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17화 (17/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7화 >

* * *

“어떻습니까?”

피터 게일이 누군가에게 물었다.

중역의자에 앉아 TV를 보던 남자가 몸을 돌렸다.

“공이 좋군요. 그런데 선발로는 성적이 별로인 건 왜입니까?”

“50구가 넘어가면서부터 힘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공을 던지는 타입이라 선발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으흠, 그래서 4월에 등판한 4번의 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가 1번밖에 없었군요.”

4월.

신우는 선발로서 테스트를 받았다.

총 4번의 등판에서 1승 2패, 평균자책점 4.5를 기록했다.

22이닝을 던지면서 11실점을 기록한 탓이다.

피터가 처음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기에 그는 기록과 피칭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50구가 넘어가면서부터 제구가 흔들리고 구위가 급격히 떨어졌다.

이런 극단적인 변화는 불펜투수에게 흔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5월부터 그를 불펜투수로 전환시켰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5월에만 10게임에 등판해서 ERA 0.81을 기록했습니다. WHIP는 0.09로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순부터 마무리상황에서 등판을 시키고 있는데, 모든 SVO에서 마무리를 성공시켰습니다.”

WHIP는 이닝당 출루허용률이다.

즉, 투수가 등판해서 1이닝에 타자를 얼마나 출루시키는지 수치화한 것이다.

신우는 10게임에서 11이닝을 던져 단 1개의 안타를 맞았다.

문제는 그 안타가 홈런이었다는 거지만 말이다.

덕분에 WHIP는 압도적으로 낮은 상태였다.

SVO는 투수에게 주어지는 마무리기회를 의미한다.

신우는 모든 기회를 잡아 현재까지 100퍼센트 세이브를 기록중이었다.

“그를 마무리로 고용하는 건, 빅리그 콜업을 염두에 둔 겁니까?”

“예. 그렉의 이탈로 마무리에 공백이 생긴 상황입니다. 후반기 그의 힘이 필요할 겁니다.”

“으흠.”

“지금은 레이먼드가 잘해주고 있지만 그는 원래 마무리투수가 아니었습니다. 시즌 후반에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심리적 압박도 많이 받을 겁니다. 만약 우리가 포스트시즌에 나갈 수 있게 된다면 그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겁니다.”

그렉 버드.

메츠의 클로저다.

22시즌 28개의 세이브를 기록하며 메츠의 뒷문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올 시즌 그는 전력에서 이탈했다.

어깨부상으로 인해 시즌아웃이 되면서 마무리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뉴욕메츠는 급히 마무리를 변경했다.

새롭게 마무리가 된 레이먼드 브리슨은 시즌 초반 마무리를 잘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팀을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보면 여러 가지 대비를 해둬야 했다.

피터는 그중에 하나를 정신우로 보고 있었다.

“으흠, 피터 당신은 시누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군요.”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기대이상입니다.”

“확실히 트리플A에서의 활약은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가 빅리그에 올라와서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유망주를 마이너리그에서 뛰게 하는 건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실전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경우에 따라서 수만관중들 앞에서 경기를 뛰어야 된다.

그 압박감은 대단히 컸다.

선수들은 마이너리그부터 그러한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적응력을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신우는 그러한 적응기간이 매우 짧았다.

고작 몇 개월동안 트리플A에서 뛰었다.

이런 케이스는 과거에도 있었다.

짧은 기간 마이너리그에서 뛰다 빅리그에 올라와서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강등된 사례가 말이다.

“빅리그에 올라와서 그 중압감을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를 빅리그에서 마무리로 기용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빅리그의 중압감을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거가 뭐죠?”

“그는 특별합니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마운드에 서는 것에 대한 압박감을 받지 않고 있어요.”

“으흠, 당신이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이야기하다니. 의외네요.”

“저도 이렇게 말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그는 특별합니다. 트라이아웃 때도 그렇고 시라큐스에 간 뒤에도 다른 선수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이터에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

그것이 신우에게 있었다.

피터의 설명을 들은 존 베켓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분명 뭔가가 있는 거겠죠. 조금 더 지켜보면서 결정을 하도록 하죠. 아직 시간은 여유가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아직 시즌의 절반도 뛰지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신우는 뉴욕메츠 수뇌진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 * *

신우는 식당에 앉아 있었다.

철컥! 철컥!

전투적으로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가져간 신우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브리토가 고개를 저었다.

“넌 정말 잘 먹네.”

“많이 먹어야 힘을 내지. 그런데 넌 안 먹어?”

