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35화 (35/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35화 >

* * *

메츠에 휴식이 주어졌다.

페넌트레이스 막판까지 우승경쟁을 했던 메츠다.

이후에는 곧장 디비전시리즈를 준비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지쳐 있었다.

대부분 팀들은 우승을 확정하고 주전선수들에게 휴식을 준 반면, 메츠는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디비전시리즈를 스윕으로 이긴 건 그들에게 매우 큰 이득이었다.

선수들에게 휴식을 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선수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휴식에 들어갔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고 친구들과 쉬는 걸 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신우는 전자였다.

뉴욕을 찾은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때요?”

“정말 좋네.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가 이렇게 호강을 다 한다.”

로우 맨하튼에 위치한 레스토랑 맨하탄.

60층 스카이라운지에 위치해 있어 뉴욕 시내는 물론 허드슨강을 볼 수 있는 전망좋은 레스토랑이다.

허드슨강이 보이는 자리로 배정을 받은 덕분에 뉴욕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이런 풍경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겟니. 아,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좀 무섭긴 하겠다.”

“그렇겠죠?”

“오랜만에 우리 아들하고 이렇게 좋은 곳에서 밥 먹으니 정말 좋네.”

“앞으로 자주 그렇게 해요.”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신우를 바라봤다.

“엄마, 이제 공장 그만두고 미국으로 오실래요?”

“미국에?”

“네. 내년에는 1년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낼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엄마 혼자 한국에 계셔야 되는데, 그게 마음에 쓰여요.”

확정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큰 변수만 생기지 않는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 자신도 있었다.

확정적으로 이야기를 한 것은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부모란 언제나 미래를 걱정한다. 그래야 자식을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지.]

[나도 어릴 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부모가 되니까 그러더라고.]

[ㅇㅈ]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조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알았다. 한 번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할게.”

“예!”

이 정도의 대답이면 충분했다.

“저...실례하겠습니다.”

그때 한국어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한 남성이 서있었다.

“네?”

“메츠의 정신우 선수시죠?”

“아, 예.”

“팬입니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사인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스포츠선수, 연예인등 유명인들에게는 사생활이란 게 불가능했다.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팬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오늘은 어머니와의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다.

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신우야, 어서 해드리렴.”

“아, 예. 어디에 해드리면 될까요?”

“아, 여기 야구공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우는 그가 내민 야구공을 받아 사인을 해주었다.

뒤이어 사진까지 찍자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식사중에 방해를 드려 죄송합니다! 제 아들이 정신우 선수의 열렬한 팬이라서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남자가 돌아가자 어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인기 많네.”

“하하...사실 사석에서 갑자기 사인요청이 들어오면 조금 당황스러워요.”

“그렇겠지. 하지만 저들에게는 평생의 한 번이 될 수도 있는 기회니까, 그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

“그렇겠네요.”

어머니의 말이 맞았다.

자신에게는 한순간이지만 팬들에게는 평생의 한 번이 될 수 있었다.

“거기에 저 사람이 실례인 걸 알면서도 여기에 오기 위해 얼마나 용기를 냈겠니?”

[정답!]

[크으...어머니 멋지네.]

[새겨들어라.]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이어지는 채팅들.

그들은 언제나 팬을 우선시했다.

사생활과 공인으로서의 모습.

둘 중 무엇이 중요한지는 선수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택할 필요는 없다. 유연하게 대처가 가능한 부분이니까.]

매튜슨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레스토랑 직원이 다가왔다.

“미스터 정, 저쪽에 계신 손님께서 선물하신 겁니다.”

“어머.”

그러면서 직원이 내려놓은 것은 아주 예쁜 디저트였다.

“저희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셰프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디저트죠.”

고개를 돌려 팬을 바라보자 그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신우는 그에게 고개를 숙인 뒤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런 걸 얻어 먹을 수 있다면 앞으로 자주 해줘야겠네요.”

“넉살은.”

“잘 먹겠다고 전해주세요.”

“예.”

직원이 돌아간 뒤.

모자는 오붓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 * *

다음 날.

신우는 다시 훈련에 들어갔다.

“신우!”

고개를 돌리자 토마스가 보였다.

“지금 출근하는 거야?”

