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22화 (22/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22화 >

* * *

빅리그 콜업의 결정.

주위에 인사를 할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신우는 최대한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가장 먼저 전한 건 당연히 어머니였다.

[우리 아들 고생했다...고생했어...]

어머니는 울먹이며 고생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머니와의 통화가 끝나고 곧장 전화를 건 것은 이진철 코치였다.

[뭐?! 빅리그에 콜업이 됐다고?!]

“예. 다음주부터 합류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야구인이라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메이저리그 콜업은 무척이나 어렵다.

역대급 유망주로 불리는 선수들조차 1년은 마이너리그에서 뛰다 빅리그에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로스터가 줄어들면서 콜업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런데 고작 6개월만에 콜업이 되다니?

“그...러게요?”

하지만 신우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콜업의 이유를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건 잘 됐다! 정말 잘 됐어!! 하지만 긴장을 풀지마라.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서 버텨야 돼! 그게 앞으로 네가 해야 될 일이야!]

“예.”

이진철의 조언을 뒤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신우에게 브리토가 다가왔다.

“시누. 콜업됐다면서?”

“응.”

“역시 너는 금방 될 줄 알았다니까. 이제 여기에는 오지 말고 위에서 쭉 있도록 해! 나도 금방 널 만나러 갈 테니까.”

“그래. 네가 오길 기다리고 있을게.”

브리토와 손을 맞잡았다.

마이너리그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와의 이별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후 구단관계자를 만났다.

“시누, 자네는 내가 가르칠 게 없었어. 이미 완성된 선수였단 소리지. 빅리그에 가서도 꼭 성공할 거야.”

“자네의 공은 빅리그에서도 통해.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고 던지도록 해.”

“자네가 메츠의 승리을 지키는 모습을 지켜보도록 하지.”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떠나는 신우에게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꼭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이쪽으로는 오지 말도록 해.”

“시러큐스에 돌아오면 엉덩이를 걷어차버릴 거야.”

“두 번 다시 얼굴 보지 말자고.”

시러큐스에 온다는 건 마이너리그로 돌아온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악담과 비슷한 말을 남기며 신우와 작별을 고했다.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신우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구단을 나섰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023년 9월.

신우는 시러큐스를 떠났다.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없네.’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데이빗에게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상 그럴 수 없었다.

신우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제 뉴욕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 * *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빅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올해 3월 트리플A팀인 시러큐스 메츠에 등록된지 불과 6개월만에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게 된 셈입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계약금은 따로 없으며 연봉은 메이저리그 최저연봉인 59만 달러를 남은 일자에 맞춰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한편, 국내 방송사들은 뉴욕 메츠의 경기를 방영하기 위해 구단과 협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져 조만간 국내 야구팬들이 안방에서 정신우 선수의 투구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신우의 메이저리그 콜업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많은 야구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6개월만에 콜업이라고?]

[실화냐?]

[BK가 몇 개월만에 올라갔었지?]

[2개월이었음.]

[아니, BK는 워낙 넘사벽이었으니까 그렇다쳐도 정신우는 뭐임?]

[그만큼 공이 좋다는 거 아님?]

[시러큐스 메츠시절 성적. 38경기 1승 2패 10홀드 20세이브 평균자책점 1.20. 불펜시절으로 한정하면 0.40으로 압도적임.]

[ㄴ 실화임?]

[ㄴㄴ 이런 애를 방출했다고?]

[ㄴㄴㄴ데블스 지금 몇 위냐?]

발 빠른 이들이 신우의 각종 지표를 가지고 왔다.

거기다 구하기 어려운 그의 투구동영상도 가지고 오면서 단숨에 신우는 야구팬들에게 가장 뜨거운 남자가 됐다.

각종 사이트에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뜨거울 때.

다른 의미로 뜨거운 사이트가 한군데 있었다.

[정신우 방출한 이유가 뭐임?]

[이 새끼들 제 정신이냐?]

[고작 6개월만에 마이너리그를 프리패스한 투수를 방출하고 한다는 게 리그 7위임?]

[이 새끼들 불펜 지금 평자가 몇임?]

세종 데블스의 팬카페인 레드데블스의 팬카페였다.

