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8화 >
* * *
“크...! 진짜 멋졌다니까!”
브리토가 맥주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야! 그 이야기만 벌써 열 번째다.”
“어떻게 일주일이 넘어가도 레퍼토리가 그대로냐?”
동료들이 룸메이트들에게 타박을 했다.
하지만 브리토는 꿋꿋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야! 일주일이 뭐냐? 이번 트리플플레이는 한 달은 이야기 해야 돼! 라인드라이브를 2루수가 잡은 것도 아니고, 1-5-6-3 트리플플레이가 말이 되냐?”
야구에는 포지션넘버라는 게 존재한다.
수비상황에서 각 포지션마다 번호를 정해둔 것이다.
1번은 투수, 5번은 3루수, 6번은 유격수, 3번은 1루수였다.
즉, 투수가 공을 잡아 3루수한테, 그리고 2루 커버를 들어간 유격수한테 던지고 마지막으로 1루수한테 송구해 트리플플레이를 완성했다는 의미다.
트리플플레이 자체가 희귀하지만 1-5-6-3 트리플플레이는 더욱 드물었다.
트리플플레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상황은 주자 1, 2루의 상황에서 히트앤런 작전이 나왔을 때다.
히트앤런 사인이 나오면 주자는 먼저 달린다.
이후 타자가 공을 타격한다.
이 타구가 2루나 유격수 혹은 1루 방향으로 라인드라이브로 나왔을 때, 주자들이 귀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트리플플레이가 가장 자주 나왔다.
이번과 같이 투수가 주도해서 트리플플레이가 나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하긴, 말이 안 되긴 하지.”
“야, 넌 도대체 그 상황에서 공을 떨어트릴 생각을 어떻게 했냐?”
“응?”
화살은 신우에게 향했다.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던 신우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냥?”
“헐...저게 재능 있는 자의 발언인가?”
“와...그 짧은 순간에 그걸 그냥 했단다.”
“미치겠네, 진짜.”
동료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하지만 신우로서는 최선의 대답을 한 것이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명예의 전당 최초의 5인 중 한 명인 크리스티 매튜슨이 조언을 해줬어! 라고 말한다면 내일부터 동료들이 곁에 오지 않을 것이다.
‘대단하긴 했지.’
신우는 그들의 조언을 떠올렸다.
일주일.
그 사이 몇 번 더 등판을 했지만 아직 그때의 임팩트를 잊지 못했다.
‘타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뭘 할지 생각을 했어.’
[타자를 관찰함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건 많다.]
조용하던 채팅창에 새로운 채팅이 올라갔다.
매튜슨이었다.
[타자는 타석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장타를 치려는 타자가 노브를 감싸듯 잡듯이 말이야.]
노브는 배트 손잡이의 둥그런 부분이다.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타자가 번트를 대려고 하는지와 같은 건 어떻게 아는 거죠? 미국에선 원래 번트를 잘 하지 않잖아요?’
[사실상 경기에 들어가서 관찰을 하는 건 무리다. 투수는 투구를 하는 것만 하더라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사실상 하루에 소비해야 될 에너지를 모두 소비해야 되지.]
‘예. 그래서 다른 쪽에 신경을 쓰면 제구가 흔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러니 사전에 공부를 해야 한다.]
‘사전에요?’
[그래. 네가 상대해야 될 타자에 대한 정보를 전력분석팀에서 받아 그것을 달달 외우는 거다. 거기에 너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할 필요도 있다.]
‘전력분석팀의 정보 이외에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현대야구에서 전력분석은 무척 치밀하게 이루어지잖아요.’
[물론이다. 현 시대의 전력분석은 정말 정밀하게 이루어지지. 선수 본인이 모르는 단점까지 캐치해낸다. 그것도 과학적으로 말이지.
그 데이터는 귀중하다. 하지만 가장 큰 약점이 있다.]
‘약점이라면...’
[바로 그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게 사람이란 것이지. 사람은 개인마다 살아온 환경, 쌓아온 경험, 그리고 생각들이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같은 데이터를 주더라도 받아들이는 게 다른 법이지.]
‘아...’
[그래서 너만의 관점이 필요하다. 분석팀의 분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관점이 있어야지만 그들의 정보를 신뢰하고 거기에 맞춘 대응을 짤 수 있는 거다.]
이제 이해가 됐다.
자기만의 관점.
그것을 가지는 게 자신이 해야 될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니다. 조언은 누구나 해줄 수 있는 것이야,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실천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잘 기억해둬라. 결국 모든 건 너에게 달려 있다는 걸.]
‘예.’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
“참, 시누.”
“응?”
브리토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이번 올스타에 대해서 별말 없어?”
“아직까지 별 다른 이야기가 없네.”
“그래? 슬슬 결정이 날 거 같은데.”