“응. 너는 오늘 나와도 되는 거야? 어머니가 한국에서 오셨다면서?”

“괜찮아. 오늘은 제이슨이 대신 관광을 시켜주기로 했거든.”

“하하! 구단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는데?”

토마스의 말에 웃으며 라커룸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이번 챔피언십 상대는 브루어스가 될 거 같아.”

“음...예상밖으로 흘러가네.”

“그러게 말이야. 설마 다저스가 패배하다니.”

LA다저스는 내셔널리그의 강자였다.

월드시리즈와 인연이 없다는 게 흠이지만 분명한 건 최강의 팀 중 하나라는 점이다.

그런 다저스가 디비전시리즈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

만약 그들의 탈락이 확정되면 2019년 이후 처음이다.

가을야구에 진출한 다저스가 디비전시리즈에서 탈락하는 게 말이다.

“브루어스의 타격이 미치긴 했나봐.”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두본의 활약이 대단하던데?”

“그러게 말이야. 올 시즌 34홈런을 때려서 컨디션이 좋은 건 알았지만, 설마 와일드카드부터 지금까지 5홈런이라니.”

“컨택도 좋은 타자였지?”

“정규시즌 타율이 딱 3할이지만 눈이 좋아. OBP가 3할 7푼이야.”

“대단하네.”

홈런과 타율 그리고 OBP(출루율)까지.

모든 것이 메이저리그 20위권 안에 들어가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브루어스의 무서운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케스턴 히우라도 조심해야 돼.”

“제 2의 옐리치로 불린다는 그 선수?”

“그래. 홈런은 22개지만 타율이 3할 1푼이었어. 거기에 OBP는 3할 9푼 1리였어. 특히 패스트볼 계열에 강해.”

“그 두 선수가 이번 브루어스의 돌풍의 주역들이고.”

“그렇지. 와일드카드는 물론이고 디비전시리즈까지 그 좋은 감각을 이어가고 있어. 아마 챔피언십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거야.”

“상대할 때 주의해야겠네.”

“맞아. 특히 패스트볼 계열에 강하니까, 주의하는 게 좋아.”

“그렇군. 그나저나 상세하게 알고 있네.”

“아휴, 말도마. 요즘 에이든이 얼마나 달달 볶는지, 매일 같이 이메일과 문자로 다저스와 브루어스 중심타자들의 정보를 보내온다니까.”

“다저스까지?”

“브루어스가 올라올 확률이 높긴 하지만 다저스가 아직 탈락한 건 아니라면서 둘 다 보라고 하더군.”

“에이든은 철두철미하네.”

“그 정도면 집착에 가깝다니까.”

“누가 집착이라는 겁니까?”

그때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사색으로 물든 토마스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에이든이 안경을 고쳐쓰며 서있었다.

“하...하하...언제부터...?”

“집착이라고 하실 때부터 있었습니다.”

“무...물론 농담이지! 농담이야!”

“으흠, 농담을 할 정도라면 아직 여유가 있다는 거군요. 자, 그럼 제가 보내드린 자료를 잘 숙지하셨는지 알아보도록 할까요?”

“지...지금?”

“예.”

에이든의 말투는 단호했다.

토마스가 눈빛으로 구조신호를 보내자 신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파이팅!”

“너...!”

“가시죠.”

결국 토마스는 에이든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신우가 웃으며 라커에 옷을 넣었다.

[다들 열심히군.]

‘선수들만이 아니라 스태프들 모두 노력중이에요.’

[그걸 잊으면 안 된다. 경기에서 뛰는 건 선수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 구단 전체가 힘을 합치고 있다는 걸 말이야.]

‘예.’

매튜슨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신우는 연습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과연 어느 팀이 올라올까.’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그 상대가 오늘 밤, 정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거기에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연습이다.’

지금 자신이 해야 될 건 연습밖에 없었다.

* * *

신우는 전반적인 컨디션을 확인했다.

파앙-!

신우가 공을 던질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코칭스태프가 주의깊게 살폈다.

에이든 역시 옆에 설치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여러 개의 화면이 분할되어 있었는데, 각 화면마다 다른 각도로 신우가 투구하는 모습을 찍고 있었다.

카메라는 모두 초고속카메라로 빠르게 지나가는 투수의 투구모습을 찍어내고 있었다.