그렇지 않아도 불타는 사이트에 어그로꾼들까지 몰리면서 불이 붙다 못해 대화재로 번지고 있었다.

[성지순례 왔습니다. 여기가 정신우가 2군에 틀어박혀야 했던 데블스인가요?]

[여기가 메이저리그보다 1군에 가기 어렵다던 데블스 카페라고 해서 와봤습니다.]

[ㅅㅂ 꺼져라.]

[운영진들 뭐하냐? 어그로꾼 강퇴 안하고?]

[맞말이긴 하지.]

난장판이 되어가는 팬카페였다.

[데블스 프런트가 걔 방출했다던데?]

[ㅅㅂ 프런트 일 잘한다.]

[망할새끼들.]

[이번주에 현수막 들고 갈 파티원 구함(1)]

[파티원지원.]

[2]

사태가 점점 커지는 데블스였다.

* * *

뉴욕 메츠 구단사무실.

신우는 존 베켓과 마주하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 보여주었던 활약을 이곳에서도 보여주길 기대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우의 대답에 베켓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사인을 하죠.”

그동안 신우는 마이너리거 신분이었다.

즉,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면서 정식으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어야 된다는 소리였다.

큰 연봉이 걸린 계약이 아니었기에 계약서 자체는 베이직했다.

안에 담긴 내용 역시 특별할 것은 없었다.

옵션 같은 것도 없는 평범한 계약서.

하지만 여기에 사인을 하는 순간, 신우의 신분은 메이저리거로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된다.

신우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펜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써져 있는 곳에 서명을 했다.

슥슥-!

사인을 끝내고 펜을 내려놓았다.

베켓이 그것을 들고 남은 자리에 서명을 했다.

슥슥-!

탁!

“이제부터 메츠의 일원입니다.”

“잘 부탁하겠습니다.”

“좋은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자, 한 장 찍겠습니다.”

기자의 한 마디에 신우와 베켓이 악수를 하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찰칵-!

신우가 메이저리거가 되는 순간이었다.

* * *

메이저리거가 된 기쁨을 누릴 새는 없었다.

시합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우는 곧장 팀에 합류해서 오늘부터 불펜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여기 라커룸을 사용하면 됩니다.”

구단직원이 안내해준 라커룸.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경기를 하며 메이저리그 라커룸을 볼 기회가 있었다.

거기도 좋았지만 이곳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정말 내꺼라는 느낌이네요.’

[느낌이 아니라, 네꺼임.]

[네 이름 박혀 있잖아.]

채팅을 본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대로 라커룸에는 자신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후우...”

[긴장하지마라. 너도 이제부터는 당당한 메이저리거니까.]

‘예.’

고개를 끄덕이고 짐을 풀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에이든이 다가왔다.

“짐은 푸셨어요?”

“아, 예.”

“그럼 따라오세요. 구장을 소개 시켜드릴게요..”

“예.”

에이든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경기장은 무척이나 넓었다.

트로피카나 필드처럼 웬만한 것은 구장 내부에 모두 존재했다.

훈련장은 물론이거니와 카페, 식당 등.

거기다 수면실과 스파룸과 같은 휴식공간도 충분히 잘 되어 있었다.

“여기서 먹고 자도 될 거 같네요.”

“충분히 가능합니다만...호텔을 잡아두었는데 여기서 지내실려고요?”

“예?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농담입니다.”

이 양반도 농담을 할 줄 알았나?

첫 만남에서 보았던 계산적인 모습과 달리 두 번째 만남에서는 꽤 친절한 에이든이었다.

“시설과 관련해서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구단 직원에게 물어보면 언제든지 알려줄 겁니다.”

“예.”

“오늘 경기가 끝난 뒤에는 호텔로 제가 안내를 할 테니, 지내실 곳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저...그런데 혹시 호텔비는 얼마나 나오나요? 제가 돈이 얼마 없어서...”

[실화냐?]

[등신...]

[에라이...]

연달아 올라오는 채팅들의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싶었는데, 에이든의 표정을 보니 그런 듯 했다.

이 사람이 뭘 잘 못 먹었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신우의 표정을 보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진심으로 묻는 거군요.”