“무슨 걱정이야? 당연히 시누가 뽑히겠지.”
“지금 트리플A에서 시누보다 잘 던지는 투수가 있긴 한가?”
“그래도 한 가지 변수는 있잖아. 시누는 미국에서 데뷔한지 아직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거. 올초에 나온 유망주랭킹에서도 이름은 올라가지도 않았고 말이야.”
“그것도 그렇네. 다른 지역에 가면 시누를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지.”
“에이! 김 빠지게 무슨 소리야? 실력만 놓고보면 시누가 뽑혀야지!”
“그건 그렇긴 하지만, 올스타에 뽑히는 게 뭐 실력만 가지고 뽑히나?”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벌이는 동료들의 모습에 신우가 고개를 저었다.
메이저리그에는 1년에 한 번씩, 올스타게임을 개최한다.
야구에서 선택받은 이들만이 모인 메이저리그.
그리고 그 메이저리그에서 또 스타들만 뽑은 것이 바로 올스타게임이다.
이 올스타게임이 열리기 전.
식전행사 개념으로 마이너리거들을 위한 올스타전이 열린다.
바로 올스타 퓨처스게임이다.
모든 마이너리거가 대상이지만 대부분 각 팀의 최대유망주들이 뽑히는 자리였다.
올스타게임과 달리 마이너리그 올스타의 경우 공동위원회에서 선정된다.
그들은 스타성이 있는 선수를 선정하기에 신우는 배재될 가능성도 농후했다.
‘되면 좋고.’
신우는 양팔로 머리를 감싸며 편하게 누웠다.
브리토와 동료들은 저렇게 난리였지만 사실 신우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정말 관심이 없냐?]
매튜슨의 질문에 신우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답했다.
‘되면 좋긴 할 거 같아요. 그런데 딱히 안 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올~]
[정말 괜찮음?]
[그래도 올스타 나가면 좋지 않겠냐?]
다른 이들의 채팅도 올라왔다.
눈팅하던 이들의 질문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되면 좋겠다는 거죠.’
[글쿠먼.]
[근데 너 올스타 나가면 한국에서 방영해주지 않을까?]
‘예?’
[올해 올스타 나가는 한국인 없지 않음?]
[글킨 한데. 계약은 되어 있으니까, 방송은 하잖아?]
[그치.]
[마이너리그쪽에서 시누가 나가면 방송국쪽에서 마이너 올스타도 중계해주지 않을까? 어차피 계약에 걸려 있을 테니까.]
[오호...]
[킹능이지.]
[ㅇㅈ.]
[그럼 어머니도 볼 수 있겠네?]
‘어...’
어머니가 볼 수 있다는 말에 신우가 눈을 떴다.
[하지만 아들은 나가도 그만 안나가도 그만이라니까...]
[어머니가 중계를 못 보시는 거지만...]
[어쩔 수 없자너.]
[아들이 저렇다는데.]
[불속성 효자자너.]
마이너리그 경기는 한국에서 방영을 해주지 않는다.
즉, 어머니가 자신의 경기를 볼 수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저들의 말대로 정말 국내방송국이 마이너리그 올스타를 중계해준다면?
‘어머니가 보실 수도 있다.’
시차 때문에 어머니와 통화도 제대로 못한다.
어머니가 야간에 일하실 때는 핸드폰을 아예 사물함에 넣고 일을 하니 더더욱 통화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톡을 통해 대화를 주고 받았다.
당연히 어머니가 걱정됐다.
무엇보다 국내기사에 나온 자신의 사진을 톡의 프로필로 사용하시는 걸 보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방금 말, 정정하겠습니다.’
[응?]
[오?]
‘올스타에 꼭 나가겠어요!’
신우가 다짐을 했다.
* * *
피터는 오랜만에 시라큐스를 방문했다.
원래 그는 트리플A 구단보단 싱글A나 루키에 더욱 집중한다.
아직 씨앗인 그들에게 더 시간을 투자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시라큐스를 방문한 이유는 곧 시즌이 반환점을 돌기 때문이다.
‘현재 성적을 유지하면 올 시즌 포스트시즌도 꿈만은 아니야.’
현재 뉴욕메츠는 동부지구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위인 필라델피아와 승차 3경기를 유지중이다.
3위인 워싱턴과는 1경기차를 유지하며 아슬아슬한 2위를 수성중이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
올 시즌 메츠가 순위권싸움을 할 것이라 전망한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주축선수들이 빠지고 미래를 지킬 유망주들은 팀을 떠난 상황.
현재에서 도전을 택할 수도 없었고 미래를 위한 리빌딩을 선언할 수도 없었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서 시즌을 치러야했다.
거기에 클로저였던 그렉 버드의 이탈까지 이어지면서 올 시즌을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설마 잭팟이 터질 줄이야.’
21시즌.