“난 이미 한 접시 다 먹었거든.”

“한접시로 되냐?”

“1kg짜리 소고기를 세 접시나 먹는 네가 더 이상하거든?”

“그런가?”

다시 고기를 크게 썰어 입에 가져갔다.

한숨을 내쉬는 브리토를 보며 신우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긴, 이전에 비해 먹는 양이 늘어나긴 했어.’

[그게 다 우리 덕이지!]

기다렸다는 듯 채팅이 올라갔다.

‘제가 먹는 양이 늘어난 것도 선배님들 덕이라고요?’

[당연하지.]

[음식을 섭취한다는 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과 같음. 그런데 넌 신체가 후졌으니 굳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지.]

[엌ㅋㅋ 팩폭이누.]

‘즉, 제 몸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몸이 됐다는 거네요?’

[정답!]

[상품은 없습니다~]

[특히 너는 투구를 할 때 초구부터 전력투구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경기가 끝나면 더욱 허기진 상태가 되는 거지.]

‘으흠...그런데 저는 완급조절을 하지 않아도 되나요?’

[네 나이를 봤을 때, 빅리그에 빠르게 올라가기 위해서는 선발로는 무리가 있다고 봤다.]

[저 양반도 오늘 팩폭이네.]

[아-! 정신우 선수, 명치 두 대를 얻어맞고 비틀거립니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팩폭을 하는 매튜슨보다 다른 양반들이 더 얄미웠다.

‘그럼 전 선발로는 영 아니라는 건가요?’

[당장은 무리다.]

[클린히트! 또 들어갔습니다!]

‘안 들어갔거든요!’

[응?]

‘당장은 아니라는 거잖아요? 그럼 나중에는 될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요?’

[정답이다.]

왠지 매튜슨이 웃고 있을 것 같았다.

* * *

트리플A에서 마무리투수가 고정이 되는 일은 드물다.

그 이유는 트리플A의 성격 때문이다.

현대야구에서 마이너리그는 일종의 농장이다.

메이저리그 구단이란 주인들이 좋은 씨앗을 가져와 농장에 풀어둔다.

이 씨앗들은 제각각 개성이 있다.

농장의 주인들은 그러한 씨앗들의 개성을 날리며 키워나간다.

또한 씨앗이 가진 잠재력을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시킨다.

투수라면 선발부터 중간계투, 셋업맨, 클로저 등.

다양한 보직에서 뛰게 하며 경기에 나가게 한다.

‘그런데 저는 왜 세이브 상황에서만 나갈까요?’

[구단에서 계획을 세웠다는 거지.]

‘구단이요?’

[각 팀은 일년의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뉴욕메츠는 시즌 초반 클로저가 부상으로 이탈했지?]

‘예, 그랬죠.’

[그것이 너의 보직에 영향을 끼친 거다.]

‘하지만 지금 클로저도 성적이 좋잖아요.’

[페넌트레이스 그 이후도 바라보고 있다는 소리겠지.]

‘아...’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허리를 숙여 손에 로진을 묻혔다.

주위를 둘러보자 루상에 있는 주자들이 보였다.

8회.

노아웃에 1, 2루.

스코어는 2 대 0, 시라큐스 리드.

발이 빠른 주자들이니 장타 한방이면 동점, 큰거 한방이면 역전인 상황이다.

하지만 신우는 여유로웠다.

‘도대체 저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거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시라큐스 메츠의 감독 도널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급하게 올렸음에도 여유롭게 자신의 리듬을 가져가고 있다. 정말 루키가 맞는 거야?’

신우에 대한 정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짧게 프로생활을 했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해도 저런 여유로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간혹 흥분하거나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조절하고 있어. 마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처럼 말이야.’

도널드는 신우를 보며 베테랑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를 보고 있자면 분명 그러했다.

“플레이볼!!”

경기가 재개됐다.

마운드에 선 신우가 피처플레이트를 밟고 섰다.

‘바깥쪽.’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고 있을 때였다.

[이상하누.]

‘예?’

[요놈 이전에 타격할 때랑 자세가 미묘하게 다름.]

[어? 너두? 야 나두!]

[번트 각인데?]

‘미국은 작전 잘 안하잖아요?’

[ㅇㅈ. 하지만 아예 안 하지는 않음.]

[ㅇㅇ 허를 찌르는 경우가 간혹 있음.]

[에이-! 그래도 트리플A인데, 굳이 작전까지 할까?]

채팅이 갈리기 시작했다.