“예? 아, 예.”

“올 시즌은 구단에서 지불을 할 겁니다. 올 시즌 좋은 활약을 보이시면 내년 시즌은 빅리그에서 시작하실 테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될 거고요.”

“아...그렇군요.”

메이저리거가 된다는 건 돈애 큰 구애를 받지 않겠다는 것과 같았다.

물론 아직은 최저연봉을 받지만 그것만 하더라도 한화로 6억이 넘는 돈이다.

단번에 KBO에서 뛰는 고액연봉자들과 비슷한 연봉을 받게 된 셈이다.

“이제 감독님을 뵈러 가죠.”

“예.”

에이든을 따라 감독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사무실은 무척이나 깔끔했다.

그곳에는 한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감독이라기에는 너무 젊지 않았나 싶었지만 그가 뉴욕 메츠의 감독이란 건 알고 있었다.

“감독님, 이쪽은 신우 정입니다. 오늘 시러큐스 메츠에서 콜업이 됐습니다.”

“아! 그 친구로군, 반갑네. 마이크라고 부르게.”

“신우 정입니다.”

“자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너무 겁먹지 말고 시러큐스에서 했던 대로만 던져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경기에서 보자고.”

“예.”

간단히 인사를 끝내고 신우는 감독실을 나섰다.

감독과 면담을 하니 이제 진짜 빅리그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동을 해서 피곤하겠지만, 오늘 상황에 따라 등판할 수도 있습니다.”

“예.”

쉴 시간은 없었다.

* * *

뉴욕 메츠의 홈경기.

시티 필드에는 수많은 메츠 팬들이 집결했다.

오늘 경기는 유독 메츠 팬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같은 동부지구의 선두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3연전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돼!”

“1승 2패로 마무리하면 또 승차가 벌어지잖아!”

“퍼킹! 필리스!”

메츠 팬들은 기세등등하게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필리스와 메츠의 사이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같은 지구라는 것도 라이벌 관계를 만드는 요소였지만 사실 그들의 사이가 좋지 않게 된 것은 지미 롤린스의 탓이 컸다.

2007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이던 지미 롤린스는 메츠가 몰락할 것이라며 디스를 퍼부었다.

거기에 2008년까지 갖은 악담을 쏟아내며 메츠 팬들의 속을 뒤집어났다.

훗날 지미 롤린스는 메츠의 앞날이 밝을 것이라며 덕담을 하긴 했지만 한 번 틀어진 사이가 좋아질리 만무했다.

거기다 필리스가 브라이스 하퍼를 영입하며 월드시리즈 도전을 천명한 뒤부터는  더더욱이 사이가 나빠졌다.

올 시즌은 필리스가 언제나 지구 1위를 지키며 메츠의 앞길을 막으니 메츠 팬들로서는 독이 오를대로 올라 있었다.

팬들의 이런 분위기를 선수들이 모를리 없었다.

“젠장! 오늘은 꼭 이겨야 된다고!”

“오늘은 내가 한 방 날릴 거야. 그러니까 내 앞에 있는 놈들은 차근차근 베이스에 서있으라고.”

선수들 역시 분위기가 살벌했다.

그 모습을 보며 신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시러큐스 때와는 전혀 다르네요.’

[메이저리그는 이제부터 진검승부니까.]

[한판이라도 지면 포스트시즌 탈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

[1년 농사가 한 달 결과로 엎어질 수도 있으니 당연히 날카롭지.]

마이너리그는 팀 우승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경쟁이라기 보다는 선수의 성장이 우선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달랐다.

팀 우승이 모든 사람들의 목표였다.

그 목표를 위해 6개월을 달려왔다.

시즌 전부터 훈련까지 포함하면 1년 농사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그렇다고 긴장하지 마라. 긴장을 하면 너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할 테니까.]

‘예.’

“애송이, 비켜!”

툭!

그때 거친 음성과 함께 한 사내가 신우를 밀쳤다.

신우는 갑작스런 상황에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신우보다 머리 하나는 큰 사내가 서있었다.

“뭐야? 불만 있어?”

시비를 걸어오는 그의 태도에 신우가 더욱 인상을 구겼다.