팀의 우승을 위해 유망주를 팔아 현재의 전력을 채웠다.
그 과정에서 넘어온 플러스 1이었던 선수.
투수 리올의 포텐이 폭발했다.
전반기에만 벌써 10승을 기록하면서 엄청난 페이스로 승수를 쌓아가고 있었다.
ERA는 2.17에 탈삼진은 155개를 잡아냈다.
아직 전반기 한 번의 등판이 더 남아 있으니 탈삼진 160개를 돌파할 가능성도 컸다.
그의 포텐이 터질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28살의 나이였고 어깨 수술까지 받았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메츠가 그를 받았던 것도 플러스 1이었으니 받은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어쨌건 잭팟은 터졌고 예상치 못한 에이스가 손에 들어왔다.
에이스의 등장은 팀을 결속시켰다.
올 시즌 리올은 서른살이 되면서 연륜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라커룸을 장악했고 팀은 하나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전반기는 팀이 어리고 성적이 좋기 때문에 가능한 페이스였다.’
메츠의 팬들은 팀의 반등에 환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팀의 수뇌진은 무척이나 신중하게 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케이스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알기 때문이다.
메츠는 팀의 베테랑들이 빠지면서 전체적으로 나이가 어려졌다.
어리다는 건 기분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팀의 성적이 좋을 때는 큰 장점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시작 마지막까지 이어질 순 없다.
특히 시즌 후반기.
어린 팀의 가장 큰 단점인 체력과 자잘한 부상들이 겹치면서 슬럼프에 빠지면 단숨에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것을 제때 수습하지 못하면 팀은 와해가 된다.
‘리올 역시 올 시즌부터 메이저리그 엔트리에 들어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커리어만 놓고 보면 다른 선수들과 큰 차이가 없어.’
리올이 수습을 하지 못한다면 라커룸의 분위기는 가라앉을 거다.
그것을 막기 위해선 다른 선수들의 체력안배가 필요했다.
즉, 시즌 후반기에는 로스터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불안한 곳은 역시 불펜이야.’
그렉 버드라는 커다란 균열.
지금은 레이먼드가 잘해주고 있지만 시즌 후반이 되면 다시 균열이 벌어질 수 있다.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레이먼드를 제외한 메츠 불펜진의 ERA는 4.52였다.
이 순위는 메이저리그 전체 23위에 해당하는 점수였다.
균열이 일어나면 불펜진이 가장 먼저 무너질 가능성이 컸다.
‘이 균열을 막기 위해서는 자네밖에 없어.’
피터의 시선이 그라운드로 향했다.
마운드 위에는 동양인 선수가 서있었다.
신우였다.
1아웃 만루상황.
신우는 7회에 마운드에 올랐다.
6월 들어 그는 마무리 상황이 아님에도 마운드에 오르고 있었다.
‘날 원망해도 좋아.’
이 모든 건 피터의 계획이었다.
‘지금 이 상황의 압박감보다 메이저리그의 마운드는 더 강한 압박감으로 자네를 짓누를거야.’
바로 메이저리그 등판을 위해서다.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압박감 역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강제적으로 압박을 강하게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를 단련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시누는 오늘도 매우 나쁜 상황에서 등판을 했네요.]
[최근 이런 일이 잦죠?]
[맞습니다. 아무래도 메츠에서 뭔가 계획을 꾸미고 있는 거 같아요.]
[동감입니다. 하지만 시누는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네요.]
[기록을 보면 더 놀랄 겁니다. 시누는 6월 초순부터 매 등판마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등판했어요. 이닝을 가리지 않고 말이죠.]
[매 등판마다 주자가 있었습니까?]
[예. 더 놀라운 건 그런 상황에서 평균자책점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얼마입니까?]
[제로입니다.]
[예?]
[제로. 6월 등판한 11경기에서 신우는 단 한 명의 주자도 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어요. 더 놀라운 건 단 한 명의 타자도 주자로 만들지 않았다는 거죠.]
[11이닝 퍼펙트란 말입니까?]
[뭐, 선발로 따지면 그렇겠군요. 그래서 시라큐스 팬들은 최근 그를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부르죠?]
[미스터 제로. 그게 최근 시누에게 붙은 별명입니다.]
피터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직접 온 것이다.
미스터 제로가 된 신우의 피칭을 직접 보기 위해서 말이다.
‘자네가 변한 모습을 보여줘.’
피터가 말없이 경기에 집중했다.
원아웃 만루.
단타 하나라도 맞으면 실점이다.
팀이 2점을 앞서고 있지만 이 리드가 단숨에 뒤집힐 수 있었다.
투수에게는 가장 가혹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신우는 흔들림없이 마운드 위에 서있었다.
그리고 무심한 얼굴로 초구를 뿌렸다.
[차핫-!]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기합소리.
