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21화 (21/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21화 >

* * *

[세 개의 공, 그리고 세 개의 아웃카운트]

[메이저리그 올스타게임에 앞서 열린 올스타 퓨처스게임에서 진귀한 장면이 연출됐다. 단 세 개의 공으로 아웃카운트 세 개를 잡으며 한이닝이 마감된 것이다.

이 장면을 연출한 것은 뉴욕 메츠 산하 트리플A팀인 시러큐스 메츠에서 활약중인 정신우 선수가 만들어냈다.

8회말, 내셔널리그팀의 마운드에 올라온 정신우 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 탬파베이 레이스 그리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최대 유망주급 타자들과 연달아 상대해 단 세 개의 공으로 세 개의 아웃카운트를 올렸습니다.

세 개의 공 모두 컷패스트볼, 일명 커터로 불리는 변화구를 던지며 타자의 배트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모이시스 고메스 선수와 상대하면서 나온 배트가 부러지는 장면은 MLB.COM에 업데이트가 되며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한편 정신우 선수는 한국프로야구에서 육성선수로 뛰다 방출된 후, 메이저리그 도전을 위해 좌완에서 우완으로 바꾸는 등 갖은 노력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야구팬들이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신우 선수가 계약 첫해, 빅리그 데뷔가 이루어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국내에서 신우의 기사가 메인으로 떴다.

소수의 야구매니아들이 봤지만 그의 활약상은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되면서 자연스레 한국에서도 화제가 이어졌다.

대중의 관심은 자연스레 언론의 보도로 이어졌고 신우의 인지도는 빠르게 상승해갔다.

* * *

신우는 시러큐스로 돌아왔다.

박현성, 그리고 그 가족들과 함께한 저녁자리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식사내내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또한 자신을 배려해주는 그들의 모습에 무척이나 감사했다.

‘좋은 분들이야.’

언젠가는 자신이 식사를 대접하리라.

신우는 그런 마음을 품었다.

‘이번 올스타게임은 정말 즐거웠어.’

처음으로 경험하는 무대였다.

마이너리그의 올스타게임이지만 정말 많은 관중이 찾았다.

4만명에 육박하는 사람들 앞에서 공을 던진다.

이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마운드 위에 있으면 그들의 함성소리에 온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거기에 4만명이 모두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짜릿했다.

[변태쉑.]

[남들의 시선을 즐기다니.]

[시누, 변태였누.]

‘아니...변태라뇨.’

[그래도 최소한의 기본은 갖춰진 듯?]

[ㅇㅈ]

[시선도 즐길 줄 알아야 뛰지.]

[맞음. 경기장에 매일 그 정도는 오는데.]

[매일은 오바 아님?]

[하긴 요즘 관중들 많이 줄었지.]

[그래도 몇 만은 오잖슴?]

[그건 맞음.]

[저들의 말이 맞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넌 몇만의 관중들 앞에 올라야 한다. 그 시선에 부담감을 느끼고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태반이었다.]

[그런 애들은 다시 마이너로 내려갔지.]

[ㅇㅇ 극복 못하고 은퇴한 애들도 많고.]

[결국 빅리그에 가는 애들의 실력은 비슷비슷함. 문제는 그 실력을 실전에서 보여줄 수 있냐는 거임.]

[ㅇㅈ.]

시선을 즐기는 것.

그것이 빅리그에 오르는 첫 번째 조건이었다.

신우는 그 조건을 클리어한 셈이었다.

[그래도 너무 들떠있지 마라. 너는 바로 시즌에 들어가야 된다.]

[맞음. 축제의 기분에 빠져 있으면 제대로 공 던지기 힘듬.]

[실전모드로 바꿔야 됨.]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는 빨리 축제의 기분을 벗어던지기 위해 노력했다.

* * *

뉴욕메츠의 구단사무실.

존 베켓이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피터와 에이든이 의자에 앉아 베켓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장에서도 보긴 했지만...”

존 베켓이 영상을 모두 보고 입을 열었다.

“정말 대단하군요. 설마 이 정도의 선수였을 줄이야.”

“사실 트라이아웃 당시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요?”

“예. 시러큐스에서 뛰면서 실력이 월등히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커터의 질이 더 좋아졌습니다.”

“확실히 공 3개에 불과하지만 타자들이 배트를 내밀 수밖에 없게 만들더군요.”

신우가 상대한 세 명의 타자.