파앙-!

“굿! 좋았어.”

총 20개의 공을 던지자 마이크가 박수를 쳤다.

투구를 멈춘 신우가 숨을 골랐다.

그런 신우를 보며 감독인 마이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주 좋았어. 패스트볼은 물론이거니와 체인지업의 변화 역시 나쁘지 않더군. 베이커 자네는?”

“좋았습니다. 커터의 각은 여전히 날카롭고요.”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습니다.”

코치 스태프 모두가 같은 의견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에이든을 바라봤다.

“에이든?”

“데이터에서도 이전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습니다. 공의 무브먼트나 구속, 회전수, 회전축의 각도 역시 이전과 비슷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만 체인지업 말입니다.”

“체인지업?”

“예. 체인지업은 메이저리그 평균수준의 수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컵스 전에서는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당했겠지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분석을 하고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즉, 당할 확률이 있다?”

“예. 선택은 선수의 몫이지만 조언을 하는 입장에선 사용빈도를 높이지 않은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전드 플레이어들과 같은 조언이었다.

그들 역시 체인지업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으니 빈도를 높이면 어려울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기에 에이든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타이밍을 잘 노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첨단장비를 활용한 훈련.

거기에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생생한 조언들까지.

신우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감을 가지고 챔피언십 시리즈를 준비할 수 있었다.

* * *

[밀워키 브루어스가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내셔널리그 최강의 팀 중 한곳인 LA다저스를 누르고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브루어스는 막강한 화력의 타자들을 앞세워 LA다저스와의 4차전 경기를 스코어 6 대 1로 누르며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이로써 정신우 선수가 소속된 뉴욕 메츠는 삼일 뒤, 홈인 씨티필드에서 밀워키 브루어스와 챔피언십 시리즈를 치르게 됐습니다.]

상대가 결정됐다.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브루어스가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다.

이는 큰 화제가 되었다.

[대박사건! 결국 브루어스가 올라가네.]

[다저스 실화냐?]

[그나저나 정신우 괜찮을까? 디비전시리즈에서 브루어스 타격하는 거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메츠 요새 투수진 좋으니까 괜찮지 않겠음?]

[ㅇㅈ]

[무엇보다 정신우까지만 이어주면 어떻게든 경기 끝내니까.]

[공격 VS 방어인가?]

많은 팬과 전문가들이 내는 의견은 비슷했다.

브루어스의 막강 타선을 메츠가 어떻게 막느냐?

그러한 의견은 현실로 이어졌다.

* * *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

뉴욕메츠의 홈구장인 씨티필드에는 적막이 흘렀다.

경기가 진행되지 않아서?

아니었다.

경기는 어느덧 7회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4만명의 메츠 팬들이 적막에 휩싸였습니다.]

[소수의 브루어스 팬들만이 환호를 지르고 있네요. 스코어를 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7회초, 현재 브루어스가 11 대 0으로 앞서고 있습니다.]

[브루어스의 타선이 최근 좋긴 했지만 설마 1차전부터 이렇게 몰아붙일 줄은 몰랐네요.]

[메츠의 1선발인 리올이 무너진 게 뼈아프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1선발이니만큼 확실하게 경기를 끌고 가줬어야 했는데 말이죠. 1회부터 제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게 뼈아팠습니다.]

[불펜에 정신우 선수의 모습이 잡히는군요.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그가 나올 일은 없어보입니다.]

[이대로 경기가 이어지면 사실상 정신우 선수의 등판은 없다고 봐야겠죠.]

중계진들의 말은 곧 사실이 되었다.

9회까지 브루어스는 13점을 내면서 1차전 승리를 확정지었다.

마무리투수인 신우가 등판할 기회는 아예 없었다.

[큰일이군.]

매튜슨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무겁네요.’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선수들은 말이 없었고 분위기는 어두웠다.

[이런 상태면 2차전도 힘들겠는데.]

[분위기에서 일단 지고 들어가네.]

신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팀이 지는데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화가 났다.

[기회를 기다려라. 괜히 흥분을 했다가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오히려 그르칠 수 있다.]

매튜슨의 말에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네.’

1차전 대패의 무게를 짊어진 채, 메츠는 내일 있을 2차전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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