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3화 >
* * *
캠프가 진행되면서 점점 연습경기가 늘어났다.
신우의 입장에선 즐거운 일이었다.
‘훈련도 좋지만 역시 경기를 뛰는 게 더 즐겁단 말이지.’
[ㅇㅈ]
[훈련이 중요하긴 하지만 실전이 최고지.]
[핵공감.]
반복적인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실전만큼의 즐거움을 주는 건 없었다.
첫 경기에서 선발로 2이닝 1피안타.
두 번째 경기에서는 불펜으로 1이닝 퍼펙트를 기록했다.
성적도 좋았지만 더 기분이 좋은 건.
“흡!”
뻐억!
“스트라이크! 아웃!”
상대를 윽박지르며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맞춰 잡는 피칭을 주로 했었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투수라면.
“흡!!”
뻐억!
“스트라이크! 아웃!!”
상대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이 순간의 쾌감을 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올린 신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피터가 스미스에게 물었다.
“방금 구속은?”
“92마일입니다. 초구부터 방금 던진 공까지 모두 91마일, 92마일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일정하군.”
“예. 보스가 그의 구속을 체크하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 알겠네요.”
“그래?”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투수들 대부분이 초구에 힘을 아껴요. 그래서 구속이 느리다가 공을 던지면서 점점 늘어나죠. 하지만 미스터 정은 달라요. 초구부터 공의 구속이 일정하죠. 최근 두 번의 등판에서는 불펜투구도 했는데, 변함이 없어요.”
“정답이야. 그럼 미스터 정과 같은 타입은 어떤 포지션이 어울릴까?”
“음, 선발이 아닐까요?”
“이유는?”
뻐억-!
“스트라이크!!”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커터에 타자의 배트가 헛돌았다.
그 모습을 보며 짧게 감탄을 한 스미스가 급히 대답했다.
“오늘 경기전에 30구를 불펜에서 던졌잖아요? 그런데도 구속이 일정하다는 건 내구도가 있다는 소리죠. 그럼 선발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물론 몇 가지 보완할 점이 있지만요. 예를 들면 구종을 추가한다거나...”
“뭐,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스미스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칭찬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야.”
“예?”
딱-!
“퍼스트!!”
“마이마이!!”
빗맞은 타구가 1루 파울라인을 벗어났다.
콜사인과 함께 내야가 분주히 움직였다.
“두 번째 경기에서 그가 불펜피칭을 했었나?”
“어? 그러고보니...”
“하지 않았지. 내가 그렇게 명령을 했으니까. 즉, 그는 어깨를 풀지 않고 마운드에 오른 상황이었어. 그런데도 구속은 어땠지?”
스미스가 수첩을 넘겼다.
그리고 두 번째 경기를 확인했다.
“초구가 90마일, 마지막 던진 공이 91마일이었습니다.”
“투구수는?”
“27개로 2이닝을 막았어요.”
“그게 의미하는 게 뭘까?”
스미스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냈다.
“언제든지 등판해도 전력투구가 가능한 투수...?”
“정답. 자네라면 그런 선수를 선발로 쓰겠나?”
스미스가 고개를 저었다.
투수의 어깨는 기계가 아니다.
처음부터 전력투구를 던질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선발투수들이 3-40구를 던져야 어깨가 풀렸다는 말을 하는 이유다.
불펜투수 역시 마찬가지다.
불펜에서 충분히 공을 던진 뒤에 마운드에 올라간다.
불펜피칭은 단순히 몸을 예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투구의 영점을 잡는 것 역시 불펜피칭의 커다란 목적 중 하나였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마운드에 올라 정확히 투구를 할 수 있는 선수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연습에서는 가능하지만 실전에서는 어려웠다.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영점조정 이후 마운드에 오르는 이유였다.
그런데 신우는 그러한 준비단계 없이 마운드에 올라 정확히 자신의 공을 뿌리고 있었다.
“불펜으로 쓰겠어요.”
스미스의 대답에 피터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원하던 대답이야. 저 친구를 잘 지켜보게. 미래 메츠의 뒷문을 막아줄 수 있을 것 같거든.”
“예.”
멀어지는 피터를 보던 스미스가 다시 신우를 바라봤다.
와일드한 투구폼과 함께 힘차게 공을 뿌렸다.
빠각!
그의 커터에 좌타자의 배트가 부러지고 타구가 높게 떠올랐다.
“마이!!”
마운드에서 내려온 신우가 타구를 가볍게 잡아내며 이닝이 마무리됐다.
* * *
마이너캠프에서 신우는 총 7번을 등판했다.
14이닝 5피안타 1실점 0볼넷 10K를 기록하며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최고구속은 93마일까지 나오며 신우의 원래 목표를 이루어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장타가 단 1개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1개의 장타도 실투가 아닌 제대로 된 공을 타자가 잘 쳐서 나온 녀석이었다.
