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0화 >
* * *
신우가 마운드에 섰다.
‘내가 미국에서 공을 던지다니.’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으...갑자기 왜 이렇게 춥냐.’
너무 긴장을 해서일까?
오한이 들었다.
공을 잡은 손이 떨리고 시야가 좁아졌다.
이 느낌 익숙했다.
‘젠장...프로 첫 데뷔할 때랑 똑같잖아.’
프로 첫 데뷔.
1군도 아닌 퓨처스리그에서 마운드에 오를 때와 똑같았다.
그때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렸다.
오한이 들었으며 시야는 좁아졌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놓인 긴장감.
운동선수만이 아닌 일반인도 경험해본 것들이다.
생애 첫 면접을 보러 간 날.
생애 첫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 날.
[너 여자친구 없잖아?]
“예?”
[모쏠이잖슴.]
‘...’
[모쏠이 여자친구 있는 척 하네.]
[본인! 방금 여자친구 부모님 만난 상상함!]
[하지만 어림도 없지!]
‘아놔...저기요. 그래도 저 어릴 때 여자친구...’
[너 저번에 술 마시고 여자친구도 못 사겨본 찐따라고 스스로 자백했었음.]
[ㅇㅇ]
[기억 안남?]
‘레알요...?’
[어, 레알.]
[그때 이 방 접속자 몇 명이었냐?]
[누가 도네 좀 보내라.]
[이쉑 흑역사 자기 눈으로 보고 싶누.]
정말인가...?
아니 애초에 모쏠인 걸 저 사람이 알 수가 없는데.
그런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때였다.
“60번! 안 던져?!”
“예, 예! 던집니다!”
감독관의 외침에 다급히 대답했다.
다시 자세를 잡고 포수를 바라봤다.
‘어?’
이전처럼 시야가 좁아지지 않았다.
휘릭!
‘응?’
글러브 안에서 공을 잡고 있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방금 전에 느껴졌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모쏠이라 놀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재판장님! 저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무죄! 탕탕!]
“쯧!”
혀를 차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마웠다.
자신의 기분을 풀어준 그들에게.
하지만 인사는 하지 않았다.
보여줘야 될 것은 더 이상 긴장하지 않고 투구를 하는 모습이었다.
촤앗-!
다리를 차올린 신우가 무게중심을 뒤로 이동했다.
자연스레 무릎이 낮아졌다.
약간 비틀린 골반을 돌리며 왼발을 내디뎠다.
타닥!
다이나믹한 스트라이드와 동시에 골반을 돌리며 상체를 회전시켰다.
회전력에 의해 가슴이 앞으로 나왔지만 팔은 여전히 뒤에 있었다.
마치 활의 시위를 당긴 듯.
신우의 가슴, 골반, 배가 곡선을 이루었다.
그리고 마치 시위를 당기는 손처럼 그의 손은 뒤에 고정된 채 자리하고 있었다.
앞으로 달려가는 힘에 반항하다보니 그의 팔은 관절이 가진 가동범위를 넘어섰다.
그로 인해 지면과 수평을 이루는 형태가 되었다.
이런 순간을 견디기 위해 야구선수들은 끝없이 훈련을 지속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속도를 구사하기 위해서 말이다.
후웅-!
팽팽하게 당겼던 시위를 놓듯.
신우는 상체를 회전시키며 그 힘을 이용해 팔을 휘둘렀다.
그동안 축적되었던 힘을 모두 폭발하듯.
팔이 매서운 속도로 회전했다.
‘지금!’
[지금!]
팔의 높이, 등 그리고 뒤꿈치가 일직선상에 놓이는 순간.
신우는 손끝으로 실밥을 채면서 동시에 팔을 안쪽으로 회전시켰다.
이러한 행동은 공을 회전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팔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함이다.
팔을 내전시킴으로 인해 등근육으로 힘이 분산이 되면서 가해지는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투수들이 등근육의 부상이 많은 이유는 던질 때와 던진 이후의 충격흡수를 돕기 때문이다.
뻐억-!
신우의 두 다리가 땅에 닿았을 때.
그의 시선에 미트에 꽂힌 자신의 공이 보였다.
“와우-!”
“나이스 피칭...”
“와...”
주위에서 공을 던지던 투수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경쟁자임에도 그것을 잊고 감탄을 할 정도로 좋은 공이었다.
감독관도 무언가를 적으며 체크를 하고 있었다.
“굿 피칭! 그렇게만 던져!”
포수가 공을 던져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의 얼굴에 자신감이 나타났다.
‘좋았어.’
오랜만의 피칭이다.
하지만 느낌은 무척이나 좋았다.
무엇보다 몸이 가벼웠다.
공을 더 강하게 던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조금씩 구속을 높혀.]
[ㅇㅇ 지금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보여줘야 함.]
[굳이 힘숨찐이 될 필요없음.]
[고고고고!]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2구를 뿌렸다.
뻐억!!
“나이스 피칭!!”
“더 빨라졌는데?”
“와...”
3구.
뻐어어억!!
“나...나이스!”
