을 확인했다.
“92마일입니다.”
“페이스가 빠르군.”
“아직까지는 범위내지만, 이보다 더 페이스가 빨라지면 오버페이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경기가 끝나고 조금 진정시킬 필요가 있겠어.”
“동감입니다.”
오해가 깊어지는 연습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