“말로 하면 되지, 왜 밉니까?”

“뭐라고? 루키 새끼가 어디서...!”

그의 언성이 높아졌다.

위협을 가하려는 태도였지만 신우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겁먹을 이유는 없었다.

[올~]

[강한 모습!]

[허세 쩌는데?]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둘의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

그러자 주위 선수들도 하나 둘 눈치를 채고 그들을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충돌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그때였다.

“뭐하는 거야?!”

흑인남자가 외치며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싸우려면 타자들과 싸워! 같은 팀 동료들끼리 싸워서 뭐하자는 거야?!”

“쳇! 누가 싸운다는 거야?”

신우에게 시비를 걸었던 사내가 몸을 돌렸다.

그의 태도에 흑인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신우를 바라봤다.

“오늘 합류한 신우 정이지?”

“아, 예.”

“리올이야.”

리올 에르난데스.

현재 메츠의 1선발을 맡고 있는 선수다.

올 시즌 벌써 15승을 올릴 정도로 뛰어난 투수였다.

“괜한 트러블을 일으키지 말도록 해.”

“알겠습니다.”

한바탕의 소동은 그렇게 리올의 중재로 끝났다.

리올이 돌아가자 신우가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남자를 바라봤다.

라커에 붙은 그의 이름을 보고 그제야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레이먼드 브리슨.’

현 뉴욕 메츠의 클로저였다.

* * *

경기가 시작됐다.

뜨거운 열기에서 시작된 경기는 투수전이 되었다.

메츠의 투수는 리올 에르난데스였다.

그는 빠른 공으로 상대 타자를 요리하며 5회까지 단 2개의 안타로 필리스 타선을 틀어막았다.

‘잘 던지네.’

[제구가 좋네.]

[공도 빠르고.]

[변화구도 나쁘지 않은데?]

채팅창에서 칭찬이 이어졌다.

전설의 플레이어들이 칭찬할 정도로 분명 리올의 투구는 인상적이었다.

그렇기에 의아했다.

‘그런데 어째서 5경기 연속 승을 올리지 못할까요?’

[이유가 있겠지.]

리올 에르난데스는 최근 5경기 연속 승수를 쌓지 못했다.

오히려 패배만 3개를 추가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6회 들어 알 수 있었다.

딱-!

경쾌한 소리가 그라운드에 울렸다.

타자가 안타를 때려 루상에 나갔다.

오랜만에 맞은 안타다.

하지만 불펜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젠장, 또 시작이군.”

“역시 6회를 넘기지 못하네.”

“슬슬 몸을 풀어야겠어.”

다들 당연하다는 듯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체력저하로군.]

[올 시즌 처음으로 풀타임이었으면 슬슬 체력이 떨어질 시기지.]

[1선발이 저러면 팀에서도 고민이 많겠네.]

리올의 체력저하로 인해 불펜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덕분에 불펜투수들은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그때 불펜의 전화가 울렸다.

“예.”

전화를 받은 불펜코치가 고개를 끄덕이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명단을 보고 두 선수를 호명했다.

“커트, 그리고 시누. 준비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신우가 몸을 풀 순간이 왔다.

* * *

[리올 에르난데스 선수, 오늘 경기 잘 던지다가 결국 마의 6회를 넘기지 못합니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체력적인 부담이 큰 듯 합니다.]

[어느덧 주자 1, 2루가 됐네요.]

[더 이상은 무리로 보입니다.]

[아, 결국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합니다. 하지만 노아웃에 주자 1, 2루인데요. 어떤 투수를 올릴까요?]

[글쎄요. 사실 메츠의 투수진은 썩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말이죠. 누가 올라오더라도 점수를 아예 안 주고 끝나기에는 무리일 것으로 보입니다.]

[정신우 선수가 올라오지 않을까요?]

[배제할 순 없습니다만...오늘 콜업된 선수를 이런 상황에서...]

그때 한 선수가 마운드 위로 올라왔다.

[아-! 정신우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왔습니다! 노아웃에 1, 2루의 위기에서 정신우 선수! 등판했습니다!]

정신우의 메이저리그 첫 등판이었다.