그리고 뿌려진 공이 타자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이 상황에서 몸쪽 공이라니?
당연하게도 타자는 매섭게 배트를 돌렸다.
배트와 공이 만남을 가지는 순간.
[빠각!]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공이 내야를 굴러 2루수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갔다.
[2루수 잡았습니다! 공은 유격수에게로! 베이스 밟습니다! 그리고 1루로! 아웃입니다! 공 단 한 개로 위기를 벗어나는 시누입니다!]
[이야-!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군요?]
[맞습니다. 그의 전매특허인 커터가 스팟을 벗어나면서 배트를 부셔버렸어요!]
캐스터와 해설자가 난리가 났다.
그리고 그들의 심정을 피터 역시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엄청난 배짱이다.’
몸쪽 공은 위험하다.
타자가 가장 힘을 잘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장타가 나올 확률이 높다.
특히 만루상황에서는 외야로 보내는 뜬공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즉, 몸쪽으로 던지는 건 무척이나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우는 몸쪽을 택했다.
초구에 말이다.
그 결과는 완벽했다.
‘공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던질 수 없는 코스였어.’
캠프가 끝나고 3개월.
신우는 또 한단계 발전을 한 것이다.
우웅-!
그때 피터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가 온 것은 아니고 문자였다.
문자에는 한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 * *
경기가 끝났다.
만루위기를 넘긴 시라큐스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수훈선수라 할 수 있는 신우는 감독의 호출을 받고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허름한 사무실의 문은 열려 있었고 복도에 나있는 창문은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안에는 익숙한 인물이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우는 활짝 열린 감독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오, 시누. 왔나? 이리와.”
“예.”
“시누, 오랜만이군.”
“피터씨 오랜만이에요.”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이는 피터 게일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피터가 자네에게 전할 소식이 있다는군.”
“저한테요?”
“축하하네.”
대뜸 축하한다는 말에 이게 뭔가 싶었다.
그때 피터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명단이 찍힌 사진이 떠있었다.
“올스타전에 나가게 됐어.”
그것은 올스타 퓨처스게임의 출전명단이었다.
[Sinwoo Jung]
자신의 이름이 명단에 들어가 있음을 확인한 신우가 조심스레 피터에게 물었다.
"이거 명단 제 폰으로 보내도 되나요?"
"응? 뭐 상관없긴 하네만, 어디에 쓰려고?"
"지인들한테 좀 보내려고요."
"어차피 곧 뉴스로 나갈 텐데."
"흐..."
마운드에서 보여주었던 카리스마적인 모습이 아닌, 인간적인 신우의 모습에 피터가 피식 웃었다.
그 뒤로 몇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신우가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라커룸에 도착해 자신의 스마트폰을 열었다.
메시지를 통해 도착한 명단을 확인한 신우는 폰의 편집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신의 이름을 체크했다.
그리고 메시지를 작성해 전송버튼을 눌렀다.
* * *
“아구구...어깨야.”
“신우엄마, 또 어깨 아파?”
“응. 일 끝나니까 또 그러네.”
“에휴, 참지만 말고 한의원 가서 침 한 대 맞으라니까.”
“7월까지는 무리지. 잔업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꼭 가봐. 그러다가 골병 들어.”
“응, 고마워.”
야간 근무가 끝난 한선예가 어깨를 두드리며 라커를 열었다.
“응?”
스마트폰을 켜자 아들에게서 메시지가 와있었다.
한선예는 기쁜 마음에 톡을 열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뭔가 영어가 잔뜩 적혀 있었다.
그리고 네모난 박스로 체크된 하나의 이름.
‘신우 이름이네.’
하지만 다른 건 전부 영어였기에 이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
[엄마, 저 올스타전에 나가게 됐어요. TV나 인터넷으로 중계가 나갈지 모르겠는데, 만약 나가게 되면 따로 알려드릴게요!]
올스타전.
그녀 역시 야구 꿈나무의 부모로서 그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라커룸의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들어왔다.
반장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7월까지 물량 맞춰야 돼요. 그러니 다들 잔업이랑 특근 빠지지 말고 반드시 출근하셔야 됩니다. 아셨죠?”
“반장님!”
“예, 한선예씨.”
“저 다음달 하루 쉴 수도 있어요!”
“예? 아니, 방금 제가 한 말 못 들었어요? 물량 맞추려면 한 명도 쉬면 안 된다니까요?”
“꼭 쉬어야 됩니다!!”
평소 얌전한 그녀가 아니었다.
마치 호랑이와 같은 기세를 내뿜는 모습에 기가 센 반장은 물론 동료들도 모두 놀란 토끼눈을 떴다.
아들의 일이 걸린 순간.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강해지는 법이었다.
"이...일단 따로 이야기를..."
"네! 꼭 쉴 수 있도록 부탁하겠습니다!!"
"네...네..."
정말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