최종성적표를 받아든 신우는 이게 자신의 기록이 맞나 싶었다.
‘흐흐, 이게 꿈이냐 생시냐?’
설마 미국에 와서 한국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성적을 거둔다면 메이저리그에 오르는 것도 꿈이 아닐 것 같았다.
[김칫국을 사발째 드링크하네.]
‘예?’
[한 시즌이 며칠이냐?]
‘어...대충 180일이죠.’
[그래. 캠프에서 고작 며칠 잘했다고 한시즌을 전부 다 잘 할 거라고 생각하냐?]
‘그건 아니지만...아니, 그래도 조금 좋아해도 되지 않습니까?’
[놉!]
[지금 좋아하면 어쩔?]
[이제 마이너 캠프다. 메이저에 콜업이 된 이후에 좋아해도 돼.]
[너와 함께 하는 게 누군지 잊지마라.]
자신과 함께 하는 이들.
메이저리그의 레전드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의 눈높이가 마이너에 있을리 만무했다.
[너 역시 우리와 눈높이를 같이 해야 될 필요가 있다.]
‘예.’
[알았으면 긴장 풀지말고 훈련이다.]
‘옙!’
이미 늦은 시간이다.
밖은 어두웠고 선수들은 모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훈련을 할 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훈련을 한다는 걸까?
신우는 눈을 감았다.
침대에 누워 반듯하게 눈을 감은 모습은 남들이 보기에 잠을 자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신우는 자고 있는 게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공을 던지는 상상을 해라.]
[모든 투구동작이 일정해야 돼.]
처음 이 훈련을 할 때.
그들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비쥬얼라이즈 훈련.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 걸 상상하는 것이다.
이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제구력이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공을 던지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 제구력이 좋아진다니.
그때 매튜슨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호주의 한 대학에서 다트선수에게 왼손으로 다트를 던지게 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다트선수는 20개 중 5개를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시켰다.
연구진은 두 번째 실험을 한 달 뒤에 진행을 했는데, 그때 다트선수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 한 달동안 다트를 던지지 말고 오로지 던지는 상상만 하라는 것이었지.]
‘결과는요?’
[20개 중 목표에 명중한 것은 모두 10개였다. 한 달만에 2배나 정확성이 상승한 거지.]
‘헐...’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신우는 그들의 말을 믿고 훈련에 임했다.
사실 훈련이랄 것도 없었다.
상상을 하는 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었다.
잠을 자기 전에 할 수도 있었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도 할 수 있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제구력이 좋아진다면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비쥬얼라이즈 훈련을 통해 제구력이 조금씩 좋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분명히 좋아졌다.
비쥬얼라이즈 훈련을 하기 이전에는 영점을 잡기 위해 불펜에서 충분한 피칭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훈련을 한 뒤부터는 불펜피칭이 없어도 언제든지 영점을 잡아낼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직접 경험을 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 훈련덕분에 신우는 오른손으로 적응하는데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훈련의 효과를 안 뒤부터는 신우 스스로가 이 훈련을 언제 어디서나 하고 있었다.
“후우...”
깊은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그는 머릿속으로 공을 100개나 던졌다.
남들이 보기에는 쉬는 것과 다를바 없었지만 신우는 남들과의 차이를 벌린 셈이었다.
* * *
마이너캠프는 어느덧 막바지로 향해가고 있었다.
캠프가 모두 끝나면 선수들은 각자의 리그로 돌아가게 된다.
“시누는 어느 리그에서 뛰게 될까?”
같이 캐치볼을 하던 브리토가 물었다.
“글쎄.”
사실 신우 역시 궁금했다.
자신은 어느 리그에서 뛸지 말이다.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게 되면 기본적으로 루키리그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신우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였다.
“시누는 한국에서 프로였잖아?”
“정확히는 연습생이었지.”
“난 아직도 그게 잘 이해가 안 돼. 돈을 받고 야구를 하는데 왜 프로가 아닌 거야? 미국에서 그런 사람들을 모두 프로라고 하는데. 게다가 연봉이 2만불이었다면서?”
“응. 하지만 엄연히 따지면 연습생 신분이었어.”
“휘유-! 프로가 아닌 선수한테 2만불이나 주다니. 한국이란 나라는 정말 돈이 많은가 보네.”
싱글A에서 주로 뛰었던 브리토의 연봉은 13000달러.
그렇기에 신우가 2만불의 연봉을 받았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돈을 벌고 싶으면 너도 한국에 용병으로 가보는 게 어때?”
“싫어. 나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서 수백만달러를 받는 선수가 될 거야. 그렇게 되면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미국으로 오게 할 수 있어.”
브리토의 꿈은 가족들을 미국에서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고액연봉자가 될 필요가 있었다.