TV를 가득 메우는 아들의 모습에 한선예가 두 손을 꼭 모았다.

“아들...”

누가 보아도 위험한 상황.

하지만 신우의 표정은 언제나와 같았다.

아니,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힘내...”

한선예는 그런 아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 * *

연습투구를 끝낸 신우에게 감독인 마이크가 말했다.

“한점은 줘도 돼.”

신우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말이었다.

그 말을 남기고 감독이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본 신우가 로진을 손에 묻혔다.

‘선배님들.’

[어?]

[와이?]

‘한점은 줘도 된다는데요?’

[헐~]

[그래서?]

[줄 생각임?]

상체를 일으키며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전혀요.”

피처플레이트를 밟은 신우가 상체를 낮췄다.

[포수의 사인에만 집중해라.]

‘예.’

‘바깥쪽, 낮게.’

코스는 정해졌고.

‘커터.’

구종도 결정됐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주자 잊지마라.]

‘물론이죠.’

고개를 움직여 주자들을 견제했다.

주자들은 딱히 달릴 생각이 없어보였다.

“헤이! 헤이!”

다만 방해는 확실히 하고 있었다.

[주자에 너무 신경을 주지마.]

‘선배님들 채팅에 비하면 애교입니다.’

한 마디를 툭 내뱉고 팔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발을 내디뎠다.

깔끔한 스트라이드.

활처럼 휘어지는 상체.

그리고 고정된 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신우는 모든 힘을 집중시켜 그대로 공으로 보냈다.

“차핫-!”

메이저리그에서의 일구를 뿌렸다.

코스는 정확히 포수가 원하는 코스로 날아갔다.

타자의 배트도 회전을 시작했다.

후웅-!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배트가 매섭게 공을 집어삼켜갔다.

그 순간.

휘릭!

타자의 바로 앞에서 공이 휘었다.

그리고 바깥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배트의 사정거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게 더 최악이었다.

딱!

빗맞은 타구가 라인드라이브로 날아갔다.

그리고 곧장 유격수의 글러브에 꽂혔다.

퍽!

“아웃!”

심판의 아웃 콜과 동시에 유격수가 2루로 공을 뿌렸다.

퍽!

“아웃!”

3루로 달리던 주자가 귀루하지 못하고 그대로 아웃이 됐다.

그리고 2루수가 다시 1루로 공을 던지려 했지만 이내 멈췄다.

1루 주자는 어느새 베이스에 귀루한 상태였다.

아쉽게 트리플 플레이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단숨에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아아-! 대단합니다! 정신우 선수, 단 1개의 공으로 아웃카운트 2개를 올렸습니다!]

[정말 아쉽네요! 트리플 플레이가 될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타구가 너무 빨랐어요!]

[정신우 선수는 트리플A에서도 트리플 플레이를 만들어낸 전력이 있습니다.]

[아쉽긴 하지만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올린 것에 만족해야겠네요.]

신우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나이스 피칭!”

“아웃 하나만 더 잡아라!”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신우는 다시 가볍게 로진을 묻혔다.

‘제 공이 통한거죠?’

[ㅇㅇ]

[제대로 속았음.]

[포심으로 알고 그냥 돌리더만.]

메이저리거한테 자신의 공이 통했다.

신우는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피처 플레이트를 밟았다.

‘응?’

그때 신우의 눈에 1루 주자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방금 전과는 묘하게 다른 움직임이었다.

발을 바닥에 비비기도 하고 무게중심이 2루에 쏠리기도 했다.

리드폭은 직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 한 가지가 있었다.

‘도발을 하지 않네.’

[엌ㅋㅋㅋㅋ]

[어케 알았누?]

‘선배님들이...’

그 순간 신우의 축발이 피처 플레이트 뒤로 빠졌다.

거의 동시에 몸을 1루로 회전시켰다.

‘그러셨잖아요!’

그리고 팔을 돌렸다.

‘주위를 관찰하라고!!’

쐐액-!

주자가 급히 귀루했다.

뻐억-!

“아웃!!”

하지만 공이 더 빨랐다.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아아-! 견제사입니다! 정신우 선수! 위기의 6회를 단 1개의 투구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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