그들이 실력이 없어서 초구부터 배트를 휘두른 게 아니다.

신우가 던진 세 개의 공은 모두 타자가 좋아하는 코스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말이다.

그런 코스에 공을 던지면 타자의 배트는 당연하게 나온다.

하지만 그건 속임수다.

타자의 배트에 속도가 붙은 뒤, 공은 기다렸다는 듯 방향을 전환한다.

인간의 반응속도로 대처할 방법은 없었다.

마리아노 리베라.

그의 커터가 바로 이런 형식이었다.

“어떻습니까?”

피터의 질문에 존 베켓이 에이든을 바라봤다.

“자네의 생각은?”

에이든은 단순히 구단직원이 아니다.

전략분석팀장 자리를 맡고 있으며 구단 최고의 세이버매트릭스 전문가였다.

무엇보다 단장인 존 베켓이 그를 무한하게 신뢰한다는 점이었다.

즉, 그의 한 마디로 신우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안경을 한 번 고쳐 쓴 그가 입을 열었다.

“더 이상 마이너리그에 둘 이유가 있습니까?”

“하하하! 역시 자네답군.”

“세부적인 스탯을 봤을 때, 그는...”

“피터.”

에이든이 자세한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 순간.

존 베켓이 상대를 바꿨다.

신뢰를 하는 것과 그의 야구덕후스러운 지식을 듣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예.”

“계획대로 추진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신우의 빅리그 콜업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시러큐스 메츠의 감독 도널드는 한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들떠 있을 거야.’

큰 축제가 끝나면 그 여운은 오래 남는다.

본인이 축제의 주인공이었다면 여운은 더더욱 길게 남게 된다.

문제는 경기에 나서야 되는 선수가 축제의 여운에 빠져 있는 경우다.

그런 경우 경기력에 영향이 갈 수 있다.

감독으로서 그런 부분에 대한 조언을 확실히 해줄 생각이었다.

‘흐흐, 녀석이라 해도 분명 축제의 즐거움에 빠져 있겠지.’

무엇보다 그 녀석에게 한 마디를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도널드는 거침없는 걸음으로 불펜에 들어섰다.

“감독님, 웬일이십니까?”

투수코치인 피를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경기 전에 도널드가 불펜을 찾는 건 드문 일이었다.

대부분 피를로에게 일임을 했기 때문이다.

“아, 그냥 오랜만에 투수들이 어떤가 싶어서 와봤어. 다들 어때?”

“다들 몸상태가 좋습니다. 특히 시누의 몸상태가 무척 좋아요.”

“응?”

뻐엉-!

실내연습장이 울리는 소리에 도널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신우가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지고 있었다.

“올스타 같은 이벤트에 다녀오면 실전감각이 떨어지는 선수도 꽤 있는데 말이죠.”

‘그래, 내가 원했던 게 그런 모습인데! 아니, 이건 또 아니지...선수 컨디션이 좋으면 감독으로서 좋아해야지.’

“시누는 전혀 다릅니다. 실전감각이 떨어지긴커녕 오히려 날카롭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나참, 신인이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흠흠, 그럼 이상이 없는 건가?”

“예? 예. 뭐 딱히 이상은 없습니다. 오늘부터 바로 나가도 상관없을 거예요.”

“그...그렇군.”

도널드의 묘한 반응에 피를로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흠흠,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벌써요?”

“어어,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알겠습니다.”

불펜을 나서는 도널드는 남들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선수에게 조언 한 마디 하기 힘드네.’

아쉽게도 도널드가 조언을 해줄 기회는 없었다.

신우의 곁에는 이미 그에게 조언을 해주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짜샤, 좀 놀다 왔다고 팔 각도 내려가지?]

[하체를 뽝! 잡아야지! 아, 이 자식 안되겠네. 당분간 하체 좀 조지자.]

[하체만 조져서 될 일이 아님. 전신개조를 해야지.]

그들의 끊임없는 태클에 신우의 이마에 혈관마크가 튀어나왔다.

“차핫!!”

그리고 그 분노를 투구에 담았다.

빠악-!

“윽...!”

덕분에 공을 잡는 포수의 손바닥만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 * *

올스타라는 거대한 이벤트는 페넌트레이스의 전환점이다.

이 시점을 시작으로 팀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포스트시즌을 노릴 것인가.

리빌딩에 들어갈 것인가.

과거에는 웨이버 트레이드가 8월 31일까지 가능했다.