“꼭 이룰 수 있을 거야.”
“응.”
“집합!!”
그때 코치의 외침이 들렸다.
캐치볼을 하던 선수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그의 앞에 모였다.
곧 피터 게일이 선수단의 앞에 섰다.
“이틀 뒤에 한국의 데블스란 팀과 연습경기가 열린다. 그 경기에서 나갈 선수를 호명하겠다.”
데블스란 말에 신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엌ㅋㅋㅋㅋㅋ]
[이게 이렇게 되네.]
[ㅋㅋㅋㅋ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시누, 한국이라는데? 데블스란 팀 알아?”
브리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있던 곳이야.”
세종 데블스.
신우가 신고선수로 뛰던 팀이었다.
“정시누. 이상 투수들이다.”
당연하게도 신우 역시 엔트리에 들었다.
* * *
이틀 뒤.
데블스 유니폼을 입은 선수단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을 촬영하기 위해 기자들 역시 경기장을 방문했다.
“장 기자, 오랜만이야.”
“아, 선배님. 오셨어요?”
“응. 작년에 와일드카드전 이후로 처음이지?”
“예.”
장태호.
베이스볼 투나잇의 기자로서 방대한 자료와 지식으로 한국에서 인정받는 야구기자 중 한 명이었다.
“오늘 데블스 상대는 메츠의 마이너 팀이라면서?”
“예. 메이저 팀과 상대를 요청했는데, 거절당했다 하더라고요.”
“비싸게 구는구만.”
“메이저 팀과 상대하더라도 어차피 나오는 애들은 대부분 마이너리거잖아요.”
“그건 그렇지. 경기 끝나고 같이 한 잔 하자고.”
“예.”
홀로 남게 된 장태호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데블스의 선수명단을 확인했다.
‘데블스는 오늘 경기에서 주전들의 상태를 확인할 생각이야.’
그 반증으로 구단에서 제공한 선발명단 리스트가 화려했다.
작년 와일드카드에서 떨어졌지만 데블스의 타선은 KBO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작년 시즌 4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홈런왕에 오른 4번 타자, 김호성의 존재감이 컸다.
‘올 시즌이 끝나고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김호성. 상대가 마이너리거들이지만 단단히 벼르고 뛰겠지.’
선수들을 체크한 장태호가 카메라 세팅을 확인했다.
‘응?’
그때 장태호의 눈에 두 사람이 눈에 띄였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잘 아는 얼굴이었다.
‘데블스 구단 직원이잖아? 상대는 한국인인가? 그런데 왜 시라큐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거지?’
시라큐스 메츠는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은 트리플A팀이다.
저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건 한 마디로 메츠 소속의 마이너리거란 소리였다.
‘메츠에 한국인 마이너리거가 있었나?’
자신의 기억으로는 없었다.
마이너리거라 하더라도 한국인이란 기자들이 관심을 가진다.
장태호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내려가 그라운드로 들어갔다.
그 사이 한국인 선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구단직원만이 데블스 더그아웃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기요.”
“예? 아, 장 기자님.”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우리 팀 기사 좀 잘 써주세요.”
“아, 예. 그런데 방금 전에 대화나누던 메츠쪽 선수 말입니다.”
“아, 예.”
“한국인인가요?”
“예. 작년까지 저희 팀 2군에서 육성선수로 있던 선수입니다.”
“육성선수요?”
“예. 정신우라고 작년에 방출됐는데, 어째선지 여기에 있네요.”
“육성선수로 방출이 됐는데 메츠와 계약을 해요?”
“예. 메츠도 참 보는 눈이 없네요. 왼손으로 130 전후로 던지던 선수를 뭐 때문에 계약했는지 모르겠어요.”
왼손으로 130km.
확실히 그 정도로는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는 것도 어려웠다.
“그럼 전 볼 일이 있어서.”
“아, 예. 저기 그 선수 이름이 뭐라고 했었죠?”
“정신우요.”
“예. 감사합니다.”
장태호가 고개를 돌려 선수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정신우...’
묘한 스토리를 가진 선수.
그에게 관심이 가는 장태호였다.
* * *
신우는 자신의 글러브를 챙겼다.
[크으-! 이거 완전 영화아님?]
[지렸다!]
[여기에 어떻게 저놈이 있는 거임?]
[야야! 신우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지?!]
신우가 글러브를 손에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블스와 경기를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이곳에 그 녀석이 있었다.
자신에게 방출통보를 했었던 그 녀석.
방출에 악감정을 가지는 건 아니었다.
당시 자신의 실력이 형편없었다는 건 그 역시 인정한다.
팀에서 언제 쫓겨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뭐, 그만큼 필요 없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을 한 녀석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자신이 해야 될 건 하나밖에 없었다.
“물론이죠.”
팡-!
그의 주먹이 글러브를 때리며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