“방금보다 빠르지 않아?”
“미친...”
4구.
콰창-!
“이...이런...”
“왓더...!”
포수가 포구를 하지 못했다.
구속도 더 빨라지긴 했지만 가장 놀라운 건 공의 변화였다.
‘마지막에 휘었다.’
홈플레이트에서 불과 3m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생각지도 못한 변화에 대처가 늦어버린 것이다.
그때였다.
“헤이! 60번.”
“예?”
“방금 던진 공, 5번만 더 던져봐.”
“방금이요?”
“그래. 커터였지?”
감독관의 말이 무엇인지 이해한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놀란 빛이 나타났다.
“커터였다고?”
“딜리버리는 거의 비슷하지 않았어?”
“똑같았지.”
“거기다가 공의 회전도 거의 비슷했던 거 같은데?”
“그런데 공은 변했잖아?”
“이런 공 어디서 들어보지 않았어?”
누군가의 한 마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떠오르는 단 한 명의 인물.
마리아노 리베라.
전설이 되어버린 선수.
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무리로 평가받는 그의 커터도 이런 식이었다.
“또 던진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신우를 집중했다.
* * *
점심시간.
그라운드에 남은 선수는 많이 줄어 있었다.
오전 테스트에서 떨어진 선수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여기 남은 선수들은 그 테스트에 붙은 이들이었다.
그중에는 신우 역시 있었다.
구단에서 나눠준 도시락을 먹으며 신우는 오후 테스트를 기다렸다.
“오후 테스트는 시뮬레이션 경기야.”
“시뮬레이션 경기요?”
“응. 각 포지션별로 테스트를 하는 거지. 실전 테스트라고나 할까?”
“아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시스템이 메이저리그 트라이아웃에서 가져온 것이니 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네가 던졌던 커터는 정말 충격적이었어.”
“하하...”
“어떻게 배운 거야? 너도 타고난 건가?”
마리아노 리베라는 자신이 던진 커터를 신의 축복이라 했었다.
그만큼 여러 우연이 겹치지 않으면 던질 수 없는 공이란 소리였다.
실제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를 던지기 위해 수없이 많은 선수들이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제 그의 커터를 환상의 공으로 평가할 정도였다.
“예, 뭐...”
신우도 대충 그렇게 대답을 했다.
우연도 있었지만 사실 그만큼 노력도 기울였다.
‘정말 죽을 것 같았지.’
[그래도 죽지는 않았잖아?]
[동감.]
[죽지는 않았고 그런 공을 던질 수 있게 됐으니 좋은 거 아님?]
[ㅇㅈ]
[거저로 얻은 거나 다름없지.]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하아...그때만 생각하면...’
문득 지난 겨울이 떠올랐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를 던지기 위해서 악력에 집중했다.
단순히 악력을 키운 것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커터를 던질 때는 포심과 다른 그립을 잡는다.
하지만 리베라는 포심과 같은 그립을 잡는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중지가 검지보다 조금 더 길게 잡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에 커터성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건 두 손가락에서 각기 다른 힘이 공에 가해지기 때문이다.
리베라는 중지에 더 많은 힘을 주어서 공에 회전을 일으켰다.
덕분에 포심 그립에서도 커터성 변화를 줄 수 있었다.
신우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변화를 주기 위해 손가락의 단련에 열을 올렸다.
손가락은 인간이 단련하기 가장 어려운 부위 중 하나다.
그런 손가락을 단련하기 위해서 신우가 겪었던 노력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욱-!”
“응? 왜 그래? 속이 안 좋아?”
“아...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음식이 좀 안받네요.”
“그래? 음료수 좀 마셔. 괜히 다 먹을 필요 없어. 괜히 무리하게 먹으면 경기를 뛸 때 방해가 될 테니까.”
“예...감사합니다.”
구토를 유발했다.
겨우 진정을 시킨 신우가 한숨을 내뱉을 때.
“응? 뭐야? 원숭이가 통과를 했네? 하여간 메츠는 수준이 너무 낮다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신우가 인상을 구겼다.
고개를 돌리자 짧은 머리의 백인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참아, 괜히 사고치면 오후 테스트가 물 건너갈 수도 있어.”
“후우...예.”
루카스 덕분에 화를 참을 수 있었다.
그래,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 * *
진짜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똥을 피하려고 했는데, 결국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이.
“이봐! 들었어?!”
“아, 예.”
“일단 두 명의 타자를 상대할 거야. 구종의 제한은 없으니까, 마음대로 던지도록 해.”
“예.”
투수코치를 맡은 감독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신우의 신경은 온통 배트를 휘두르고 있는 저놈에게 향해 있었다.
‘흰똥새끼.’
[ㅋㅋㅋㅋㅋㅋㅋㅋ]
[흰똥ㅋㅋㅋㅋㅋㅋ]
[화이트풉이냐?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저게 뭐가 재밌다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한방 먹일 기회가 왔다는 게 중요하다.
“이봐, 영어는 할 수 있어?”
투수코치와 다른 목소리가 들리자 신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의 앞에는 순박해 보이는 인상의 백인남자가 서있었다.