즉, 선수의 이동이 8월까지도 가능했다는 소리다.

하지만 2019년부터 7월 31일로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결정됐다.

모든 트레이드는 이 시기에 끝난다.

팀 입장에서는 1/3시즌이 남은 시점에서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해야했다.

또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건 바로 확장로스터의 변화다.

2020시즌부터 메이저리그는 40인 확장로스터를 28인으로 줄였다. 대신 기본 로스터를 25인에서 26인으로 늘리는 변화를 시도했다.

이로 인해 마이너리그에서 콜업해야 되는 선수 역시 제한적이었다.

과거에는 마이너리그에서 유망주를 콜업해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시험하는 용도로 확장로스터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온전히 전력에 도움이 되는 선수를 올려야 됐다.

이런 변화로 인해 각 팀의 프런트는 머리가 아파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뉴욕메츠는 이미 길을 결정했다.

“포스트시즌에 도전한다.”

“물론이죠.”

“당연합니다.”

현재 뉴욕메츠는 동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뉴욕메츠는 동부지구 꼴찌 후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하게 1위를 달렸다.

문제는 그들의 전력에 구멍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전문가들은 뉴욕메츠를 월드시리즈 우승후보로는 뽑지 않았다.

특히 피터의 예상대로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불펜에서 이상징후가 발생하고 있었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불펜입니다. 그렉 버드의 피로도가 쌓이면서 점점 팔의 각도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RPM 역시 조금씩이지만 하락하고 있습니다.”

“다른 불펜투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시즌 전반기에 불펜의 활용도가 높았습니다. 팀내 선발투수들이 던진 평균이닝이 5.2이닝이었던 게 영향이 컸습니다.”

“흠.”

모든 건 피터의 예상대로였다.

베켓은 다시 한 번 피터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후보는?”

“총 네 명의 후보군을 추렸습니다. 모두 트리플A에서 뛰고 있으며 이들이 당장 로스터에 합류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에이든이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그 서류에는 네 선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흠...이들 중 자네들이 추천하는 선수는?”

베켓이 분석원들을 보며 물었다.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한 선수의 이름을 꺼냈다.

* * *

어느덧 날이 선선해지고 있었다.

“휘유...벌써 가을이네.”

[가을은 아직 멀었지.]

[벌써 가을 타누.]

[애인이 있어야 덜 탈 텐데.]

[모쏠이라 불가능.]

‘모쏠 아니거든요?’

고등학생 때는 나름 인기가 있었다.

물론 부상 이후로는 그 인기가 썰물 빠지듯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래도 모쏠은 아니었다.

‘이제 시즌도 얼마 안남았네요.’

[아직 두 달이나 남음.]

[벌써 시즌 끝내려구 하누.]

‘마이너리그는 일찍 끝나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넌 빅리그에 콜업될 거다. 그러니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지.]

‘될까요?’

사실 신우는 아직 빅리그가 멀게만 느껴졌다.

확장로스터가 줄어든 탓이 크다.

예전에는 40인까지 선수를 등록할 수 있었다지만 경기의 스피드업을 위해 대폭 줄였다.

덕분에 확실한 유망주들만이 콜업이 됐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은 미국에 온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빅리그에 콜업이 된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엌ㅋㅋ 장난 똥때리누.]

‘예?’

[다른 애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너희 나라에도 마이너 2달만에 패스한 선수 있었던 거 모름?]

‘아...’

기억 났다.

얘네 야구 못해요 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긴 Born to K.

루키에서 시작해 단 두 달만에 메이저리그에 콜업, 이후 애리조나의 마무리로 뛰며 엄청난 성적을 남긴 선수.

언더핸드 투수로서 최고구속 150km를 던졌던 선수였다.

또한 그의 주특기였던 업슛은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최고의 구종 중 하나로 꼽힐 정도였다.

확실히 선례는 있었다.

문제는 자신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때였다.

지잉-!

스마트폰이 울렸다.

신우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 감정은 전화를 건 상대를 보고 더욱 커졌다.

[피터 게일]

피터의 전화는 오랜만이었다.

올스타전 이후 처음인 듯 했다.

신우는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밀었다.

“여보세요.”

[아, 시누. 나 피터일세.]

“예.”

[다름이 아니라 이제 그만 짐을 싸게.]

“예?”

[빅리그에 올라올 시간이야.]

빅리그 콜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