신우가 다리를 빼고 타임을 걸었다.

그리고 나지도 않는 땀을 닦아내는 척 하며 물었다.

‘번트가 맞아요?’

[주자들 움직임도 보긴 해야 될 듯.]

[가능성이 높음.]

[만약 한다면 런앤번트임.]

[그건 ㅇㅈ.]

[시프트 걸려서 3루가 비어 있으니까, 주자까지 살아서 나가려고 할 가능성이 큼.]

‘으흠.’

신우가 다시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똑같지만...’

아직 타자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채기 어려운 신우였다.

하지만 그들이 괜히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3루로 번트를 노릴 작정이라면...’

다시 사인을 교환했다.

포수가 원한 코스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공이다.

조심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평소대로라면 타자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좋은 코스였다.

만약 그들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면 신우도 같은 코스를 택했을 거다.

‘문제는 시프트가 되어 있다는 건데.’

[문제일 게 있음?]

[어차피 상대는 아웃코스 공을 예상하고 있잖아. 거기에 들어오면 번트를 대겠지.]

[그럼 너가 가서 잡고 2루와 1루로 던지면 단숨에 투아웃.]

[게임 끗!]

[님, 8회거든요?]

[그리고 투아웃이거든요?]

[아니, 그래도 투아웃까지 잡으면 점수는 안주겠지. 만약 준다 해도 1점이자너.]

[하긴.]

[킹정.]

연달아 올라가는 채팅에 고개를 끄덕였다.

포수가 미트를 내미는 모습에 신우는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일단 바깥쪽으로 간다.

[조금 높게 던져라.]

‘높게요?’

[그래.]

매튜슨의 말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하라고 한 이유는 분명 있을 거다.

세트포지션에서 눈으로 주자들을 확인했다.

리드는 길지 않았다.

[무게중심이 다음 루상으로 쏠렸다.]

[얘네들 뛸 마음 백퍼네.]

[런앤번트 확실.]

채팅을 확인하고.

곧장 다리를 뻗었다.

그 순간.

타닥-!

주자들이 일제히 달렸다.

“뛴다!!”

“뛰었어!!”

동료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저들이 뛸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모든 정신을 한점에 집중했다.

그리고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빠르게 날아간 공은 조금 높게 들어갔다.

앉아 있는 포수의 어깨 높이였다.

포수가 깜짝 놀라 미트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타자가 배트를 내밀며 번트를 댔다.

코스는 3루였다.

약속된 플레이였기에 공이 높은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딱-!

“써드!!”

공이 배트에 맞아 3루로 떠올랐다.

하지만 유격수의 위치에 있는 3루수는 3루 베이스커버를 들어가고 있었다.

반면 타구는 3루와 홈플레이트의 사이에서 낙하하고 있었다.

즉, 3루수가 대처를 하기 어려운 타구란 소리였다.

포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허를 찌른 작전이 된 순간.

“시누!!”

마운드에 있던 신우가 타구를 향해 달려왔다.

‘어떻게?!’

우투의 경우 공을 던지면 무게중심이 1루쪽으로 쏠린다.

그렇기에 신우가 3루로 달리는 건 애초에 생각을 하고 한 플레이란 소리였다.

“젠장!”

주자들이 황급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타자 역시 1루로 달리다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신우가 뜬공을 포구하려는 순간.

[잡지마!]

한줄의 채팅이 올라갔다.

거기에 반응한 신우가 글러브를 치웠다.

툭!

예상치 못하게 공이 땅에 떨어졌다.

[3루로!]

다시 올라오는 채팅.

신우는 맨손으로 공을 집어 3루로 던졌다.

퍽-!

“아웃!”

“세컨!!”

공은 다시 2루로.

퍽!

“아웃!”

“퍼스트!”

마지막으로 공이 1루로 향했다.

한 번 속도를 줄였던 타자가 다시 속도를 올려 베이스를 밟으려는 순간.

퍽!

공이 1루수의 미트에 꽂혔다.

“세이프! 세이프!!”

주루코치가 황급히 손을 좌우로 펼쳤다.

하지만 1루심의 판정은 달랐다.

“아웃!!”

[뿌-! 뿌-! 뿌-!]

[트리플플레이 완성이자너!]

[오졌고!]

[지렸고!]

[인정하는 부분이고요!]

[캬하-! 간만에 트리플플레이 봤자너!]

[쟤들 어이없어 하는 거 봐라 ㅋㅋㅋㅋㅋㅋㅋ]

채팅이 미치도록 올라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