그 역시 오늘 테스트를 받고있는 선수였다.
“당연히 할 수 있지.”
“다행이다. 사인을 정해야 되니까, 던질 수 있는 구종을 말해줘.”
“두 개야.”
“두 개?”
신우가 검지를 펼쳤다.
“이게 포심.”
뒤이어 중지를 펼쳤다.
“이게 커터.”
“그거 두 개라고? 슬라이더는? 커브는?”
“두 개면 충분해.”
단호한 신우의 말에 포수가 뭐라 말을 하려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 알았어. 그럼 일단 그 두 개에 맞춰서 사인을 줄게.”
“응.”
포수가 캐처박스로 돌아갔다.
그 사이 로진을 손에 묻힌 신우가 몸을 돌렸다.
그런 신우의 눈에 배터박스에 들어서는 화이트풉이 들어섰다.
녀석도 신우를 보고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도발을 하고 있었다.
[저 새끼 계속 쪼개네.]
[야야! 저 새끼 조지자.]
[그냥 몸에 던져버려.]
[데드볼 필요없다. 그냥 데스볼 ㄱㄱ]
[데스볼 가즈아아아!!]
채팅창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데스볼이라니...
‘선배님들 친구 필요해요?’
[...얌마! 우리가 저런 애송이랑 친구할 군번이냐?!]
[우리가 아무리 외로워도 똥이랑은 친구 안함.]
‘그러니 데스볼은 좀 미루겠습니다.’
“플레이볼!!”
구심이 경기시작을 알렸다.
주자없는 상황.
4회.
스코어는 2 대 0으로 지고 있었다.
사실 이런 데이터는 별로 필요치 않았다.
중요한 건 저 흰똥이 앞서 장타를 때리고 타점을 올렸다는 거다.
[장타력은 있다. 스윙도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네 상대는 아니다.]
매튜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포수와 사인을 교환했다.
‘아웃코스, 로우.’
코스를 정하고.
‘포심.’
구종을 결정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와인드업과 함께 초구를 뿌렸다.
쐐애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구심의 손이 올라갔다.
높이가 살짝 높았지만 코스는 완벽했다.
“나이스! 나이스!”
공을 다시 받은 신우는 두 번째 사인을 교환했다.
‘인코스, 하이.’
정석대로였다.
제대로 던질 수만 있다면 상대의 눈을 어지럽힐 수 있는 공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2구를 던졌다.
뻐억!!
배트가 반쯤 돌다가 상체가 뒤로 빠지며 멈췄다.
[돌았다!]
[저건 돌았다!]
[야! 왜 체크 안해?!]
그런데 포수가 삼루심에게 체크를 요청하지 않았다.
다시 공을 던져주려는 포수를 본 신우가 삼루심을 가리켰다.
“체크! 체크!”
“아!”
그제야 깨달은 듯 포수가 삼루심을 바라봤다.
“스윙!”
“젠장!”
스윙이 인정되자 흰똥이 신경질을 냈다.
“나이스 피칭!”
공을 다시 던져주는 포수를 보며 약간의 불안감이 생겼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체크하지 못하다니.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경험부족인 듯.]
[ㅇㅇ]
[포구도 좀 불안하고.]
[시야가 좁아.]
레전드플레이어들 역시 비슷한 의견이었다.
뭐, 영원한 배터리도 아닌데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어쨌건 투 스트라이크.’
이제 스트라이크 하나면 끝이다.
이번에 나온 사인을 당연하게도.
‘아웃코스, 로우.’
바깥쪽 낮은 곳에.
‘커터.’
예상과 같은 리드에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심호흡과 함께 와인드업을 한 신우가 3구를 뿌렸다.
딜리버리는 모두 같았다.
스트라이드, 공이 빠져나오는 위치, 팔로우스로 그리고 던지는 릴리스포인트까지.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단 하나.
포심과 완전히 다른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공에 가해지는 힘이었다.
검지보다 중지에 더 힘을 주어 공에 힘을 가했다.
“차앗-!”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나 공이 날아갔다.
흰똥은 릴리스포인트나 공의 회전이 동일하다는 걸 확인하고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홈플레이트의 3m 앞에서 공이 변화했다.
‘커터?!’
뒤늦게 눈치챘지만 이미 늦었다.
빠각!
빠지지직!
공이 배트의 손잡이 부근으로 말려 들어와 충돌했다.
배트는 공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쪼개졌다.
공은 힘없이 투수를 향해 굴러갔고 타자는 급히 1루로 내달렸다.
퍽!
“아웃!!”
공이 먼저 도착하며 아웃카운트가 올라갔다.
“fuck!!”
거친 욕설만이 공허하게 그라운드를 울렸다.
[거 입도 똥같은 새끼일세.]
[전신이 똥이구만.]
[여윽시 화이트풉.]
[흰똥빠염.]
채팅창을 보며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이후 두 명의 타자를 삼진과 내야뜬공으로 돌려세운 신우는 삼자범퇴로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그렇게 신우의 첫 번째 트라이아웃이 끝났다.